한 잎 조각배에 실은 것은

전원일기/수지에서(2)

김현거사 2017. 2. 4. 12:17

  

전원일기/수지에서(2)    

 

 2005년 4월

 전원의 일 중 중요한 것은 텃밭 가꾸는 일이다. 채근담에는 '사람의 지조는 담박한 데서 생긴다'고 한다. 좋은 집이나 고량진미 같은 것에 맛 들이면 지조를 지킬 수 없다. 국회의원 장차관은 높은 벼슬이다. 그러나 그걸 초개같이 볼 줄 알아야 한다. 초개(芥)란 지푸라기를 말한다. 권력 맛 들인 사람은 비린내가 좀 난다.

 

 은퇴한 후 비린내 외면하고 돌미나리, 땅두릅, 오가피, 참나물, 짚신나물 같은 걸 키워보았다.

 짚신나물은 비타민이 보통 채소보다 열배나 많다. 오가피는 올림픽에 출전한 쏘련 선수들이 복용한 나무인삼이다. 동우대 강의 다닌 시절 오색약수에서 오가피 열매를 사와서 토평아파트 음지에서 키운 것이다. 오가피는 싹은 나물로 먹고 뿌리와 가지는 차로 다려 먹는다. 식약동근(食藥同根)이라 한다. 보약이 따로 없다. 봄에 뜰에서 오가피 싹 한 접시 따서 밥상에서 봄향기 맛보는 그 맛이야말로 텃밭 가진 사람 특권이다.

 

 꽃 하고 시시때때로 같이 놀아보는 것도 전원 사는 사람 특권이다.

 양귀비꽃은 거기서 아편을 채취하던 꽃이다. 금지 식물이지만, 그 빛깔이 너무 고와 꽃양귀비란 화초가 있다. 부드러운 빨강, 주황, 흰색의 꽃은 여인의 파라솔처럼 곱다. 3일만에 꽃이 지지만 꽃봉오리 계속 올라오므로 키워볼만 하다.

 애기사과 꽃몽오리 수십 개씩 뭉쳐서 올라오는 모습은 생명의 신비로움 느끼게 해준다. 하나하나 꽃몽오리 부드럽고 가을에 작은 빨간 열매가 볼만하다. 가지에 조롱조롱 맺힌 모습 겨울 내내 낙목한천의 멋을 느끼게 해준다. 

 삽목한 장미 네 개가 싱싱하게 싹이 올라오고 있다. 두 개는 꽃 지름이 20센티도 넘는 대형 '피스' 계통이고, 두 개는 아이보리 계통의 우아한 백장미다. 귀한 장미를 삽목해서 뿌리를 내리고, 그 묘목에 물뿌리개로 물 뿌리는 은밀한 기쁨은 그 일 해 본 사람만 안다.  

 봄이 익어간다. 열 한 점 치는 거실 뻐꾸기 시계 소리는 뜰에서도 들린다.

 

 

 2005년 5월

 수시로 약수터 갈 수 있음은 산 밑에 사는 사람 특권이다. 아내와 약수터로 가보았다. 비 그친 청산은 싱그럽다. '천년약수' 올라가는 산길에서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아내가 신이 나서 처녀처럼 목소리 가다듬어 쏘프라노 뽑는다. 가만 있기 뭣한 데다 보는 사람도 없어 나도 이태리 청년처럼 벨칸토 창법으로 화음을 맞춰보았다.

  

 

 그늘진 응달에  진달래 피었고, 산길에 엷은 하늘빛 색감이 기가 막힌 현호색 꽃이 피었다.

 

 

 고랑엔 젖은 이끼 위로 졸졸 물이 흐르고, 낙엽 뚫고 고사리 새순 도로르 말려 올라온다.

 묵은 밭의 찔레덤불에서 암수 멧새는 춘정에 못이겨 짹짹! 노래하고, 산벚꽃은 산에다 수를 놓았다.

약수터에서 시원히 한모금 마시고, 약수 다섯 병 배낭에 담으니, 세상 부러울 것 없다. 

'산벚꽃 활짝 피면 김밥 싸가지고 옵시다. 약수터라 음료수는 가져올 필요도 없겠고...'

'숲에서 식사하면 마네의 그림 <풀밭 위의 식사> 같은 분위기 나겠어.'

 

 이러고 산을 내려오니, 밭두렁에 쑥이 많다.

'여긴 완전 쑥밭이네.'

 인근 아파트 주부들도 나와서 쑥 캐니 그 모습 홍난파의 노래 같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풀옷을 입으셨네. 하얀구름 너울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저녂에 쑥국 끓입시다.'

아내가 향기로운 쑥을 한 웅큼 캐고, 까만 비닐봉지 흔들며 의기양양 소리친다.

 

 

 2005년 5월

 5월이 아름다운 건 장미가 피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장미를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 6시에 커튼 젖히고 우선 장미부터 본다. 그후 뜰에 나가서 심호흡 하면서 장미 향기를 맡아본다.

 

 

 

 뜰은 아름다운 미인을 가득 초청해놓은 것 같다. 수많은 장미가 요염하다. 저마다 체취도 다르다. 하얀 이브닝가운의 백장미, 노란 치마 끝에 빨간 레이스 달린 피스장미, 양장여인처럼 단아한 아이보리장미, 핑크레이디 핑크장미, 붉은 빛 강열하다 못해 검은 흑장미, 죤웨인의 텍사스 기병대 yellow ribbon 생각나는 노랑장미,

 이 모두 여인 초대하듯 하나하나 찾아가서 모셔온 것이다. 저마다 다른 향기와 빛깔도 빛깔이지만 장미는 모델처럼 저마다 멋진 포즈 취하고 있다. 창문 옆에, 혹은 장미아치 위에, 아침 햇볕 받으며 포즈를 잡고있다.

 

 장미꽃 사용하는 용도는 여러가지다. 드라이풀라워 만들어 침실에 놓기도 한다. 생화를 식탁 위 크리스털 병에 꽂기도 한다.  

'저 새벽 이슬 내린 빛나는 언덕은 그대 함께 언약맺은 내 사랑의 고향', <애니로리> 흥얼거리며, '매일 이렇게 싱싱한 장미꽃 아내에게 바치는 남편이 세상에 또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생색을 내보기도 한다.

 장미꽃잎과 쑥갓. 상추. 참기름. 소고기볶음. 매실고추장 넣어 비빔밥을 만들기도 한다. 

'이거 먹고 얼굴빛 장미보다 더 고와져 사람 걱정시키지 말기...' .

 공연한 걱정 해보기도 한다.   

 

 

 목욕탕에 장미 꽃잎 띄워주며, '아마 해당화 꽃 모양처럼 만든 양귀비의 화청지(華淸池) 청석(靑石) 욕조도 이처럼 향기 좋은 장미 꽃잎은 띄우지는 못했을꺼야!' 생색을 내보기도 한다. 양귀비는 욕조에 한약재와 꽃잎을 넣었다고 한다.

 

'장미가 너무 아름다워요.' 아침 이슬 밟고 온 옆집 아줌마에게 아내는 커피를 대접하곤 했다. 

 

2005년 6월

익은 살구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슬 빤짝이는 잔디밭 여기저기 떨어진 노란 살구 과피(果皮)가 아름답다.

 

 

 바구니 옆에 끼고 도라지 캐러가는 아가씨 맘이 이럴까? 하루밤 넘기면 일곱 그루 살구나무 살구가 풀밭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다. 매일 아침 그걸 한바구니 줍는게 낙이다. 옛날 진주 신안동 우리 할아버지 집에 감나무 과수원이 있었다. 아침 이슬 젖은 홍시 줍던 일 생각난다. 농장 하나 가진듯 든든하다.

 살구는 익으면  맛이 달콤도 하지만 향도 있다. 그걸 깨끗이 씻어 말린 후 흑설탕에 버무려 잼 만드는 일은 즐급다. 살구는 비티민 A와 베타카로틴이 많다. 항노화 작용을 하고 암을 예방한다. 대장에 좋고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좋다. 아침을 살구잼 바른 식빵과 우유 한 잔으로 때우기도 한다.

'살구잼 바른 식빵이 라면보다 좋다'면서 출근시간 바쁜 아이집에 넌지시 보내는 일도 즐거움이다.

 

 

 

 

 

 

 

 
 2005년 6월

 

신흠(申欽)의 야언(野言)이란 글을 보면, 문을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 문을 나서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추구해야 할 세 가지 즐거움이라 하였다. 

 

 나는 문 닫고 집에 있을 때 주로 무얼 하는가. 불교방송 듣는다. 새벽 인시(寅時)에 커튼

젖히고 밖을 내다보면 가로등 불빛만 졸고있다. 가부좌 틀고 명상 해보고 염불 해보고

목탁도 쳐본다.

'개자원화보' 펼쳐놓고, 먹으로 소나무, 매화나무, 국화 등 따라 그려본다. 추사 글씨 

반야심경 현판이 있다. 그동안 화선지에 반야심경을 한 50번 쯤 써보았다. 이젠 추사

글씨의 맛을 좀 알겠다.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경우는 드물다. 봄에 친구와 지리산 다녀오는 것이

전부다.

 문을 나서서 마음에 드는 경치 찾아가는 경우는 잦다. 산에 가면 우선 마음이 편안하다. 흰구름처럼 할일 없이 찾아가서 놀곤한다. 산은 나의 성당이요 법당이다. 간혹 신비로운 나무나 바위한테 기도도 드린다. 

 물소리는 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 파동은 어머니 뱃속에서 들은 양수의 파동과 비슷하다는 말도 있다. 약수 뜨러 가는 시간은 안개 자욱한 새벽일 때도 있고, 한낮일 때도 있다. 언제나 물소리는 마음을 씻어준다. 신선이 사는 곳에서 들려오는 음향처럼 마음을 청량하게 해준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한줄기 바람처럼 온 곳 알 수 없고 갈 곳 모르는

인생이다. 산에서 떠온 약수로 갈근, 산뽕나무, 석창포 넣고 차 끓인다. 욕심을 버리자.

 산 속에서 지는 꽃처럼 고요히 지자. 하심(下心)을 배우자. 물처럼 아래로 흘러가자.

 

 2005년 6월

 언제가 E마트에 두견주(杜鵑酒)가 있는 걸 봐두었다. 광교산 안에 외딴 음식점 하나

있다.

 진달래 핀 봄에 거기서 두견주 독작하고 달빛 속에 답월(踏月) 하리라. 소복 여인의

울음같이 가슴 아픈 두견새 소리 들어보리라.

 

 두견새는 우리말로 뻐꾹새, 쑥꾹새, 접동새, 꾸꾸기, 풀꾹새로 불린다. 엄밀히 외형상

차이가 있다고 까다롭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대수랴. 한자로는 자규(子規),

촉혼(蜀魂), 불여귀(不如歸), 귀촉도(歸蜀道), 곽공조(郭公鳥), 망제혼(望帝魂)으로

불린다.

 

 사람들은 두견새가 봄 밤에 목이 터지게 슬피 울 때, 그 핏방울이 떨어져 핀 꽃이

두견화라 한다.  영월 청령포에 가면 단종이 유배되어 살던 곳이 있다. 단종을 두견새에

 견주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두견새가 슬픈 원조(怨鳥)인 건 틀림없다. 두견화 피는 봄

두견새 소리 들으며 두견주 한잔 없을 수 없다.

 

 단종은 '자규시(子規詩)'에서 '두견새 소리 끊긴 새벽 봉우리 잔월이 희고, 피 흐르는 

골짜기 낙화가 붉구나(聲斷曉岑殘月白 血流春谷落花紅)'하고 읊었다. 이조년은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은 삼경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알랴마는'

하고 읊었다.

 김소월은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의 혼이 넋이 되어

운다'고 <접동새>란 시를 썼다. 서정주는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라는 '귀촉도(歸蜀道)'란 시를 썼다.

 그래서 그럴까? 옛날부터 우리는 두견화로 술을 빚어 1백일만에 마신 두견주, 또

진달래꽃 화전, 오미자즙이나 꿀물에 띄운 화채를 즐기었다. 운치있는 옛풍습이다.

 

 산에 가면 간혹 뻐꾸기 소리 비슷하게 우는 새가 있다. '꾹꾸 꾹꾸 꾹꾸르르' 하고 운다. 

촌에 우리 할아버지 논가에 찔레꽃 하얗게 필 때 이 새가 울어 옛날부터 나는 그게

뻐꾸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산비둘기 울음이란다. 청담동 족구장에서 울길래 내가, '도시에 웬 뻐꾸기야?'

하고 말하자, 동기가 '그건 뻐꾸기가 아니라 산비둘기 울음 소리다' 하고 알으켜 주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뻐꾸기는 진달래 꽃 피는 봄철에 '뻐꾹 뻐꾹' 두 구절로 낭낭히 운다. 

  

  2005년 6월 -아이리스

  내가 아이리스(Iris)를 처음 알게 된 곳은 도꾜 황궁의 뜰이다. 거기서 물가에 핀 고결한

청자빛 푸른 꽃을 보았다. 붓꽃은 흰색, 노란색, 자주색도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색은

고결한 청자빛이다. 아! 붓꽃이 이렇게 깔끔하고 고결한 멋을 지닌 꽃이던가? 나는 일본

황실이 붓꽃을 선택한 안목에 감탄했다. 그건 깔끔함의 극치였다. 그 황홀한 푸른 빛은

세련된 여성의 목에 감긴 스카프를 연상시킨다. 스콧트랜드 호숫가에 핀 수선화를 시로

승화시킨 천재 위즈워스의 안목이 생각났다.

 

 

 

 그 후 나도 붓꽃에 개안하였다. 처음 속초 화암사 계곡에서 앙증맞게 작은 각시붓꽃을

발견한 이후 붓꽃에 대한 사랑을 넓혀갔다. 그건 작은 화분에 심어 기르기 딱 좋은

것으로 유망한 화훼 품종이었다.

 붓꽃은 꽃피기 직전의 모양이 붓같이 보인다고 붓꽃이다. 꽃 깔은 주로 푸른

색이지만, 간혹 흰색, 자주색, 금색도 있다. 그 중 금색은 금붓꽃이라 부른다. 붓꽃과 

비슷하게 생긴 꽃창포가 사람을 혼동시키는 경우도 있다.

 

 여행 중 엉뚱하게도 통영 매물도에서 독일붓꽃(German iris) 알뿌리를 구해온 적 있다.

 

 

 양재동 화훼센터 그 많은 화원들 중에 붓꽃 알뿌리 파는 집은 유일하게 딱 하나 밖에

 없다.

그런데 여행 중에 그 무슨 횡재랴! 노지에 무더기로 심어져 있길래 한 뿌리를 구해 

봉투에 넣어온 것이 기특하게도 겨울엔 잎이 파란 채로 월동하더니, 봄에 꽃이 핀 적

있다.

 

 독일붓꽃(German iris) 영국 스페인 폴투갈 일본붓꽃은 크기도 큰 데다 화려한 흰색

하늘색 자주색 벨벹색 등이 사람 감탄시킨다.



 

 붓꽃을 iris라고 부르는데, '무지개의 여신'이란 뜻이다. 프랑스 사람은 잎이 그들이

좋아하는 펜싱 칼 같다는 이유로 붓꽃을 사랑한다. 딸아이가 공부하던 이리노이에서

집집마다 뜰에 심어진 붓꽃과 매발톱꽃 보고 반가워 한 적 있다. 매발톱꽃은

설악산에 자생하여 한국이 원산지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미국 남부였다. 

 

   

 

 

 

 

 

 

 

 

 

 

      

 
        

   

 
     처음 필 때 봉오리가 붓처럼 생겼다고

                                옛날에 선비님들이 그리 작명 했느냐 

 

 

 

 

      

 

 

 

 

 

텃밭에서/6

 

토마토가 열매 맺아 텃밭에 경사났다

보름 전에 심은 묘목 열흘만에 꽃이 피고

이제는 열매 맺히어 얼씨구 지화자다

 

 

스무 그루 심었는데 포기마다 달렸으니

한 그루에 열개라면 이백 개 아니겠나

하루에 몇 개 쯤 따나 그것이 문제로다 

 

 텃밭에서/4

 

직장을 물러나서 포의로 돌아오니

찾는 이 마냥 없고 사위가 고요하니

이제는 상추 고추가 정다운 친구라

 

산골의 강아지는 뇌물에 맘이 약해

낮설은 얼굴 보고 죽자사자 짖더니만

과자를 두어개 주자 꼬리 치며 반기

 

바람에 귀를 씻고 물소리에 맘을 씻고

들꽃에 눈을 씻고 6근마져 씻었더니

이제는 푸른 하늘이 한없이 아름답네

        

*6근(六根) ;  眼耳鼻舌身意  

                               (5월11일)    텃밭에서/5

 

텃밭 옆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약초로다

흰민들레 잎과 뿌리 염증 치료 탁월하고

심지어 질경이조차 만성위염 고쳐준다

 

녹용을 부러마라 갈용(葛茸)을 아시는가

칡순을 한방에선 갈용이라 부르거니

녹용에 버금 가느니 양기에 으뜸이다

 

도라지 심어놓고 인삼을 부러마라

뿌리에 사포인을 둘이 다 품었으니

밭 가득 도라지 심고 무엇을 근심하랴

 

산에 가서 약수 뜨고 텃밭에서 약초 캐고

신농 염제 뜻을 따라 잡초까지 살펴보면

천지가 약초로 가득 은혜로 가득하다

                                   (5월12일) 0 | 2015.05.16. 11:39 http://cafe.daum.net/bibong933/YWrC/621 

   텃밭에서/6

 

토마토가 열매 맺아 텃밭에 경사났다

보름 전에 심은 묘목 열흘만에 꽃이 피고

이제는 열매 맺히어 얼씨구 지화자다

 

 

스무 그루 심었는데 포기마다 달렸으니

한 그루에 열개라면 이백 개 아니겠나

하루에 몇 개 쯤 따나 그것이 문제로다

텃밭에서 /3

 

하마나 내고향은 모심기 끝났을까

남쪽 하늘 바라보니 푸른 산 막아섰고

새하얀 찔레꽃 위로 나비가 날아간다

 

밀짚모자 눌러쓰고 밭둑에 앉았으니

청운의 푸른 꿈은 남가일몽 이었던가

아득히 흘러간 세월 무심키만 하구나

 

학문에도 빠져보고 사랑에도 빠져보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꿈 깨어 생각하니 

이제는 고향의 꿈만 텃밭에 서려있네

 텃밭 옆의 산뽕나무

 

텃밭 옆의 산뽕나무 뿌리가 약이로다

약탕기에 다릴 적에 냄새부터 향기롭고

황금빛 산뽕 찻물은 보기도 아름답다

 

당뇨로 고생하던 우리 집 안방마님

페트병에 담아두고 두어 달 먹고나서

어느새 당뇨 수치가 사십을 내려갔네

                                                          (5월7일)텃밭에서/2

 

산 아래 작은 텃밭 화엄의 세계 같아

물소리 고요하고 들꽃은 피어나고

바람은 맑고 시원해 번뇌가 멀어진다

 

오동나무 꽃은 피어 향기가 진동하고

감나무 늙은 가지 감꽃이 주렁주렁

천지가 고요함 속에 실상을 보여준다

                                         (5월8일)텃밭에서/1

 

간밤에 내린 비로 텃밭은 천국이다

함초롬히 젖은 땅에 상추 싹 돋아나서

튼실한 하얀 뿌리가 예쁘기 그지없네

 

산들바람 시원하고 꽃잎들은 휘날리고

밭가엔 살 찐 봄쑥 향기롭게 돋아나고

멀리서 뻐꾸기 우니 없던 흥도 절로난다

 

도마도는 묘종 심고 옥수수는 씨를 심고

참외와 수박 묘종 재미 삼아 심었으니

올 여름 과일 농사는 미리부터 풍년이네

 

땀 흘려 일한 후에 냇가에서 발 씻으니

돌 아래 작은 가재 나왔다가 도로 숨네

가재야 그러지 마라 친구하고 살아보자

 

천지가 축복이고 땅이 곧 은혜로다

민들레는 약성 높고 질경이도 상약이네

뜯어온 상추 몇 잎과 아침 상 채려보세

텃밭에서/5

 

텃밭 옆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약초로다

흰민들레 잎과 뿌리 염증 치료 탁월하고

심지어 질경이조차 만성위염 고쳐준다

 

녹용을 부러마라 갈용(葛茸)을 아시는가

칡순을 한방에선 갈용이라 부르거니

녹용에 버금 가느니 양기에 으뜸이다

 

도라지 심어놓고 인삼을 부러마라

뿌리에 사포인을 둘이 다 품었으니

밭 가득 도라지 심고 무엇을 근심하랴

 

산에 가서 약수 뜨고 텃밭에서 약초 캐고

신농 염제 뜻을 따라 잡초까지 살펴보면

천지가 약초로 가득 은혜가 넘쳐난다

                                   (5월12일)

텃밭에서/7

 

텃밭에 있는 이 몸 깍꿍깍꿍 누가 찾나

고추는 대롱대롱 토마토는 살이 통통

카토크 보내지마소 흥을 깰까 하노라

 

참외는 누구 주고 토마토는 누구주까

족구하러 나가서는 사진까지 자랑하니

영감들 배꼽을 잡고 다들 뒤로 자빠지네

 

그나저나 비가 와야 가뭄이 없을낀데

하루만 물 안줘도 땅이 탁탁 갈라지니

농자지 천하지대본 비 좀 부탁합시다텃밭에서/8

 

사람이 귀한 줄은 일찍이 알았지만

만물지 영장이고 천지에 으뜸이라

하찮은 오줌조차도 비료로 일등일세

 

 큰 통에 고이 받아 겨울을 넘긴 후에

금쪽마냥 아껴가며 옥수수에 뿌렸더니

대궁이 시뻘건 놈이 뻘떠덕 일어서네

 

그 놈은 도시라서 취급하기 곤란해서

차마 생각 못하고서 포기하고 말았더니 

이제는 후회가 막급 그 놈도 뿌렸더면

 

아무리 가물어도 어디 한번 견뎌보자

장마만 올라오면 이 고생도 끝이로다

새파란 푸른 하늘아 먹구름 좀 보내다오

가뭄이라 포기하랴 참는 자에 복이 온다

하늘은 자비하사 가지 고추 달아주고

새빨간 토마토까지 먹을만치 보내주네

텃밭에서/7

 

텃밭에 있는 이 몸 깍꿍깍꿍 누가 찾나

고추는 대롱대롱 토마토는 살이 통통

카토크 보내지마소 흥을 깰까 하노라

 

참외는 누구 주고 토마토는 누구주까

족구하러 나가서는 사진까지 자랑하니

영감들 배꼽을 잡고 다들 뒤로 자빠지네

 

그나저나 비가 와야 가뭄이 없을낀데

하루만 물 안줘도 땅이 탁탁 갈라지니

농자지 천하지대본 비 좀 부탁합시다

텃밭에서/8

 

사람이 귀한 줄은 일찍이 알았지만

만물지 영장이고 천지에 으뜸이라

하찮은 오줌조차도 비료로 일등일세

 

 큰 통에 고이 받아 겨울을 넘긴 후에

금쪽마냥 아껴가며 옥수수에 뿌렸더니

대궁이 시뻘건 놈이 뻘떠덕 일어서네

 

그 놈은 도시라서 취급하기 곤란해서

차마 생각 못하고서 포기하고 말았더니 

이제는 후회가 막급 그 놈도 뿌렸더면

 

梅 花
                                       詩  김창현





매화 향기로운 밤 달은 방금 돋았는데    梅香良夜月方登




비단 옷 입은 여인 빈 방에 홀로 있어     錦衣幽人在空室




흰 이슬 달빛 창에 수정 발 드리웠네.     白露月窓水晶簾



초생달 눈섶 아래 호수같이 맑은 눈       曲眉之下淸眼湖




그대는 이 분이 누구신지 아시겠는가     公知此位是誰呀




50년 전 매화가 부끄러워한 분이네.      五十年前梅花恥

 

臥翁                                

                                   시/김창현

 

不知此翁名                     이 노인네 이름은 알 수 없으나

白髮照靑山                     백발이 청산에 비치더라.

月來桐下彈                     달 뜨면 오동 아래서 거문고 타고

醉後詩自成                     취하면 시가 저절로 이뤄졌다.

種菜一掌田                     채소를 손바닥만한 밭에 심고

牀頭一壺酒                     상 머리엔 한 병의 술.

臥翁入長生                     들어누운 노인네 불로장생에 들고

落花井下去                     떨어진 꽃은 샘물 아래로 흘러서 나가네

 

그녀의 정원| 김현거사 응접실
김현거사 | 조회 25 |추천 0 | 2010.05.28. 07:53 http://cafe.daum.net/kimjspoem/RF9k/5 

처음 이 아파트로 이사왔을 때,1층 사는 사람들 모임에서 그녀를 보았다.남편이 대학교수인 숙녀는 젊고 상냥했다.
‘우리 모임을 <가든 클럽>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멋진 제의를 한 그녀를 우리는 <가든 클럽>회장으로 뽑았다.
봄비 오고 크로커스 히아신스 꽃이 필 때 우리는 서로 정원에 찾아가서,그 꽃을 어디서 사왔는지,값이 얼마였던지 묻곤했다.서로 사 온 꽃을 나누기도 했다.

산에 진달래와 벚꽃이 필 때,그녀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방사선 치료를 받고 머리칼이 빠져 수건을 쓰고있다고 했다.늦봄이었다.슬리퍼 신고,잔듸로 덮힌 정원을 거쳐서 그 집에 가니,그녀가 꽃을 가꾸고 있었다.차 한잔 대접 받은 며칠 후 머리에 수건을 쓴 그녀도 우리집에 와서 화단에서 아내와 꽃을 보며 한참 이야기 나누었다.우리가 선물한 몇송이 장미 들고 돌아가는 그녀 뒷모습은 너무나 쓸쓸했다.그리고 그녀는 목단꽃 붉게 질 때 지고 말았다.

비 개인 여름의 어느 일요일.그녀의 정원에 가보니,남편 혼자 화단을 가꾸고 있었다.자주빛 작은 물망초꽃처럼 애처로운,엄마 잃은 어린 딸이 아빠 옆에 꼭 붙어 따라다니고 있었다.

초가을 아침,그녀의 정원은 너무나 쓸쓸하다.잡초 속에 국화꽃은 가려있다.그녀가 심은 목백일홍 나무는 꽃도 없이 말라있었다.복자기나무 붉은 잎에 하얀 이슬 맺혔다.주인 없는 흔들의자는 비어있고,장미는 가지가 제멋대로 뻗었는데,아름답던 숙녀가 매달아놓은 정원 램프등은 너무나 외로웠다.
‘고운 꽃일수록 일찍 시든다’던 어느 시인의 한탄 바로 그것이었다.

약수터에서

 

굴참나무가 옷 벗자

붓이 되었다.

초겨울 하늘에

시를 쓴다.

꼬부라진 외길 따라온

석양

저만치 바위 선점한 

안개

옷자락 먼지 털어 더 푸른 

소나무

셋 외에 아무도 없고,

어린애 오줌발처럼 싱싱한

약수 담는

나 밖에 없다.

小雪 첫 얼음 전에

나도 벗어버리고

굴참나무처럼

붓이 되어

시 한 수 써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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