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잎 조각배에 실은 것은

전원일기/토평에서

김현거사 2017. 1. 30. 09:04

 

  전원일기/토평에서

  도연명은 '전원에 돌아와서'(歸田園居)란 글에서, '젊어서부터 속운(俗韻)이 맞지 않았고, 성격이 본래 산수를 사랑하였다. 잘못 먼지 그물 같은 속세에 떨어져, 단번에 30년이 가버렸구나. 철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못의 물고기는 옛 연못을 그리워한다. 남쪽 들판 한 끝에 황무지 개간하고, 본성의 소박함을 지키고자 전원으로 돌아왔노라'고 읊었다.

 

 

 도연명의 고결한 그 뜻은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나 역시 생각한 것은 있었다. 55세 되면 전원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인생이 풀잎의 이슬처럼 문득 사라지는 허망한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뜬구름 같은 인생을 육칠십 넘도록 밥벌이에 매달릴 생각은 없었다.

 그래 오십 중반에 은퇴하여 서울 근교 두 곳에 살았다. 한 곳은 한강 상류 토평이고, 한 곳은 광교산 아래 성복동이란 곳이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한 번은 강 옆, 한 번은 산 아래 였다.

 간혹 서울 나들이는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전원에 사는 맛은 있었다.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생활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글 쓰고 꽃 가꾼 생활, 그 4년간의 즐거움을 반추해본다.

 

 

토평에서

 

 2004년 6월

 6월은 아침이 좋다. 아파트 산책로 이슬 맺힌 길 한바퀴 돌고, 녹차 한 잔에 토스트, 깍은 참외 몇 쪽으로 아침 때운다. 감나무 밑 로킹체어에 앉으니, 황금빛 햇빛 장미꽃에 쏟아붓지, 황홀한 보라빛 아이리스꽃은 피었지, 들새들은 지저귀지, 공기 참 맑다.

 구파발, 양재동, 상일동, 종로5가 등지를 수소문해서 돌아다니며 골라온 장미는 꽃빛과 향기 최고급이고, 두 종류 아이리스 역시 희귀 품종이다. 아이리스 하나는 상일동에서 구한 청초한 일본계고, 하나는 통영 앞바다 매물도에서 구해온 화려한 독일계다.

 

 

 

 감, 자두, 배, 포도, 산수유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보느라면 아침이 다 간다. 살 오르면서 크기가 달라지는 열매는 매일 봐도 신기하다. 감꽃이 피고 감이 열리는 모습, 자두와 배꽃이 피고 열매 달리는 모습, 앙징스럽게 포도송이 커가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는 것이 그리 뿌듯하다. 자두와 포도는 제법 과일 모습이 되었다.

 토평은 이제 슬슬 여름이다. 아침에 움직이고 뙤약볕 내려죄는 오후엔 책을 읽는다. 도연명이 '고향에 돌아와 단지의 술을 끌어당겨 한 잔 하고, 오래간만에 마당의 나무가지 쳐다보며 활짝 웃었다'는 말, '남쪽 창가에 기대어, 그동안 세상 체면 때문에 조심하던 일 필요없어, 무릅 쭈욱 펴고 쉬는 그 즐거움을 알겠다'는 귀거래사(歸去來辭) 그 구절이 깊이 공감되어 나도 탁! 무릎을 친다.

 

 2004년 6월

 젊어서는 죽자사자 일을 벗삼아 살았다. 토요일 일요일이 없었고, 동기들이 어디서 무얼하고 사는지 모르고 살았다. 그만치 바빴다. 그 덕에 재벌 상머슴 노릇도 했다. 간혹 벤츠도 탔고, 내노라하는 지도층 인사도 만났고, 값 비싼 음식도 대충 먹어보았다. 간혹 존경할만한 그릇도 만났고,  덜되먹은 인간도 많이 만났다.

 그러나 이제 조롱 벗어난 새가 되었으니, 두번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으랴. 세속의 그물 벗어났으니 자유롭게 살면 된다, 다시 돌아가 무엇을 구하랴. 외출 삼가고, 새벽이면 향 피워놓고 불경 읽고, 달밤에 아리수(阿利水) 강변 거닌다.

 

  2004년 6월

 아침에 일어나 커튼 열 때가 가장 상쾌하다. 느티나무 연초록 모습이 상쾌하게 제일 먼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매일 뜰에서 보내는 시간이 두 시간도 넘는다. 가장 맛좋은 포모사 품종 자두, 종로서 사온 대봉시(枾) 감나무, 펜스 양쪽에 심어져 쭉쭉 뻗어나는 포도나무 포도송이들 살펴본다. 그 위에 한송이씩 피는 나팔꽃의 화려하고 신선한 만개도 놀랍다. 나팔꽃은 이름 그대로 morning glory다. 아침의 영광이다.

 매발톱꽃과 금낭화는 한계령 필례약수 근처서 얻어온 것이다. 애기붓꽃은 미시령 화암사 계곡에서 얻어온 것이다. 동우대 강의 나가던 시절 함께 간 여교수가 산채가 불법 아니냐고 묻던 생각난다.

 

 

 

 

 필례약수 옆 설낙원(雪樂園)이란 곳엔 화가부부가 살았다. 이화여대 나온 부인은 남편 타계 후 그림을 팽개치고 정신도 약간 이상해져버려 안타까웠다. 미시령 휴게소 옆 눈밭의 얼레지꽃도 볼만했고, 낙산사 홍련암 해당화의 그 짙은 향기도 잊히지 않는다. 알프스 파브릭코스 3번 홀은 두 사람이 탄 카터가 그 밑을 지나가면 하늘 덮은 가을 코스모스가 향기로 둘을 덮어주곤 했다.

 꽃을 보면 그 시절 그 사람들 떠오른다. 6월은 포도가 알알이 영그는 철이다. 은쟁반에 청포도 담아놓고 누굴 기다리나. 

 화단 모퉁이 돌미나리가 어느새 밭을 형성했다. 채소로 사온 돌미나린 먹고 뿌리를 잘라 심은 것이다. 그 생명력이 놀랍다. 간에 좋다는 돌미나리다. 그 옆에 방아와 박하가 있다. 방아는 속초서 아침 먹던 식당집에서 얻어온 것이고, 박하는 전에 살던 삼성동 집에서 가져온 것이다. 경상도 사람은 조개살 넣은 부추전 지질 때 방아라면 미친다. 커피에다 박하향을 넣어마시는 것은 속초의 어느 여류 화가한테 배웠다.

 오늘 크기가 달덩이만한 보랏빛 달리아가 싱싱한 꽃을 피웠다.

 

 2004년 6월

 다산 정약용의 '이 어찌 상쾌치 않으리요?(不亦快哉行)란 시에 '지루한 여름 타는 더위에 땀으로 등골이 다 젖었을 때, 시원한 바람 불고 소나기 쏟아져 벼랑에 폭포수 드리웠네. 이 어찌 상쾌치 않을쏘냐?'란 구절이 있다.

 6월 더위가 기승이더니, 간밤부터 바람 불고 비 내린다. 화단 내려가는 계단에 놓아둔 수반(水盤)의 수석 파란 이끼빛 살아난다. 봄볕에 시달리던 달리아가 빗 속에 레인코트 입은 여인처럼 싱그럽다. 비 맞으라고 난 화분 두어 개 내놓으니 마음도 촉촉히 비 맞은듯 상쾌하다.

 오이는 주렁주렁, 배추는 잎 하나가 손바닥만큼 자랐다. 콩은 비 맞고 하얀 꽃 피웠다. 아내가 씨 심은 옥수수는 거기가 기차길 옆 오두막도 아닌데 잘도 자란다. 키가 벌써 내 허리께다.

 강변 텃밭은 빗속에 환호하는 식물들 소리 들린다. 신비로운 은혜가 하늘이 내리시는 우로(雨露)임을 깨닫게 한다. 식물들은 빗속에 카니발 열고 있다. 우두둑 우의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감촉을 느끼면서 나도 카니발 속을 마냥 헤매보았다.

 'Cogito ergo sum'(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한때 나와 같은 철학도로 데카르트에 심취하던 아내는 과거를 잊었다. 흙이 얼굴에 묻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알이 통통한 달랑무 뽑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무공해 달랑무 김치 담가먹는 그 미 아는 자 세상에 뉘 또 있는가? 아! 이 어찌 우리 둘은 따불로 상쾌치 않으리오?

                                                      

 

 2004년 7월

 어쩌다가 보니 별장 세 채를 가지게 되었다.

 재작년에 만든 지리산 별장은 산에 폭포가 세 개나 있다. 집은 작은 초옥인데, 산삼 썩은 물 쏟아지는 바위 아래 연못 있어 선남선녀들이 놀기 좋다. 낮엔 탁족하고, 달밤엔 홀랑 벗고 목욕하기 좋다. 

 여기 내 별장 관리인은 낮엔 차밭 일하고, 밤에 시를 쓰는 시인이다. 부산에서 차 전문 잡지 발행한 적 있고, '달빛 차'란 명품 차 만든다. 술도 잘하고 방안에 고서(古書)도 많다.

 거기 집채만한 우람한 바위는 봄이면 온통 춘란 향기에 덮힌다. 시인이 바위 틈틈에다 지리산 춘란을 심어놓았다. 나는 그 바위가 보물 같다. 춘란 향기 그윽히 덮힌 그런 집채만한 바위는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 세상 사람 아무도 모르는 그 바위에 마음 홀랑 뺏긴 존재가 셋 있다. 흰구름과 나, 그리고 달빛초당 주인 셋 이다. 

 산비탈을 일궈 만든 차밭은 바람이 시원하고, 손바닥같이 작은 텃밭의 상추 고추는 여름 반찬으로 충분하다.

  

 두 번째 별장은 섬강 두 물줄기가 합수하는 곳에 있다. 물가에는하얀 해오라기가 물고기 잡으려고 왔다리 갔다리 한다. 바람 부는 강변 버드나무 아래 놓인 평상은 시원하기 그지없고, 땅콩 심은 밭가 코스모스는 여름부터 하늘거린다.

 여기 관리인은 공수부대 대령 출신이다. 젊을 적에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철혈 사나이 지금 과거 다 잊어버리고 흰구름과 벗하고 살면서, 혼자 유화를 그리면서 서울 친구 불러 바둑으로 소일하고 산다.

 

 세 번째 별장은 원주 치악산 아래 있다. 호수를 돌아서 올라간 계곡 상류에 복숭아꽃과 벚꽃이 만발하여 낙화가 물에 떠내려오는 곳이 있다. 거기 황토집 거실 통나무 책상에 정좌해서 남쪽을 바라보면 매화봉과 치악산이 보인다. 동서남북 사방은 통유리라, 사방이 산수화 같다. 방안에 벽난로가 있고, 뜰엔 연못이 있다.

 여기 별장 관리인은 대학서 국문학을 가르키는 교수인데, 아침에 일어나면 가부좌 틀고앉아  참선도 하고, 공자 맹자 고전 원문으로 암송한다. 서울대 박사 출신이며 내 별장 관리인 중 가장 유식한 사람이다. 아들 며느리 둘 다 판사다.

 

 그럼 나는 무슨 연유로 이런 천하절경에 비범한 별장관리인 셋을 두었는가?

 왜 시인과 공수부대 대령, 그리고 대학교수가 내 별장관리인이며, 나만 나타나면 꼬리를 내리고 진수성찬을 대접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실 것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인삼은 원래 수륙의 초목 중에서 가장 신령한 영초이다.

 장뇌 심는 법을 알기에 봄에 그들 산에 미삼(尾蔘)을 심어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골라가면서 별장을 찾아가곤 한다. 가면 관리비 부담 없지, 먹을 것 걱정 없지, 숙박비 부담없지, 명사(名士)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굽신거리지, 나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것이다.

 세상에 네꺼다 내꺼다 물욕 버리면 이처럼 얻는 것이 많다. 생각 한번 바꾸면 돈 한 푼 없이 최상급 별장과 관리인이 저절로 내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고수일 것이다.

 

 2004년 8월

 입추라고 감과 배가 제법 도톰해졌다. 포도알은 꿀맛을 풍기는지 벌이 주변에 윙윙댄다. 분꽃은 노랑, 주홍, 진홍꽃 자지러지게 달았고, 봉선화는 금년 꽃 핀 데서 씨가 떨어져 철없는 새싹이 옹기종기 나고있다. 담장 옆의 애기사과는 가지 찢어지게 붉은 열매 달았다.

 토평 와서 세상 처음으로 고상한 벼슬 얻었다. 공용화단 철쭉을 잘 전지하는 꽃 가꾸기 좋아하는 할아버지로 부녀회에 알려져 '아파트 조경위원장'이란 흐뭇한 별정직에 임명된 것이다. 그 후론 아파트에 큰 나무를 이식할 때면 반드시 내 허가를 받아가곤 한다. 

 토란잎에 이슬 맺힌 아침, 김장 배추 심을 준비로 밭에 나가 삽질 천 번 해주고 아내의 칭찬 들었다. 골프는 보기풀레이어였다. 돈 한 푼 않들고 골프장 18홀에서 우드 아이언 퍼트 95타 친 것보다 운동 많이 했다.

 밭고랑에 선 고추는 나무 그루에 내 손바닥보다 긴 고추 10개 이상씩 주렁주렁 매달았다. 보기만해도 마음이 넉넉하다. 풋고추 큰놈으로 접시에 따와서 냉수에 밥 말고 된장 찍어먹는 맛, 안해본 사람은 모른다. 고추는 따고 다음 날 가면 또 열려있다. 고맙기 짝이 없다.

 고구마는 넝쿨을 슬쩍 걷어보면 땅 속에 빨간게 탄탄히 박혔고, 들깨는 깻잎을 아무리 따먹어도 다음에 가면 그대로다. 옥수수가 수술이 노랗게 변해서 잘 익었나싶어 껍질 벗겨보니 알이 듬성듬성 아직 어리다.

 

 

 채소 고추 깻잎 등 땅이 주는 선물 카터에 잔득 싣고 저녁 이슬에 바지가랑이 젖으며 돌아오느라면, 농가 울타리에 핀 빨간 능소화 꽃이 너무나 눈에 싱그럽게 들어온다.

 

 2004년 10월

 채근담에 '대나무 울타리 밑에 문득 개짖는 소리, 닭 울음소리 들리면, 마치 구름 속 세계처럼 느껴지고, 서실(書室) 창밖의 매미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이면 바야흐로 고요 속의 천지를 알게 된다' 하였다. 또 '명아주로 국을 끓여먹고, 비름으로 창자를 채우는 사람 중에는 얼음처럼 맑고 깨끗한 사람이 많지만, 비단옷 입고 옥 같은 흰 쌀밥 먹는 사람 중에는 이권을 얻기 위해 남에게 종처럼 굽신거리는 것을 달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대개 지조는 담박함으로 맑아지고, 절개는 담콤함을 쫒으면 잃게 된다' 하였다.

 

 

 전원생활의 필수 책이라면 <채근담>이다. 나는 H. 소로우가 웰든 숲에 머물며 쓴 <숲속의 생활>과 헬렌과 스코트 부부가 뉴잉글랜드 버몬드 산골짝 이야기를 쓴 <조화로운 삶>을 사서 읽었다. 그러나 동양의 지혜가 담긴 <채근담>이 더 좋다. <채근담> 읽은 그날은 온종일 마음이 청량하다.

 

2004년 10월

단풍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순금처럼 느껴진다. 가을 아침이다. 구절초 국화의 철이지만, 마지막 여름의 장미도 볼만하다. 물 담아둔 대형 중국제 항아리 옆에 갈적마다 너무나 그윽한 장미향기가 코끝을 찌른다.

화분에 씨가 날라와 꽃이 두어 송이 핀 보라빛 제비꽃이 애처롭다. 그 위로 지나가는 가을 볕이 쓸쓸하다.

'가을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노래하던 최양숙도 이젠 초로의 여인이다. 붉은 열매 조롱조롱 달린 산수유 나무 앞에서 차를 마시며 샹숑같이 발성하는 그의 노랠 듣는다.

울산에 사는 고교동창 희경이가 지리산 노고단에 있다며 전화를 했다. 토건회사 본부장으로 바쁠텐데, 지금 천리길 토평에 찾아와서 잡담 좀 하고 가겠단다. 가을철 멋진 전화였다.

 

 2004년 10월 -마음 속의 절

 어느 날인가부터 마음 속의 절을 갖기로 했다. 살고 있는 집을 스님의 토굴처럼 생각키로 했다. 나를 토굴 속에서 참선하는 스님으로 생각키로 했다. 텅 비고 간결한 것을 사랑하기로 했다.

 아침을 간소화 시켰다.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으로 만족키로 했다. 아내가 텃밭에서 키운 노란 호박 삶아 죽을 만들었다. 그 일주일분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차는 뜰의 국화꽃 따서 말린 것이다. 찻물은 묘적사에서 떠온 약수다. 잘 마른 노란 감국 두어 송이 넣은 차를 마신다. 다 마시면 다시 뜨거운 물 부어 재탕, 삼탕까지 마신다. 팩에 든 녹차도 마찬가지다. 한 팩이면 하루 내내 충분하다.

 녹차 만드는 과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차밭 관리하고, 찻잎 따고, 찌고 말리고, 포장지 구해 포장하고, 시장에 내보내는 공정 모두가 농부의 땀이다. 죄스럽지 않은가? 편안히 집에 앉아서 어찌 이것을 소홀히 다루겠는가?

 

 아침 햇볕이 마루에 들어오면 바닥이 훤하다. 이때 바닥의 먼지 하나하나 자세히 보인다. 진공청소기로 말끔히 빨아낸다. 상석에 모셔둔 부처님 좌상 앞에 향을 피우고 정좌한 채 <반야심경> 읊어본다.

 

 

 

불교방송을 틀어 해인사도 가보고, 송광사도 구경도 한다. 강원도 신흥사도 전라남도 미황사도 가본다. 지리산도 가고, 설악산도 가고, 달마산도 가본다. 마조(馬祖) 백장(白丈)의 어록도 펼쳐본다. 서재에는 오도자(吳道子) 신필로 그린 공자님 초상 걸려있다. 들며날며 늘 경건한 마음 가진다.

  

 

 여기가 절이다. 목탁도 가끔 쳐본다. 뜰에 감, 자두, 배, 포도 열렸고, 장미, 모란도 핀다. 이만하면 경내 풍광 제법 수려하다. 절 치고는 시내가 너무 가깝지만, 그래도 서울 동쪽 강변역에서 평강공주 온달장군 사연 담긴 아차산성 지나 한참 뻐스 타고 와야하는 한강 상류다. 마당에 석탑 있고, 서재엔 부처님 계신다.

 

 

 마음에 부처 있으니,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는데, 어찌 작은 깨달음 하나가 수미산 보다 적다하겠는가. 직장 초년에 불교신문 기자였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거기서 고승들 싫컷 만났다. 천축산 무문관(無門關) 토굴에서 10년 수도하고 회향하신 경산스님을 인터뷰했고, 총무원장 석주 대종사는 내가 조계종 총무원 대강당서 결혼식 올릴 때 우순풍조(雨順風調)란 휘호를 내리셨다. 송광사 구산스님께 참선 배우러 온 하버드 출신 파란 눈 불자를 내가 맨처음 인터뷰 했고, 한국 불교계 첫 방문한 영국 성공회 램 주교를 인터뷰 하기도 했다. 운허, 월하, 전강, 대의, 탄허, 녹원, 광덕, 법정, 경보, 무진장 등 한 시대의 선지식 다 만났다.

 4월 초파일 공휴일 제정도 그랬다. 불교신문에 보도한 나의 풍전상가 대학생 불교연합회 인터뷰 기사가 조계종 전체 공휴일 추진운동 점화시킨 최초의 불꽃이었다.

 이 모든 좋은 인연을 이제 어떻게 갈무리해야 하는가? 선(禪)의 본지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토굴에서 살고픈 마음 바탕은 충분히 가졌다. 늦가을 뜰에 나서서 산수유나무가 부처인듯 합장해본다.가지에 남은 몇 개 산수유 열매가 유독 저렇게 붉고 아름답지 않은가? 

 

 2004년 11월

 아내가 인근 농사꾼에게 부탁해서 얻은 50 평 텃밭 농사다. 상추, 고추, 배추, 무, 옥수수, 땅콩, 팥, 호박 대풍이다. 토질이 한강 상류 모래밭이라 그런 모양이다. 그 덕에 냉수에 밥 말고 상추쌈과 풋고추 반찬에 입맛 다셔 보았고, 가을엔 옥수수와 땅콩 쪄서 이웃과 나눠먹어 보았다.

 함초롬히 이슬 맺힌 새벽 들판을 아내와 단둘이 걷고, 하루 일과 밭에서 마치고 돌아오면서 황혼의 들판에 들려오던 교회 종소리를 들었다. 후자는 밀레의 <만종>처럼 참으로 경건한 체험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문자 있는 책은 읽을 줄 알지마는 문자 없는 자연의 책은 읽을 줄 모른다. 줄 있는 거문고는 탈 줄 알지만, 줄 없는 거문고는 탈 줄 모른다.'

 토평 생활은 문자가 없는 책을 읽어본 시간이었고, 줄 없는 거문고를 타 본 시간이었다.

 가장 뿌듯이 기억에 남는 일은 아내가 나가던 교회 노인 두 분이 퇴원하셨다는 소식 듣고, 커다란 누렁 호박 하나씩 갖다드린 일이다. 농사 지어본 사람이 안다. 수확을 나누는 기쁨이 바로 농심이다.

 배추도 감동이었다. 옆엘 폐지 수집하는 초라한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길래, 아내가 불렀다.

'할머니! 농약 안 쓴 이 무공해 배추 좀 가져가실래요? 이 시래기도...'

'고맙습니다. 내일 딸네들과 들판에 배춧잎 줏으러 나올 참인데...'

할머니는 반가운 눈빛으로 배추를 포대에 열심히 담으면서,

'된장 넣고 국 끓이면 시래기국이 얼마나 맛 있는 것인데...'

몇번이고 혼자 중얼거리신다.

 도대채 배추 몇 포기 드리고 이런 감동을 맛봐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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