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국외 여행

연대(煙臺)를 다녀와서

김현거사 2016. 10. 16. 22:14

연대(煙臺)를 다녀와서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기나긴 여름날 무더위에 시달려서 등골에 땀이 흘러 베적삼 축축할 때, 상쾌한 바람 불어 소나기 쏟아지니, 단번에 얼음발이 벼랑에 걸려 있네.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지팡이 지쳤어라 높은 산에 올랐더니 구름 안개 겹겹이 눈 아래 막고 있네 .이윽고 서풍 불어 맑은 햇볕 내려쬐니, 만 골짜기 천 봉우리 일시에 드러나네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낙엽이 소리 없이 강 언덕에 떨어지고, 황혼녘 하늘빛이 흰 파도를 걷어찰 때, 옷자락 휘날리며 바람 속에 섰노라니, 내가 마치 선학(仙鶴) 되어 흰 날개 씻겨진 듯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인생에 통쾌한 일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나이 들어 친구들과 어디 국내여행 한번 가려해도 이제는 안방 사람 눈치를 살펴야 되는 오그라든 신세다. 그런데 어느날 외국에 공장이 있는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온다. 자네가 중국술과 골동품과 한시를 좋아하지 않는가. 이번에 같이 가서 몇일 있다 오자. 그리고 불시에  비행기 상석에 태워서 데려가 밤에 산해진미 대접하니, 이 어이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옛날 두보는 하장군의 별장에 초대되어 대접을 잘 받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향그러운 미나리에 붕어회가 싱싱하더라느니, 버들이 우거진 물가에서 배를 저으며 연잎 술잔으로 인사불성이 되었다느니,무려 10편이나 시를 썼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나를 초청한 친구도 하씨다. 예나 지금이나 하씨들은 문사 좋아하는 모양이다. 서해로 넘어가는 기내에서 나눈 이야기는 밤에 마실 술을 정하는 것이었다. 중국에는 4천5백여종 술이  있다.  '바람이 불면 그 향기가 온 동네를 취하게 하고, 비가 그친 후 술병을 열면 향기가 십리까지 간다'는 술은 마오타이(茅台酒)요,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청나라 건륭황제가 이 술을 마시려고 일부러 강남에 7일이나 머물렀다는 술은 양하대곡(洋河大曲)이다. 공자님 집안에서 손님 접대용으로 만든 술은 공부가주(孔府家酒)요,  첫잔 마시면 대숲바람이 몸에 스며들고, 두잔 마시면 입술 사이에 죽향이 흩어지고, 세 잔 마시면 몸의 때가 씻기고, 네 잔 마시면 마주한 친구와 마음을 통하게 된다는 술은 죽엽청주(竹葉靑酒)다. 술에 대한 설명만 들어도 입맛 땡기지 않는가. 이 중에 마오타이, 공부가주, 죽엽청주는 내가 이미 맛 보았다. 친구는 내게 수정방이 어떠냐고 권했다. 수정방은 중국 3대 명주 중 하나이다. 모택동 시절에는 마오타이, 등소평 시절에는 우량액, 이제는 수정방을 최고로 친다. 값은 돗수 따라 다르지만, 몇십만원 홋가하는 고가품이다. 그러나 나는  두강주(杜康酒)를 부탁하였다. 두강주는 수정방보다 값은 저렴하나, 두보나 소동파가 즐긴 술이다. 또 조조가 적벽대전을 앞두고 수백척의 전함을 끌고 양자강을 내려오면서, 스스로 흥에 겨워 창자루로 뱃전을 두드리면서 달빛에 건배하며 마시던 그 술이다. 이 술 마시고, 조조는 그렇다치고, 두보나 소동파 같은 기분으로 취해보는 일이야말로 딱 구미 당기는 일이다. 그러자 친구가 연타이로 전화 걸어 두강주를 시켜놓는다.

 

 연타이는 서울서 생각하기보담 큰 도시였다. 인구 3백만이라 한다. 경치는 속초 같았다. 속초와 다른 점은 해변에 잔디가 깔린 고급 주택가와 아파트와 고층 호텔 많은 점이다. 이상하게도 바다는 우리나라 동해같이 맑아,도로 밑에 바로 해수욕장이 있다. 대륙을 연결하는 큼직한 항구도 있고, 신흥도시라 거리는 깨끗하다. 서울 회장님 오셨다고, 현지사장이 예약한 호텔식당 식탁 위엔 빨간 포장의 두강주 네 병이 얹혀있었다. 원래 '술이란 지기를 만나면 천 잔도 모자라고, 서로 말이 통하지않는 사람과는 반마디 말도 많다'(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고 한다. 선수들끼리 무슨 말이 필요한가. 우선 첫 병 개봉하여 향기부터 조심스레 맡아보았다. 길에서 누룩 수레만 만나도 군침을 흘렸다던 두보, 한 말 술에 시 백편 지으면서,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스스로 취선 자칭한 이태백이 떠오른다. 오냐 너 본지 오랜만이다. 50도 독주를 원샷으로 비웠다. 술 향기는 소동파가 좋아하던 죽향, 도연명이 동쪽 울타리에 심었던 국화, 이백이 좋아한 연꽃 향기 섞인듯 하다. 달빛도 섞인 것 같고, 시의 향기도 섞인듯 했다.

 

 

몇백년 전통 명주를,북쪽 발해만에서 잡아온 게요리와 해삼요리 안주가 받쳐주니, 모처럼 즐김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베이징덕 이외에 이름 모를 육군도 많이 올라왔지만, 나는 주로 해군과 야채를 먹었다.

 

 

술은 독하면서도 향기롭고 부드러웠다. 옛날 고사들이 서로 두 손 모우고 잔 건빠이(乾杯) 하고, 시 한 수 읊기 딱 좋았겠네 싶었다. 이태백이 춘야원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라는 글에서, <천지라는 것은 만물이 쉬어가는 나그네 집이요, 세월이라는 것은 영원을 흘러가는 길손이다. 그 가운데 우리네 덧없는 인생은 짧기가 꿈같거니, 그 동안에 환락을 누린다 한들 겨우 얼마이겠는가! 옛 사람이 백년도 못 사는 인생으로 천년의 근심을 안고서, 낮은 짧고 밤은 길어 놀아 볼 겨를도 없음을 한탄하다가 밤에 촛불을 켜고 밤을 낮 삼아 놀았다고 하더니 참말로 이제야 그 까닭이 있음을 알겠구나!> 하지 않았던가. 인생칠십고래희에 모처럼 친구 덕에 전통 명주의 향기에 맘껒 취해본 뜻깊은 밤이었다.

                                                                                                    

 옌따이(煙臺)를 다녀와서(2)

 

  첫 밤은 향기로운 술에 취하고, 다음 날은 신선이 살던 산을 찾아갔다. 봉래산(萊山)은 영주산(), 방장산() 더불어 전설 속 삼신산() 하나이다. 신선 살고, 불사 영약 있고, 이곳 사는 짐승 모두 빛깔 희며, 금과 은으로 지은 궁전 있다고 한다. 중국서 신선이 언급된 첫 고서는 산해경(山海經) 이다. 시황제 이전에 출현한 이 책은, 산과 바다, 약초과 특산물, 그리고 신선, 머리는 동물이고 몸통은 사람인 괴수들을 소개한 일종의 백과전서이다. 나중에 이 책을 재편집한 사람은 유흠(劉歆)이고, 최초의 주석을 단 사람은 진대(晉代)의 곽박(郭璞)인데, 두 사람 다 신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신선방약(神仙方藥)과 불로장수를 논한 또하나 책은 동진(東晉)의 갈홍(葛洪)이 저술한 <포박자>란 책이다. 여기에는 하늘에 사는 천선(天仙)과 땅에 사는 지선(地仙) 이야기, 선인의 호홉법, 단식법, 방중술, 불로장생의 금단(金丹) 만드는 방법, 먹는 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 신선사상의 원류가 고조선이라는 설도 있다. 고조선 때 하늘에 의식을 행하는 신단(神壇)을 주관하는 제사장을 선인(仙人)이나 신선(神仙)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기서(奇書)도 있다. 화헌파수록(華軒罷睡錄)과 청학집(靑鶴集)이란 책이다. 그 책엔 금선자(金蟬子) 채하자(彩霞子) 계엽자(桂葉子) 등 우리나라 신선 이름이 보인다.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은 각각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으로 불린다. 봉래() 양사언은 금강산 만폭동() 바위에 ‘봉래풍악원화동천()’이란 8자를 새겨놓기도 했다. 성삼문이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의 낙락장송 되었다가' 라고 읊은  그 봉래산은 단종이 유폐된 영월 동쪽에 있다. 부산에 영주동이 있고, 우리나라 곳곳에 봉래동 칭하는 곳 수두룩하다.

 

 그 봉래산을 찾아간 것이다. 안내는 하회장 여비서가 맡았다. 그는 한국에 유학, 한국어를 배워 우리와 언어소통에 불편이 없었다.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에 마고(麻姑)에 관한 기록이 있다. 동한(東漢)의 선인(仙人) 왕방평(王方平)이 채경(蔡經)의 집에서 선녀 마고를 만났는데, 마고는 일찍이 고여산(姑余山)에서 수행하여 득도(得道)했고, 천년이 지났으나 모습은 여전히 열아홉 살의 처녀 같았다고 한다. 간밤엔 두강주에 취하고, 이튿날 두 백발 신선이 선녀와 논 것이다.

 

 

 봉래산은 산동반도 끝이고, 승용차로 1시간 반 거리다. 노변에 무궁화가 많고, 대륙의 넓은 평야에는 사과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산은 숭인동 낙산 정도 높이다. 정상까지 30분만에 올라갈 수 있었다. 바다를 향한 가파른 절벽엔 보라빛 해국이 향기로웠고, 절벽에 잔도(栈道)를 매달아놓은 솜씨는 중국인 다웠다. 유방이 항우에 쫒겨 촉으로 들어갈 때도 저런 험한 잔도를 넘어갔다. 창해 위에 합해정(合海亭)이란 정자가 있었다. 북쪽은 발해요 동쪽은 황해다. 바다에 잠든 신선을 깨우려는지, 어디서 은은히 종소리가 들려온다. 동행한 정사장이 발동이 걸렸다. 종각에 올라가, 10위옌 내고 종을 열번 치고 내려온다. 한번 타종에 1위안씩 낸 셈이다. 저멀리 산 중턱에 한 동네가 보였다. 멀리서 보니, 높은 누각과 회랑 모습이 신선도 그림 같다. 케이불카를 타고 피안에 건너가니, 양쪽 겨드랑이에 바람 시원히 닿는 감촉이, 영판 봉래산 선인이 학을 타는 기분이다.

 

 

 거기서 두 사람이 산 부채에는 팔선과해(八仙過海)란 글씨가 쓰여있다. 여덟 신선이 바다를 건너간 것이다. 옥피리 부는 여인, 파초선 든 선인, 거문고 타는 선인. 학을 탄 선인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들은 서해를 건너 어디로 갔을까. 해 뜨는 동쪽으로 간 것이다. 산해경에는 바다 속에 부상(扶桑)이라는 신목(神木)이 있어, 그 가지에는 열 개의 태양이 달려있고, 태양은 함지(咸池)에서 목욕하고 탕곡(暘谷)에서 돋아 부상(扶桑)의 꼭대기 위로 솟아오른다고 한다. 부상(扶桑)의 한자(漢字) 뽕나무 상(桑)자가 재미있다. 뽕나무의 원산지는 지금 중국 북부와 한반도 일대가 아니던가.  동이(東夷)의 강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별칭 방장산, 지리산 아래서 성장한 사람이다. 팔선이 가깝게 느껴져 소라 뿔피리를 하나 샀다. 불어보니, 부드럽고 은은한 소리가 난다. 둘은 100위안씩 주고 옥돌에다 각각 낙관도 새겼다. 새기는 김에 중국에 초청해준 친구 것도 만들었다. 봉래선인(仙人)이란 즉석 작호에 정웅지인(正雄之印)이라 새겼으니, 고마움의 표시다. 

 

 

 봉래산 전체가 신선의 터다. 불로문(不老門)과 전각은 정교한 석주와 홍교(虹橋.,무지개 다리)와 돌난간과 돌계단으로 연결되었고, 연꽃을 심었을 법한 연지는 암반과 괴석과  조산(造山)이 운치있다. 수백년 된 소나무가 선 원림(園林)은 세월이 묻어있고, 곳곳의 돌과 현판에 새겨진 글씨는 고풍스럽다.  꽃담에는 해, 산, 구름, 바위, 소나무, 거북, 사슴, 학, 불로초가 그려져 있고, 희미하게 수(壽), 복(福)의 글자도 보인다. 여기 무지개 다리 위에서 달밤이면 머리에 옥비녀 꽂은 선녀가 옷자락 바람에 날리며, 옥피리를 불지 않았을까. 기화요초가 향기 날리는 봄,  신선이 정자 난간에 기대어 거문고 탈 때, 현학이 날라와서  춤 추지 않았을까. 향로와 누대와 오솔길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기도 했다. 모처럼 정자, 원림, 지당(池塘), 괴석, 담장, 보도, 돌다리들을 감탄하며 보느라 눈을 실컷 호강시켰다. 그리고 밤에는 실컷 발도 호강 시켰다. 발맛사지 하는 곳에서, 둘이 중국담배를 삐딱하게 입에 물고, 침대에 나란히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따끈한 약초 물에 발을 씻기고, 발바닥 경락 하나하나까지 미인에게 안마 맡기니, 정신이 쇄락한 것이, 신선의 느낌은 혹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푼 것이다. 

 

 이번 여행은 쌍으로 즐거웠다. 하나는 두보가 즐기던 술 마셔본 것이요, 하나는 신선의 산 답사해본 것이다. 마지막 날은 골동품 시장을 찾아갔다. 이건 완전 덤이다. 옥팔찌, 마노목걸이, 연꽃 새겨진 벼루, 고서화, 티이크로 만든 의자 등 하나하나가 흥미로웠다. 물건 사지않아도, 재미나는 것이 중국에서의 흥정이다. 대개 반 값에서 시작해서, 우여곡절 거치다 그 근처서 자른다. 그런데 한가지 애석했던 것은, 나에게 그런 복은 없었던지, 거기서 영국의 여류작가 에밀리부론테 자매가 그렇게 애착을 가지고 수집했던 청화백자나, 옥 중에 최고품으로 치는 초록빛 비취는 보지 못한 점이다. 

 

 

그러나 세상에 어디 완벽이 있던가. 박물관에서 그림 속되지않은 엄청나게 큰 대형 청화백자 화병을 만났다. 그런 걸 청복(淸福)이라 일컫는다. 그 화병은 키가 내 키보다 크고 그림도 속되지 않았다. 하도 반가워 나는 그 곁에 닥아가 서성대다가, 스르르 그려진 산수화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그림 속 인물이 되어, 절벽 밑에 매인 조각배를 타고, 청풍을 즐기다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 이 대목도, 슆게 경험할 수 없는 멋진 체험이었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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