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가 만난 여류시인

김현거사 2016. 10. 5. 10:37

 

 

     내가 만난 여류시인/1

 

 은퇴하여 시작한 일이 수필이다. 그걸 시작해놓고보니 좋은 점이 있다.

 우선 할 일이 많다는 점이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읽고 쓰는데, 나는 한번 컴퓨터 앞에 앉으면 서너 시간 간다. 매일 할 일 있어 좋다.

 두번째는 명상 많이 해서 좋다. 생각의 실마리를 따라가는 것, 그것이 명상이다. 나는 데이비드 소로우를 좋아한다. 그가 월든 호수를 대상으로 글을 쓰듯, 나도 주로 산과 자연을 대상으로 쓴다. 명상 대상이 자연이다.

 셋째 책을 많이 받아서 좋다. 한달에 다섯권 이상 책이 온다. 시집, 수필집, 문학잡지들이 저절로 온다.

 

  마지막으로 좋은 점은 존경할만한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점이다.

 나는 이름없는 수필가지만, 그래도 간혹 문인 모임에 나간다. 유안진이라는 여류 시인이 있다. 평소  그 분 시를 좋아했는데, 한번은 고교 동기인 정목일군 출판기념회서 그를 만난 적 있다. 그래 기회는 이때다 싶어, 친구들이 유교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시를 좋아한다는 핑계로 내가  대표로 악수 한번 해야겠다면서 느닫없이 악수를 청한 적 있다. 유교수는 얼굴 붉히면서 부드러운 손을 내밀어 주었지만, 사실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유교수 시가 좋긴 좋다. 어려운 말 엮어 사람들이 시를 멀리하도록 만드는 촛짜와 다르다.

 

 수필가였기 때문에 나는 작가로 변신한 대학총장, 장관과 더러 막걸리를 마실 수 있었다. 세 분의 빼어난 미모를 가진 고향의 원로 시인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그 분들은 문재와 미모를 두루 갖춘 신비로운 분들이다. 수필가 아니었으면, 감히 범접도 못할 분들이다.  

 

 김정희 시인은 이렇게 만났다. 개천예술제 때 진주 토백이 이영성 시인과 너우니 물박물관에 가서 거기 벽에 걸린 어떤 시를 읽었다. 진양호에 수몰되어 사라진 '까고실'이란 동네를 읊은 시였다.

 나는 고향에 갈 때 마다 매번 배 떠난 항구같은 쓸쓸함을 느끼곤 했다. 파성 설창수 선생이 가신 후 진주에 어떤 문인이 사는지 모르겠고, 문향도 사라졌다고 개탄하던 참이다. 쓸쓸한 느낌 속에, 그 시를 읽자, 빤짝 아직도 진주에 이런 시인이 있구나 하는 반가움을 느꼈다. 그래서,

'어이 농파! 이 시 쓴 김정희란 시인 자네 혹시  아나?'

하고 물었더니,

 '잘 알지.' 

한다.

'그럼 됐다.  언제 그 분 나한테 한번 소개해주소.'

 해두었다. 미지의 젊은 여류가 궁금했다.

 얼마나 후 진주고 강당에서 열린 남강문학회 모임에서다. 교정에 고급 승용차가 하나 스르르 멎더니 노부인 한 분이 내린다. 농파가 나를 불렀다.

'거사야! 이분이 자네가 소개해달라고 부탁한 그 분이다.'

 이렇게 김정희 선배를 만났다. 그는 젊은 분이 아니었지만, 난초를 사랑하여 1974년에 첫시집 '소심(素心)'을 낸  분답게 은은한 동양적 외모를 지닌 분이었다.

 

  이렇게 인연의 첫고리는 맺어졌고, 얼마 후 두번째 고리도 이어졌다. 

 그 분이 남강과 도동이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정촌 세비리 벼랑에 땅을 가지고 계셨는데, 거기에 한옥을 세 채 지어놓고 시조문학관 간판을 단 것이다. 나는 진주에 첫 문학관이 선다는 그 자체가 반가워서 몇 번 전화를 드렸다. 내가 쓴 수필집도 몇 권 보내드렸다.

 그 분은 내게 혹시 진주에 와서 글을 구상해볼 생각이 있으면, 언제던지 문학관에 묵으면서 글을 써보라고 권해주셨다. 사실 김시인은 내가 살던 배건너에 살던 분이고, 내 동기 김두진 교수의 숙모님이기도 했다.  

 

 2013년 남강문학회 진주 모임의 숙소를 거기로 정했는데, 다음 날 새벽이다. 6시에 일어나 혼자 스윗치를 올리고 문학관을 둘러보는데, 누가 새벽부터 불을 켰나 싶었던 모양이다. 선배님이 별빛 총총한 새벽에 문학관에 올라오셨다. 안내를 해주셨는데 이영도의 <탑>이란 시 앞에 이르자, 나지막한 음성으로 시를 읊어주셨다.

 

너는 저 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아시다시피 미인이 시를 읊어주면 시가 더 감동적이다. 그것도 남들이 다 자는 이른 새벽에 말이다.

 

    

 

 문학관엔 청마와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었다는 김영도 두 연인 사이에 오간 편지, 이호우의 달밤, 김소월의 육필 시,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의 시집 등 희귀본이 많았다.

 

 문학관을 돌다가 거기서 선배님의 고마운 배려도 만났다. 진주 문학의 좌장격인 청다 이유식 평론가야 당연히 코너를 만들어 드릴만한 분이지만, 그  옆에 이름도 뭣도 없는 이 후배 코너도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아마 너우니 물박물관에 전시된 당신의 시를 읽고 특별히 만나고 싶어했던 후배라 배려하신 모양이다.

 

 여하간 그 뒤 나는 선배님께 간혹 전화를 드리곤 했다. 

 <화엄을 꿈꾸며>란 시집을 받고, 또한번 큰 기쁨을 느꼈다. 동국대 목정배 교수 추천 글이 실렸는데, 목교수는 내 불교신문 선배다. 동대 총장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간혹 신문사에 와서 걸찍한 농담 잘 하던 분이다. 

 '귀의(歸依) 삼보(三寶) 하옵고'란 서문 첫구절도 반가웠다. 그 건 내가 불교신문 기자 때 잘 쓰던 문구다.

  책에 소개된 시인의 화엄사상도 반가웠다. 우주는 거대한 하나의 연꽃이다. 세상은 밝고 어두운 부분이 섞여있지만, 크게 보면 한송이 연꽃이다. 모두 아름답다. 시비선악이 여기선 한송이 꽃으로 승화된다. 

 

 경주 남산을 읊은 시도 맘에 쏘옥 들었다.

 

<경주 남산에 가면>

 

경주 남산에 가면

내 그리운 사람이

바위 속 문을 열고

걸어서 나오실까

감실의 부처님처럼

집 지키고 계실까

 

하략

 

 나는 바위 속에서 그리운 사람이 걸어나오길 기다리고, 감실의 부처님을 만나려는 사람을 사랑한다. 불교 사상을 가진 시인도 사랑한다. 그 이후 나는 진주에 가면 별로 쓸쓸하지 않다. 김정희 선배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여류시인/2

 

  나는 매년 개천예술제 때 진주를 드나들면서, 진주 출신 작가에 김정희 정혜옥 김여정 세 원로 시인이 있고, 그 세 분이 공히 미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원래 진주는 풍광 수려하고 미인 많은 곳이다그래 나는 김삿갓은 아니지만 명색이 작가라고, 이 황진이처럼 재주와 미모 다 갖춘 고향 선배님들을 칭송하는 일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건 고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어떤 지방이던 후배는 선배를 밀고  선배는 후배를 끌어야 발전한다. 문단은 특히 그렇다.

 

  대구 정혜옥 선배님은 진주여고 3학 때 개천예술제 시 부문에서 장원한  분이다. 그의 작품 '국화'란 시를 읽어보면, 당시 재기발랄하고 이쁜 한 단발머리 여고생 모습이 떠오른다.  

 

<국화>

 

화려한 정원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여기
메마른 흙과 하늘이 통한 곳에
조상이 물려준 절개를 외우며 섰습니다.
하나의 넋두리 속에서 피는 화려한 의상이 아니기에
더욱 가냘픈 생명이옵니다.

내 조국은 찬바람 부는 언덕을 넘은 곳
외로움은 가을 불나비처럼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나에게 노래를 주십시오.
오월의 푸른 언덕은
내가 지킬 언약은 아니라구요.

가도 가도 바람은 불고 서리는 내리는데
내일을 기다려 참아야만 하는
서러운 전설 속에서 피는 국화
나는 국화이옵니다

 

  화법은 여학생 냄새가 물씬 풍긴다. 시인이 여고 3학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시를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란 시보다 더 좋아한다. 내 어릴 때 진주 남강 가에 이런 아름다운 소녀가 살았구나 싶어 공연히 윌리암 위즈위쓰의 '루시'라는 시를 떠올려 본다.

 

도우브의 샘물가 인적이 드문 길가에 그녀는 살았네.
칭찬해 줄 사람 아무도 없고, 사랑해 줄 사람 하나 없는 처녀.
사람들의 눈에서 반쯤 가리워진 이끼 낀 바위가에 핀 한 송이 제비꽃!
하늘에 다만 홀로 반짝이는 별처럼 아름다웠네.

 

 정혜옥 선배님은 소녀 시절 칭찬해줄 사람 사랑해줄 사람 많았을 것이다. '루시'하고는 다르다. 일흔 넘은 년세에도 갸름한 얼굴에 오랜 카톨릭 생활에서 배어난 은은한 미소가 곱다. 그러나 웬지 '루시'가 생각나는 분이다.

  소녀는 봄 날 비봉산에서 쑥 캐고, 여름 날 남강에서 빨래하고 둑에서 시집을 읽었을 것이다. 봉선화꽃 물 들인 손톱도 자랑했을 것이다. 아카시아 꽃향기 은총처럼 풍기는 옥봉 성당에서 기도하였을 것이다. 

 

 진주 여인은 대채로 인근 산야에서 자라는 야채와 과일 비슷하다. 부드럽기는 신안동 토란처럼 부드럽고, 시원하기는 도동 수박처럼 시원하다. 달콤하기는 비봉산 산딸기 같고, 연하기는 습천못 무화과 같다. 촉석루 석류처럼 새콤달콤하고, 피부는 비온 후 대밭 죽순처럼 하얗고 보들보들하다.

 

 내가 그 분을 처음 만난 곳은 역시 개천예술제 때 남강문학회 모임에서다. 진주 여고 강당에서 나는 가날픈 몸매가 한 송이 제비꽃 보다 더 고운 분을 만났다.  

 그동안 서로 책이 오갔으니 구면이다. 악수부터 청해 먼저 손부터 잡아본 후, 단도직입으로 '국화'란 시가 인상 깊었다는 인사부터 드렸다. 그분은 남강문학회 초대 회장 정재필 선배님 누님이다. 나에게는 큰누님 뻘, 내사 귀염둥이 막둥이 동생 쯤 된다. 그분께 설사 내가 어리광을 부렸다 한들 어떠리.

 

 마침 행사 중 선배님 좌석이 내 앞이라, 가만히 어깨를 두드리니 라일락 향기같이 아름다운 미소를  띄우며 돌아본다. 과자를 드렸더니 고맙다고 인사한다. 비록 하고싶은 말 다 못했지만, 눈빛만 봐도 서로 통했다. 그 얼마후 선배님 전화를 받았다. 대구서 서울로 건 전화다. 어떤 수필지에 실린 내 글이 좋더라는 격려의 전화였다.

 

 정혜옥 선배님은 대구 여성문학회 회장, 카톨릭문학회 회장, 대구 수필가 협회 초대회장을 지냈다. 이젠 대구가 터전이다. 소녀 때는 시를 썼지만 한국 수필계 원로다.

 

 근년에 보내주신 <은혜로운 날들의 기억> 이란 신앙 에세이집도 인상적이었다. 구구절절 카톨릭 신앙이 진주알처럼 박혀있었다. 문학과 종교가 둘 다 깊고 아름다웠다. 표지 그림은 본인 인상 그대로였다. 

 

 

 지금도 나는 대구를 지나가면, 정혜옥 선배님을 생각한다.  

 

 

  내가 만난 여류작가/3 

 

 세번째 분은 서울의 김여정 시인이다. 이 분은 같은 서울이라 연꽃 피면 양수리 '세미원'에서 만나곤 한다. 이른바 연꽃데이트다. 성품이 활달해서 동행한 아내에게 시도 일깨워주고, 문단 비사도 들려준다.

 

 후소(後笑) 김여정은 60년대 신석정 시인 추천으로 등단한 분이다. 한국 대표 여류이다.

 필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조카인 대구 김혜숙 수필가 덕분이다. 그가 <김여정문학관>이란 싸이트를 소개하길래 내가 거길 들락거리다가, <김현거사 응접실>이란 방을 하나 얻었다.

 그 후 선배님 8순 기념 시전집을 받게 되었다. 그 시전집이란 것이 아무나 내는 책 아니다. 1968년부터 2012년까지 열 몇 권 시집을 모은 1천5백 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책이다. 1993년에 그 이전 시집 망라한 첫번 시전집 발간 한 후 두번째로 낸 것이다.  

 

 화보에 저자와 함께 포즈를 취한 박종화, 김남조. 김소운, 전숙희, 조경희, 신석초, 박목월, 구상, 조병화, 모윤숙, 이영도, 김후란, 허영자, 추영수, 유안진 등 모습이 보였다. 문단의 별이란 별은 다 보였다. 송지영, 김구영 선생이 보낸 휘호도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작정을 하고 다 읽었다. <은난초꽃>이란 시는 읽고 맘에 들어, 시인이 진주성 섬돌 밑에 핀 은난초꽃으로 느껴진다고 글로 표현해서 보낸 적 있다.

 

 이렇게 청초하고 수줍은 여인이 있었나

저녁 어스럼 조심조심 밟아 내려오는

운악산 산자락

울울한 나무 그늘에 없는듯 조용히

해맑은 미소 머금고 있는 은난초꽃

수줍디 수줍은 생면부지의 젊은 여인이

나도 몰래

내 마음을 빼앗아가고 말았네

  

 

 젊은 시절 신문기자 출신의 지성적인 외모와 또 시재로 한양의 시인묵객 가슴 설레게한, 월탄 박종화 선생이 따님처럼 아껴준 이 분을 그럼 나는 무슨 재주로 해마다 모시고 연꽃 데이트를 했는가.

 

 언젠가 문인협회서 김여정 문학특강을 연 적 있었다. 거기 참석했는데, 시인은 서두를 남강 모래밭 소싸움부터 시작했다. 심훈의 상록수에 감명 받아 진주에 야학 '한빛학원' 세웠던 일, 이경순 설창수 이명길 시인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고향 자랑을 더 할려고 그러셨던 모양이다. 갑자기 엉뚱하게 강연에 참석한 내 이름을 거론하시면서, 김 모의 수필이 하도 좋아서 자기가 배울 정도라고 하셨다. 그 자리에 왔던 문인협회 이사장 등 작가들이 깜짝 놀랬을 것이다.

 

 나는 원래 언론인 기업인 출신이다. 문단 원로라고 먼저 수구리고 인사한 적 없다. 강연 끝나자 그들이 먼저 내 손을 잡았다.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디있나. 그래 비행기 태워준 답례로, '단풍이 절정일 때 제가 선배님을 북한강 드라이브 코스로 모시겠습니다.' 하고 데이트 신청 들어간 것이다. 북한강 단풍이 가장 아름다울 때, 평생 시를 쓴 가장 아름다운 원로시인을 모신다는 것은 둘이 궁합이 맞다.

 

 계획대로 첫 데이트는 성공적이었다. 유명산 단풍은 아름다웠고, 북한강 비취빛 가을 강물은 아름다웠다. 아내와 김선배님, 두 여인을 태우고 그날 나는 옥천 냉면 음미하고, 청평 가평을 거쳐 남이섬 돌아왔다.  <백만송이 장미>란 영화 찍은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박종화, 신석초, 박목월, 구상, 조병화 시인의 일화를 싫컳 들었다.

 

  두번째 데이트는 연꽃밭에서 했다. 원래 비오는 여름은 텃밭에서 방아를 뜯어와 고추전 부쳐먹는 것도 좋지만, 미인과 연꽃 구경하는 건 더 좋다. 

 양수리에 세미원(洗美苑 )이란 곳이 있다. 북한강 남한강 두 강이 만나는 곳이다. 거기서 백련 홍련 구경하고, 초계탕 먹은 후 바다같이 넓은 팔당호 보이는 찻집에서 아내와 둘이 문단 이야기 들었다. 이영도 시인과 청마의 부적절한 관계, 서영은과 또 한 분 그리고 김동리 선생의 삼각관계도 들었고, 김상옥, 신봉승. 황순원. 젊은 시절 박경리 선생 이야기도 들었다.

 

다음 해도 남강문학회 후배 구자운박사 데리고 가 넷이서 사진도 찍고 많은 이야기 들었다.

 

 

 노시인이 매번 시간을 내주신 것은 아마 내가 고향 후배라는 오직 그 하나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전에 박경리 선생 묘소에 가 본 적 있지만, 선생도 진주여고 출신이다. 그러나 묘소는 통영에 있다. 통영은 한 작가의 묘소를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마치 왕릉같이 꾸며놓고 있었다. 

 부러운 생각 금할 수 없어서, 이제 팔순에 접어든 내 고향 여류 3인을 글로나마 엮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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