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내가 만난 청와대 사칭 사기꾼

김현거사 2016. 9. 28. 09:39

내가 만난 청와대 사칭 사기꾼 /1

 

 두보(杜甫)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을 했지만,  나는 칠십고래희 전에 희대의 사기꾼 둘을 만났다.

한번은 비서실에 아는 분이 찾아왔다. 

'이국장님 아니십니까?'

'어. 김기자! 여기 근무하시는가?'

 불교신문에서 업무국장으로 있던 이 모라는 분이다. 둘은 헤어진지 십여 년 지난 터다. 반갑게 인사하고 접객실로 모셨더니, 용건이 희한한 것이다. 이철희 장영자를 아느냐는 것이다. 내가 있는 회사에 3백억을 4%로 대출해주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은행 대출금리 10% 하던 시절이다.  4%로 그걸 받기만 하면 공짜로 몇 십억이 남는다. 엄청난 제의다.

 웟선에서 통치자금을 우리 회사로 배정했다고 한다. 웟선이란 누군가? 대통령이다. 하기사 미국같은 나라는 반도체가 우주 항공 산업과 첨단무기 제조 밑바탕 된다고 국가가 도움 준다는 말은 들었다. 우리나라도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이국장은 원래 불교계에서 종정은 물론 총무원장, 종단 간부들, 신도회 등 모르는 사람이 없던 사람이다. 장영자를 신도회서 만난 모양이다. 장영자는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씨 처제다. 대통령 영부인 이순자씨와 친하다. 배경은 믿을만 했다. 그러나 그런 공돈이 그쪽에 아무 치성도 들이지않은 우리에게 공짜로 떨어질까? 아무래도 우리를 낙점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손님이 찾아오면 아무리 의심쩍은 이야길 하더라도 일단 긍정하는 체 이런저런 이야기 다 들어주는 편이다. 다 듣고나서 판단 내린다. 그런게 예의다. 그런데 듣자하니, 마지막 대목이 무슨 007 영화 같다. 노회장을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시청 앞 롯데호텔 이철희 사무실로 모시고 가서 중앙정보부 간부를 지낸 이철희와 접선시키면 거액의 돈벼락을 맞는다는 이야기였다.

 말이사 꿀처럼 달콤했지만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그래 살짝  퉁겨보았다.

'년세 높으신 우리 회장님을 어찌 시내로 모시고 나갑니까? 차라리 이철희씨가 우리 회사 옆 워커힐 호텔로 오시지요?'

 그러자 그가 펄쩍 뛴다.

'김기자! 그게 무슨 말이요? 세상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통치자금에 대해서 그리 말하면 불경이고 큰 결례요.'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이미 윗선에서 낙점했다면, 이쪽에선 이쪽 나름 요구를 해도 별 탈 없다. 이철희는 실무자니, 우리가 워커힐로 못부를 이유없다. 그랬더니 그는 이철희가 통치자금을 쥐고 결정하는 사람인데,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우긴다. 그래 한참 오라거니 와야된다니 밀고당기다가,

'이국장님! 정 그러시다면 이 문제는 돌아가서 일단 보고를 하시지요. 그 후에 결론을 내립시다.'

 이리 말해서 돌려보낸 후 이 일을 회장께 보고하게 되었다.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는데, 제가 회장님이 년세가 높으시어, 이철희씨가 회사 옆 워커힐로 오라고 해두었습니다.'

 그러자 회장이 펄쩍 뛴다.

'아니 이 사람아! 그런 중요한 일을! 잠시 나와서 나한테 의견을 물어보지, 그렇게 경솔히 처리했어?'

 원래  돈 맛은 돈 많은 재벌일수록 잘 안다. 굴러온 떡을 내가 보낸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경솔하다고 몇번이나 되뇌인다.  

'회장님! 저쪽도 돌아가서 보고할 터이니 일단 기다려 보시지요. 웟선에서 결정했으면 그건 일단 결정된 겁니다. 결정된 거라면 밑 사람이 맘대로 처리못합니다.'

 

 이렇게 회장과 내가 불편한 분위기로 딱 일주일 지나서다. 1982년 5월 대검 중수부 발표가 신문에 났다. 

 장영자 이철희 부부는 기업에게 좋은 조건의 자금을 제시하고, 그 담보로 대여액 2∼9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받아 갔다. 그리고 그 약속어음을 할인해서 다른 회사에 빌려주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등 방법으로 어음을 유통시키는 사기행각 벌여, 총 7,111억 원에 달하는 어음 받아내고, 총 6,404억 원에 달하는 불법 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거덜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우리 회사를 찾아왔던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응했다면, 우리 회사는 꼼짝없이 1천억 쯤 약속어음을 발행했을 것이다. 폭삭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각 신문에 보도된 기사들을 스크랩하도록 여비서들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회장님게 올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원래 조직의 생리란 것이 일 잘 되면 윗사람 덕이고, 못되면 아랫 사람 탓 이다. 그후 회장은 가타부타 아무 말 없었다.

 후에 이철희·장영자 부부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 선고받고, 10여 년 복역 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내가 만난 청와대 사칭 사기꾼 /2

 

 그 후에도 똘마니 사기꾼들이 청와대 들먹이며 심심찮게 세간을 어지럽히고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청와대 통치자금이란 게 있긴 있는 모양이라고 믿었다. 당시 기업들은 자금이 어려워 대개 어음을 발행했다. 제2 금융권은 '꺽기'라고 해서 미리 10%를 예금으로 남겨두고 돈을 주던 때다. 일단 운이 좋아 청와대와 연결되면 누군가 돈벼락 맞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실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당시 비서실에 좀 야릇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는 회장 조카로 키가 팔 척이고 인물 잘 생긴 사람이다. H대 연극영화과 다닐 때 국방부서 만든 영화에 최불암씨와 같이 캐스팅 되어 자기가 주연을 맡았다고 늘 자랑했다.  

 그는 전에 회사가 어려울 때 사퇴하여 나가면서, 본관 건물을 발로 차고 침을 밷으며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욕을 하고 나갔다가, 후에 택시사업 하다가 망하고 술집 망하자, 다시 삼촌 밑으로 들어온 사람이다.

  노회장은 그가 복직하러 오자, 그가 '남묘호랭겟교'를 믿는다고 그에 대한 글을 써오라, 새벽 5시 아차산 등산에 수행하라는 둥 거의 몇 달에 걸쳐서 인내심을 시험한 후에 복직을 허락했다. 

 사실 새벽 5시 아차산 등산은 쉽지않은 일이다. 그때 회장을 수행하려면 자기집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해야 했을 것이다. 그 시간에 회장댁에 가서 그는 두 명의 운전수와 보디가드 여비서를 거느린 팀장으로 회장이 산에서 먹을 음식과 과일들, 보온병에 담은 결명자 당귀 구기자를 다린 차, 호박씨 해바라기씨 등의 씨앗, 뉴스를 듣는 라디오, 깔고앉는 돗자리, 읽을 책, 메모할 메모지, 무선전화기 등을 챙겨 산을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회장은 산비탈이 가파르면 이런 짐을 짊머진 그에게 뒤에서 등을 밀도록 했다. 목적지에 닿으면 소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그와 여비서에게 두 팔과 두 다리를 맡겨 안마를 시키고, 다른 한 명의 여비서는 그 옆에서 스크랩해간 신문 기사를 읽도록 했다.

 

 그 당시 어린 여비서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회장님 수행에 다른 건 다 좋은데, 밥이나 제대로 배불리 한번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한측의 완벽한 행복은 타측의 완벽한 희생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 젊은 나이에 우유와 빵으로 요기하고 아침나절 신문 스크랩을 오래동안 읽으려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는가. 배고픔을 하소하던 포천여고를 졸업한 이쁜 리란 여비서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회장이 퇴근하면 집에 모시고 가서 세수하는 일부터, 식사나 전화 수발까지 밤 12시 넘도록 거들다가 퇴근하거나, 회장댁 식모방에서 웅크리고 잔다. 노인은 밤잠이 없어 새벽 5시면 일어나니, 잠은 얼마나 부족하겠는가? 그런데 새벽부터 아차산 등산을 해야하고 먹질 못한채 시달리니, 젊은 처녀가 얼마나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울었겠는가?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을 봉사하는 그에게 내가 수당 5만원을 올려준 적 있다. 그러자 회장은 비서실 과장부터 전체 남자직원을 불렀다. 그리고 하는 말이, '미스 리는 우리집에서 잠도 자고, 밥도 공짜로 먹고, 남처럼 하숙비도 않들고 대학보다 더 많이 배우니, 월급은 오히려 깍아야 하는데, 왜 수당이 필요하냐? 그리고 수당을 줄려면 내가 정해서 주어야지 왜 자네들이 그애들에게 먼저 말했느냐?'며 일갈 한다.

 사실 이들은 용모도 세련된데다 그런 회장 밑에서 일하느라 눈치도 빠르고 손님접대도 능수능란하여 시골처녀가 환골탈퇴 되어 개천에서 용 난 셈이다. 과일 하나를 깍아도 VIP들 앞에 손색없이 내놓을 수 있게 깍고, 인내심도 있어서 나중에 시집을 갈 때 모두 좋은 데로 갔다. 모두가 훈련소 보다 고된 회장 밑에 있은 덕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그 착한 아가씨들이 심청이처럼 가엾기만 하다. 

 

 김 모는 고된 그 일을 월급 없이 몇 달을 견마지로(犬馬之勞)로 다하여 합격하여 회사에 복직하였지만, 사실 그의 손 위 형은 명절이 되어도 회장집에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을지로 1가 땅과 건물이 원래 회장의 친형이던 그의 부친 소유였는데, 회장이 그 을지로 땅과 건물을 조카들 대학 공부 책임을 진다는 조건으로 가져가고는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던 김은 입사후 주로 비서실 잡일이나 허드렛 일을 맡았고, 오후에는 회장실 뒷방에 들어가 팔다리 안마를 하곤 했다. 그 한시간 이상 해야하는 안마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 김모란 자가 실장인 나보다 입사년도도 빠르고, 나이도 네 살 위인데다, 신분도 회장 조카 신분인지라 좀 묘하게 굴었다. 비서실에서는 실장님 실장님 하면서 고분고분 굴다가, 딴 부서에 가면 전화로 곧잘 나에게 반말을 했다. 

 그는 좀 우쭐대는 성질이었다. 10분 거리를 걸어서 회사로 출근하는 회장이 출근한다고 집에서 연락오면, 반드시 집에 가서 모셔오고, 퇴근 때도 집까지 모셔주고 왔다. 이런걸 호가호위(狐威)라 한다. 여우 호랑이 빌려 거만하게 잘난 체하며 경솔하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수위실 앞을 지나가면 7명의 수위가 일제히 일어나서 경례를 부치는데, 이때 그는 사사건건 주의를 주곤 했다. 사내 행사 어디에서도 그는 회장을 곁에서 부액(扶腋)을 하며 딱 붙어있었다. 엘리베이타를 탈 때도, 계단을 오를 때도 항상 그가 옆에서 겨드랑이 껴붙들어 걸음 도왔다. 하도 그러다보니 사소한 회사내 일들은 모두 그가 보고하곤 했다. 입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회사 중역들은 실장인 나보다 그에게 먼저 굽신거리는 자가 있었다.

 

 그가 청와대 사칭 사기 조직을 만난 것이다. 몇 백억 년리 4%로 주겠다는 사람을 만나자, 그는 그사람을 만나도록 인도해준 '남묘호랭겟교' 부처님께 두 무릅 꿇고 눈물이라도 흘리며 감사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는 제1금융권 이자가 10% 넘었다.

 사실 그 당시 회사 내부 사정은 어려울 때였다. 몇 해 전에 사위가 운영하던 A정밀이 2백억의 자금을 대출해준 신탁은행 등 금융권 채무를 부도 낸 것이다. 금융권은 사위가 부도내도록 한 장인에 대해서도 곱지않은 시선은 보내고 있었다.

 

 어쨌던 이때부터 김은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밖에서 그자들 만나고오면 비서실장과는 한마듸 상의 없이 회장실로 직행했다. 공로를 실장과 상의하여 물 타기 싫던 모양이다. 이때부터 그는 보고절차를 완전 무시했다. 실장을 제치고 회장께 직보했고, 심지어 아침 출근시 실장보고 인사하는 것도 빼먹었다. 그는 이 일만 성사되면 회장에게 연세대 명예박사 학위 얻어준 비서실장 보다 공로를 더 인정 받으리라 싶었던 모양이다. 단독으로 일을 해보리라 결심했던 것 같다.

 회장도 재미있는 분이다.  그는 세상이 때론 엉뚱한 횡재도 있다는 걸 경험한 사람이다. 일제때부터 파란만장한 세상 살다보니 세상이 요지경이란 걸 본 사람이다.  

 두사람은 날이면 날마다 소근소근 목소릴 낮춰 밀담을 나누곤 했다. 둘은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지사 같았다. 모든게 비밀이었다. 런던 부둣가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럼주 마시며 보물섬 꿈꾸는 선장과 선원 같았다. 서로 바라보는 눈빛이 의미심장 했다. 

 어쩌다 큰손한테서 전화가 오곤했다. 그러면 그는 궁둥이 바람을 일으키며 신이 나서 외출을 했고, 그때마다 요정 접대 영수증을 가져오곤 했다. 그는 대통령 영부인을 '국모님'이라 불렀다. 그들 사이엔 이순자 여사를 그리 부르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두어 달 지나자, 그들의 수차례 모의가 끝난 모양이었다. 어느날  날더러 법인 인감, 회장 개인 인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미 회사 등기부등본, 대차대조표, 부동산 목록은 넘긴 모양이었다. 그건 경리부 소관이다. 그러나 인감은 취급이 복잡하다. 금고 열쇄가 세 개 있는데, 하나는 경리부, 하나는 기조실, 하나는 비서실의 내가 보관하고 있다.

'상대의 신원도 모르는데 인감이라니, 그건 않됩니다!'

 여기서 내가 사정없이 부레이크를 걸어버렸다. 사실 나는 그동안 비서실과 접촉한 사기꾼의 신원파악을 해놓고 있었다. 총무부장을 시켜 그의 육사 동기인 종로경찰서 서장 통해 그가 별을 몇 개나 달았던 전과자임을 확인해놓았던 것이다.

 청와대 사칭 사기꾼들의 조직은  여러 조직이었다. 하나는 S대 회계학 교수였던 회장 막내아들에게 비자금 제공 제의를 했다. 하나는 회장 사위인 N사장에게도 비자금 제의를 했다. 청와대가 우리 회사 어디가 이쁘다고 비자금을 줄려고 두 군데 씩이나 선을 넣어 접촉하겠는가? 결론은 뻔한 것이다.

 

 어느 날 이런 피래미 조직 하나가 비서실에 전화를 건 적 있다.

'청와대 지시인데 계열사 N 사장과 긴급 연락이 필요하니 연결해달라'는 것이다. 그래 내가, '그걸 그 쪽 비서실에 연락해서 해결하시지 왜 여기 비서실로 전화 합니까?'했더니 반응이 걸작이다.

'이봐! 비서실장 당신 이름 뭐야?'

 '이봐' '당신'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그들이 청와대와 관계없는 사람임을 확신했다. 나는 수차례 청와대 비서실에 가본 적 있다. 총무비서관 만나 회장 서신도 전하고, 작은 선물도 전한 적 있다. 높은 분 주변 사람은 그런 고압적 언사 안쓴다. 이 자들이 번짓수 잘못 짚은 것이다. 

'실례 합니다만 그 쪽 신분 확인이 않되니 곤란합니다. 청와대 전화번호 주시면 이쪽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꺼버린 적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과 접촉하던 조직이 전화를 했다. 사기범은 이미 회사 등기부등본, 대차대조표 등 몇가지 서류를 손에 넣자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었다. A사는 최고경영진이 완전히 자기들 술수에 말려들었다고 이미 축배의 잔을 든 모양이었다. 회장과 이야기 되었다며 몇날 며칠까지 법인과 개인 인감을 보내라고 비서실장에게 아예 통보를 한다. 

 이들 조직은 기업에서 서류를 빼내는 조직,  은행에서 돈을 빼내는 조직으로 양분되어 있다. 기업에서 서류를 빼내는 1차 작업은 거의 끝난 단계인 것이다. 회사 등기부등본 부동산 목록과 법인과 회장 개인인감만 있으면 은행은 돈을 얼마던지 대출해준다. 

 

'인감? 않됩니다' 내가 한마디로 거절했더니, '아니 회장하고 다 된 이야기를 비서실장이 모른다니 말이 되느냐?'고 펄펄 뛴다. '어쨌던 내가 그쪽 신분 확인을 못했으니 않된다'고 했더니, '당신 그 자리에 얼마나 있을지 한번 보잔다'. '맘대로 하시오.' 하고 그날 전화를 그냥 끊어버렸다.

 그런  며칠 뒤 또다시 전화가 와서 인감 보내라고 고자세 협박을 한다. 그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참에 아예 그동안 나간 회사 등기부등본, 대차대조표, 부동산 서류를 회수해야겠다 싶었다. '그럼 모일 모시에 비서실에서 한번 만납시다.'해봤더니 당장 그러자고 한다.

 이렇게  어느 토요일 오후, 비서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정문에 도착했다는 수위실 전화를 받고 내가 물어보았다. 

'비서실 찾아온 손님이 무슨 차를 타고왔소?'

'택시 타고 왔습니다.'

 택시 타고 왔으면 알만하다.

'그럼 내가 나중에 내가 전화해서 뭘 물으면 무조껀 네! 모두 와있습니다 하고 크게 복창만 하시오.'

 이래놓고 비서실에 나타난 그를 만났다. 우선 관상을 보니, 그는 매일 다방에 출근해서 달걀 노른자 넣은 모닝커피 시켜놓고 레지 붙들고 음담패설이나 하는 그런 사람이다. 할 일 없는 그런 사람한테 속은 김 모의 안목이 한심할 뿐이다.

 

 그는 007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오십대 그 꾀쬐쬐한 몰꼴은 벌써 분위기가 틀렸다. 나는 확신 가지고 덪에 걸린 그에게 물었다.

'명함 있소?'

첫말부터 반말을 썼다.

'극비라서... ...'

'극비 좋아하네. 자네 오늘 큰 집에 가실 준비나 하고 오셨나?'

 '자네'라는 하칭을 사용했다. 그러고는 정문에 전화 걸었다.

'어이 정문이지요? 거기 형사들 몇 명 왔소?'

'네! 두 명 왔습니다.'

'알았소. 잠시 대기시켜 주시오.'

 큰소리로 대답하는 수위 목소리는 그도 들었다. 전화기를 쾅하고 놓고 물었다.

'어이! 지금 모든 서류를 내놓고 맘 편히 걸어나가던지, 아니면 두 손에 은팔찌 차고 경찰서로 따라 가던지 맘대로 해!'

 사내는 이 말을 듣자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딱았다.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후따딱 007 가방을 열더니 가져간 서류를 모두 내놓고 혼비백산한 쥐새끼가 되어 사라진다.

 

 이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 뒤도 재미있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내가 자초지종 회장께 보고했다. 비서실에도 전화 오고, 셋째 아들 김박사한테도 전화 오고, 사위 N사장에게도 전화 오고, 그리고 종로경찰서에 알아보니 상대가 전과자라, 내가 지난 토요일 오후 그를 불러 그동안 나간 회사 서류를 모두 받았다고 보고하니 회장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부회장한테도 지금처럼 보고해!'

하더니 슬그머니 돌아선다.

보고를 받은 부회장도 재미있다.

'김** 그 녀석 들어오라고 해.'

부회장은 MIT 박사 출신인데 덩치는 조그만 사람이다. 주눅이 든 팔척 장신의 자기 사촌 동생을 앞에 세우고 이 자식 저 자식 한참 삿대질 하며 고성을 지르고는 날더러 '이 자식을 당장 짜르시오'한다.

그래 내가 그를 달랬다.

'사실 노회장님은 벌써 칠순을 넘지 않았습니까? 병원 다니실 때 부축하고 다니고, 건강 위해 새벽마다 산에 모시고  다니는 일은 자식도 못하는 효도인 셈 입니다. 내가 잘 조처할테니 저에게 맡겨주세요.'

 이래서 그는 살아남았고, 다시 상관에게 고분고분한 사람으로 변했다.

 차제에 경리담당 부사장도 불러서 한번 혼을 내주었다. '회사 등기부등본, 대차대조표, 부동산 목록이 회사 밖으로 나간 것은 누구 책임입니까? 누가 그런 걸 체크합니까?'

  그 뒤 서울 지검 특수부 수사관이 김을 호출했다. 청와대 사칭 사기단 수사를 하다가, 전문 사기단 몇 개 파를 검거했는데, 피해자 인적 사항 중에 그의 이름이 나왔던 것이다. 

 그때 검찰 출두 통보를 받고 얼굴 노래진 그 얼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사실 피해자 참고인으로 소환한 것이라 아무 문제도 없는데도 허둥지둥 하다가 그만 하나를 까먹고오고 말았다. 검찰에서 나중에 보도할 보도자료에 우리 회사 이름을 빼달라는 부탁을 못하고 온 것이다.

 그의 명절 과일바구니 선물 리스트에는 회장이 공항 VIP실 드나들 때 잘해달라고 부탁하던 법무부 백호실, 그리고 회장이 다니던 서울대 병원의 유명한 의사들, 국회의원들, 그리고 서울지검 특수부 사람 명단도 있었건만, 그는 특수부에 가면 무조건 맞는다는 소문에 얼어서, 뺨 한 대 맞지않고 밤 11시에 돌려보내는 것만 고마워서, 꼬리 내리고 황급히 돌아오느라고 그랬던 것이다.

 

 며칠 뒤 일간신문에 검찰 측 기사가 실렸다. 중톱으로 우리 회사 이름도 실렸다. 사람들은 '일개 부장이 어떻게 회사 등기부 등본같은 중요 서류를 외부로 유출시켰겠냐, 회장의 허락 있었겠지' 하고 수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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