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청산은 어이하여 만고에 푸러르고

부산 울산 대구 친구들 지리산 합동시산제 다녀와서

김현거사 2013. 9. 12. 12:13

        부산 울산 대구 친구들 지리산 합동시산제 다녀와서

 

 

 고등학교 졸업한지가 한 50년 쯤 된다. 최용남 친구가 진주고 933싸이트에 올려주는 부산 울산 대구 등산팀들 등산 소식 볼 때마다 참 기특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모르긴 해도 이런 세 지역 동기들 합동 등산모임은 어느 고교 어느 기에도 없는 정다운 모습일 것이다. 그들이 지리산에서 시산제 한다는 소식 듣고, 진서 말마따나 서대문포럼 깃털 몇이 안 나설 수 없었다. 인생 70을 눈 앞에 두고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았나? 잘났건 못났건 이름도 얼굴도 알던 모르던 그들을 보고싶었다. 그들은 한때 우리의 그 황홀한 청춘시절 고교 동기들 아닌가.

 

 하필이면 버스 타니 거사 옆의 좌청룡 우백호가 그럴듯하다. 좌측엔 김두진 교수 우측엔 이종규장군이다. 한쪽은 무골이고 한쪽은 문신이다. 두 선수 다 겸허하고 진지한 사람이다. 같이 여행하긴 이 세상에 그들보다 좋을 짝 있을 수 없다.

 원지에 가서 중산리로 전화하니, '거기서 점심 묵으면서 꾸물거리지 말고, 3만5천원 주고 택시 타고 즉시 오이라'. 이병옥 교장이 가져온 닭들이 장작불에 삶아 맛있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는 중이란다. 요러니 분위기가 첨부터 확 일어난다.

 단숨에 달려가니 이번 시산제 축문을 작성한 강정 선수, 시조창으로 전국을 누비는 오태식 교장, 시산제 돼지 대가리 메고 온 거구의 강종대, 시산제 주무를 맡은 이병옥 교장, 고등학교 시절 내 옆에 앉았던 왕년에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가수 최용남, 뉴욬서 근년에 귀향한 김병지 선수가 있다. 서로 붙잡고 악수하는데 부산 진동인 선수가 누군가 키가 크고 젊잖은 신사하나 데리고 온다.' 누고? 얼굴도 모르것다.' 물어보니, '백일선이 모르나? 아마 바둑 최고수 아니가?' '오매 그러코나 참 반갑다.'

 

서로 손잡고 지리산 그 풍요 땅에 거침없이 잘 자란 싱싱한 나무토막으로 불길 활활 타오르는 뜨껀한 난로 옆에 서로 마주보고 좌정하니, 술은 덕산 양조양 사장 조소길 선수가 보낸 막걸리다. 맛을 보니 텁텁하고 걸찍한게 꼭 조소길이 같은 걸찍한 맛이다. 칼바위 올라간 등산 주멤버들은 아직 오지않았으나. 우선 돼지고기 뭉텅뭉텅 썰어 잔부터 채워보는데, 귀한 것이 나온다. 송이주와 지리산 산죽주다. 오태식 교장이 들고 온 것이다. 서울서 들고간 산토리도 한 병 있다. 여기다 삶은 닭고기와 혜근이가 내놓은 곳감이 있다. 서로 한참 떠들기 시합을 하는데 이윽고 부산 울산 대구팀이 돌아온다.

 진주 천전초등 출신 전봉길 선수가 인사말 하고, 답사는 이종규장군이 하고, 덕산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하는 조재현 선수 제안으로 각자 한마디씩 서분찮게 인사말도 해보았다. 말로만 보고싶다 그립다 해싸면 뭐하나? 요렇게 해삐리야 진짜다. 흥이 고조될 무렵 진주 목사 강홍열과 문성열 박사가 들이닥친다.

 

 요대목 이후부터 거사는 좀 아리까리하다. 이미 송이주와 산죽주와 산토리주 알콜 기운이 농후해졌기 때문이다. 부산 해운대 신사 이건영 화백, 고려대 동기 이걸 선수도 왔다. 이때부터가 모임의 픽크인데, 사실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었다. 지리산 산골의 깊은 밤에 난로불에 구운 뜨거운 고구마 먹어가며 오손도손 정담을 나누는 방향과 아예 덕산 노래방에 가서 한바탕 불러제끼는 방향이다. 누가 결정했는지 모르지만 노래방으로 정했다. 혜근이는 미리 봉고차 한 대 대기시켜 놓았다.
 인원은 많지 이미 전부 술은 취했지, 그 중엔 유명한 풍류객도 섞였지, 덕산 노래방 가서는 멋대로 시키고 멋대로 놀다가 백전노장답잖은 잠간 실수도 있었다.시골 깡촌 노래방에 귀백만원 매상 올려준 것이다. 촌닭이 도시닭 눈깔 빼먹은 것이다. 술값 계산해준 문박사한테 미안했다. 그러나 명함에 취미라고 노래부르기를 적어놓고 다니는 덕산의 명가수 조재현의 노래, 거사와 쌍벽을 이루는 아코디언 악사 문박사의 '추억의 소야곡' 노래. 한때 방송국 피디했던 진동인의 노래, 수많은 졸병 거느리고 사단장한 이종규 선수의 노래, 마산여고 국어선생 출신 백일선의 노래 들은 것은 참으로 감회로운 장면이었다. 그 귀한 시간이 언제 다시 올 것인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밤 꿈결같이 만난 부산 울산 대구 친구들은 다 가버리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원래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왕희지가 난정이란 곳에서 지기들과 만나 한잔 꺽은 이야기가 난정서(蘭亭序)인데, 그의 글은 당태종이 자기 무덤에 같이 묻어달라고 할만큼 천하명필이다. 마침 혜근이 방 벽에 <반야심경> 글씨가 붙어있었다. 허전한 거사는 자청해서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 우리의 모든 감각 지식 행동도 원래 다 텅 빈 공이라는 반야심경 강의를 했고, 백일선은 '매화는 춥게 살아도 일평생 향기를 팔지않고, 오동은 천년을 살아도 항상 제 곡조를 지닌다.'는말로 응답했다. 아마 최고수 백일선에게 세 점 깔고 거사는 신년대국 한 수 지도 받았다.

 

 통영서 공수한 싱싱한 굴 넣은 떡국 맛있게 먹고, 지리산록 산보도 했다. 혜근이가 부자다. 그렇게 맑은 공기 무진장 많고, 그렇게 시원한 물도 무진장 많다.계곡엔 둥치가 용처럼 굵은 머루 다래 넝쿨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있고, 집채만한 바위는 그 아래 푸른 물이 얼어붙었고, 수정 고드럼이 주렁주렁 달렸다. 돌탑 쌓아놓고 촛불 밝히고 정성드리는 무당 굿집도 있다. 편백나무 숲은 향기롭기 그지없고, 당뇨에 특효약인 산죽은 널린 것이 다 산죽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자기 산 안에 있으니 혜근이는 부자다.

 

 산책 중에 세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온김에 청황식당 가서 홍어회에 비빔밥 좀 묵고가라'는 진주 목사 강홍열의 지엄하신 전화. '자갈치 가서 회 좀 묵고 케이티엑스 타고 가라'는 부산 노지심 강종대선수 전화, '먼 길에 만나서 반가웠고 조심해서 잘 올라가라'는  이건영 화백 전화였다. 이런 뜨끈뜬끈한 전화 받고 감동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목석 밖에 없을 것이다.

 중산리 등산로 입구 옆 산골식당의 씨레기 해장국과 순두부와 지짐이도 구수했다. 그걸 계산 서로 하겠다고 진동인 선수와 오태식 선수가 티깍때깍 해쌓는 것도 정다운 경치였다. 다시 원지에서 진동인 백일선은 부산으로, 강정 김두진 이종규와 거사는 서울로,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노래 가사처럼 두번 세번 악수 반복해서 한 후, 각자 버스에 몸을 실었다.

                                                                               (2011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