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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의 암자들/한국불교아동문학회 20012년호

김현거사 2012. 8. 28. 19:24

    통도사의 암자들

                                                                                                                         김창현/수필가

 절에 가서 법당에서 절하는 것만 수행이 아니다. 산길에서 새소리, 바람소리, 흐르는 물소리 듣는 것도 수행이다. 통도사는 암자가 스물을 넘는다. 암자만 둘러봐도 가슴에 수행심이 차오른다.
불지종가 국지대찰(佛之宗家 國之大刹) 통도사 앞에는 노송 우거진 사이로 준수한 영취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부터 한 물건을 이뤘다. 그 냇물 위에 구름다리가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그 다리 위에 서면, 문득 속세가 멀어진다. 다리를 건느면, 다른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냇물 따라 길이 있다. 산죽 사이로 난 그 길 따라가면, 암반의 옥같은 고드름과 아름다운 반석들이 구경할만 하다. 취운암(翠雲庵)은 푸른 구름에 쌓인 암자라는 뜻이다. 비구니 선원(禪院)이라 무척 깔끔하다. 백련암(白蓮庵)은 대밭 아래 한그루 창공에 우뚝 높이 솟은 나무가 있다. 그 아래 방문객 젊은 여성 둘이 무언가 줍고 있어 곁에 가보니, 열매를 실로 뀌면 염주가 되는 보리수다. 옥련암(玉蓮庵)은 팔뚝만한 잉어가 헤엄치는 연못가에 전지 잘 된 매화와 무궁화로 둘러쌓인 텃밭이 좋고, 대웅전 앞의 반송(盤松)은 지금까지 거사가 본 반송 중에서 가장 크고 잘 생긴 거목이다. 반송의 가치를 아는 분이라면 천하 보물로 칠만하다. 사명암에는 무작정(無作亭)이란 정자가 있다. 무작(無作)이란 것은 아무 것도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에 생각을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볼만한 정자다. 정자에 앉아서 쳐다보면, 연못 가 수백년 된 늙은 감나무에 달린 붉은 홍시가 고풍스럽다. 본전에 들어가 절하고 나무 밑의 흙 묻은 홍시 하나 주워 입에 넣으면, 그대로 감로요, 꿀맛이다. 자장암은 통도사 개창 전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유서깊은 암자다. 이곳에서 영취산 웅장한 산세가 다 보인다. 암자 아래 반석과 노송들은 살펴보면 볼수록 일품이다. 법당 뒤 관세음보살이란 각자(刻字 )새겨진 암벽도 명물이다. 직경 5센티 굴 속에 금빛 개구리가 살고있다. 1400년 전 자장율사가 우물에 물뜨러 가면서 보았다는 전설의 금와(金蛙)보살이 아직도 살고있다. 그 속에서 일년 내내 무엇을 먹고 사는지, 개구리가 겨울에도 동면 않고 왜 어찌하여 보이는지를, 신도들이 다들 신통해한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가는 분도 많다. 서축암(西鷲庵)은 별장같다. 세심교(洗心橋) 다리 옆에 빨갛게 피어난 동백이나, 거기서 보이는 영취산 모습이 일품이고, 법당의 탱화나 부처님 조성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거부가 희사한 암자라는데, 좋은 시설에 비해 고풍스런 맛이 없는 점은 좀 아쉽다. 극락암 삼소굴(三笑窟)은 경봉스님이 득도한 곳이다. 뒤로는 삼겹으로 병풍을 둘렀으니, 푸른 대숲이 첫째 병풍이요, 노송숲이 둘째 병풍이요, 영취산이 셋째 병풍이다. 이런 삼겹의 의미를 알아야 풍수를 제대로 본 것이다. 여기서 세번 웃은 노승의 뜻도 알아채려야 한다. 이끼 낀 구름다리가 놓인 연못가에는 어른 3인이 팔을 벌려야 손이 닿는 허리 굵은 벚나무가 있다. 봄에 꽃을 달면 여기가 신선의 땅이 된다. 사람들은 속세의 권력을 좋아하지만, 산중 노송(老松)이 청와대 노송(老松)을 비웃을만 하다. 돌에 새긴 약수터 각자(刻字)에는, 靈鷲山深雲影冷(영취산이 깊어 구름 그림자 차겁고)  洛東江闊水光靑(낙동강이 넓어서 물빛이 푸르다)란 호쾌한 시가 쓰여있다. 산과 구름, 강물과 물빛만 읊고, 전혀 속세의 잡티가 없는 그 마음에 묘미가 무한하다. 노완(老阮)이라 낙관한 것은 추사 노년이란 뜻인데, 무량수전(無量壽殿) 글씨 기묘하고, 삼소굴 입구의 만리향 노거수(老巨樹) 모습은 노승 같다. 기구(崎嶇)하다. 굽이굽이 구부러진 험한 산길 같다는 말이다.  ‘야반삼경에 문빗장 만져보라’는 화두 던지고 가신 경봉스님 체취 가득하다. 극락암은 극락이다. 천상(天上)이 아닌 산상(山上)에 있음만 다르다. 통도사 암자들은 모두 고요하다. 정토를 여기에 두고, 속세의 어디를 헤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