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나무
김창현
그 집 마당에 한 그루 운치있는 나무가 없다면, 아무리 고대광실을 자랑하는 집이라도 나는 흥미가 없다. 한 폭의 좋은 그림이 걸리지않으면, 나는 그 집 실내 인테리어와 가구가 아무리 화려해도 탐탁찮게 생각한다. 세상이 공평한 것은, 간혹 돈많은 사람이 무식하다는 점이며, 간혹 가난한 자 중에 지조 높은 분도 있다는 점이다. 나는 빌딍을 소유하기 보담, 작은 초옥을 소유하고 싶다. 초옥 옆에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한 두그루 나무를 심어보고 싶다.
60년대 K대 교정 한 켠에 키가 하늘에 닿는 높은 버드나무가 있었다. 그 밑에 서점과 식당이 있고, 벤치가 있었다. 그 벤치는 주머니 속에 학생증과 버스표만 달랑 들어있던 한 가난한 철학도 전용석이었다. 나는 세검정 어느 육군대령 집 고등학생 중학생 두명을 가르키던 입주 가정교사였다. 그 당시 나는, 그가 특별히 세련되거나 별로 이쁘지 않더라도, 교정의 그 흔한 여학생 누구라도 캠퍼스 안에서 한번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닐고 싶은, 안타까운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남들은 교정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앞 다방에, 때로는 종로의 음악실에까지 진출하여 만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어땠던가. 텅빈 호주머니로 벤치에 혼자 앉아 도시락을 까먹은 후, 백양담배를 피우며, 흘금흘금 부러운 눈초리로, 내가 앉아있던 벤치 앞으로 여학생과 어깨 나란히 하고 식당에 들어가는, 서울 남학생을 쳐다볼 일 밖에 없었다.
즐겨읽던 책은 칼맑스의 <자본론>이다. 그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을 금지하던 책이다. 그걸 청계천 고서점에서 구해와서 읽던 마음은 무엇일까. 그 책은 사유(私有)와 자본주의를 부인하던 책이었다. 또 하나 소중히 읽던 책이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다. 그 책엔 내가 항상 찾아가서 청승맞게 그 밑에 앉아있던 버드나무에 대한 찬사가 가득했다. 버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감성적인 나무라는 둥, 바람에 불리인 버드나무 가지는 무희의 긴 소매를 닮았다는 둥, 아름다운 부인의 허리를 유요(柳腰)라고 한다는 둥의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그러고보니, 버들은 소녀처럼 허리가 나긋나긋하고, 곱고 매끄러운 피부를 지녔다. 알고보니 버들은 여성스러운 나무였고, 사랑할만한 나무였다. 그 후로 나는 버들의 둥치를 손바닥으로 쓰다듬기도 하고, 햇볕에 빤작이는 아름다운 잎을 오래오래 지켜보곤 하였다. 버드나무를 여자 친구 대신 사랑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청춘시절의 가난과 고독을 다둑여준 버들을 나무 중에서 가장 사랑한다. 나는 초당 앞 개울가에 반드시 버들을 하나 심고 싶다. 봄 신록의 싱싱함, 여름 그늘의 시원함, 가을 낙엽의 낭만을 즐기고 싶다.
버드나무 다음으로 사랑하는 나무는 소나무다. 나는 신문기자를 하다가 모 그룹 창업주 비서실에서 20년 근무했었다. 대통령과 은행장에게 가는 편지를 써주고, 자서전을 써주고, 언론과 접촉하는 일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정재계 사람들을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인간이란 참으로 다양하고, 세상이란 참으로 이해관계와 권모술수 얽힌 복마전이란 걸 경험하기도 했다. 앞에서 아부하고 뒤에서 욕하고, 이권 때문에 안면 몰수하고 철면피하게 쳐들어오는 군상을 보았다. 그들은 탐욕스런 늑대였다. 의리와 절개란 헌신짝 이었다. 가치관은 전도되고 악은 선을 앞섰다. 이런 속에서 나는 세한삼우(歲寒三友)인 소나무를 사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줄기에 고태(古態) 가득하고, 돌 위에서 천년 쯤 자란 반쯤 허리를 굽힌 노송을 사모했다.
이전에 내가 알고있던 소나무는 재목으로 아무 짝에 쓸모없는 것이었다. 송진 때문에 천덕꾸러기고, 망국의 나무라고 알고 있었다. 소나무에 대한 관심은, 밑에 수북히 쌓여서, 대갈고리로 걷어와 불쏘시개로 쓰 면, 불길이 확하고 일어나던, 화력 좋은 갈비 정도였다.
한번은 오대산 월정사 적멸보궁을 가는데 내 앞에 젊은 신혼부부가 걸어가고 있었다. 산길은 웅장한 침엽수림 이었다. 젊은 새댁이 '소나무가 너무너무 커서 정말 대단하네요.' 감탄한듯 그 남편에게 동의를 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어디 소나무고? 내가 보기엔 잣나무건마는.' 남편이 단호하게 반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갑자기 속에 치미는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건 전나무 였기 때문이다. 젊은 부부 둘다 틀린 것이다. 대개 우리는 이처럼 소나무에 대해 무지하다. 나 역시 그 전에는 소나무에 무지하기 오십보백보 였다. 소나무가 조경수로 제대로 인정받고 서울에 처음 등장한 것은 강남의 한전 본사 앞 화단이다. 그 뒤로 인터콘티넌탈 호텔 앞 화단에 소나무 군식이 등장했고, 한참 뒤 코엑스 도로변 화단에 한그루 수백만원 홋가하는 잘생긴 소나무가 등장했다.
가난한 서생 주제에 언감생심이라 하겠다. 그러나 나는 초당을 마련하면 반드시 이런 소나무 하나만은 꼭 심고 싶다. 소나무 너머로 푸른 안개 덮힌 청산을 바라보고 싶다. 옹이가 박히고 허리가 구부러진채 눈 속에서 푸른 솔을 매일 쳐다보고 싶다. 돌 위의 천년 불노송을 예찬한 퇴계선생같이 되고 싶었다.
세상에서 지음(知音)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버들과 소나무 둘만 있어도 얼마나 다행일 일 일까. 버들은 나의 젊은 시절 고독과 낭만을 회상시켜줄 것이다. 소나무는 항상 나에게 청풍의 의미를 되새겨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