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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그러찮아도 사람 어딘가로 떠나고싶게 만드는 유혹의 철이다.피천득 선생 말마따나,'돈과 재물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추억 많은 사람이 부자' 아니던가.시인 수필가 소설가 평론가들 문학기행을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난 밤 비에 젖은 압구정동 벚꽃,개나리꽃 싱그럽고,잠실 수중보 푸른 봄물은 힘차게 넘실거린다.연분홍꽃 노랑꽃 맘 속에 점 찍으며 문막 휴게소 도착하니 짚시처럼 애조 띈 남미 음악이 들려온다.<안데스>란 악단 이름 걸고,붉은 망또 걸친 에콰도로 남자들이 화장실 옆 공간에서 연주하고 있다.천리 타향 공연이 어째 하필 그 쓸쓸한 화장실 옆인지 모르겠다.잉카 음악은 '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 ) 딱 한 곡 밖에 모르지만,그들 음악은 아리랑처럼 한이 느껴진다.팔아서 여비 보태려고,대나무 한개로 만든 피리 <께냐>,다섯개 붙여 만든 <삼뽀냐>,타악기인 <착차스>에 일이만원씩 가격 적어놓은 것도 마음 애잔하다.왕년에 우리 예술가들도 파리서 저렇게들 했을 것이다.
같은 여행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자기 소개 시간이 지나고,삼행시 시제가 하달된 후,차가 치악산 지나갈 때 쯤,문학평과 칼럼이 시작됐다.이 여행 주최한 청다문학회 이사장 靑多 이유식 교수는 문단 원로답게 문학의 현주소를 소개했고,4선의원 역임한 김중위 장관은 후천개벽 예언한 탄허스님 이야기와 점유지를 팔라는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인디안 추장 씨아틀의 편지 내용을 소개했다.동방문학 발행인 이시환 평론가는 본인이 해석한 티벳 불교와 성경 이야기를 했다.
고담준론이 물 흐르듯 흘러,옳거니 이 버스 잘 탔구나 싶었다.
그 유명한 영주 사과꽃은 아직 피기 전이었다.그러나 소수서원 옆 선비촌에서 올려다본 소백산맥은 흰구름 속에 더 푸르다.도를 근심하되 가난은 근심하지 마라(憂道不憂貧)는 선비의 고장 영주에 온 것이다.안중근 안창호 등을 배출한 구십구칸 옛 반가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비닐 휘장친 간이식당 벽에 학은 천년된 가지 위에서 춤추고,거북은 만년된 못에서 논다(鶴舞千年枝,龜遊萬歲池)란 붓글씨 멋들어지게 써갈겨놓았다.스물 네 문인이 간고등어와 좁쌀 막걸리로 입맛 한번 기분좋게 다실만 하였다.
그러고 간 소수서원은 려말 주자학을 한반도에 도입한 안향 사당이 있는 곳이다.후에 주세붕선생이 여기다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웠고,퇴계선생이 상소를 올려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명종 친필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다.
소나무를 금강송으로 별칭하기도 하고,歲寒之木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그 소나무가 백년 넘으면 껍질이 육각형 거북이 등가죽같이 된다고 한다.퇴계선생이 조성한 취한대(翠寒臺) 아래 용트림한 소나무는 죽계천(竹溪川)에 푸르고,강학당 옆 이끼와 운지버섯 무수히 솟은 단풍나무 고목 雀舌같은 새 잎들 봄을 머금었다.강학당 좌측,훈장이 사용한 건물의 현판은 直方齋 日新齋라 붙었으니,日日又日新 하라는 것이요,직방으로 학문 깨쳐주자는 것이다.우측 유생들 있던 건물은 學求齋 至樂齋란 현판이니,학문 구하고,지극한 즐거움 맛보라는 뜻이다.좌우측 건물은 스승과 제자의 위계 따라 높낮이 차이 있으니,三枝三禮 비둘기도 어미 새끼 앉는 가지가 다르다는 유교 전통에 따른 것이다.
바바리 코트 차림 배꽃같이 용모 깔끔한 박경희 해설사는 해설도 일품이었거니와 석류처럼 살짝 붉힌 수줍은 태가 그에 못지않다.영주는 경치도 좋거니와 인물도 순수하다.장서각 영정각 둘러보고,박물관 가니,입구에 공자 주자 안향 주세붕 이황 선생 다섯 분 흉상이 안치되어 있다.대동여지도의 順興 옛고을 모습을 화강암판에 새겨 바닥에 깔아 관람객이 발 딪고 보게 만든 아이디어도 좋았다.고인돌 선돌 암각화는 이곳이 선사시대에 닿았음을 이야기했고,무덤 속 벽화는 천오백년 전 신라 이야기 였다.여기서 주세붕 퇴계선생 같은 거유의 친필 배견한 것도 복이요,성학십도 목판본과 사찰의 깃발을 달았던 幢竿의 금동제 龍頭를 볼 수 있던 것도 복이라 싶었다.
이번 여행 초점이 봉화 고택 방문이라,부석사는 그냥 가려니 아깝고,들리자니 괴롭다.후들거리는 다리로 높고 가파른 돌계단 올라가,최순우님이 소개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점시 기대섰다.일망무제 탁 트인 경관 속 다섯 겹 산들은 연꽃잎처럼 겹쳐있는 것 같기도 하고, 겹겹이 밀려오는 푸른 파도 같기도 했다.비 오면 파도가 겹겹이 밀려오는 모습 같다고 한다.여기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의상대사는 바다 저편 중국의 선묘낭자 모습을 그렸을까.
봉화 의성 김씨 집성촌 해저마을은 김중위 의원 출생지다.나지막한 뒷 산세는 부드럽게 동네를 감쌌고,산을 의지한 여나믄 한옥들은 들 너머 강을 바라보고 있다.이 작은 동네서 독립유공자 열 네 분이 나왔고,남호구택은 사위 둘이 서울대 영남대 총장을 지냈다고 한다.人傑은 地靈이라 풍수조차 유심하다.
제비집 달린 종가집 골기와 처마 끝 장명등 그윽하고,달필로 쓴 八吾軒 글씨 예사롭지 않다.누각 세운 김성구 공은 김의원 10대조로 강원도 관찰사 성균관 대사성 거친 청백리라 한다.“백성이 잘살면 임금은 누구와 더불어 못살 것이며,백성이 못살면 임금은 누구와 더불어 잘살 것인가”라는 상소 한 장 써 바치고 고향에 돌아왔으니,八吾란 耕吾田(내 밭을 갈고),飮吾川(내 샘물 마시고),採吾巓(내 산에서 나물 캐먹고),釣吾川(내 개울에서 고기 낚고),披吾編(내 책 내가 펴고),撫吾絃(내 거문고 내가 뜯고),守吾玄(내 현묘함을 내가 지키고),終吾年(내 생애를 마치겠노라) 라는 뜻이라 한다.
고택 안내해준 분은 김철진 시인이다.그는 75년 중앙일보,7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다.턱수염 기르고 고향에서 예술인촌을 경영하고 있었다.시인이 떼거리로 온 작가들을 그냥 보낼 것인가.결국 지갑은 호쾌한 성격인 아재뻘 김의원이 풀었지만,우릴 식당에 초청하고 자신의 시가 적힌 엽서를 나눠준 분은 그분이다.
돌아가리라 내
바래미로 돌아가리라.
의성 김씨 한 삼백년
조선 청댓잎 기침 소리로 살아온 마을
충의 효친 선조 유풍 수묵으로 번져 피고
대쪽같은 선비 정신 명월루에 달로 뜨는.
후략
시가 맘에 들어,歸去來兮여 田園將蕪하니胡不歸오.나는 큰소리로 도연명의 귀거래사 첫 행 외고 김시인과 잔 주고 받았다.버스가 불빛 영롱한 아리수 강변을 거쳐 압구정에 우릴 내려놓은 시각은 밤 10시였다. (2010년 4월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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