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어느 슬픈 나무에 대한 이야기

김현거사 2021. 7. 14. 16:01

 어느 슬픈 나무에 대한 이야기  
                                                                                                                             김창현 
 

 우리나라에는 한 슬픈 나무가 있다. 그 나무 이름은 무궁화라 부른다. 그 나무를 나는 뜰에 심어놓고, 20년 간 키웠고, 간혹 무궁화를 보기 위해 밖으로 찾아 나서기도 했다.

                                                                                  코엑스 전시장에서 촬영

가장 아름다운 무궁화 나무는 서종면 어느 주택에서 만났다. 근처엔 물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개울은 보랏빛 흰빛 아름다운 무궁화꽃 울타리가 덮고 있었다. 마치 신성한 신전 같았다. 무궁화가 이처럼 아름다운 꽃이 더냐고, 아내가 놀라서 묻던 기억이 난다. 두번째는 동대문 옹성 밖에서 보았는데, 한 그루는 흰 바탕에 붉은 점이 박힌 백단심(白丹心)이고, 한 그루는 보랏빛 홍단심이었다. 둘 다 기품 있는 반가의 규수 같았다. 우아함 그 자체였다. 세 번째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서 만났다. 다른 꽃들은 무더위에 지쳐있는데, 푸른 들판, 흰구름 아래 무궁화만 독야청청하였다. 그 흰빛, 보랏빛 현란한 파노라마가 잊히지 않는다.

유달영 교수도 무궁화 애찬가다. 그는 '1956년, 뉴욕 식물원에서 우단을 깔아 놓은 듯 곱게 다듬은 푸른 잔디밭에 잘 가꾸어진 여러 그루 무궁화를 보았는데, 아침 밝은 햇볕에 푸른 숲을 배경으로 무궁화 꽃이 만발한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는 글을 남긴 적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들이 무궁화에 진드기가 낀다느니, 꽃이 이쁘지 않느니 타박한다. 심지어는 나라꽃을 교체하자는 주장까지 한다. 진드기 낀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알다시피 무궁화는 장미과 식물이고, 장미과 식물은 진드기가 낀다. 그러나 장미가 나라꽃인 영국은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장미에 약을 뿌리고 벌레 잡아주면서 곱게 가꾸고, 누구 하나 진드기 타령하는 사람 없다. 무궁화가 이쁘지 않단 말도 따져보자. 무궁화 학명은 히비스커스 시리아규스인데, 히비스커스는 우리가 하와이 공항에 내렸을 때, 남국의 브르넷 아가씨가 다가와, 목에 화환으로 걸어주던 아름다운 그 꽃이다. 히비스커스는 이집트의 아름다운 신(神) 히비스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무궁화를 중동에서는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샤론 평원에 피는 아름다운 장미를 뜻한다

문일평 선생은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무궁화는 여름 아침 일찍이 동산에 나가면, 번무(緊茂) 한 가지와 잎 사이로 여기저기 하얗게 핀 꽃이 이슬에 젖은 그 청아한 자태가, 청계수(淸溪水)에 새로 목욕한 선아(仙娥)의 풍격(風格)을 어렴풋이 생각게 하는 바 있다.' 하였다. 한여름에 베옷 입고, 살 부채 들고, 초당을 거니는 군자에게 알맞은 꽃이 무궁화다. 백의민족과 궁합이 맞아도, 이처럼 맞는 꽃이 없다. 

이쯤에서 상고사에 나오는 무궁화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자. 시경(詩經)에 공자의 '안여순화(顔如舜華)'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얼굴빛이 무궁화처럼 이쁘다는 표현이다. 안목 있는 사람들은 무궁화를 이처럼 보았다. <단기고사>에는 '환인(桓仁)을 임금으로 추대하는 단상(壇上)은 환화가 둘러싸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임금께서 고역산(古歷山)에 행차하여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주변에 근수(槿樹)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산해경>에는 '해동에 군자국이 있는데, 의관을 정제하고 칼을 차며, 양보하기 좋아하고 다투지 않으며,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고 쓰여있다. 무궁화는 신시 시대(神市時代) 하늘에 의식을 행하던 신단(神壇)에 심던 꽃이다. 소도(蘇塗)에서 제사를 주관하던 사람을 임금, 선인(仙人), 신선(神仙)이라 불렀는데, 무궁화는 그 임금을 상징하던 꽃이다. 이런 기록은, 중국 고대 기록과 우리 문헌 <조대기>, <단군세기>, <단기고사>, <규원사화>에 다 나온다.

현재 세계는 각기 나라마다 나라꽃이 있다. 미국은 주(州)마다 꽃이 다르지만, 네덜란드는 튤립이고, 스코틀랜드는 엉겅퀴꽃이다. 스웨덴은 하이비스커스 꽃이고, 러시아는 해바라기다. 독일은 수레국화고, 프랑스는 아이리스,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두 나라는 장미다. 이집트는 수련이고, 스위스는 에델바이스, 대만은 매화요, 중국은 모란이다. 나라마다 나라꽃 정한 이유가 다르겠지만, 프랑스는 아이리스 꽃이 기사들의 검을 닮았다며 정했고, 스콧 드랜드는 엉겅퀴꽃이 용맹한 사자의 발톱을 닮았다고 정했다. 

그러나 우리도 한때 무궁화를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신라의 화랑들은 무궁화를 머리에 꽂고 다녔다고 화랑이다. 최치원은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에 신라를 근화향(槿花鄕)이라고 기록했다. 강희안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 '단군(檀君)이 개국할 때 무궁화(木槿花)가 나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컫어, 근역(槿域 )이라 했다'라고 기록했다. 최영전(崔永典)은 백화보(百花譜)에서 '무궁화는 어사화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문무과(文武科)에 급제하면, 임금께서 종이로 만든 무궁화를 하사하여, 복두(幞頭)에 꽂고 삼일유가(三日遊街)에 나서게 했다'라고 기술했다. 

무궁화는 약으로도 썼다. 동의보감에는 '무궁화의 약성은 순하고 독이 없으며, 장풍(腸風)과 사혈(瀉血)을 멎게 하고, 설사 후 갈증이 심할 때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다. 꽃은 약성이 냉하고 독이 없으며, 장풍· 사풍· 사혈에는 볶아서 먹거나, 또는 차처럼 달여서 무시로 마시면 낫는다'라고 쓰여있다. 

 해방 후에 잠시 무궁화꽃에 대한 존경심이 고조된 적 있다. 윤치호(尹致昊) 선생이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었고, 남궁억 선생이 홍천군 서면 모곡리 보리울 마을에서 무궁화 보급 운동을 펼쳤다. 정부를 만들자, 입법 사법 행정의 상징 뺒지를 무궁화로 만들었고, 태능 육군사관학교를 세우고 화랑대라 부르고, 생도를 화랑의 후예라 불렀다. 그런데 이 무슨 바람이 언제부터 불어 이처럼 무궁화 폄화 풍조가 만연되었는지 모르겠다. 흔히 일본 탓을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나는 일본의 오래된 도시 나라(奈良) 근교에서 아름다운 무궁화 동산을 본 적 있다. 왕인박사 묘소는 아예 동네 전체가 무궁화 꽃동산 이었다. 중국도 그랬다. 북경 공항에서 시내 들어오는 가로수는 키가 사람 세배나 되는 무궁화나무 터널이었다. 천진 공항에서도 연대(煙臺)에서도 산둥반도 봉래산(蓬萊山) 가는 평야 여기저기에서도 아름다운 무궁화를 볼 수 있었다. 중동은 샤론 평원은 물론, 시리아, 그리스, 터키, 이집트, 모두 무궁화가 곱고, 프랑스, 독일, 미국, 모두 무궁화가 잘 자란다. 무궁화가 외국에서만 싱싱하게 피란 법 없을 터이다. 진딧물이 우리나라에서만 극성을 부리란 법 없다. 뭔가 여론이 잘못된 것이다. 그 여론이 하필이면 근역(槿域)에 사는 우리 은자(隱者)의 후예 속에서 이러니 수치스럽다. 그냥 적당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9천 년 전부터 백두산족은 신단(神壇)에 무궁화를 심었고, 무궁화 나무 껍질을 벗겨 옷으로 만들어 입었고, 그 근피와 꽃은 약으로 사용했다. 단군은 세 아들을 시켜 쌓은 삼랑성(三郞城)에 무궁화를 심고, 마리산(摩利山) 참성단(塹城壇)에 무궁화 심었다. 나는 적어도 인천 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진입로는 무조건 무궁화를 가득 심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래야 애국가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표현이 남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방문학 2015년 5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