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기

백두산 참배기(상) /2007년

김현거사 2011. 6. 23. 15:11

0 |2007.03.11. 07:57 http://cafe.daum.net/hadongsonglim/O1O/37 

 

 

백두산 참배기(상) 

 

북경에서 연변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중국대륙은 산도 강도 호수도 많다. 

 

오호 애재(哀哉)라! 

이 넓은 대륙 원주민이 누구였던가? 

 

우리 한민족(九桓族.九韓族)은 상고(上古)에 바이칼 호수 동쪽 흑룡강(黑龍江,天河.天海)으로부터 안 늙고 안 죽게하는 풀과 약들이 많은 한밝산(白頭山,不咸山.太白山,白山.天山등으로 불림)까지 북만주 일대에 살았다. 

'환'이란 우리말 환하다 훤하다의 유사음으로,'밝다'는 뜻과 하늘과 태양을 상징하니,우리는 '하늘족''태양족'인 셈이다. 

당시 나라이름은 환국(韓國.桓國.天國)이라 불렀고,남북 5만리 동서 2만리나 되는 거대 제국이었다. 

 

연길(延吉) 

 

연길에 내리니,여기 백두산족 후예가 많이 살고 있다. 

인구 30만명 태반이 조선족이라 길가 간판도 한글이고,말도 조선말이고,골프장 광고입간판에 박세리 라운딩 사진도 붙어있다. 

거리엔 청(靑)노새 구루마에 턱수염 기른 영감이 회초리 들고 한가하게 마차 끄는 모습도 보이고,대우 프린스 자동차도 보인다.거리에 양말도 신지않고 때묻은 신발 신고다니는 가난한 사람 모습은 남미의 '태양족' 잉카 제국 후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집은 낡은 나무판자데기로 담을 한 붉은 단층집도 있고,'문화주택'으로 불리는 아파트도 있다.화장실은 하늘만 덮은 사통팔달로 주변이 사정없이 다 보이는 문 없는 화장실도 있고,한국돈 2천만원에 살 수 있다는 33평 아파트의 수세식도 있다. 

 

가로에 심어놓은 붉고 푸른 당국화(=과꽃)가 형언할 수 없는 감회를 솟게하니,그 꽃이 혹시 일제가 한민족을 북간도로 이주시킬 때,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고향 떠나던 사람들의 짐 속에 함께 넣어온 애닲은 향수(鄕愁)의 꽃이 아닐까? 

 

수십년 세월 끝에 언어도 일부 다르니,우리가 쓰는 톨게이트는 '도로수금소'요, 턴넬은 '차굴'이고, 소쎄이지는 '고기순대', 장갑은 '손싸개', 브라자는 '젖싸개', 전등은 '불알', 형광등은 '긴불알', 가로등은 '선불알', 샨데리아는 '떼불알'이다.   

 

이도백하(二道白河) 가는 길 

 

연길 동포 곁에서 하루 밤 묵고,익일 새벽에 백두산으로 떠나니,길은 끝없는 구릉지대와 평원을 지나가고,수십리 들판에 콩 옥수수밭은 끝 없는데,아득한 평원 위에 흰구름 한가롭다.해발 7백 이상의 고원(高原)의 맑은 공기 때문인지 길 가 코스모스 백일홍 당국화 달리아 꽃빛은 천상의 꽃인양 화려하다. 

 

'안도현'을 지나 '명월호'에 이르니,팔월말에 여긴 벌써 가을이라 버들과 이북에서 사스래나무라 부르는 하얀 자작나무가 호반에 노랗게 낙옆 지고,산에는 들국화가 만발하였다. 

 

두 시간만에 이도백하(얼따오뻐허)에 닿으니,여기서 혜란강과 또하나 강이 나눠져 옛날 백두산 미인송(美人松=beauty pine) 벌목한 뗏목들 줄지어 흘러간 곳이다. 

계곡 양안에는 수십개의 온천이 분포되어 산속에 무럭무럭 피어오른다는데,키가 30미터나 되는 미인송 끝없는 솔숲 아래로 차가 달리니,여기부터 백두산 발치가 된다. 

 

여기가 시베리아 동북 호랑이의 고향이며 흑곰과 표범 담비 시라소니 사슴의 서식지로,이 광활한 장백 임해(林海)에 야생식물 2540종 야생동물 1500종이 있어 자생하는 산삼을 비롯 장뇌 등 약초를 휴게소마다 팔고있고,차가버섯 쌍황버섯 우황청심원 자수(刺繡) 소개하는 '만경대 전시관' 북한 아가씨는 용모도 이쁘거니와 이북 사투리 목청이 곱기도 하다. 

 

장백폭포 

 

버스가 다섯 시간 여정을 끝내고 닿은 곳이 장백폭포 밑이다. 

이 지점은 제주도 서귀포 일대처럼 지금까지 완만 평탄하던 오름이 끝나고,산이 적갈색 화산석 급경사로 치솟으니 해발 2200 지점이다.여기부터 자작나무 숲은 사라지고 키 작은 들쭉숲과 고산초원이 펼쳐진다.백두산의 봄은 7월이라 화려한 고산초원의 야생화 축제는 볼 수 없었다.  

 

통제소에서 입산 티켓 끊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멀리 웅대한 두 봉우리 사이 협곡에 흰 명주필을 걸어놓은 듯 은하수처럼 하얗게 날아떨어지는 것이 그립고 그립던 장백폭포의 모습이다.백두산 16개 폭포 중에서 높이 68미터로 낙차가 가장 크고 가장 웅대한 저 폭포는 멀리 운무에 덮힌 천지(天池)서 흘러온 티 한점 없이 맑은  천상수(天上水)다. 

 

이 천상의 물이 혜란강 도문강 송화강 되어 드넓은 만주벌판을 적셨으니,상고(上古)의 고조선부터 부여 고구려 발해 선조들의 웅혼한 제국은 천상수를 마시던 민족이 이룩한 것이다. 

 

온천수 특유의 주황색 녹색 천연색 천화가 일어난 바위 위로 계란이 익는다는 온천수가 흐르는 곳을 따라 올라가서,장백폭포에서 떨어진 천상수 한모금을 마시니,새삼 남쪽 반도 밑으로만 끝없이 남행하여 수도(首都)를 정하는 고달픈 백두산족의 족적이 서글퍼진다. 

 

제국(帝國)의 역사 

 

처음 북만주에 제국을 일으킨 분은 환인(桓因)임검(=임금)이니,환인이 '사람에게 크게 유익하게 하기'(弘益人間)를 가르쳤고,환인은  환웅(桓雄)에게 무리 3천명과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나라를 세우라 명하셨다. 

 

환웅이 기원 전 2333년 상달(上月) 풍백(風伯)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처음 나라를 연 곳이 백두산 검벌 신단수(神檀樹) 아래니 이곳을 신시(神市)라 일컬는다. 

 

환웅께서 곰족 여인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시니 곧 단군(檀君)이시며,단군은 서울을 백두산(=태백산) 아사달(阿斯達) 임검성(壬儉城=한배검성)에 정해,나라 이름은 '배달' 혹은 진단(震旦)이라 하였다가,서울을 송화강변 당장(唐莊)에 옮겨 평양(平壤)이라 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불렀다. 

 

동부여에서 동명성왕이 남하하여 고구려를 세우니,수도는 대동강변 평양이었고,고구려 멸망 후 명장 걸걸중상(乞乞仲商)의 아들 대조영이 세운 발해의 수도는 용천부였다. 

 

고려는 다시 남하하여 수도를 개성으로 삼았고,조선은 다시 남하하여 수도를 서울로 정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행정수도를 서울에서 대전권으로 후퇴하니,초라한 이꼴로 어찌 우리가 감히 백두산족 후예라 자칭할 수 있겠는가?  

 

    

백두산 참배기 (2) 

 

천지

 

하늘이 비 뿌리다가 햇볕 보이다가 종잡을 수 없는 것이,한반도 끝으로 끝으로 수도를 옮기는 옹졸한 후손에게는 천지(天池) 참배를 허용하지 않을 모양이다.

그러나 일행이 찦차 11대에 분승해 산을 오르니,찻길은 정상까지 화강암 깐 포장길인데,금방 자작나무 숲 끝나고 초원과 이끼밭이된다.

 

계절 따라 이 초원은 물매화 산용담 범꼬리 노란물봉선 분홍바늘꽃 바위구절초 구름패랭이 구름국화 도라지모시대 긴잎별꽃 바이칼꿩의다리같은 야생화 천국 이루는 곳이다.

초원이라 시계(視界)가 좋아 백두산의 웅장한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데,산은 발 아래 수백리 펼쳐지는 개마고원 위에 높이 솟았고,바람 따라 풍운조화(風雲造化) 무쌍(無雙)한 흰구름은 산등을 휘감고 흐른다.

그 위로 중국인 운전사가 난폭하게 모는 11대 찦차가 한계령처럼 꼬불꼬불한 산길 앞다투어 줄지어 오르는 풍경도 미상불 장관이다.

 

이대로 가면 천지도 볼 수 있겠다는 엉뚱한 기대감에 젖을 때 #@쯤,우리를 기다린 것은 8부능선의 짙은 운무다.

'신쿠러!'(辛苦了)

운전사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던지고 찦차에서 내리자마자,시계에 보이는 건 농무(濃霧)요,피부에 닿는건 세찬 바람이다.

천지고 뭐고 보이는 건 안개라,일행은 안개 속에 헤매다가 머물기 허용된 시간 30분도 채우기 전에 겨우 등소평 '천지'(天池) 친필 앞에서 증명사진만 찍고 하산했다.등소평은 이 산에 올라,'장백산에 오르지 않았더면 평생의 유감이 될 번 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백두산 8부능선 장관이라도 구경한 것이 다행이다'

'이게 천지서 산 백두산 돌이야!'

다들 천지 옆에 가본 것과,백두산 기념 화산석 산 것으로 위로를 삼고 산을 내려왔더니 거짓말처럼 산은 멀쩡하게 개여있다.

 

'소천지'(小天池)와 '지하산림' 구경하고,숲 속의 4층짜리 아름다운 하얀 건물 대우호텔 룸에 들어간 시간은 밤 10시였다.

 

대우호텔에서

 

'백두산 온천수에 이 몸을 깨끗이 씻으리라.'

장백폭포가 보이는 호텔 야외온천탕에서 목욕하는 것도 의미있겠으나 밤이 늦어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5시에 깨어 창밖을 보니,여명의 자작나무 숲에 바람이 지나가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백두산 관참기'에서 환웅의 신시(神市) 위치는 북한쪽 삼지(三池)와 천평(天坪) 부근이라고 추단한다.

삼지는 둘레 칠팔리 파란 물이 잠자듯 고요하고,물가는 숲으로 쌓였는데,화산석과 백사장이 정원처럼 운치있고 아름답고 웅장하며,물은 보기에 찬 것 같으나 평균 20도의 따뜻한 온천물이라 한다.

천평은 신국(神國)의 옛터로 신령스런 백두산을 등진 평평하고 산 위에 펼쳐진 바다처럼 넓은 평야로서 원시국가 발생지로 가장 적절하며,이곳이 단군의 탄생지요 우리나라의 출발점이다.

라고 하였다.

 

아득한 옛날,우리 배달나라에서 나무를 얽어 집 짓기를 가르쳐 짐승들과 독벌레를 피하게 한 분은 유소씨(有巢氏)고,불로 음식 익혀 먹는 법 그릇 항아리를 굽는 법을 가르쳐 준 분은 수인씨(燧人氏)다.

태우(太 )임금의 열두번째 막내아들 태호복희씨(太 伏羲)는 송하강에서 괘도(掛圖)를 얻어 8괘(掛)를 만들었고,맥족(貊族) 출신의 염제신농(炎帝神農)은 성이 강(姜)씨니,신농씨는 나무를 다듬고 구부려서 쟁기와 호미를 만들어 '농사의 신'으로 추앙된 분이다.

또한 치우(蚩尤)는 최초로 갑옷과 창칼 등 병기를 만들었고,치우 강(姜)씨의 후손 제(齊) 환공(桓公)은 한때 중원 전체의 패권을 잡기도 했다.

 

순임금도 동이족 출신이고,'육도삼략'(六韜三略) 병법을 만든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과 '춘추'(春秋)를 쓴 공자(公子) 역시 마찬가지며,중국 최초 통일제국을 세운 진시황도 배달 동이겨례의 자손이다.

 

중국 고서에 남아있는 이런 기록들 도외시(度外視) 하더라도,수당 두나라를 물리친 고구려의 용맹함과 더불어,5경(京) 15부(府) 62주(州)를 거느린 속칭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는 당에 보내는 국서를 신지문자(神誌文字)를 사용했다하니,인멸되었지만 신지문자는 단군의 신하인 신지씨가 만든 우리 고유의 문자가 아니던가?

 

'이 하얀 자작나무 숲 어디 쯤에 환웅님 왕후가 된 백두산 곰족이 살았을까?'

방에서 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끝내 밖에 나와 장백폭포서 흐르는 물소리 들으며,황금 햇살 빛나는 자작나무 숲을 한동안 거닐었다.

 

천지 2차등정

 

'원래 연애도 한번 거절한다고 그만두면 안되는거야.두번 이상 계속 트라이해야지.'

'맞다.세상사 어디 한번만으로 되는 일 있더냐?'

티없이 화창한 하늘 아래 두번째 천지로 올라가는 찦차 속에서 이정수장군과 나눈 말이다.

도중에 초원을 살펴보니 노란 백두산양귀비꽃 몇송이만 마른 풀 속에 혼자 피었고,정상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먼저 온 사람들이 저 만치서 천지 보고 감탄하는 소리 요란하다.

바쁘게 한달음에 올라가니,아!거기 저편에 백두 정상 높이 2750미터 장군봉이 허리에 흰구름 두르고 천지의 비취빛 만경창파를 발 밑에 깔고 우릴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천지에 가보지 않고는 백두산에 올랐다 말할 수 없다' 한다.

천지는 해발 2194미터 고공에 위치하면서 동서 3.3K 남북 4.4K 평균수심 204미터 저수량 20억 입방미터 물을 가두어 천궁에서 떨어뜨린 하나의 거울처럼 맑고 깊다.기후가 순식간에 돌변하여 천지가 보였다 말았다 하므로 신비롭기 그지없는데,천지 물이 더욱 상서러운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물과 지하에서 솟구친 용천수(湧泉水)가 합쳐진 물이라는 점이다.

 

천.지.인(天地人).

이것이 하늘 땅 사람이 하나로 합치는 동이족(東夷族) 사상을 보여주는 하늘의 계시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동북아 최고봉(最高峰)

 

백두산은 동북아시아서 가장 높은 산이다.

낭림산 금강산 태백산 속리산 지리산으로 뻗어내린 한반도 산맥의 조종(祖宗)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5악(五嶽)인 북 항산(恒山) 남 형산(衡山) 서 화산(華山) 중앙 숭산(崇山)과 더불어 공자가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아보인다'고 말했던 1532미터 동쪽 태산(泰山) 보다 1천미터 이상 높은 산이다.

 

우리가 올라간 천문봉(天文峰)에서는 천지의 절경을 많이 내려다 볼 수 있었고,천지 주변을 에워싼 16개 외륜산이 혹은 준수하게 우뚝 혹은 가파르게 치솟은 것이 뚜렷이 보였다.

우리 5천만 동포 모두 여기 와 천하가 얼마나 작은지 백두산의 웅혼한 기백이 어떤지 보고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문봉은 주로 회백색과 황색의 석질이 가볍고 구멍이 많은 화산 부석과 검은 화산석으로 되어있는데,태초에 불 뿜은 백두산의 웅장한 분화(噴火) 흔적이다.

현존 기록상 화산 분출은 10세기 전반 대규모의 화쇄류가 동해의 북부 해저나 일본에 널리 낙화했다는 기록,조선왕조실록에 1597년(선조),1668년(현종),1702년(숙종) 세차례 상세한 화산활동 기록이있고,그 후는 오늘날까지 300년간 잠잠하다.

 

일행 중에는 천지(天池)의 기를 받는다고 조용히 서서 천지를 응시하며 심호홉하는 친구도 있고,동반한 부인과 기념사진 찍는다고 바쁜 친구도 있다.나는 아름다운 흰구름이 고원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넓은 대륙의 땅을 보고있었다.

이 땅이 원래 우리의 고향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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