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바다와 노인/동방문학

김현거사 2018. 1. 16. 10:19

 

 

  바다와 노인  


  지금부터 50 년 전 이야기다. 당시 남해 미조리는 등대 하나와 돌담 둘러친 집 몇 채 있던 그런 한적한 어촌이었다. 지금처럼 다방과 여관이 있고, 넓직한 수협 공판장 앞 바다에 도미나 갈치 같은 활어, 전복 소라 실은 배들이 뜨있고, 관광객 태운 버스가 북새통을 이루는 그런 번잡한 곳이 아니다.

 그 당시 나는 친구가 자살하자 다니던 대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부산 항만사령부 자동차 운전대대 운전병이 되어서는, 거기를 무슨 사하라 주둔 프랑스 외인부대처럼 생각하고, 카믜의 소설 주인공처럼 허무주의 행세를 일삼다가 끝내 사고를 치지못하고 제대하자, 글 쓴다고 성경 한 권과 원고지를 챙겨들고 남해의 맨 끝 동네인 미조리로 갔던 것이다.

 

 거기서 그 노인을 만났다. 그는 낡아빠진 뗀마로 섬 주변의 수심 얕은 곳을 다니며 그물로 갯바닥을 쓸면서 뭔가 잡고있었다. 할 일 없이 바닷가를 쏘다니던 나는 어느 날 그가 무엇을 잡았나 궁금해서  가보니, 노인이 끝에 납 뭉치 달린 그물코를 하나씩 옆으로 제치자 생각보다 쏠쏠한 것이 많이 나온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다. 펄떡펄떡 뛰는 숭어도 나오고, 돌문어와 게도 보인다.

 '매일 이리 많이 잡혀요?'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말을 걸고 담배를 권하자, 노인은 필터 달린 '파고다' 담배는 아까운지 윗 호주머니에 챙겨넣고, 풍년초 잎을 꺼내 신문지에 말아 입에 문다. 그리고 물었다.

'어디서 오셨수?'

내가 고향이 진주라고 하자,

'진주와 문산은 넘어지면 코 닿을 데지.'

 자기 고향은 문산이라며, 진주 문산 삼십리 길을 이리 표현했다. 볕에 그을은 노인의 손은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보였다. 주름 많은 얼굴과 목덜미에 하얀 백발이 빤짝인다. 타관 바닥을 혼자 떠돈 외로운 모습이었다. 

 이렇게 노인을 만나 그날 나는 겨우 하늘을 가린 허름한 노인의 집에 따라가서 이 세상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멋진 해변 파티에 참석했다. 그는 바다에서 금방 건져올린 싱싱한 생물을 팔기도 하지만, 대개 집에서 요리해 먹는다고 했다.

 먼저 해삼과 뿔소라부터 시작했다. 총총 썰어 입가심 하라고 권한 해삼은 딱딱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단했다. 연탄불에 구운 뿔소라는 쫄깃한 맛도 좋지만, 정작 귀한 것은 껍질 안에 고인 파란 국물이다. '그 파란 국물이 간에 좋은 거요, 술을 아무리 먹어도 숙취(宿醉)가 없게 만드는 보약이요' 노인은 그걸 내게 권했다. 그 다음 돌문어 차례다. 노인이 펄펄 끓는 물에 문어를 잠간 데치더니, 뜨거운 문어를 손에 입김 호호 불어가며 꺼내 도마 위에 놓고 뜸성듬성 썰었다. '한번 먹어보시오!' 초장 내놓고 권하는데, 내사 세상에 그렇게 모락모락 김 나는 뜨겁고 맛 있는 문어와 달콤한 초장이 있는 줄 예전엔 미쳐 몰랐다. 노인은 대학생과 친구된 것이 자랑스런 눈치였다. 자신은 맨날 먹는다며 음식을 입에 넣지도 않는다. 외로운 사람일수록 이렇게 더 친절했다. 

 

 그 후 나는 자주 노인과 어울렸다. 그 때마다 노인은 색다른 진미를 선보였고, 나는 막걸리를 사가곤 했다. 장어는 기름지면서 느끼하지 않아 얼마던지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예리한 칼로 등뼈만 남기고 능숙하게 살을 뜬 후, 물엿과 생강즙을 섞어 만든 자신의 비법 양념장을 발라 굽는데,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부터 듣기 좋았다. 게는 파뿌리 몇 개 넣고 된장 풀고 삶으면 껍질이 빨갛게 익는다. 노인은 등딱지 안에 붙은 누렇고 흰 장(醬)을 먹으라고 나에게 권했다. 그건 일찌기 임어당이 이리 표현한 물건이다. '게는 원래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수서생물로 수륙(水陸)의 진미(珍味)를 한몸에 지닌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황고백방(黃膏白肪)이라 한다.' 임어당은 가을 국화 옆에서 삶은 게를 먹는 걸 인생의 제일 큰 즐거움이라고 하였다.

 노인은 바다에서 나온 재료라면 그것이 무엇이던 맛나게 요리하는 요리의 달인이었다. 그를 도심에서 하얀 모자를 쓰고 일하는 일식집 주방장과 비교하랴. 노인은 장어, 문어, 게, 톳나물 등 무엇이던 바다 특유의 천연 미각을 살려 완벽한 맛을 낼 줄 알았다. 그가 만든 음식에선 바다 냄새가 나고 살아있는 뻘 밭 감칠맛이 났다. 시커멓고 쭈국쭈굴한 노인의 손은 바닷가에서 수십년 살아온 고목의 가지였다. 나무가 그런 것처럼 노인의 손도 바다의 일부였다. 그의 손맛은 배워서 내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자연의 숨겨진 오묘한 맛을 간직한 자연의 일부였다. 

 그 당시 해변 파티에 단독 초대되던 나는 이런 희유한 노인의 요리를 혼자 맛보았다. 아마 세상 어느 호사가도 그때 나처럼 입을 호강시킨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인은 바다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었다. 몇 월 무슨 고기가 알배기고 기름지고 맛 있는지 소상히 알았다. 장어나 게는 어떻게 잡는지, 조개와 고동은 어디에 많은지, 포인트와 물 때를 자기 손바닥 보듯 훤히 알았다. 나는 노인에게서 그런 걸 배웠다.

 장어는 이렇게 잡는다. 해그름 등대가 있는 석축이 포인트다. 거기 돌에 붙은 석화를 바늘에 끼어 몽당 낚싯대 봉돌 무게 감지하며 바다밑 진흙 바닥에 놓았다 당겼다 하면 툭하고 손에 어신이 온다. 이것이 장어다. 장어는 당기면 몸통으로 물 속을 휘젓고 버티는 힘이 강해서 여간 손맛 짜릿한게 아니다. 간혹 바위 틈에 들어가서 버티면 낚시줄이 툭! 끊어진다. 장어는 바늘을 뺄 때도 다른 물고기와 다르다. 몸의 미끌미끌한 점액질 때문에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기 일수라 호박잎을 서너장 손바닥에 깔고 바늘을 빼야 한다.

 게는 이렇게 잡는다. 썰물 때 낫 들고 갯가에 나가면 게걸음이란 말이 있지만, 게가 느릴 것 같아도 좌우 옆으로 내뺄 때는 번개 같다. 가만히 닥아가 불시에 낫으로 등짝을 찍어서 잡아야 한다. 손으로 잡으면 집게에 물린다. 문어는 조개를 잡아먹고 산다. 사람 머리통처럼 생긴 대가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뻘밭 돌아다니다가 인기척 느끼면 재빨리 굴에 숨는다. 이때 굴에 든 놈을 그냥 손으로 꺼내려 하면 않된다. 손을 놓아주지 않고 잡고는 흡판으로 버티는 힘이 여간 센 게 아니라 잘못하면 낭패 당한다. 문어는 기다리면 머릴 내밀고 나와서 두리번두리번 사주경계를 한다. 이때 낫으로 머리를 획 낚아채면 된다.

 노인은 소라나 전복은 어디 있는지 그 위치를 휜히 안다. 소라 전복은 해초를 뜯어먹고 사는데, 송정 바닷가 바위들 밑에 지천으로 깔린 게 소라 전복이다. 조개는 백사장에 산다. 등대 우측에 가면 해풍에 잘 자란 풀밭이 있고, 반월형 아담한 호수 같은 만(灣)이 있다. 거기 파도 밀려오는 백사장에 조개가 산다. 가리비고동은 집단 서식하여 한번 찾았다하면 몇 가마씩 나온다. 송남 바닷가 모래밭이 그곳인데, 파도 잔잔한 날 가슴 팍 쯤 차오르는 물에 들어가 발바닥으로 더듬어 찾는다.

 그러나 노인은 이런 걸 모두 알지만 한번도 한꺼번에 다 잡는 법이 없었다. 그날 필요한 양만 가져왔다. 노인에게 바다는 창고였고 거대한 냉장고 였다.

 

 주일마다 교인들이 외는 주기도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운운하는 구절이 있다. 그들은 식탁에 앉아서 이 구절을 외고 손으로 가슴에 성호를 긋고 식사한다. 그러나 노인은 그런 건 할 줄 몰랐다. 다만 바다에 의지하고 감사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원초적 신앙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나는 노인의 그 모습에서 신(神)에 가장 근접된 성스러운 모습을 발견했다.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을 읽은 적 있다. 거기 불굴의 의지를 가진 노인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1966년 남해 미조리에서 신에 가장 근접된 겸허한 한 노인의 성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아나벨 리'



 

외로운 곳에 피는 꽃이라 더욱 아름다웠던지 모른다.

말동무 귀한 어촌 아이라 그랬던지 모른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 달고와 도시 아저씨가 자기집에 있는 것을 자랑하던 꼬마 숙녀는 하숙집 외동딸 금순이었다.

남편을 바다에 빼앗긴 젊은 과수댁은 내외하느라 밥상과 물그릇 들이는 심부럼을 초등학교 일학년 금순이를 시켰는데,금순이는 그일 뿐 아니라 항상 내 산책길에 자랑스럽게 따라나서곤 했다.


등대 우측에 가면 해풍에 잘 자란 푸른 풀밭이 있고.반월형 아담한 만(灣)이 있다.물가에 그럴싸한 바위들이 있어 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하고,흰구름 아래 비취빛 파도는 끝없이 백사장에 밀려오는 곳이다.


인적 드문 그곳에서 금순이와 바위 사이로 잽싸게 도망가는 게를 잡기도 하고,모래 속에서 우툴두툴한 껍질이 보석처럼 색깔 신비로운 조개를 잡기도 했다.


금순이는 허연 광목 저고리에 아래는 까만 홑치마 입은 시골 아이지만,들어난 통통한 팔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윤끼있고 부드럽다.하느님은 소녀에게 가난과 함께 충분한 건강미를 동시에 부여한 것이다.


게나 조개를 잡다가 수영도 했다.섬에 수영복이 없는지라,속 빤스가 수영복이다.섬아이들은 걷기 전에 수영부터 할 줄 안다.금순이는 시원하게 나가는 크롤 헤엄이고 나는 두팔로 헤우는 개구리 헤엄이다.


두 사람은 파도 속에서 입술이 파래지도록 놀았다.물속의 가리비조개와 조약돌도 주웠다.아버지가 없어서 그랬을까?수줍어하면서도 금순이는 나를 몹시 따랐다.푸른 파도 속에서 예쁜 인어와 논 셈이었다.물에서 나오면 우리는 발을 통통 굴러 귀에 들어간 물을 털고,바위 뒤로 가서 빤스를 벗어 물을 짜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초등학생 금순이는 지금 어디 갔는가?

40년 뒤에 미조리 가서 그곳에서 제일 오래된 갈치횟집에서 금순이 소식을 물었지만,이름도 기억 못한다.


에드가 알란 포우의 '아나벨 리'처럼,금순이는 추억 속 바닷가 왕국으로 가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