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전편

전원일기/수지에서 18

김현거사 2017. 10. 11. 16:26

전원일기/수지에서(18)

 

 2005년 12월

 

 여름에 정원에서 놀던 사람 겨울이면 베란다 안에서 꼼지락 거리며 논다. 가을에 사온 분재 두어개 가 갖고노는 작난감이다. 화분에 마사토 붓고, 핀셋으로 흙을 털어내어 기묘하게 생긴 뿌리 노출시키고, 쓸모없는 가지는 전정하여 나무 모양 잡아가는 일처럼 즐거운 일 없다.  

 

 

한 뼘 크기 소나무 소품이지만 수령 10년 넘었고, 뿌리 노출도 일품이고, 용처럼 구불구불한 가지의 곡(曲)도 볼만하다. 몇 년 지나 철사를 풀면 명품될 것이다. 그때 이 물건을 백자화분에 올리고, 뿌리 부분에 푸른 이끼 덮어줄 생각이다. 나무와 이끼 위에 분무기로 물 뿌리면, 간혹 아침 햇볕 받은 물방울에 무지개가 선다. 분재하는 사람은 그런 것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경도(京都) 서방사(西芳寺)에는 아름다운 이끼 정원이 있다. 나무도 심지 않고 이끼만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특이한 취미는 이끼의 멋을 알고나서야 이해된다.

 

 

2006년 1월

 

내가 연애시절 아내에게 선물한 책 한 권이 있다. '부생육기(浮生六記)'란 책이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이 그 책 속 '운'이란 여인을 중국 역사상 가장 정신적 멋을 잘 간직한 여인이라고 찬탄한 바 있다.  여주인공 '운'은 청나라 건륭제 시절 평범한 관리인 남편 심복을 만나 시서화를 즐기고 화초를 가꾸다 간 사람이다. 둘은 차를 넣은 비단주머니를 밤새 연꽃 봉우리 속에 넣어두었다가, 새벽에 연잎에 고인 이슬로 연꽃향 가득한 차를 마시고, 이동 칸막이에 아름다운 넝쿨꽃을 올리고 그걸 창 앞에, 서재 앞에, 안방 앞에 옮겨가며 햇볕도 가리고 녹음과 꽃도 즐겼다. 수반에 놓인 돌에 찹쌀풀을 뿜어 풀씨가 자라도록 하여 풀꽃을 관상하면서 사랑하기도 했다.

 이 책을 선물하여 나는 처녀 때 아내에게 점수 좀 땄던 모양이다. 결혼 후 생활이 고달프자 아내는  '당신은 '부생육기'에 나오는 심복같은 사람이에요. 꽃이나 좋아하다가 아내 고생 시키는...' 그런 후회 섞인 말을 자주 들었다.

 

 

  

훗날 나이 들어 아내에게 선물한 또 한 권 책이 있다. 미국의 '타샤'란 할머니 모습을 그린 '타샤의 정원'이란 책이다. '타샤'는 버몬트주 30만 평 드넓은 땅을 사들여, 거기다 돌담을 쌓고 자그마한 오두막을 짓고, 디기달리스 꽃 등 파스텔화처럼 아름다운 화초를 심고, 양과 개를 키우며 개똥지바퀴 노래 들으며 살았다. 밤이면 촛불 밑에서 감자 스프를 끓이며, 카모마일차 마시며, 인형극 놀이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 아마 카나다에 '빨간 머리 앤'을 쓴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처럼 미국에선 꽃을 사랑한 '타샤' 할머니가 유명한 모양이다. 백악관에 '타샤'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 걸려있다고 한다.

은퇴 후 우리 부부는 가끔 '타샤의 정원' 책 화보에 나온 꽃 구하러 종로나 양재동 꽃시장 찾아다니곤 한다. 아뭇튼 우리부부는 꽃에 관한 책에서 시작되여 꽃에서 끝나는 셈이다.

 

 

 

 

 

 

 전원일기 종편

 

 내가 상경한 이래 특기할 사항이 있다면 사는 곳마다 감나무 심은 일이다. 그 감나무들은 지금은 다 고목이 되었다. 처음 이문동 18평 짜리 축대집에 살 때는 배나무 묘목 심었지만, 그 뒤 이문동 40평 짜리 집에 감나무 심었고, 삼성동에 살 때는 앞마당 뒷마당에 감나무 심었고, 그뒤 한강 상류 토평 아파트와 수지 광교산 아래 아파트 1층에 살 때도 마당에 감나무 심었다.

 그 중 20년간 소유했던 삼성동 집에선 원도 한도 없이 나무와 꽃을 심어보았다. 중국인들이 아무리 정원을 잘 가꾸어놓아도 그 나무가 없으면 쳐주지 않는다는 백송까지 심었다. 그 백송은 지금 고목이 되어 솔방울 가득 달고 있다. 앞마당 뒷마당 감나무도 가을이면 멋진 풍경이다. 가지 늘어지게 빨간 홍시 매달아 골목을 지나가는 봉은초등학교 병아리처럼 귀여운 꼬마들이 갈 길 멈추고 눈요기 한다. 

 

 

계단 위로 비스듬히 누운 자두나무는 7월이면 새콤달콤한 자두가 열려 3층 살던 일본 부인이 부러워했고, 거목이 된 백목련 자목련은 나와 동갑내기 2층 정치인 부인이 목련 시를 썼다. 바위 옆 홍매는 분재처럼 잘 자라 창 밖을 내다볼때마다 운치있었고, 장미 아취 위 봉오리 만개한 백장미는 뜰을 향기로 덮었다. 같은 빌라에 미국서 의사하던 연상의 숙녀가 살았다. 미국서는 마당에 잔디가 우거지면 벌금이 나온다고 한다. 그는 우리 정원 잔디를 자기가 깍아주겠다고 자청하곤 했다. 가든 파티 밤엔 먼저 내 손 잡고 스탭 밟았고, 그때 K대 음대 교수 김모는 이태리 가곡을 불렀다.

 

 

 

 땅엔 수많은 화초를 심었다. 글라디오라스 수선화 물망초 자주달개비 붓꽃 매발톱꽃 등 다 기억하기 어렵다. 나중에는 함부러 땅을 파면 곁의 구근들이 나오곤 했다. 가을이면 국화 향기 맡았고, 담 위엔 청포도 넝쿨 올렸고, 담 너머엔 무궁화 심었고, 바위 옆엔 영산홍 심었다. 뒷뜰엔 체리 심었고, 금낭화 박하 우산나물까지 심었다. 심지어 강남 한복판 땅에 탱자나무도 심었다. 가을이면 노란 탱자향을 맛보기도 했다. 나무에 달린 노란 탱자는 내 어린 시절 진주 배건너 초등학교 탱자나무 울타리 생각나게 했다.  

 

 

 

 


 

 어쨌던 모든 건 때가 있다. 이제 은퇴하여 수지에서 살지만, 하나는 뿌듯한 것이 있다. 서울 한복판에 내가 심은 자두나무 감나무가 고목으로 아주 커다랗게 자라서 매년 탐스런 과일을 달고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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