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사와 오간 편지

문학방송 내가 만난 ....책 관련

김현거사 2016. 12. 18. 10:35

 

1) 우선 목차는 전에 메일 보낸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제1부 내가 만난 대통령

 

 

내가 만난 대통령(노무현. 김대중)

내가 만난 대통령(전두환, 박충훈 권한 대행)

내가 만난 대통령(박정희. 박근혜)

 

내가 만난 대학총장(K대 김총장님)

내가 만난 대학총장(Y대 박총장님)

 

제2부 내가 만난 재벌총수 

 

내가 만난 재벌총수(그 엄청난 뱃장에 대하여)

내가 만난 재벌총수(그 지독한 점에 대해서)

내가 만난 재벌총수(그 무식한 점에 대해서)

 

내가 만난 여류시인(김정희 시인)

내가 만난 여류시인(정혜옥 시인)

내가 만난 여류시인(김여정 시인)

내가 만난 절세미인(욕지도)

 

제3부 내가 만난 청와대 사칭 사기꾼 

 

내가 만난 고승대덕(경산. 운허. 석주. 광덕. 월주. 법정. 설조스님)

내가 만난 고승대덕(최범술. 청담스님)

 

내가 만난 청와대 사칭 사기꾼(장영자 이철희)

내가 만난 청와대 사칭 사기꾼(똘마니 조직)

 

내가 만난 노조위원장(A 산업)

 

제4부 망우리 산보기 

 

망우리 산보기(박인환. 만해스님)

망우리 산보기(오세창. 방정환)

나무를 태우면서

우리를 부럽게 하는 것들

 

제5부 해운대 엘레지 

 

국창 안숙선의 적벽가 한마당

국창 안숙선의 춘향가 한마당

이브몽땅의 고엽(枯葉)

나애심과 송민도

클래식이여 안녕

해운대 엘레지

 

제6부 다산초당 다녀와서

 

다산초당 다녀와서

경북 봉화, 청다문학회 문학기행

남강문학회 진주 나들이

욕지도 여행

울릉도 여행

 

2) 표지는 내가

표지는 그림 없이

 

내가 만난 대통령

내가 만난 대학총장

내가 만난 재벌총수 

내가 만난 여류시인

내가 만난 천하절색

내가 만난 고승대덕

내가 만난 청와대 사칭 사기꾼

내가 만난 노조위원장

을 글씨만 적당한 크기로 레이아웃해서 넣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요구 했던 바....그대로가 않되면....

 

(내가 만난 대통령)을 큰 제목으로 달고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내가 만난 대통령, 대학 총장, 재벌 총수, 여류 시인, 절세미인, 고승대덕, 노조위원장, 신문사 광고요원, 그들의  벼슬 명예는 잠시 입었다가 죽으면 벗어버리는 옷과 같다.
모두 찰라의 일이었고 꿈 속의 일이다. 모두 유행가 가사 한구절이었을 뿐이다.

 

라는 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3) 그리고 전에 보낸 보충 원고 <내가 만난 신문사 광고요원> 원고를 보낸 위의 목차 제3부에 넣어주시기 바람니다.

<내가 만난 신문사 광고요원>

 

 신문기자 보는 견해는 두 가지다. 밖에서는 세금쟁이나 형사 비슷하게 본다. 돈이나 뜯어먹는 개망나니로 본다. 안에서는 스스로 '사회의 목탁'이라 생각한다. 홍길동처럼 힘없는 자를 도우는 활빈당이라 생각한다. 왜정 때 항일 선봉에 선 구국지사라 생각한다. 

 그래 불교신문에서 일간지로 옮겼다. 일간 내외경제 신문인데 이곳은 박통이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처럼 만들라고 무역협회 박충훈 회장에게 지시해서 만든 곳이다. 월급도 동아, 중앙 정도 수준이라서 수백대 일 경쟁이었지만, 들어가보니 개판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자가 '사회의 목탁'이 아니던 점이다. 평범한 월급쟁이로 변해가던 시대였다. 아직도 편집국에 박봉 감수하고 살면서 활빈당처럼 사회 정의 외치는 분도 있었지만 대개는 썩어가고 있었다. 눈치 빠른 놈이 데스크에 아첨해서 좋은 출입처 나가고, 뻣뻣한 놈은 찬밥 신세였다.

 두번째는 신분상 변화였다. 처음에는 기자증을 문공부 장관이 발행했다. 기자증 뒷면에 붉은 횡선 두 줄 쭉 긋고 거기에 '이 증을 소지한 사람에게 취재 협조를 부탁드립니다'란 장관 멘트가 있었는데, 그걸 박통이 유신 반대하는 기자 콧대 꺽기 위해서 각 신문사 사장이 신분증 발행하도록 제도를 바꿔버린 것이다. 장관 직인 찍힌 기자증 하고 회사 사장 발행한 기자증은 의미가 다르다.

 가서 몇 년 지나자 데스크 보던 고려대 선배들이 나에게 전직하라고 권했다.

'수습기자 1기 네 명 중에서 나중에 편집국장 나오겠지만, 이 판국에 편집국장 하면 뭐하느냐? 니가 무슨 충의지사냐? 청렴한 선비냐? 박통 장기 집권 언제 끝날지 모르니 일찌감치 기업체 가서 처자식 밥이나 굶기지 않는 것이 좋다'

 듣고보니 옳은 말이다. 기자정신 썩어가는데 기자 해서 뭣하나? 월급쟁이 기업체가 좋다. 경제계는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이던 때다. 기업체 가서 과장 부장 진급하고 월급 많이 받는게 현명하다.

 

 그렇다면야 나도 어디로던 날라야지 하고 생각하던 때다. 마침 선배 한 분이 타계했다. 길음동 초상집에 가보니 초라한 단칸 방에 유난히 미인이던 부인이 눈물 짓고 있었다. S대 나온 기자 경력 15년이 이런 것이구나 싶어 그때 충격 받고 나는 광고부 옮겨가 돈 벌어서 대학원 진학하고 교수가 되자고 결심했다.

 그래 옮긴 곳이 신문사 해외홍보부란 곳이다. 한국 상품을 해외 기업체에 홍보하던 조직이다.

 이곳이 재미있는 곳이다. 리베이트 제도란게 있어 수입이 기자보다 몇 배 많았다. 백만원 광고 한 껀 물어오면 리베이트가 10프로 10만원, 월 5건 물어오면 50 만원이다. 기자 월급 5만원 하던 때다. 

 

 거기서 '아랫도리 기자' 김헌수를 만났다. '아랫도리 기자'란 신문 하단 메꾸는 광고부원이다. 헌수는 단국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늘씬한 키에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말재간이 좋았다. 그는 한번 찍은 회사는 놓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매처럼 날아가서 정확히 광고계약서를 움켜쥐고 나왔다. 한 건당 10만원 한 주에 세 건, 한 달 120만원 수입이다. 기자는 제 잘난척 하지만 광고가 신문사 중요 수입원이다. 전무도 복도에서 헌수 만나면 아는 척을 했다. 승용차 배정도 그랬다. 당시 100명 넘던 편집국은 편집국장 차 포함해서 5대 배정되는데, 헌수는 운전수 딸린 차가 매일 배정되었다.

 

 그 헌수 머리가 비상했다. 나를 항상 데리고 다녔다. 기자증이 있기 때문이다.

'창현아 오늘 삼양팔프 가보자'

 껀수 만들었으니 암말 말고 따라와 취재만 하란다. 가보니 그 회사 기획실장이 기다리고 있다.

'사장님이 인터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사장 만나 회사 사진과 타이핑한 회사 연혁, 사장 이력서 받고, 종업원 수, 주 생산제품, 업계 동향 등을 인터뷰 했다. 헌수는 옆에서 이 인터뷰는 전 페이지 특집으로 나간다고 설명한다. 사장은 이게 웬 떡이냐 싶었을 것이다. 인터뷰 후 나에게 두툼한 봉투 건네주며, 기획실장더러 저녁 특별히 모시라고 지시 내린다.

 이게 며칠 뒤 그대로 신문 한 페이지 전면 기사로 나간 것이다. 그날 헌수가 윤전실에서 막 찍은 아직 잉크냄새 가시지 않은 신문 들고와서 내게 보여주었다.

 신문은 뉴스 밸류로 기사 크기와 위치 조정한다. 가장 중요한 뉴스는 톱 기사, 그 다음 비중 뉴스는 중톱으로 싣는다. 전 페이지 특집은 12.6 궁정동 박대통령 피살 사건 정도 되어야 가능하다. 그걸 삼양펄프 특집으로 나간 것이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자들은 무심히 읽지만 올챙이 기자는 겨우 1단 짜리 원고지 한 장 짜리 기사 싣는데도 데스크의 무자비한 가위질을 당한다. 잘못 쓴 기사는 본인 앞에서 꾸겨진채 휴지통에 버려지고 다시 써오라는 불호령 떨어진다. 그런 곳이 신문사다. 

 헌수가 그때 리베이트 얼마 받았는진 모르겠다. 기사 들고 삼양펄프 찾아가 수금 끝나자 나에게 백만원 노놔주었다. 나중에 편집국장이 지면 한 면 전체를 할애한 까닭이 하도 신기해서 그 연유를 물어보니, 헌수가 신문지 위쪽을 가르켰다. 거기 자그만 글씨 네 글자가 박혀있었다. '전면 광고'.

 

 이 수법은 원래 서울신문 수법이다. 거긴 정부 기관지라 독자들이 적고 광고수입이 없자 이런 절묘한 수법을 개발한 것이다. 헌수는 서울신문 출신이다.

 

 당시 서울신문 광고부장 권광세는 머리가 비상했던 사람이다. 그는 고려대 응원부장 출신인데, 듣기로는 한 재벌회사가 광고를 주지않자, 아예 며칠간 재벌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밤을 새우고, 어느 날 새벽 5시에 출근하는 재벌 붙들고 광고계약서를 내밀자 재벌 왈, '자네같이 열성적으로 일하는 사람 첨 보네. 그 정성에 감복했네.' 하면서 즉석에서 만년필 꺼내 신탁서에 싸인 해주더라고 한다.

 당시 광고 요원은 저명인사가 노환으로 입원한 병원도 들락거렸다. 평소 존경하던 분이라 찾아왔다고 해놓고 들락거리다가 어느 날 간호원에게 그 분이 언제 운명하실지 날짜를 알아둔다. 그리고 임종 때 장례절차로 바쁜 유족들이 제일 처음 하는 절차인 부고 광고 얻어온다. 부고 광고는 광고비 단가가 보통 광고 두 배다. 신문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권광세는 훗날 나도 그 집에 가보았는데, 40억 하는 유치원 가지고 있었고, 마주협회 회장으로 과천 경마장 경주마 열 몇 마리 가지고 있었다.

 

 한번은 헌수가 또 어딜 가보자고 한다. '한신공영'이다. 그 회사는 창업때라 남산 1호 터널 앞에 책상 서너개 놓고 전화 한 대가 전부였다. 믿기지 않지만 반포에 엄청난 규모 수영장 만든다고 했다. 사무실엔 사장 포함한 직원 서너 명, 한참 이야길 나누다가 점심을 하자, 사장은 나에게 거기 와서 총무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건설업은 노가다 직업이고 불량배도 있던 시절이라 거절했는데, 그 후 한신은 반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세웠다. 고대 나온 사위는 거기 요지에 백화점 세웠다.

 훗날 이야기지만 헌수는 한신아파트 입주권을 가져와 서너 개 사두라고 했고, 내가 돈 없다고 하자, 은행 대출도 주선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산 너머 산이 보여야 말이지, 그것도 미심쩍어 거절했으니 역시 나는 먹물이다.

 

 그 당시 무교동에 '월드컵'이니 '초원의 집'이니 하는 대형 술집이 있었다. 헌수가 날더러 술 한번 사겠다고 가보자고 했다. 웨이터더러 '오늘 저녁 매상 최고 올려줄테니 무조건 가장 비싼 술과 안주 챙겨오라' 지시한다. 먹긴 먹었지만 속이 좀 캥키는데, 헌수가 '여기 사장 좀 불러오라'고 지시한다.

 그 집 사장은 무교동과 명동에 술집 두개나 있다. 캐디락 타고 다닌 암흑가 보스다. 연락 받고 보디가드 두 명과 함께 나타났다. 

'이 분이 김00 기잔데 잠시 앉아 인사나 하슈' 

헌수가 나를 소개하고 문공부 장관 직인 찍힌 내 기자증 보여주자, 사장 태도 당장 정중해진다. 경찰, 세무공무원, 술집, 탈세기업주가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 기자다.

'내가 사장에게 전화 연락 몇 번 했다는 것,' '언론을 피하면 곤란하다는 것'을 헌수는 경고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친 신문사 '뎃포' 광고지와 요금청구서를 내밀었다. 암흑가 보스는 언론에 약하다. 당장 청구서 결제하라고 으럼장 놓자, 사정사정해서 요금을 반으로 깍는다. 그날 요금 일부는 받고 나머지는 앞으로 신문사 동료들 회식 때마다 가서 먹는 것으로 타협했다. 물론 그날 술과 여자는 무료였다.

 

 헌수는 여자에게도 일가견 있다. 크리스마스 전날이었을 것이다. 

'창현이 니 뿅 갈끼다. 혼자 사는 여자다.' 

후암동엘 가자고 한다. 후암동은 부자 동네다.

'과부는 취미 없고, 처녀라야 되는데?'

'화보 편집장인데 미인이다'

집은 일본식 목조주택이다. 현관문 열리자 붉은 카펫 위에 나이트 가운 슬리퍼 차림 여인이 보인다. 

'이 친구가 내가 말한 고대서 철학한 그 친구'

 헌수가 나를 소개하자 30대 미인이 안다는듯 눈웃음으로 인살 대신한다. 어디 외국 영화에 나올 그런 모습이다. 응접실로 안내하여 오디오 틀자 빙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흐른다. 양담배를 꺼내 손톱에 톡톡 두드린 후 입에 물기 전에 안에 신호 하니, 일하는 아주머니가 조니워커 한 병과 글라스 세개, 얼음과 치즈를 테이불에 놓고 나간다. 

'반갑습니다'

셋이 잔 들어 건배할 때, 나는 그 여인의 새카만 눈섶과 가지런한 하얀 치아를 보았다.

'I'm dreaming of white X-mas'

헌수와 그가 노래를 험잉할 때, 나는 그들 화음이 수준급이란 알았다.

그 시절 집에 오디오 있는 집 드물었다. 치즈 안주로 조니워커 마시는 여인 드물다. 후암동이란 동네도 서울 끝 창동 남의 집 전세 사는 내 처지엔 좀 주눅 들만 했다. 이때 헌수가

'이 친구 기자로 입사해놓고 돈 벌어 대학원 간다고 우리 부로 온 친구야. 창현아 니도 한 곡 뽑아삐라'

하는 바람에 나는 낫킹콜의 '모나리자'를 불렀다. 그녀를 모나리자로 부른 것이다.

 

Mona Lisa, Mosa Lisa men have named you(모나리사, 모나리사, 사내들이 그대를 그렇게 부른다오) ​You’re so like the lady with the mystic smile(그대는 그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를 닮았구려)

 

그 노래 듣자 그녀가 반색 하더니 내 곁에 와서 노랠 함께 부른다. 함께 노래 불러보면, 서로의 박자, 감정, 호홉처리 생생히 느껴지고 상대의 수준 안다. 특히 영어 발음 들어보면 평소 실력 안다.

 여인은 그 노래 한 곡으로 완전히 환영 모드로 바뀌었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체격 좋았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노래 끝나자 다음 곡에서 내 손 잡고 춤추자고 한다. 여간첩처럼 계산적인 년상의 여인이었다. 따뜻한 그녀 입김이 귓볼을 간지럽혔다. 꺽어질듯 가는 그녀 몸에선 짙은 향수 냄새 풍겨왔다.

 

 간혹 어디선가 남자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중앙청 국-과장 전화였다. 당시 대한화보 **화보 등 세 개 화보가 있었다. 관리들은 언론 인터뷰 나가면 고과가 유리해진다. 기자에게 술도 사고, 촌지도 준다. 그런데 여긴 미인인데다 화보 편집장이다. 술자리도 사양않고, 오히려 술값 내는 여자다. 재무부 상공부 관리들에게 광화문에서 가장 매력있는 캐리어우먼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공동 연인이었을 것이다.

  여자 측도 그들이 필요했다. 중앙청 국-과장 전화는 대기업 사장에겐 황공무지한 전화다. 재무부가 어딘가? 은행 할애비 아닌가? 상공부가 어딘가? 왕년에 재계 간판스타 정주영도 거기서 주사 서기부터 굽실대고 살랑거린 데 아닌가? 그들이 전화 한 통화 해주면 그녀 만나기 싫어한 대기업의 먹통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 기업 피알 해주고 광고비 제맘대로 받았을 것이다. 셋 다 공생 관계였다.

 

 그날 우리 셋은 동업자라 꺼릴게 없다. 노래와 춤판으로 열 오르자 그녀 제의로 무교동으로 나갔다. 셋이 밤새 놀다 헤어졌고, 그 뒤도 간혹 마타하리는 나와 헌수를 불러내곤 했다.

 나중에 그녀는 회사를 인수하여 사장이 되었다고 들었다. 70년대 초 광고계 전설적인 여류명사 된 것이다.

 

그 시절 회상해보니 영어나 공부 잘 한 것 실력 아니다. 컴퓨터처럼 복잡한 사람 마음 휘어잡는 재주가 더 실력이다. 그땐 그걸 몰랐다. 

 

 몇년 뒤 헌수는 미국 이민 가서 샌프랜시스코 위 포트랜드서 살았는데, 서너번 한국 들락거리며 날더러 미국서 같이 살자고 한 적 있다.

 첫번째는 그가 포틀랜드서 관광 매점 할 때다. 내가 A그룹 회장 자서전을 쓰고 있을 때인데, 어떻게 소식 알았던지 화양동 회사로 찾아와 ‘이 사람아 우선 자네 부인은 우리 와이프와 기념품점서 함께 일하면 되네. 관광 기념품점 하나 열었더니 생계는 지장없더라고. 옛날 신문사 시절 생각 않나나? 같이 가서 살자'며 권하다 갔다.

 시내서 멀리 떨어진 화양동까지 찾아와서 내 취향 염두에 두고, 록키산맥 광대한 풍광과 태평양 쪽으로 흐르는 계류에 낚시만 던지면 올라온다는 팔뚝만한 연어 이야기 해준 그 정이 고마웠다.

 두번째는 소공동 롯데호텔로 몇 분만에 나올 수 있겠냐고 급히 나오라고 해서 로비에 갔더니, 그곳 포트랜드서 미 합중국 연방의원에 한국인으로 처음 출마한 오 모씨를 소개했다. 동행한 츄리닝 차림의 오 모씨는 퍽 의욕적인 인상이었고, 사람 구슬리는 재주 많은 헌수와 퍽 친한 모습이었다.

 헌수는 당시 한국일보 현지 지국장과 교포신문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야당이란 항시 춥고 배고픈 직업 아니던가? 재야 때 미 서북부 찾아온 김영삼씨 잘 대접해준 인연으로 이날 그들은 대통령 면담 약속 있어 청와대 들어간다고 했다.

그 날 헌수는 ‘기사 쓰고, 편집하고, 광고 얻어오고, 신문보급 하느라고 힘들다'며, '광고와 지국 운영은 니가 알다시피 내가 자신있으니, 니는 그 좋은 글 솜씨 썩이지말고 기사 작성만 맡아주면 된다'며 '미국 와서 날 좀 도와 달라’고 신신당부 했다.

 

 인생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그때 만약 그가 중국 서화 골동에 홀딱 빠져있던 나에게 중국서 같이

살자고 권했으면 얼씨구나 지화자 두말 않고 따라나섰을 것이다. 소주 항주는 서울 30평 짜리 아파트 한 채 값이면 대지 천여평에 경주 최부잣집 보다 더 오래된 고래등 같이 운치있는 고가옥에 살 수 있었다. 담 너머 운하에서 보트 젖고 뜰에는 천하에 둘도 없는 기묘한 태호석 놓고 살면서, 한달 월급 20만원 주고 중국인 식모 운전수 데리고, 기름진 중국 음식 향기로운 중국술 맘대로 즐기며, 골동품 시장 돌아다니면서 서화 도자기 수집할 수 있었다. 그걸 컨테이너 베이스로 한국에  2-3년 날라오기만 하면 몇 년 뒤 한재산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마침 그때 김영사와 동양 고전 다이제스트 책을 만들던 중이라 사양하고 말았지만, 좌우간 헌수는 족집게처럼 사람 잘 찾아낸다. 그후 오모 씨는 연방의원 당선되었다.

 세 번째 왔을 때는 내가 직장 은퇴하고 주에 한번 속초 모 대학 겸임교수 다닐 때다.

 헌수는 그곳에 한인방송 세운다며 현지서 호텔 운영하는 이대 출신 묘령의 여인을 동행하였다. 이 날은 체면상 두 사람 골프 접대 내가 맡고, 라운딩 끝나 강남 음식점에서 저녁 먹었다.

‘헌수 이 친구 땜에 또 이런 미인 만나뵙게 되어 무쌍의 영광입니다.’

내가 슬쩍 말에 뉘앙스를 깔자, 여인이 냉큼 걸려든다.

‘또 미인 만나셨다는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김헌수 사장님 바람 피운 이야기 예고편인가요?’

'저 분이 토네이도 급은 아니라도 동남아 휩쓰는 태풍급은 되지요.'

‘아이고 창현아! 이 인간아! 숙녀 앞에서 이 무슨 망발이십니까요?’

‘신문사 때 내가 따라 갔던 후암동 화보 편집장이 사실 요화 배정자보다도 예뻤지요.’

‘하여튼 이 친구 말로 사람 쥑이는데 뭐 있다고!’

'이 사람아 댄스 못치는 날 양주 멕이고 니들은 꽉 껴안고 난리부르스 쳐놓고 지금 오리발이여?'

'하여간 이 친구는 아주 소설가로 나가야 해!'

 

 다음 날 헌수는 KBS 방송 최고참 여성부장 소개로 신참 여아나운서 하나 뽑아 가려고 지망자를 무교동 낙지집에서 인터뷰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송국 채리면 이제부터 더 바빠지니 아예 이참에 와서 신문은 날더러 맡으라고 한다.

‘나야 머리 속에 공자 맹자만 가득한데, 그런 사람 미국서 뭐 하것노?’

‘우리 이대 동기 중에 여류작가 있어요. 지금 압구정동 개네 집에 묵고 있는데. 개도 싱글이고 곧 이민 올 거예요. 글 쓰는 사람끼리 이야기도 잘 통할 것이고...미국서 넷이 골프 치면 딱 한 팀 되겠네. 페이 부담 없는 미국 골프장 얼마나 좋아요?’

‘헌수 이 친구 두번이나 와서 권하다가 이번에 미인까지 대동해서 미인계로 나가는군요. 뜻이야 뼈에 사모치게 고맙습니다만....'

 그리고 말꼬리를 삼천포로 돌려 버렸다. 속초 이야길 꺼집어 냈다.

'속초는 영랑호, 진부령, 파브릭 코스 나인홀에 3만원 합니다. 설악산 경치 오직 좋습니까. 거기 여교수와 한 조 새벽 이슬 밟고 잔디밭 나가면, 고지대라 들꽃 향기 좋지요, 올려다보면 설악산 울산바위, 내려다보면 시퍼런 동해 아닙니까? 한 주에 두어번 쳐도 부담 없습니다.'

'속초서 살았습니까?'

'네! 5년 살았지요.'

'이 친구 거기서 백화점 대표이사 했지.'

'백화점 오픈이 열시니까, 현지 경찰서장 세무서장 그리고 여교수가 한 팀 멤버였어요. 아침 여섯시

티오프해서 나인홀 돌고. 영금정서 4인분 2만원하는 매운탕 먹고, 출근하면 10시 전 입니다. 담배 한 대 물고 신문 보고 있으면 직원들 출근하지요.'

'신선노름 하셨군요. 골프는 그렇다 치고, 록키마운틴 가보셨지요? 빙하에 덮힌 산, 숲과 호수, 천국이 따로 없어요.'

미리 작당한듯 여자분이 계속 발동 건다. 

'속초는 록키마운틴만 못하지요. 그러나 천불동, 공릉능선, 백담계곡 아십니까? 천하절경 입니다. 콘도마다 온천 있습니다. 오색 탄산온천, 일성콘도 맥반석온천, 척산 알카리온천, 한일콘도 해수온천, 입맛 따라 골라가며 온천 가능해요. 모두 4천원 합니다. 골짜기마다 약수 아닙니까? 오색약수, 갈천약수, 추곡약수, 삼봉약수 있고. 호수도 화진포, 영랑호, 청초호, 거기다 해수욕장은 고성에서 속초 주문진 강릉 부산 해운대까지 줄줄이 해수욕장입니다. 거기 푸른 파도 보면서, 통나무집 카페에서 진토닉 한잔하면 속초도 낙원이지요. 언제 글쓰는 그분과 같이 한번 같이 가십시다.'

'헌수씨 말대로 역시 선생님은 각설이 형님이고 약장수 저리 가라네요. 아주 관동팔경을 청산유수로 읊으시네?'

이렇게 노닥거리다, 핸드폰 통화 끝에 숙녀 한 분이 나타났다. 압구정동 그분 이다. 부드러운 연초록 바바리코트 걸친 모습과 선이 갸름한 얼굴이 잘 어울렸다.

 2차는 창 밖 가로등이 진주 목걸이같은 한강 야경과 한남동 옥수동 아파트 불빛 보이는 압구정동   아파트로 옮겼다.

 작가라더니 책이 많았다. 의사 남편이 남긴 아파트와 병원 빌뒹 처분했고, 얼마 전에 포트랜드 교외에 호텔과 갈비집 하나 매입 했다고 한다. 

 

 술 한잔 걸쳤겠다 돈 많은 과부집에서 뻥 치지 않는다면 그는 남자 아니다. 없던 이야기도 지어낼 판에 있던 이야길 왜 못하는가.'대형 갈비집 매입하셨다니 내 밥장사 한 이야기 하나 하지요. 밥 장사도 손님 많으면 재미있다고요.

 우리 건물 20층에 양식 중식 한식 식당 셋이 있었는데, 부임하니 가슴이 철렁해요. 손님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한쪽은  동해, 한쪽은 설악산 보이는 20층 스카이라운지면 뭐합니까? 사실은 완전히 물먹는 하마더라고요. 시설비 오십억 든 것인데, 15명 직원 인권비 월 2천만원이 안나와요.

 남들은 20층 건물만 보고, 이곳 사장은 좋겠구나 하지만 사실 죽을 맛이지요. 점심시간에 올라가면 가슴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요. 손님 없으니 딴짓하고 놀다가 사장 눈치보며 비실대는 종업원들 보고 가물에 콩나물처럼 온 손님이 밥 맛 나겠어요? 왔다가도 돌아가 버립니다.

 그래 서울서 요식업 경험 30년 쌓았다는 부장, 서울서 스카웃 해온 조리과장과 몇번 긴급회의란 것도 해봤지만, 화타가 와도 병 고칠 재주 없어요.

그래 회의도 아무 소용없다 싶어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로 딱 두달 내 방식대로 하고, 않되면 전원 해고하고 문 닫겠다는 비장한 결심 했지요.

이런 이야기 아세요? 주방장이 주인 망하라고 막 퍼준 식당이 오히려 돈 번다는 이야기. 그걸 실행하기로 했지요.

 계산서는 이래요. 한끼에 8천원 짜리 음식 백그릇 팔면 마진 4십만원 입니다. 그런데 한끼 6천원 받고 이백 그릇 팔면 75만원입니다. 그래 음식 값부터 내렸어요. 동시에 품질은 올렸지요.

죽던지 살던지 결판을 낼려고 시각적으로 보기 좋고, 실제 원가는 싼, 상추 배추같은 야채는 대바구니 가득 담아 내고, 젓갈도 변산반도의 줄포만 곰소 것이 최곱니다. 곰소로 사람 보내 사오도록 했지요. 새우젓, 황새기젓, 갈치젓, 조개젓 큰 것 네통이면 몇달 갑니다.

 입에 단물 고이는 당귀잎 양양 보내서 구해오고. 새벽에 대포항 가니 꽁치 한 통 만원 합디다. 그걸 통으로 구워 한마리씩 서비스로 상에 올리고, 해물탕의 그 감질나는 가리비조개 손바닥만한 큰 놈으로 바꿨어요. 문어도 중짜, 게도 큰 놈 알짜배기, 이걸 그냥 생짜로 내놓지 않고 주방에서 반쯤 익혀서 시뻘겋게 익어 효과 만점일 때  내놓도록 했지요.

 

 이래놓고 사장은 시도 때도 없이 속초 기관장들 불러 술타령에 빠졌지요. 술 좋아하는 사장 메뉴 푸짐하게 바꿔놓고 맨날 기관장들 불러 퍼마신다고 부하들이 걱정 했지요.

 그러나 진로 초창기 직원들 판매 전략 아시지요? 회사 돈 가지고 술집 다니며 ‘진로 한병 주시오’ 하면서 술 사먹은 홍보전략. 그걸 직원들이 알 턱 없지요.'

'좌우지간 창현이 이 친구 뱃장은 옛날부터 알아준다니까.'

'그러다 문 닫으면 직원가족 전부 실업자 가족 되잖아요?'

'그렇지요. 문제 심각하지요. 그러나 적자 내면 기업은 망합니다. 대수술 해야해요. 하여튼 음식 무대포로 퍼주는데 묘미가 있어요. 손님들이 보니 음식이 싸고 먹음직 해요. 그래 물어봅니다.

‘김사장 해물매운탕 4인분 얼마요?’

‘4만원 입니다.’

‘김사장 안계셔도 이리 나옵니까?’

그래 내가,

‘어이 조리과장 이리 와봐!'

그러면 허연 터번 머리에 둘러쓴 조리과장 허리 굽히고,

'사장님 안계시면 더 잘 나옵니다.'

장단 맞춥니다.

따지고 보면 해물매운탕 1인분 만원꼴 입니다. 이만한 데 없어요. 직원 가족회식 겨냥한 맞춤 요리예요. 그 전략이 성공했지요. 웬 공짜냐 싶어 기관장이 부하 데려오고, 부하들은 가족 데려와요. 슬슬 동남풍 불기 시작했고요. 인구 10만 밖에 않되는 속초에 금방 소문 났어요. 금방 한 달만에 확 뒤집어 버렸지요.

 

 신나는 김에 여기에다 한 수 더 썼지요. 원래 음식은 기본이 김치 아닙니까? 하루는 식사 하다가 식당 모든 사람에게 들리게 조리과장 불렀지요.

‘어이! 누가 이 김치 담갔어?’

 화내는 것처럼 말하니 과장이 뭐 잘못되었나 하고 내눈치만 보더군요.

‘누구야? 누가 이 김치 담았어?’

재차 고함 지르니 과장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합디다.

‘한 아무개 아줌마가 담았읍니다.’

‘그래? 한 아줌마 불러와.'

그래 아줌마가 오길래, 

‘홍과장! 이 아줌마 이 달부터 월급 5만원 올려.’

 뚱딴지 부렸지요. 그리고 조회에서 일장 연설 했어요.

'음식 솜씨? 그것도 원가입니다. 우리 식당 월 5천만원 식재료 원가를 생각해봅시다.

 솜씨 좋게 맛있게 만들면 가치가 7천만원 8천만원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솜씨가 나쁘면 가치가 3천만원으로 내려갑니다. 고객은 맛없는 음식은 싫어해요.

 오색그린야드호텔 음식 좋지요? 거긴 양은 적고 가격은 비쌉니다. 도라지를 예로 들어 봅시다. 기름에 튀겨서 딱 서너점만 깔끔하고 기품있게 내놓아봐요. 손님들 다 좋아합니다. 음식은 정성이 부가가치를 창조합니다. 그냥 무쳐서 한 접시 가득 내놓는 짓은 아무 소용없는 짓 입니다.

 재료 적게 쓰고 값 비싸게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따따불 이익입니다. 솜씨와 정성이 식당 원가의 중요한 요인입니다.

사장이 여기서 하나 약속 드립니다. '음식은 예술이고 창의 입니다. 앞으로 음식 만들 때 이번 김치처럼 창의력 있고 맛 있으면 그 분 월급 그 달 즉시 인상시킵니다.'

일장웅변 토하고 난 그 며칠 뒤 바로 응답이 와요. 식탁에 도라지 튀김이 떠억 오른 거 있지요? 그 자리서  '이 도라지 튀김 누가 했소?' 조리과장에세 물어보니, 또 그 아줌마네요. 쇠 뿔 단김에 빼야지요?

‘홍과장 한 아줌마 월급 오만원 더 올려.’

일하던 식당 아줌마들 모두 이소리 듣고 놀래 얼이 빠졌어요, 월급이 한달에 두번 오른 거지요.

빅뉴스 금방 손바닥만한 속초시에 퍼졌고요. 이 소식 듣고 방문객이 나타났어요. 전에 주방 책임자였지요. 그는 월급 적다고 설악파크호텔 주방으로 갔는데, 전에 자기가 데리고 있던 우리 아줌마보다 월급 2만원만 더 올려주면 다시 돌아오겠단 겁니다.

 '2만원같은 소리하네. 시시한 소리 마시오. 5만원 올려줄테니 와서 함께 해봅시다.'

그 분이 찍소리 못하고 옮겨왔어요. 그 후 우리 주방은 속초 최고가 됐지요.

 이게 비법입니다. 

 

 직원 전체 임금도 올려버렸지요. 봄에 임금 인상철 와서 부장 과장 모아놓고 인상폭 말해보라니 한참 눈치 보다가 4%면 좋겠다고 우물쭈물 해요. 그 이유는? 하고 물었더니 시시한 대답 하더라고요. 사장님은 전에 비서실장 하신 분이라 소신대로 하실수 있다나요.

그래 내가 월 매출 5% 올려주면 임금 7% 인상 하겠으니 어떠냐고 물었지요. 모두 어안이 벙벙 입만 벌려요. 이러면 속초 4개 대기업 중 수준이 어떻게 되냐 물었더니 중간 된다는 겁니다. 그 전엔 꼴찌 였어요. 

 직원들에게 돌아가서 뭐라고 하겠냐고 했더니,'사장님께서 결단을 내려...어쩌고' 하는 대답 합디다. '에이! 사람들아 자네들이 사장한테 요구해서 올렸다고 왜 말 못하나? 그대신 월 매출 5% 올리겠다고 약속했다고 왜 말 못하나?'

딱 이렇게 조치하고 그 달 실적 보니 매출 5% 거뜬히 올린 겁니다. 매출 5% 오르면 불랙이븐 포인트가 팍 올라갑니다. 3% 임금 인상액보다 순익 훨신 큽니다. 목표 달성 부서엔 보너스 100 만원 씩도 주었지요. 그게 뭔줄 아세요? 다음 달 총매출이 또 5% 올라가요. 서너 달 보너스 지급하다 보니, 매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직원들이 모두 죽기살기 회사 일에 매달리는 거 있지요?

사기와 풍토를 완전 바꿔놓았지요.  

 

'창현아! 그 피아노 치던, 니가 반해서 사죽을 못쓴 그 아가씨 이야기는 왜 빼먹나?'

'우리 양식당에 피아노 치는 아가씨가 있었어요. 포크와 칼로 랍스타 스테이크 자르는데, 무드 잡히라고 그랜드피아노 놓고, 생음악 치게한 아가씨가 있었어요.

그런데 손님이 음악 듣습니까. 아가씨 얼굴 봅니까? 무조건 음악학원 다 뒤져 얼굴 이쁜 애 구해오라고 했어요. 황당했을 꺼예요.

지금 그 노처녀가 음대 나왔다나 뭐래나 소릴 하데요. 그런 소린 무시하고 무조건 얼굴 이쁜 애 구해오라 했어요. 그 후 구해온 아이 보니, 얼마나 순진하고 이쁜지 나도 놀랬어요. 면접할 때 노닥거리며 나부터 말 좀 오래 붙이고 싶더라니까요.

 피아노 위치도 손님이 아가씨 얼굴 볼 수 있도록 방향을 180도 돌려버렸어요.

그랬더니 속초 한량들 난리 났어요. 밤 10시까지 커피 마시며 가질 않아요. 양식당 매상 쑥 올라갔어요.’

 

'대중심리를 잘 파악하셨군요?'

'다들 겉으로야 교양 찾지만, 남자들 본질은 원래 늑대 아닙니까?'

'지피지기라 이 말씀이지? 니처럼 늑대....'

 

'종업원 임금문제, 원재료 원가문제, 가격 책정 문제 요점 잘 짚으시고 잘 해결하신 거 같아요.선생님 말씀, 정말 저에게 큰 도움 됩니다.'

'애숙아! 순진하게 그러지 마라. 티 난다. 다음에 김선생님을 싸부로 모시던지 말던지 니 맘이지만, 처음부터 이래서 쓰것나? 속도 조절 좀 해라.'

'아니다 애! 지금 출가한 애들한테 상의하겠나? 김선생님 너무 고마운 분이셔!'

'재가 아주 춘향이 이도령한테 하듯 팍 엎어지누먼!'

 이러고 꼭 미국 오시라 신신당부하고 그 분은 헌수팀과 함께 물 건너갔다.

 황혼에 자기 알아주는 친구 하나 쯤 태평양 건너 미국이지만, 이 세상 어디 산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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