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편

책 한 권에 소개한 동양고전 50편(중국 1편)

김현거사 2016. 8. 26. 12:07

중국편 1

 

2700 년 전 시심(詩心)은 어떤 것인가

공자의 '시경(詩經)'

 

 

 ‘시경(詩經)’은 말 그대로 ‘시의 경전(經典)’이다. 공자가 서주(西周) 때부터 춘추시대(BC 6세기)까지 전승된 시 3,000여 편 중 305편을 가려서 정리한 것이다.

 공자는 만년에 제자를 가르침에 육경(六經) 중에서 시를 첫머리로 삼았다. 시가 인간의 순수한 감정에서 우러난 것이므로, 그 만한 전범(典範)이 없다고 생각했다.

 논어 <양화편>에서 '너희들은 왜 시경을 배우지 않느냐? 시경은 감흥을 일으켜 정서를 순화하고 사물을 바르게 관찰할 수 있게 하며, 많은 사람들과 사귀게 하고, 불의를 비판할 수 있게 하며, 집안에서는 부모를 섬기고, 나가서는 임금을 받들게 하고,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하느니라.'고 했다.

 아들 백어(伯魚)에게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면서 시경 공부를 권했다.

 공자는 '시 300편을 한 마디로 사악함이 없다(思無邪)'고 했다. '즐겁되 음탕하지 않고 슬프되 상케 하지 않는다(樂而不淫, 哀而不傷)'고 했다.

 

  시경

 

 '시경'의 내용은 민간에서 모은 풍(風), 정치에 관한 아(雅), 선왕의 덕을 칭송한 송(頌)이 있다. 신내림(降神), 주술(呪謠), 제가(祭歌), 충성, 효도, 연가 도 있다. 

 '시경'에 실린 시들은 현학적이거나 어렵지 않다. 농익거나 짙지 아니하다.  

 그 몇개만 읽어보면 '시경'의 분위기를 대충 알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베짱이

 

베짱이 떼 많기도 하네. 너의 자손 번창하리라.

베짱이 울음소리 시끄럽기도 하네. 너의 자손 번성하리라.

베짱이 울음소리 끝도 없네. 너의 자손 번성하리라.

 

*베짱이는 다산의 상징이며 약으로 쓰는 상서로운 곤충이다. 베짱이가 떼지어 날갯짓 하면서 날아오르는 모양을 묘사함으로써 자손의 번영을 축복한 시이며, 아마 결혼식 때 춤을 추면서 축가로 불렀을 것이다.

 

 칡덩쿨

 

 칡덩쿨은 골짜기에 뻗어 그 잎새 무성하다. 꾀꼬리 꾀꼴꾀꼴 저 숲 속에 날아앉아 그 울음 아름답네.

칡덩쿨은 골짜기에 뻗어 그 잎새 무성하다. 이걸 베고 쪄서 굵고 가는 베를 짜서 옷 지어입어 싫지 않구나.

어른께 말씀드려 근친 간다고 하거라. 막 입는 옷, 나들이 옷, 서둘러 빨래하자. 어느 건 빨고 안 빨 건가. 양친 뵈러 친정 가네.

 

까치집

 

까치가 지은 집에 비둘기가 들어가네.

우리 아씨 시집가네. 백 채 수레 마중하네.

까치가 지은 집에 비둘기가 가득하네.

우리 아씨 시집가네. 백 채 수레 따라가네.

 

*까치와 비둘기는 모두 상서로운 새다. 까치집에 비둘기를 맞이하는 정경을 빗대어 시집가는 딸이 남성의 집에 받아들여짐을 축복하는 시다.

 

누추한 집에서도

 

집이 누추하긴 해도 못 살 거야 없네. 졸졸대는 샘물에서도 가난은 즐길만 하네.

고기를 먹는 데에 꼭 황하의 잉어여야 하고, 아내를 얻는 데에 딱이 제나라 공주일 필요야 없네.

 

내게도 일찍이

 

내게도 일찍이 커다란 집에 살림 번성했었지. 지금은 먹기조차 어려우니, 계속되는 부귀는 없으련가.

내게도 일찍이 좋은 음식 많았었지. 지금은 배조차 채우기 어려우니, 계속되는 부귀는 없으련가.

 

복사나무

 

고운 복사나무 활짝 피었네. 이 집 처녀 시집가면 시집살이 잘도 할래.

고운 복사나무 잘도 익었네. 이 집 처녀 시집가면 시집살이 잘도 할래.

고운 복사나무 잎새도 싱그럽네. 이 집 처녀 시집가면 어진 아내 될터이니.

 

귀여운 여인

 

귀엽고 아름다운 그 여인, 성 모퉁이에서 날 기다리네.

날씨 흐려 눈에 안 띄어 머리 긁적이며 주저하네.

귀엽고 아름다운 그 여인, 내게 붉은 피리 주었네.

피리의 붉은 빛 곱기도 하나, 그녀가 더 곱네.

들판에서 그녀는 내게 삘기를 뽑아주었네.

삘기가 예쁜 것이 아니라, 고운 이가 주어서 예쁘다네.

 

 달빛이 갈대에

 

갈대에 달빛이 어우러지니, 이슬 맺히고 서리 내렸네.

사랑하는 그대는 물 저쪽에 산다네.

거슬러 올라가 만나자니 길은 멀고 험하고,

물결 따라 내려가보려니, 마치 물 한가운데 있는 것 같네.

갈대에 달빛이 어우러지니, 이슬 아직 마르지 않았네.

사랑하는 그대는 물가에 산다네.

거슬러 올라가 만나자니 길은 멀고 가쁘고,

마치 물 가운데 모래섬에 있는듯 하네.

 

떨어지는 매실

 

내던지는 매실 일곱 개, 날 찾는 사내들아, 어서 이 좋은 기회에.

내던지는 매실 세 개, 날 찾는 사내들아, 오늘 어서.

내던지는 매실 한 광주리, 날 찾는 사내들아, 지금 당장 어서. 

 

*매실은 임산부에게 좋은 약리작용 하는 열매이다. 그 매실을 마음에 둔 남자를 향해 던져 구혼하는 시다. 이것을 투과혼(投果婚, 열매를 던져 구혼하는 것)이라 한다. 진서(晋書) '반악전(潘岳傳)'에 미소년 반악(潘岳)이 외출하면 여자들이 둘러싸고 마차가 가득 찰 정도로 과일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웅치(雄雉, 장끼)

 

장끼가 날아오르네, 천천히 날갯짓하며 가네. 그리운 임이여! 내 마음에 괴로움만 남았구나.

장끼가 날아오르네, 오르락내리락 날갯짓 소리 들리네. 진짜 내 임이여! 이 괴로움 어이할까?

저 해와 달 바라보며 끝없는 이 생각길은 멀다 하는데, 어찌 능히 오려나?

세상의 군자들아! 어찌 덕행을 모르느냐? 해하고 탐내지 않는데, 어찌 이보다 더 선하란 말이냐?

 

*장끼는 남자를 상징한다. 장끼가 날아가는 모습을 노래하여 남자가 여자로부터 떠남을 상징한다. 다시 맺어지고 싶어 하는 여자의 희망, 한에 사무쳐 자신을 위로하는 버림받은 여인의 심정을 그렸다.

 

다북쑥(蓼蕭, 제례에 참석한 손님을 의미)

 

저 큰 다북쑥, 이슬 촉촉하네.임을 만나 보니, 내 마음 후련하네.잔치 벌여 웃고 이야기 하니, 좋은 말만 들리고 마음 편안하네.저 큰 다북쑥, 이슬 듬뿍 젖었네.임을 만나 보니, 가없는 영광이네.그 덕 그르치지 않으니, 오래오래 살리라. 저 큰 다북쑥, 이슬 함빡 젖었네. 임을 만나 보니, 즐겁고 편안하네. 그 형에 그 아우라, 착한 덕 오래 즐거우리.

 

*쑥과 이슬은 신성한 주술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쑥에 이슬 맺혔다는 표현으로 제례에 참석한 손님을 축복하는 시다. 손님은 이 노래에 답가를 불렀다.

 

추우(騶虞, 사냥터의 신)

 

저 무성한 갈대밭에서 화살 하나에 암퇘지 다섯 마리라니아! 진짜 추우(騶虞, 천자의 사냥터를 돌보는 신)로다. 저 무성한 쑥밭에서 화살 하나에 새끼 돼지 다섯 마리라니아! 진짜 추우로다.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 사냥꾼이 멧돼지를 활로 쏘아 사냥터 신에게 바치고 사냥 잘되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주술적 의례의 시이다.

 

 문왕(文王)

 

문왕의 영혼은 위에 계시고, 오! 하늘에서 빛나네.주는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천명은 늘 새로웠네. 주가 밝지 않은가, 천명이 늘 때에 맞으니, 문왕이 오르내려 천제의 곁에 계셨네.

 

*문왕을 제사 지낼 때 제전가(祭典歌)다. 모두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명을 받은 문왕의 영혼이 주나라에 강림하는 부분부터 시작, 자손의 번영과 신하의 충성, 은나라의 복속, 신하들의 활약을 노래하고, 문왕의 덕에 따라 만방을 아울러야 한다고 가르치는 서사시다. 집단의 결속을 강화할 목적으로, 문왕으로 분장한 춤꾼이 이야기에 맞춰 춤을 추던 극시(劇詩)이기도 했다.

 

우거진 저것은

 

우거진 저것은 쑥인가 했더니 다북쑥이로다. 슬프도다, 우리 부모님 날 낳으시고 고생하셨다.

우거진 저것은 쑥인가 했더니 제비쑥이로다. 슬프도다, 우리 부모님 날 나으시고 여위셨다.

병의 술이 떨어짐은 술통의 수치로다. 궁하고 외로운 살림살이 죽음만 같지 못한지 오래도다.

아버님 없이 누굴 믿으며, 어머님 없이 누굴 의지하리. 나가면 걱정이요, 들어오면 몸 둘 곳 없도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이 날 기르셨다. 쓰다듬어 가르치고, 키우고 가꾸시고,

나며 들며 안아주시니, 그 은덕 갚으려해도 저 하늘이 아득하도다.

남산은 험악하고 높기도 하고, 바람은 모질게 휘몰아치도다.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건만, 나만 어이 이 신센가?

남산은 험악하고 높기도 하고, 바람은 모질게 휘몰아치도다.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건만, 나만 홀로 봉양을 다하지 못했도다.

 

*어버이를 생각하는 시인데, 주세붕과 정철의 시조가 시경과 유사하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부모 곧 아니시면 내 몸이 없으렷다. 이 덕(德)을 갚으려 하니 하늘 끝이 없습니다.(주세붕)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가없는 은혜 어디에 다 갚사오리.(정철)

 

 

서경(書經)

요(堯), 순(舜), 우(禹), 탕(湯)의 행적을 담은 서경(書經)

 

 서경(書經)은 BC 60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성왕(聖王) 명군(名君) 현신(賢臣)이 남긴 어록이자 선언집이다. 오경(五經)에 속하며, 중국 정치의 규범이 되는 책이다.

 요(堯) 순(舜) 우(禹) 탕(湯)과 하(夏), 은(殷), 주(周) 때 군왕의 언행과 사적을 기록되어있다.

공자가 '서경'을 정리했다는 설이 있다.

 옛날에는 서(書)라 불리웠고 왕조(王朝)의 이름을 위에 얹어 우서(虞書) 하서(夏書) 등으로 불렀다.

 

 '서경'은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 때 자취 감추었다가, 진(秦)나라 복승(伏勝)이 은밀히 벽 속에 감추고, 난을 피해 흘러다니다가 평화를 되찾은 뒤 돌아와서 벽속에서 얻은  28편(혹은 29편)을 금문상서(今文尙書)라 부른다. 그 후 후한 무제(武帝) 때 노(魯)나라의 공왕(恭王)이 집을 넓히려고 공자의 구택(舊宅)을 부술 때 벽 속에서 나온 고서를 '고문상서(古文尙書)'라 한다.

 

우요전(虞堯典)

 

  옛날 요임금에 대하여 상고해 보건데, 지극한 공을 세우셨으니, 공정하시고 밝으시며, 문채 나시고 생각 깊으시며 온유하고, 공순하시며 능히 사양하시어, 빛을 온 세계에 펴시니, 하늘과 땅에 이르시니라.

 능히 큰 덕을 밝히시어, 구족을 친하게 하시니 구족이 이미 친목하게 되었고, 백성을 고르게 밝히시니 백성이 소명(昭明)하였고, 만방을 화하게 고르게 하시니, 모든 백성들이 착해져서 이에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

 

 

요임금

 

순전(舜典)

 

 요임금이 제후의 우두머리를 불러, '사악(四岳)아, 내 이 자리에 오른 지 벌써 7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너는 내 명령에 따라 천하를 잘 다스려 주었다. 이제부터 나를 대신하여 이 자리에 오르도록 하라.'고 하자, '이렇게 부덕한 몸으로는 제위를 욕되게 할 따름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재야에 숨은 현자를 추천하라.'고 하자, 순을 천거했다.

 '순은 맹인의 자식으로, 아버지는 고집이 세고 불순한 사람이며, 어머니는 간사하고, 동생 상(象)은 교만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동생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잘 이끌어 화목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요임금은 자신의 두 딸을 순에게 주고, 백관의 통솔과 귀빈 접대, 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관장하게 했더니 백관이 그를 잘 따르고, 귀한 손님이 그에게 감복하고, 비와 바람이 때를 잘 맞추어 오곡이 풍성해졌다. 그래 요임금이 순을 불러 말했다.

'순아, 내가 너의 말과 행동을 지켜본 지 어언 3년이 되었다. 이제부터 나를 대신해 제위에 오르도록 하라.' 순은 스스로 부덕하다 하며 사양하려 했으나, 결국 요임금의 뜻에 따라 정월에 길일을 잡아 제위에 올랐다.

 

 

고요모(皐陶謨)

 

  옛날 고요(皐陶)를 상고하면 그가 이르기를, '진실로 그 덕을 밟으면, 꾀하는 일이 밝으며 도움이 조화될 것이다.'하였다.

 이에 우(禹)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어찌하면 될까요?' 

 고요가 말하기를 '아름다워라, 삼가 그의 몸을 닦고 생각을 오래하면 집안이 화목하게 질서가 잡히며, 백성들은 밝아지고 가까운 데로부터 먼 곳까지 잘 다스릴 수 있는 길이 여기 있읍니다.' 

이에 우(禹)가 그 말에 절하며 '그렇습니다.'하였다.

 

익직(益稷)

 

 순임금께서 이르시되, '오시게, 우(禹)여 그대 역시 좋은 말씀을 해 보시게.' 

 우가 절하여 가로되, '임금님 제가 무슨 말씀을 아뢰오리까? 저는 날마다 부지런히 일할 생각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였다. 

 고요가 물었다. '아, 어찌 한다는 것이오?' 

 우가 대답하기를, '홍수가 하늘에 닿을 듯 물이 산을 삼키고 언덕을 잠기게 하여 아랫 백성들은 어둠에 빠지어 내가 네 가지 탈 것(四載)을 타고 산을 따라 나무를 깎고, 익(益)과 더불어 신선한 음식을 내어주고, 아홉개 냇물을 터서 사해에 이르게 하고, 밭도랑과 시내를 깊게 하고, 기장 씨를 뿌리며, 멀리 떨어진 냇물에서 곤궁할 때 먹는 음식과 생것 먹는 법을 일러주고, 힘써 없는 것과 있는 것을 서로 바꾸게 하여, 쌓여 있는 물건들을 날마다 팔게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백성들이 쌀밥을 먹게 되어 온 나라가 잘 다스려 졌습니다.'

이에 고요가 말하되, '그렇습니다. 그대의 좋은 말을 스승으로 삼겠습니다.' 하였다.

 

우공(禹貢)

 

 우(禹)는 땅을 다스리시고 산에 이르면 나무를 베어 젖히고 높은 산과 큰 강을 안정시켰다. 기주(冀州) 호구산(壺口山)에서 시작하여 양(梁)과 기(岐) 지방을 다스렸고, 태원(太原) 땅을 닦고는 악양(岳陽) 남쪽 기슭에 이르렀으며, 담회(覃懷) 땅의 일을 마치고 장수(漳水) 가로지르는 곳까지 이르렀다.

 그곳 흙은 희고도 부드러웠고, 부세(賦)는 일등 이등이 섞이었으며, 밭은 오직 중간 정도였다.

 항수(恒水)와 위수(衛水)가 이미 잘 다스려지자, 대륙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섬 동북쪽 오랑캐들은 갖옷을 바쳐왔는데, 그들은 갈석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왔다.

 바다와 태산 사이가 청주 지방인데, 그 지방 유수(濰水)와 치수(淄水) 물길을 인도하였다. 그곳 흙은 희고 걸고, 바닷가는 넓은 개펄이 있다. 그곳 밭은 상하가 있고, 부세는 중등 정도였다. 공물은 소금과 칡베였는데, 해물도 간혹 섞여 있었다

 태산 골짜기에서는 명주실 모시 납 소나무 괴상하게 생긴 돌이 났다. 내산(萊山) 오랑캐들이 가축을 치게 하니 그들의 공물에는 누에 고치실이 담기어 왔다.

 

탕서(湯誓)

 

 백성들아, 이리 와서 내 말을 잘 듣거라. 내가 무작정 난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라 왕의 죄가 너무 커 하늘이 내게 처벌을 명령한 것이다. 너희들 가운데는, 우리 임금은 우리를 돌보지 않고 어찌하여 전쟁을 일으키려 하느냐고 말하는 자도 있음을 안다. 그러나 나는 상제(上帝)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이렇게 군사를 일으켜 정벌에 나선 것이다. 하나라 왕은 백성의 힘을 마르게 하고,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 반드시 하나라를 칠 것이다. 나를 도와 천벌이 올바르게 내리도록 하라. 공을 세우면 반드시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니, 나를 믿고 따르라. 나의 서약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다.

 

*성탕(成湯)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한 사람인 ‘탕왕(湯王)’을 말한다. 이윤의 도움으로 상(商)나라를 세웠다. 탕왕이 명조(鳴條) 들판에서 하(夏)나라의 왕인 걸(傑)과 싸울 때 병사들에게 한 서약이 '탕서(湯誓)'다.

 

 *서(誓)는 주나라 무왕(武王)의 '태서(泰誓)' '목서(牧誓)'와 진(秦)나라 목공이 정(鄭)나라를 공략할 때의 '진서(秦誓)'가 있다.

 

 이윤(伊尹)

 

 태갑 원년 십이월 을축날에 이윤(伊尹)이 선왕(先王)에게 제사지냈는데, 거기 고관과 제후들이 있었고, 백관(百官)들은 자기 일을 거두고 이윤의 말을 들었다. 이윤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 하나라를 다스리던 첫 임금님은 널리 어진 사람을 구하셔서 당신 후손을 돕도록 하셨소, 덕에 힘쓰셔서 하늘의 재앙이 없었으며, 산천(山川)의 귀신들도 또한 편안하지 않음이 없었소. 새와 짐승과 물고기와 자라들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마음 편했습니다.

 또한 관청의 형벌을 제정하시고, 벼슬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감히 궁전에서 춤을 추고, 방에서 취하여 노래하는 이가 있다면. 이를 무풍(巫風)이라 부르는 것이요. 감히 재물과 여색을 추구하고, 항상 놀이와 사냥을 하는 이가 있다면, 이를 음풍(淫風)이라 부르는 것이요. 감히 성현의 말씀을 업신여기며 충직을 거스리어 늙거나 덕망있는 이를 멀리하고 완악한 어린 것들을 가까이 함이 있다면, 이를 난풍(亂風)이라 합니다. 

 이 세 가지 바람과 열 가지 허물은 벼슬 하는 이가 몸에 한 가지만 지니고 있어도, 그 집안이 반드시 망할 것이며, 나라 임금이 이 중 한 가지만 몸에 지니고 있어도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니, 신하들을 바로잡아 주는 이가 없다면, 그 형벌은 묵형(墨刑)이 될 것입니다.'

 

미자(微子)

 

 

  미자(微子) 가로되, '부사(父師=箕子)여, 소사(少師=比干)여, 은나라는 세상을 다스리어 조금도 바로잡지  못했으니, 우리 할아버지인 성탕(成湯)께서 이루신 것이 위에 베풀어져 계시거늘, 우리는 술에 빠져 주정을 일삼음으로서 아랫대에 와서 그분들의 덕을 어지럽히고 망쳐 놓았습니다 . 

 은나라는 소인이나 대인이나 할 것 없이 다 초적(草賊)과 도둑질과 반란과 소란을 좋아하여, 경사(卿士, 벼슬아치와 선비)는 법도가 아닌 것을 본받고, 상하가 용납하고 숨겨주어 허물과 죄가 있는 자들을 잡지않고 있어서, 소민(小民, 낮은 백성) 들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 강자가 약자를 업신여기고 적대하여 원수가 되나니, 이제 은나라가 망함이 마치 큰물을 건넘에 나루터와 물가가 없는 것과 같으니, 마침내 망하게 될 날이 지금에 이르렀는가?

 

*미자계(微子啓)는 제을(帝乙)의 장자이고, 주왕(紂王)의 형이다. 은나라를 창건한 성탕(成湯) 임금이 이루어 놓은 나라를 주왕이 망친 것을 뼈에 사무치게 통탄한 글 이다. 

 

 

홍범구주(洪範九疇)

 

 

 십삼년째 되는 해에 주나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찾아갔다. '아아, 기자여. 하늘이 백성을 안정시켜 그 거처를 도와 합하게 하셨는데, 나는 그 떳떳한 윤리가 펼쳐지는 바를 알지 못하노라.' 이에 기자가 말하길.' 제가 듣자하니, 옛날에 곤(鯀)이 홍수를 막아 오행(五行)의 배열을 어지럽히니 하느님은 크게 노하시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주시지 아니 하시어 이치와 윤리가 무너진 것인데, 곤이 귀양가서 죽거늘 우(禹) 임금이 일어나시어, 하늘이 우에게 홍범구주를 주시니 떳떳한 이치가 차례로 행해진 바입니다.

 

*곤(鯀)은 황제 헌원(軒轅)의 아들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가 신농씨의 딸과 결혼하여 그 딸이 낳은 후손이다. 헌원은 웅족이고, 곤(鯀)은 목방(木方)계 동이(東夷)계 양족(羊族)이며, 곤은 황제의 외손이다.

 

 

염제 신농씨. 황제 헌원씨

 

 요임금이 곤에게 치수를 맡긴지 9년이 지나 성과가 없자 곤은 북쪽으로 쫒겨가 거기서 검은 물고기(玄魚)되었는데, 수염을 날리며 비늘을 떨며 파도를 가르는 곤을 본 자는 '하수(河水)'의 정령이라고 했다.

 

*북시베리아 지방의 물과 관련 있는 뛰어난 인물임을 나타낸다. 곤이 단군계라는 설도 있다. 헌원은 웅족이다. 단군신화에 웅녀가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상기된다.

 

 *축융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3년 동안 시체가 썩지않아 배를 가르니, 거기서 규룡이 틔어나왔는데, 이 규룡이 우(禹) 임금이다. 우 임금은 동이족 후손인 것이다.

 

 *신라인은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 후예라고 한다. 신라 6촌장들이 진나라에서 망명해 온 사람, 즉 ‘진지망인(秦之亡人)’이라는 ‘삼국지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의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도 '신라사람들은 자칭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의 후손이라고 하여 김으로 성을 삼았고, 김유신의 비문에도 '헌원(軒轅: 황제)의 후예요 소호(少昊)의 직계'라는 구절이 있다.

 

소호김천씨

 

우(禹)가 이에 이어 일어나니, 하늘은 우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내리시어 일정한 윤리가 베풀어졌습니다.

*하늘이 우(禹)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내렸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우임금이 동이족이기 때문이다. 홍범구주는 하늘이 동이족에게 내린 천지 대법(大法)이다.

 

우임금

 

 홍범구주의 첫째는 오행(五行)이요,

 

 *오행: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를 지칭한다. 물은 물체를 적시고 아래로 흘러 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불은 물체를 태우고 위로 올라 가는 성질이 있으며, 나무는 구부러지고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고, 쇠는 조작에 의해 자유롭게 변형하는 성질이 있으며, 흙은 곡식을 길러 거두게 하는 성질이 있다.

물체를 적시고 아래로 흘러가는 성질은 짠맛을, 물체를 태우고 위로 올라 가는 성질은 쓴맛을, 구부러지고 곧게 자라는 성질은 신맛을, 조작에 의해 자유롭게 변하는 성질은 매운맛을, 곡식을 길러 거두게 하는 성질은 단맛을 내게 한다.

 

 둘째는 5사(五事)를 공경히 행하는 것이요,

 

 *오사: 외모, 말,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을 지칭한다. 외모는 공손해야 하고, 말은 조리가 있어야 하며, 보는 것은 밝아야 하고, 듣는 것은 분명해야 하며, 생각하는 것은 지혜로워야 한다. 공손함은 엄숙을, 조리가 있음은 이치를, 밝음은 지혜를, 분명함은 꾀를, 지혜는 성인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는 팔정(八政)을 힘써 행하는 것이요,

 

 * 팔정: 양식, 재정, 제사, 땅 관리, 교육, 범죄, 손님 대접, 군대를 말한다.

 

넷째는 오기(五紀)를 조화있게 쓰는 것이요,

 

 *오기: 해(歲)·달(月)·날(日)·별(辰)·역법(曆法)의 계산을 지칭한다.

 

다섯째는 황극(皇極)을 세워 쓰는 것이요,

 

 *황극: 임금의 법도로서 임금이 정치의 법을 세우는 것이다. 오복을 백성들에게 베풀어주면, 백성들도 왕의 법을 따를 것이다. 백성들이 법도를 위배했더라도 커다란 허물이 없을 때에는 왕은 이들을 용납해야 한다.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을 학대하지 말고 고매한 인격자를 존경해야 한다. 재능이 있는 사람을 격려해 주면 나라는 발전할 것이다.

 왕의 법도는 곧 상제(上帝)의 교훈이기도 하다. 천자는 백성의 부모가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다.

 

여섯째는 삼덕(三德)으로 다스리어 쓰는 것이요,

 

 *삼덕: 정직 강극(剛克) 유극(柔克)을 말한다. 평화스럽고 안락할 때에는 정직을 중시하고, 강하고 굴복하지 않을 때에는 강극을 중시하며, 화합할 때에는 유극을 중시해야 한다. 침잠할 때에는 강(剛)함으로써 극복하고, 높고 밝음에는 유(柔)함으로써 극복하는 것이다.

 

일곱째는 계의(稽疑)를 밝히어 쓰는 것이요,

 

  *계의: 점치는 사람을 임명하고 그들에게 점을 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점을 치는 사람들은 비 갬 안개 맑음, 흐린 뒤 맑음, 정괘(貞卦) 회괘(悔卦)에 관한 예보를 한다. 이 일곱가지 예보는 복점(卜占)에 의한 것이 다섯 가지, 서점(筮占)에 의한 것이 두 가지로서, 이러한 점은 변화하는 현상으로 미루어 아는 것이다.

 왕에게 큰 의문이 생기면 자신의 마음에 물어 보고, 귀족이나 관리에게 물어 보며, 백성들에게 물어 보고, 복서인(卜筮人)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왕이 좋다고 생각하고, 복서의 점이 좋다고 하고, 귀족이나 관리가 좋다고 하고, 백성들까지 좋다고 한다면, 바로 이러한 상황을 대동(大同)이라고 한다.

 

여덟째는 서징(庶徵)을 생각하며 쓰는 것이요,

 

*서징: 비 맑음 따뜻함 추움 바람 및 계절의 변화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다섯가지 날씨의 변화가 알맞게 조화를 이루면 모든 초목은 무성할 것이다. 다섯가지 날씨의 변화 가운데 어느 한가지 현상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도 흉하고, 어느 한가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흉한 것이다.

 

 아홉째는 오복(五福)을 길르고, 육극(六極)을 피하는 것이다.

 

*오복은 장수(壽) 부귀(富) 건강(康寧) 선행(攸好德) 인생 계획(考終命).

육극은 횡사 요절 병 걱정 가난 약함을 지칭한다. 흉단절(凶短折= 흉은 재난을 만나 죽는 것, 단은 60세 이전에 죽는 것, 절은 30세 이전에 죽는 것).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공자의 논어(論語)

 

 동양철학 강의하시던 김충열 교수님이 '이립(而立)에는 노장(老莊)에 심취했으나 불혹(不惑) 넘어서자, 논어에 끌리게 되더라.'고 한 말씀을 필자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노장철학의 핵심이 무위(無爲)라면 공맹철학 핵심은 현실이다. 사람은 현실을 떠나 살 수 없다.

 

<논어>는 기원 전 450 년 경에 공자와 제자들이 나눈 대화를 다음 세대 제자들이 편찬한 책이다. <논어>는 <불경>과 <성경>처럼 근 2천 년 간 경전으로 읽히었다. 동양사람이 <논어> 모른다면, 서구 사람이 바이불 모른다는 이야기와 같다.

 

 공자는 BC 551 년 노(蘆)나라 추읍(鄒邑) 태생으로,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다. 아버지 숙량흘(叔粱紇)이 공자의 머리 모양이 펑퍼짐한 언덕같이 생겼다고 구(丘)라 이름 지었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 공자는 창고지기, 가축 기르기 등 잡일을 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나이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十有五而志于學)고 회고했듯이, 일찌기 학문에 심취하여 6예(六藝=禮 樂 射 御 書 數)에 능통하고, 고전과 역사와 시(詩)에 밝아, 삼십부터 가르침을 생활수단으로 삼았다.

오십 초에 노나라 장관으로 발탁, 재판관 최고위직인 대사구(大司寇)가 되었다. 그러나 왕의 측근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몊 년 뒤 제자들을 이끌고 노나라를 떠나, 위(衛), 송(宋), 진(陳), 초(楚)를 다니며 유세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정처없이 떠돌던 그를 사람들은 상갓집 개라고 비난했다. 

 

 67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를 가르치며 저술에 몰두했고, 향년 73세로 생을 마쳤다. 

 

       

馬遠이 그린 공자 초상                                             오도자가 그린 공자 초상                                    

 

논어

 

 논어 첫구절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멀리서 찾아와 주니 즐겁지 아니한가(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殘 不亦君子乎)'

 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때 군자는 어떻게 처신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자.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 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고(三十而立), 마흔에 인생관이 확립되어 마음에 혼란이 없었고(四十而不惑), 쉰이 되어 천명을 알게 되었고(五十而知天命), 예순 되어 어떤 말을 들어도 이치를 깨달아 귀가 순했고(六十而耳順), 일흔 되어 마음대로 행동 하여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학문에 관한 글

 

'아침에 도를 들으면(朝聞道), 저녁에 죽어도 좋으니라(夕死 可矣).'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두우며(罔), 생각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롭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不恥下問)'

'옛 것을 되새겨 새 것을 터득하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유(由)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知之爲知之),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不知爲不知)이 참으로 아는 것(是知也)' 이다.

 

사람에 관한 글

 

 초나라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의 됨됨이를 묻자 자로가 대답을 못했다. 이에 공자께서 이 같이 대답해야지 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될 만한 사람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焉), 그 착한 점을 골라서 따르고, 나쁜 점은 고쳤다(擇其善者而從 其不善者而改之).'

'후생은 두려워 할만하다(後生 可畏). 후에 오는 사람이 지금 사람과 같지않음을 알아야한다.(焉知來者之不如今也). 그러나 사십 오십에도 이름이 들려오지 않으면(四十五十而無聞焉), 그는 무서울 것이 없다(斯亦不足畏也已).'

'나면서 저절로 아는 사람이 상이고(生而知之者 上也), 배워서 아는 사람이 다음이요(學而知之者 次也), 막힘이 있으면서 애써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다(困而學之 又其次也). 그러나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사람은 하이다(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唯上知與下愚 不移).'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 하면 원망한다(近之則不孫 遠之則怨).'

 

 인(仁)에 관한 글

 

 중궁(仲弓)이 인을 묻자.'자기 하고싶지 않은 일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하셨다.  자장(子張)이 인을 묻자, '공손, 관대, 신용, 민첩, 은혜니라. 공손하면 모욕을 당하지 않고, 관대하면 사람의 지지를 받고, 신용이 있으면 남이 일을 맡기며, 맡은 일을 빨리 처리하면 공적을 세우게 되고, 은혜를 베풀면 사람들이 자연이 협력한다.' 하셨다.

 번지(樊遲)가 인을 묻자, '사람 사랑하는 것이다(愛人)' 했고, 앎에 대해서 묻자, '사람 알아보는 것(知人).' 이라했다.

 사마우(司馬牛)가 인을 묻자, '인은 그 사람의 말 이다(仁者 其言也).' 라고 하셨다.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서 묻자, '자기를 극복하여 예로 돌아감이 인이다(克己復禮 爲仁), 하루 자기를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一日克其復禮 天下 歸仁焉).' 하셨다.

안연이 '그 조목을 더 알고 싶습니다.' 하자,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非禮勿廳), 예가 아니면 말 하지 말며(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非禮勿動).' 하셨다.

'유창하게 말 잘하고, 얼굴빛 그럴듯하게 남을 대하는 사람에게는 인(仁)이 드물다.'

 

*공자 사상은 한마디로 인이다. 그러나 제자 따라 이렇게 다르게 표현했다.

 

 군자(君子)에 관한 글

 

 자공(子貢)이 군자에 대하여 묻자, '먼저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한 후에 말을 하는 사람이 군자다(先行其言 以後從之).'라 하셨다. '마을 사람들이 다 그를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하였더니, '옳지 않다. 마을의 착한 자가 좋아하고, 악한 자가 미워함만 같지 못하다.' 하셨다.

 자공이 '가난하되 아부하지 않고, 부귀하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묻자, '괜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하고도 도를 즐기고, 부귀하면서 예(禮)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하셨다.

'군자는 남의 좋은 점을 권장하여 이루게 하고, 남의 악한 일은 선도하여 못하게 하지만(成人之美 不成人之惡), 소인은 이와 반대다(小人 反是)'.

 '군자는 남과 화합하되 뇌동하지 않으며(和而不同), 소인은 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同而不和).'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

'군자는 말은 느리되, 실행은 빠르다.'

'군자는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고(泰而不驕), 소인은 교만하나 태연하지 못하느니라(驕而不泰).''군자는 날마다 위로 나아가며(上達), 소인은 날마다 아래로 내려간다(下達).'

'군자는 곤궁을 견딜 수 있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마구 행동한다.''군자는 책임 소재를 자신에서 구하나,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군자는 섬기기 쉬우나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니, 바른 길로 받들지 않으면 기뻐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섬기기는 어렵고 기쁘게 하기는 쉬우니, 비록 바른 길을 꾀하지 않더라도 기뻐하기 때문이다.'

'군자는 사람 쓸 때 그릇과 능력을 가려 일을 맡기고, 소인은 사람 부릴 때 완전한 자격을 요구한다.' (그래서 가혹하다)

'덕 있는 사람은 반드시 들을만한 말을 하지만, 말이 들을만 하다고 다 덕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인자한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기 있다고 다 인자한 사람은 아니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 있으면서 남루한 옷을 입는 것과 보잘것없이 먹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면, 그 사람과 서로 이야기 할 가치가 없다.'

 

 자로(子路)가 묻기를, '삼군(三軍)을 거느리신다면 누구와 더불어 하시겠습니까?' 공자 가로되, '맨주먹으로 범에게 달려들고, 맨발로 황해를 건느다가 죽는다해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과는 더불어 하지 않으리라. 일에 임하여 반드시 두려워하고 삼가며, 미리 계획을 세워 성공하는 신중한 사람과 더불어 해보겠다.' 하셨다.

 

'어질구나 회(回)여,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국으로 누추한 곳에 살면서 즐거워하니, 어질구나 회여.'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 어렵고(貧而無怨 難),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富而無驕 易).'

 

'나물밥에 물 마시고 팔베개 하고 누웠어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의롭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는 뜬구름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

'날씨가 추워져야 비로소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게 된다.'

 

*공자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셨지만,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不怨天 不尤人).' 하셨다.

 

'군자가 경계해야 할 세가지가 있다 청년은 혈기가 안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여색을 경계하고, 장년은 혈기 왕성하므로 싸움을 경계해야 하며, 노년은 혈기 쇠잔하므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군자에게는 아홉 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다. 볼 때는 명백히 보기를 생각하고, 듣는 것은 총명하게 듣기를 생각하며, 용모는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태도는 공손하기를 생각하고, 말은 성실하게 하기를 생각하고, 일에는 신중하기를 생각해야 하고, 의심가는 것에는 묻기를 생각하고, 화가 날 때는 어려운 일을 당할 것을 생각하고, 이익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한다.' 

증자는 '나는 매일 나 자신을 세번 반성한다(日三省吾身). 남을 위해서 일을 하는데 정성을 다하였는가? 벗들과 사귀는데 신의를 다하였는가? 전수 받은 가르침을 반복하여 익혔는가.? 하였다.

 

'군자는 남에게 은혜 베풀되 낭비하지 않고(惠而不費), 힘든 일 시키되 원망 사지않고(勞而不怨), 욕심 있되 탐욕 내지 않으며(欲而不貪),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으며(泰而不驕), 위엄 있되 사납지 않다(威而不猛).''군자는 상대편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교만없이 평등히 대한다.''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을 잔학이라 하고, 미리 경계 하지 않고 결과부터 따지는 것을 포악이라 하며, 명령을 소홀히 하고 시일을 재촉하는 것을 괴롭힘이라 하고, 마땅히 나누어 주어야 할 출납에 인색한 것을 유사(有司= 단체 일을 맡은 사람. 여기서는 비난의 뜻으로 씀)라 한다.'

 

 정치에 관한 글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식량을 풍족히 하며 군비를 충족하게 하면 백성이 믿는다(足食 足兵 民 信之矣). 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民無信不立).' 하셨다. 제(齊) 경공(景公)이 정치에 대하여 묻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 하셨다.

 

*이를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이라 한다.

 

 자장(子張)이 정치를 묻자, '항상 마음을 국정에 두어서 게을치 말며(居之無倦), 정사를 행할 때는 충실하여라(行之以忠).' 하셨다. 

 자로(子路)가 정치를 묻자, '자신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실천이 되고,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 하셨다.

 자하가 읍장이 되어 정치에 대하여 묻자, '일을 빨리 하려고 하지 말며, 작은 이익을 돌아보지 말아라. 빨리 하려 하면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돌아보면 큰 일 이루지 못한다.' 하셨다.

 노나라 세력가로 배다른 형을 죽이고 대부(大夫)가 된 계강자(季康子)가 물었다. '백성이 공경하고 충성하며, 선행에 힘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공자는 '백성을 엄하고 정중하게 대하면 백성이 공경할 것이요, 부모에게 효성하고 백성에게 자애로우면 충성할 것이요, 착한 사람을 등용하여 그렇지 못한 자에게 교훈이 되게 하면, 백성은 선행에 힘쓸 것 입니다.' 하셨다.

 정치에 대해 묻자, '정치는 곧 정(正)이니 그대가 솔선하여 바르게 행하면 누가 감히 바르게 행하지 않겠는가?(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하셨다.계강자가 '무도(無道)한 자들을 사형으로 다스려서 백성으로 하여금 겁을 먹게하여 유덕(有德)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이 어떠리요?' 하자, '그대는 정치에서 어찌 살인을 일삼으려 하오? 그대가 선을 추구하면 백성은 저절로 착해질 것이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君子之德 風), 소인의 덕은 풀과 같습니다(小人之德 草).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머리를 숙입니다(草尙之風 必偃).' 하셨다.

 정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임금이 신하 거느리고, 신하가 임금 섬기는 도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자, '임금은 예로써 신하를 부릴 것이며, 신하는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노나라 애공이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복종을 하겠소?' 물으니, '곧고 올바른 사람을 등용해서 곧지 않는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마음까지 복종 하지만, 부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정직한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시경> 3백 수를 외우면서도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지 못하고, 딴 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능히 홀로 외교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시를 많이 외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벼슬자리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의 자격을 근심하며,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만한 일을 하고자 노력하라.'

 

 벗에 관한 글

 

 자공(子貢)이 벗에 대하여 묻자, '충고하여 이끌어 주되 말을 듣지 않으면 중지하여 (不可則止), 자신까지 욕됨이 없게 할 것이다(無自辱焉).' 하셨다. 자공이 한마디 말로 평생 실천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묻자, '그것은 서(恕)로다(其恕乎),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己所不欲 勿施於人).' 하셨다.

'유익한 벗 셋 있고 해로운 벗 셋 있다. 정직한 사람을 벗하고, 성실한 사람을 벗하고, 견문 많은 박학다식한 사람을 벗하면 유익하고, 겉치레 하는 사람과 벗하고, 아첨 잘하는 사람과 벗하고, 거짓말 잘하는 사람과 벗하면 해로우니라.'

'오랜 벗은 큰 잘못이 없으면 버리지 말고, 한 사람이 모든 걸 갖추어지기를 기대하지 말라.(故舊 無大故則不棄也 無求備於一人).'

'여러 사람이 미워하여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며, 여러 사람이 좋아해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호사스럽게 살면 불손하기 쉽고, 검소하면 고루해진다. 거만한 것보다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났다.''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것을 바로 잘못이라 한다.''자신 꾸짖기 엄하게 하고 남 책망하길 가볍게 하면, 원망하는 소리를 멀리할 수 있다.'

 

 기타

 

 공자님은 네 가지 일은 하지 않았다. 억측하지 않았고, 무리하지 않았고, 고집하지 않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다.

 공자님은 좌석 깔개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으셨고, 설 때는 문의 중앙을 피하셨고, 들어갈 적에는 문지방을 밟지 않으셨다.

 밥은 정결한 것을 좋아했고, 회는 잘게 썬 것을 좋아했고, 상한 생선, 썩은 고기는 먹지 않았고, 냄새 나쁜 것, 잘 익히지 않은 것, 익지 않은 곡식이나 과일은 먹지 않으셨다. 고기는 바르게 자르지 않은 것은 먹지 않았고, 간장이 없으면 먹지 않았고, 고기가 많아도 밥보다 많이 먹지 않았고, 술은 일정한 양만 먹었으며 난음(亂飮)하지 않았다.

 저자에서 파는 술과 포는 먹지않았고, 과식하지 않았으며, 생강은 끼니마다 먹었다.

 종묘에서 내린 제사 고기는 밤을 넘기지 않았고, 제사에 쓴 고기는 사흘을 넘기지 않았고, 주변에 나누어 주었으며, 사흘이 지나면 먹지 않았다. 비록 나물국이라도 반드시 곡신에게 제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표시하였고, 식사할 때 남과 이야기 하지 않았고, 잠자리에 들어서 말을 하지 않았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며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지자는 동적이며, 인자는 정적이다(知者動 仁者靜), 지자는 즐겁게 살며 인자는 장수한다(知者樂 仁者壽).'

 

 공자가 구이(九夷) 땅에 가서 살려고 하자, 제자가 물었다. '누추한 나라에서 어이 살겠습니까?' 그러자 '군자가 사는 곳에 어찌 누추함이 있으리(君子居之 何陋之有)?' 하고 대답하셨다. 

 

*구이(九夷)는 중원 동쪽 낙랑 고구려 등 동이(東夷)를 말한다.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그 나라를 군자국, 무궁화나라, ‘근화향(槿花鄕)'이라 불렀다.    *공자님 조상이 동이족이라는 설이 있다. 어쨌던 공자님이 구이의 땅을 언급한 것은, 도가 실행되지 않는 중원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다. '공야장(公冶長)' 6 편에 '뗏목을 타고 바다에 나아가고 싶다(道不行 乘桴浮於海)'는 기록이 있다.

 

 공자님이 냇가에서, '지나가는 것은 흐르는 물과 같구나. 밤낮 멈추지 않는구나(逝者 如斯夫 不舍晝夜).' 하셨다. 

  

 계로(季路)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묻자, '살아 있는 사람도 제대로 섬기질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리' 하시었다. 죽음에 대해 묻자, '아직 삶도 잘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는가?' 하셨다.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검소해야 되고 초상에서는 형식을 갖추기보다는 슬퍼해야 한다. 조상 제사 모실 때에는 앞에 계신듯이 하고, 신을 제사 지낼 때는 신이 있는듯 한다.' 하셨다.

 

 

호연지기(浩然之氣)란 무엇인가?

맹자(孟子) 

 

  요즘은 엄마와 아기는 외국 나가고 나홀로 남는 '기러기 아빠'가 많다. 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떠오른다.

 맹자가 세살 때 부친이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맹자가 구덩이를 파고 곡(哭)을 하며 장례 치르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이를 본 맹자의 어머니는 안 되겠다 싶어 당장 이사를 하였는데, 이사 간 곳이 시장 근처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맹자가, 시장에서 물건 사고파는 장사꾼 흉내를 내며 놀았다. 여기도 아이 키울 곳이 아니라고 판단한 어머니는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맹자가 글 읽는 시늉을 하고, 제기(祭器) 늘어놓고 제사 지내는 흉내 내며 놀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그제야 마음 놓고 아들과 함께 그곳에 머물러 살았다.

 

 맹자는 추(鄒) 나라 사람으로 BC 372 년부터 289 년까지 살았다. 공자 손자인 자사(子思) 문하에서 배웠는데, 맹(孟)은 성이고, 이름은 가(軻)다. '맹자'라 함은 '자(子)'가 원래 선생님의 높임말이기 때문이다.

 사십 초반에 송(宋), 등(滕), 양(梁), 임(任), 제(齊), 노(魯), 설(薛)나라를 다니며 제후에게 왕도정치를 설파했고, 62세에 고향에 돌아와 은둔 생활을 하다가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맹자 초상

 

  <맹자>란 책 내용은 양혜왕편(梁惠王篇), 공손추편(公孫丑篇), 등문공편(滕文公篇), 이루편(離婁篇), 만장편(萬章篇), 고자편(告子篇), 진심편(盡心篇) 등 7편이 상하로 되어 있다.

 

  호연지기(浩然之氣)

 

 호연지기(浩然之氣)란 말은 제자 공손추(公孫丑)와 용기 기르는 법에 대한 이야기 중에 나온다.

 '여쭙건대,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하는 것입니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네. 지극히 크고 지극히 넓으며 강하고 곧은 것으로, 잘 길러 나가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는 것 이네. 호연지기는 대장부가 지녀야 할 광명정대한 용기인데, 진정한 용기는 부동심(不動心) 이네. 그것은 도(道)와 짝이 되며, 정의와 올바른 길(道)에 존재하여, 올바르게 살면 얻을 수 있지만, 마음이 흐트러지면 사라져 버리네. 

 의로운 일이라면 그만 두지 말고, 마음을 망녕되게 갖지 말고, 무리하게 잘 되게 하려고도 하지 말게. 전에 송(宋)나라 사람이 자기가 심은 곡식의 싹이 빨리 자라도록 밭의 싹을 억지로 뽑아올린 자가 있었네. 그는 집으로 와서 자기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자랑하였네. 그러나 아들이 가보니 싹은 말라죽어 있었네. 호연지기도 이 같은 것이네. 억지로 하는 것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는 것 일세.

 

 대장부(大丈夫)

 

 '대장부는 천하의 넓은 데서 살고(居天下之廣居),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고(立天下之正立), 천하의 대도를 실천하며(行天下之大道),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해 나가고(得志,與民由之),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실천하고(不得志,獨行其道), 부귀도 혼란케 하지 못하고(富貴不能淫), 빈천도 옮기지 못하고(貧賤不能移), 무서운 무력도 굴복시키지 못한다(威武不能屈). 이것을 대장부라 이른다(此之謂大丈夫).'

 

 경춘(景春)이 묻기를,

'진나라 장군 공손연(公孫衍)과 위나라 재상 장의(張儀)는 위엄과 세 치 혀로 제후를 설복하여,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천하의 정세를 마음대로 했으니, 이들이 진정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어찌 대장부가 되겠는가? 대장부는 임금이 바른 길로 나라를 다스리게 도와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못했고, 섬기는 임금의 요구나 명령이 정도에서 벗어나도 순종했고, 온갖 사술과 기교를 다 피우고 다녔소. 이것은 남편 앞에 순종만 옳은 것으로 알고 사는 부녀자와 다를 바 없소.'

 

 성선설(性善說)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고. 순자(筍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고자(告子)는 '인간은 본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로, 악하게 키우면 악하고, 선하게 키우면 선하게 된다'는 성무선 무불선론(性無善 無不善論)을 주장했고, 한비자는 '인간이 천성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상과 벌을 함께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善)하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애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을 가진다. 이것은 동네사람에게 칭찬받으려는 때문이 아니다. 측은해 하는 마음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며, 부끄러움 없는 사람도 인간이 아니며,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 역시 인간이 아니다.' 하였다. 

 

  사단지설(四端之說)

 

'측은해 하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요(惻隱之心 仁之端), 부끄러워 하는 마음은 의(義)의 단서요(羞惡之心 義之端),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요(辭讓之心 禮之端),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단서다(是非之心 智之端).' 

 '사람은 사지(四肢)를 가진 것처럼 이 네 단서를 지니고 있는데, 이를 불이 처음에 타오르기 시작하듯, 샘이 처음 솟아나듯 확충시키면, 사해(四海)를 편안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을 확충시키지 않으면 (옹졸하여) 제 부모 섬기기에도 부족하다.'

 

 우산지목(牛山之木)의 예를 들었다.

'우산(牛山)에 있던 나무와 풀은 사람과 동물로 인하여 없어져 버렸고 그 결과 민둥산이 되었다. 처음 인간의 본성도 이와 같았으나, 후천적으로 나쁜 모습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본성을 포기해서는 않된다. 인간은 착하게 살아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자신에게 포악하게 대하는 것을 자포(自暴)라고 한다. 나는 불가능하다고 자신을 버린 사람을 자기(自棄)라고 한다.

둘을 합해 자포자기(自暴自棄)라 한다.' 

 

 *맹자와 고자(告子)의 성선(性善) 논쟁.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버들가지와 같고 인의는 버드나무로 만든 술잔과 같다. 인의는 본성에서 곧바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모종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본성과는 무관하게 외재하는 것이며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했다.

 맹자는 '술잔을 버드나무의 결을 따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의라는 것도 사람의 본성에 따라 행하는 것이지, 강제적 힘을 가해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인의는 인간의 선천적 본성 자체로 본다'고  하였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갇힌 채 소용돌이 치는 물과 같다. 물꼬를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흐른다. 이처럼 선과 악도 후천적인 것이다'고 했다.

맹자는 '물이 좌우로 흐르는 것도 사실이지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도 사실이다. 물의 본성은 좌우 구분 없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이다. 이처럼 사람의 본성도 선과 불선의 구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왕도(王道)와 패도(覇道)

 

  맹자가 살았던 시기는, 진(秦)은 상앙(商鞅)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책을 실시하고, 위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였고, 제(齊)는 병가(兵家)인 손자(孫子)를 등용하는 등, 합종연횡의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며 힘만을 숭상하던 패도정치(覇道政治) 시대였다.

 이때 맹자는 '힘으로 인(仁)인양 가장하는 것을 패(覇)라 한다.'고 규탄하며, 패도를 행한 대표적 제후로 제(齊) 환공(桓公), 진(晉) 문공(文公), 송(宋) 양공(襄公), 진(秦) 목공(穆公), 초(楚) 장공(莊公)을 들었다. 이들을 '춘추5패(春秋五覇)'라 한다.

맹자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주장했는데, 유가의 성왕(聖王)들을 예로 들면서, '덕이 많은 사람만이 천명을 받들어 임금이 될 수 있고, 덕의 유무는 백성들이 그를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또 이렇게 말했다.

'힘으로써 인(仁)을 가식하는 자는 패(覇)이다. 패는 간혹 큰 나라(大國)를 이룬다. 덕으로써 인을 행하는 자는 왕이 된다. 그러나 왕자라고 반드시 큰 나라를 기대하지는 못한다. 탕(湯)임금은 칠십리로써 했고, 문왕(文王)은 백리로써 했다.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심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이 심복시키는 것이다. 공자의 칠십 제자가 그랬다.(공손추(公孫丑) 상편)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왕도정치에 대하여 묻겠소이다.'

 맹자가 답하였다.

'옛날 문왕이 기주(岐周)를 다스릴 때 경작하는 자들에게 9분의 1을 세금으로 받았고, 벼슬하는 자들에게 대대로 녹(綠)을 지급하였으며, 국경과 시장에서는 기찰할 뿐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습니다.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금하지 않았으며, 죄인을 처벌하되 그 죄가 처자식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였습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환(鰥)이라 하고, 남편 없는 것을 과(寡)라 하며, 자식 없는 것을 독(獨), 어리면서 부모 없는 것을 고(孤)라 합니다.

 이 넷이 천하의 불쌍한 백성들이며 하소연 할 곳 없는 자들 입니다. 그래서 문왕은 정치를 할 때, 반드시 이 넷을 먼저 돌보았습니다. 시경에서도 '부유한 사람은 괜찮지만, 홀로인 자들이 걱정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양(梁)나라 혜왕(惠王)이 맹자에게 물었다. '노인장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찾아오셨는데,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을 주시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왕께서 하필이면 왜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로울까?’ 하시면, 관리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에 이로울까? 어떻게 하면 내 한 몸 이로울까?’ 합니다. 어진 사람은 어버이를 버리는 법이 없고, 의로운 사람이 자기 임금을 가볍게 여기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왕께서는 오직 어질음과 의로움을 좇으셔야 합니다.'

그 말에 혜왕이 입을 다물었다.

 

 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나는 나랏일에 정성을 다하는데 왜 백성이 늘어나지 않소이까?'

맹자가 대답했다.'전쟁 이야기를 예로 들겠습니다. 진격을 알리는 북소리 따라 무기를 들고 싸우다가 갑옷을 버리고 도망치는데, 어떤 사람은 백 보를 가서 멈추고, 또 어떤 사람은 오십 보를 가서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오십 보 도망친 사람이 백 보 도망친 사람을 비웃습니다. 왕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십 보건 백 보건 도망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와 같이 오십보 백보의 선정(善政)으로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혜왕이 맹자에게 부탁했다.'나는 어리석어 나아갈 수 없으니 부디 선생께서 가르쳐 주시오.'

이에 맹자는.

'5묘(五畝=한 묘는 30 평)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세의 어른들이 비단을 입을 수 있습니다. 닭, 돼지, 개를 기르면서 번식 시기를 잃지 않게 하면, 칠십 노인이 고기를 먹도록 할 수 있습니다. 100 묘의 밭에 일하는 시기를 징병이나 부역으로 빼앗지 않으면, 8식구의 집이 굶주리지 않게 됩니다.

 가르침을 신중히 베풀어 효도와 우애를 가르치면, 머리 희끗한 노인이 길거리에서 짐을 지고 이고 다니지 않게 됩니다. 노인이 비단옷 입고 고기 먹고, 백성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시달리지 않게 만들면, 왕노릇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공손추가 왕도와 패도의 차이점을 물었다.

'세관에서 기찰만 하고 세금을 받지 아니하면 모두 기뻐서 그 나라 길로 통행하기를 원할 것이다. 밭 가는 사람에게 조법을 적용하고 세금을 받지 아니하면 천하의 농부들이 모두 기뻐서 그 나라 땅에서 농사짓기를 원할 것이다. 상가에서 인두세와 공한지세를 받지 아니하면 천하의 백성들이 그 나라 백성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진실로 이 몇 가지를 잘 시행한다면, 이웃나라 백성들이 우럴러 보기를 부모와 같이 하리라. 백성이 이처럼 나라를 공경한다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게 되면 이는 하늘이 내신 분으로, 이렇게 되고 왕이 되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맹자는 토지를 인민에게 공평히 분배하는 정전법(井田法)을 주장했고, '인(仁)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먹고사는 환경이 넉넉하고, 규제가 없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관에서 각종규제를 풀고, 세금을 적게 부과해야 된다는 뜻이다.  

 

  민본주의(民本主義)

 

 맹자는 '백성이 제일 귀하고, 나라가 그 다음이고, 군주가 가장 가볍다. 그러므로 뭇 백성의 마음을 얻는 자가 천자가 되는 것이요, 천자의 신임을 얻는 자가 제후가 되는 것이요,  제후의 신임을 얻는 자가 대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제후가 무도하여 국가 사직을 위태롭게 만든다면, 제후는 갈아치워야 한다.' 했다.

 이런 민본주의는, '군주가 잘못하면 군주를 바꾸어야 한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의미한다.

 '임금이 크게 잘못하면 간언하고, 만약에 여러 번 간언해도 듣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그 임금을 폐하고 덕이 있는 다른 사람으로 임금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제(齌) 나라 선왕(宣王)이 물었다.

'무왕(武王)이 주(紂)를 몰아냈다고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옛 기록에 있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죽여도 좋습니까?'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고 합니다. 이런 잔적을 일개 필부라 합니다. 일개 필부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아직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가장 좋은 선은 물과 같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노자 도덕경(道德經)은 상편 하편 5,000언(言)으로 이루어진 짧은 책 이다. 그러나 이 책은 유가의 논어, 불가의 불경, 기독교의 성경과 함께 동서양을 통틀어서 가장 심오한 경전으로 꼽힌다.

 도가 경전인 이 책은 하바드대 인문 고전 선정 도서이기도 하다.

 첫 구절은 '따오 커 따오 페이창 따오.(道可道 非常道, 말 할 수 있는 도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도가 아니요), 밍 커 밍 페이 창 밍(名可名 非常名,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으로 시작된다. 

 

 노자의 생몰 연대는 후스(胡適)나 펑유란(馮友蘭) 같은 근대 학자들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나라 사마천은 사기 노장신한열전(老莊申韓列傳)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초나라 여향(術鄕) 사람으로, 성은 이(李) 씨. 이름은 이(耳), 시호는 담(聃)이다. 주나라 종묘의 수장실(守藏室) 사관 이었다. 천문 점성(占星) 성전(聖典) 전담하는 학자였다.

 공자가 와서 가르침을 청하니, 노자는 공자의 오만과 야망을 질책했고, 그 후 공자는 그를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에 비유했다.

  노자는 주나라 덕이 시드는것을 보고, 진(秦)으로 들어가는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러, 관문지기 윤희(尹喜)가 글을 남겨달라 해서. 남긴 것이 도덕경(道德經) 이다. 

 160여 세를 살았다고도 하고, 2백 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아들 종(宗)은 위나라 장군이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공자와 같은 시대에 산 노래자(老萊子)가 노자라기도 하고, 공자 사후 2백 년 후 주나라 태사(太史)였던 담(儋)이 노자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른다.'

 

도교에서 태상노군으로 섬기는 노자

 

도덕경(道德經)

 

 말 할 수 있는 도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도가 아니다.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미(美)는 언제던지 미요, 선(善)은 언제던지 선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감정의 움직임에 따라 미가 도리어 추가 되고, 의지의 움직임에 따라 선이 도리어 불선(不善)이 된다는 것을 모른다.

 성인은 상대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세계에 살지 않는다. 모든 것의 근거가 되는 무위자연 도의 세계에 살며, 말로써 사람을 교화하지 않고 말 없이 행동으로 본보기를 보여준다.

 

 선 가운데서 가장 좋은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물은 모든 만물을 자라게 하지만, 높고 깨끗한 곳에 있으려고 다른 것과 다투지 않는다. 사람들이 항상 비천하고 더럽다고 싫어하는 곳에 스며든다. 그러므로 도(道)와 비슷하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개인의 주의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다만 백성의 마음을 종합하여 자기 마음으로 삼는다. 강과 바다는 시냇물 보다 낮은 하류에 있어 냇물을 모아 왕자가 된다.

 백성 위에 서려하지 않고 몸을 낮추니, 모두가 즐거이 그에 귀의한다. 관리들이 몸에 비단옷을 두르고, 허리에 예리한 칼을 차고 다니고, 식탁에 맛있는 음식이 남아돌고, 집에 귀중한 재화가 있다면, 이런 몹쓸 행위로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교만한 도적이라 한다.

 

 도는 한없이 크므로 상하좌우에 충만되어 있다. 만물은 도를 나타내며 생성한다. 그렇지만 도는 만물을 생성하면서도 자기 소유로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무위자연의 도가 타락된 뒤에 덕이 나타나고, 덕이 타락된 뒤에 인(仁)이 나타나며, 인의 타락된 뒤에 의(義)가 나타나고, 의가 타락된 뒤에 예(禮)가 나타난다. 예는 사람의 성실성이 박약한 데서 일어나는 것이요,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첫걸음이 된다.

 

 도를 잘 닦은 사람은 그 마음이 미묘 심원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억지로 그 태도를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일에 신중을 기하여 빨리 단안을 내리지 않는 태도는 추운 겨울에 냇물을 건너갈까 말까 망서리는 것과 같다.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는 봄날에 얼음이 풀어져 녹는 것과 같다. 엄연한 태도는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 같고, 겸허한 태도는 빈 골짜기 같다. 시비청탁 가리지 않는 태도는 더러운 흙 속에 섞인 물 같다. 누가 물처럼 군중 속에 들어가서 탁한 것을 탁한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서서히 맑게 할 수 있겠는가?

 

 도를 가진 이는 매사에 욕망을 만족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족 뒤에 불만이 오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는 사람만 항상 낡은 것을 아끼고, 새로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속인들은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데는 아주 똑똑하지마는, 도를 가진 이는 홀로 어리석은 듯하다. 속인들은 세밀하고 자상하지마는, 도를 아는 이는 담박하고 무미하여 답답스러워 보인다.

 도는 다만 어렴픗할 뿐이다. 있으면서도 꼴 없는 무형(無形) 속에 동작이 있고, 없으면서 꼴 있는 유형(有形) 속에 형상이 있다. 

 

 가장 교묘한 것은 졸열한듯 하다. 아주 가득 차 있는 것은 텅 빈 것 같다. 훌륭한 웅변은 말을 더듬는 듯하다.

냉정한 것은 조급한 것을 이긴다. 찬 것은 더운 것을 이긴다. 깨끗함과 고요함이 천하의 규범이 된다.

 

 스스로 슬기롭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은 남이 옳다고 여겨 주지 않는다.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공(功)을 잃고 만다. 자기가 유능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참으로 유능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행위는 자연을 벗어난 것으로, 도를 행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먹다 남은 밥이나 얼굴에 달린 혹처럼 쓸데없는 것이다.  

 사람은 발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서서 오래 있을 수 없다. 두 다리를 벌려 큰 걸음 걷는 사람은 먼 길을 갈 수 없다. 자연스럽지 못한 행위는 오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 몸은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죽으면 굳어진다. 초목도 그렇다. 그러므로 부드럽고 유한 것이 생의 현상이요, 굳고 강한 것이 죽음의 현상이다.

 미더운 말은 꾸밈이 없고, 꾸밈이 있는 말은 미덥지 않다.

 솔직한 사람은 변명하지 않고, 변명하는 사람은 솔직하지 않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무엇이나 다 널리 알지 못하고, 무엇이나 다 널리 아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

 자연 법칙을 도덕률로 삼으면, 영구불변의 덕이 온 몸에 충족하게 되어, 인공을 가하지 않은 산의 원목 같이 질박하게 된다. 그러나 목수가 원목을 베어 인공을 가하게 되면, 다만 기구(器具)가 된다. 

 대장부는 자연에 따른 질박한 생활을 하고, 인위를 따른 허식에 찬 생활을 하지 않는다.

 

 상류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은 도를 들으면 열심히 실행한다. 중류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 한다. 하류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은 도를 들으면 우스광스럽게 여긴다. (이런 사람에게 우스꽝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도는 참 도가 아니다.)

 

 나는 세 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으니, 첫째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둘째는 사물을 검약하는 태도요, 셋째는 남보다 앞서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마음이 있기에 용감 할 수 있다. 사물을 검약하므로 도리어 궁하지 않고 넉넉할 수 있다. 남보다 앞서지 않는 겸손이 있기에 완전한 경지로 나갈 수 있다.

 

 

 

도둑에게도 도가 있나이까?

장자(莊子)의 남화경(南華經)

 

 예수 뒤에 바울이, 플라톤 뒤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자 뒤에 맹자가, 노자 뒤에 장자가 있다. 인류 8성현 중에 노자, 장자는 도교(道敎)의 창시자로 꼽힌다.

 장자는 '인간은 인간의 작은 지혜에 집착해서 자연의 도를 거역하지말고 순리로 살 것'을 강조한다.

'남화경'은 소요유(逍遙遊), 제물론(齊物論), 양생주(養生主) 등 내편(內篇)과, 병무(騈拇) 등 외편(外篇), 경상초(庚桑楚) 등 잡편(雜篇) 전 3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문장은 대체로 노자의 '도덕경' 보다 더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다.

33편 가운데 장자가 쓴 것은 내편 7편이고, 외편과 잡편은 후세 사람이 썼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중 제물론(齊物論)은 수학과 과학의 천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와 비슷하다는 학자도 있다.

 

 

 장자

 

 장자는 기원 전 290년 춘추전국 시대 송나라 사람이다. 이름은 주(周)다. 일개 아전이었으나, 초나라 위왕(威王)이 그 이름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재상을 시키려 하자, 코웃음 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다. 천금은 큰 이득이다. 재상은 훌륭한 지위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그대는 제사에 희생되는 소를 보았는가? 수년간 잘 먹이지만 결국 태묘(太廟)에 끌려가지 않을 수 없고, 그 때 가서는 소 같은 큰 짐승보다 살아있는 돼지라도 되었으면 하고 소원해도 쓸데없다. 그대가 나를 초빙함은 이와 같으니 빨리 가라. 일생을 속박되지 않고 벼슬 없이 살련다.'

 

 

 '소요유(逍遙遊)'의 '대붕도남(大鵬圖南)' 편 

 

 북녘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그 크기가 몇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붕(鵬)이라는 새가 된다. 그 등 넓이는 몇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고,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을 덮는 검은 구름 같다. 이 새는 바다에 큰 바람이 이는 계절이 오면 천지(天池)라는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

 물이 깊지 않으면 배를 띄울 수 없다. 한 잔의 물이 마루에 괴면 작은 풀잎은 배처럼 뜰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잔을 올려놓으면 바닥에 닿고 만다. 물은 얕은데 배는 크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것도 이와 같다. 바람이 두껍게 쌓이지 않으면 날개를 띄워 올릴 힘을 얻을 수 없다. 9만 리 높은 하늘에 올라야만 붕의 날개가 바람의 힘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붕은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푸른 하늘을 등지고 자유롭게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매미와 비둘기가 붕을 비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공중으로 날라 갈대밭을 빙빙 돌다가 내릴 줄 안다. 이만하면 날 만큼 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9만 리 먼 하늘까지 올라가 남쪽으로 가려 하는가?'

 교외로 소풍을 나가면 하루 세 끼만 있으면 충분하지만, 백 리 길을 가려면 하룻밤 곡식을 찧어야 하고, 천 리 길을 가려면 세 달 동안 식량을 모아야 한다. 조그만 날짐승이 대붕의 비상을 어찌 알랴.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수명은 긴 수명에 미치지 못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녂에 지는 조균(朝菌)이라는 버섯은 밤과 새벽을 모르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모른다. 둘 다 살아있는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제물론(齊物論)'의 '조삼모사(朝三暮四)' 편

 

 장자의 '제물론'은 만물을 고르게 하는 논리라는 뜻이다. 모든 것은 상대성을 지닌다. 시시비비를 초월하여 모든 사물을 평등하게 바라보라는 뜻 이다. 유일 절대의 도의 입장에서 현실 세계의 갖가지 현상, 시비 선악, 미추, 정사, 화복, 길흉, 생사등을 명확히 구분하는 상대적 가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가를 밝히고 있다.

 사물은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또 이것 아닌 것도 없다. 이쪽에서 보면 모두가 저것, 저쪽에서 보면 모두가 이것이다.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삶이 있다. 한쪽에서의 분산은 다른쪽에서의 완성이며, 한쪽에서의 완성은 다른 쪽에서의 파괴이다. 사물은 완성이건 파괴건 다같이 하나이다. 이처럼 세상 일은 모두 상대적이므로, 성인은 그런 방법에 의하지 않고, 그것을 절대적인 자연의 조명에 비추어 본다. 커다란 긍정의 세계에 의존한다.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에 불과하다. 내 손가락으로 저 사람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저 사람 손가락으로 내 손가락이 자기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이것이 저것이고 저것 또한 이것이다, 저것과 이것, 그 대립을 없애버린 경지를 '도추(道樞)'라고 한다.

 

 조련사가 어느 날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아침에는 3개, 저녁에는 4개를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가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래서 말을 바꾸었다. '미안,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는 3개를 주지.' 그러자 원숭이는 좋아했다. 실제는 아무 차이가 없는데도 노여움과 기쁨이 일어난다. 이것은 마음이 시비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시비의 구별을 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천균(天鈞)’(자연 평등의 이치)에 맡긴다. 이것을 ‘양행(兩行)’(사물과 내가 서로 어울림)이라 한다. 

 

  '양생주(養生主)'의 '포정해우(庖丁解牛)' 편

 

  유명한 요리사 포정(庖丁)이 위(魏)나라 혜왕(惠王) 앞에서 소 한 마리를 잡았다. 포정이 소를 손으로 잡고, 어깨에 힘을 넣어 발의 위치를 잡으며 무릎으로 소를 누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고기와 뼈가 깨끗이 발라졌다. 리듬을 탄 칼질소리는 마치 ‘상림무(桑林舞)’(은나라 탕왕이 즐기던 무곡)나 ‘경수회(經首會)’(요임금이 즐기던 무곡)처럼 들렸다.'참으로 신기하도다!' 혜왕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발했다. 포정은 그 말을 듣고 혜왕을 바라보며 말했다.'황공하오나 이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기술이 극에 이르면 도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란 모두 소뿐이었으나, 3년이 지나자 소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이르렀습니다. 요즘 저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소를 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감각이 멈추고 마음만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를 뿐입니다. 소의 몸에 자연스레 나 있는 틈을 따라 칼질을 하므로 커다란 뼈는 물론이고 근육이나 살이 마구 얽힌 부분이라도 하나 흐트러짐 없이 발라낼 수 있습니다.

 보통 요리사는 한달에 한번 칼을 바꾸고, 솜씨 있는 요리사는 1년에 한번 칼을 바꿉니다. 칼날은 오래 사용하면 뼈에 부딪쳐 날이 빠지거나 무디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칼은 19년이나 사용하여 벌써 수천 마리 소를 발랐지만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지 않습니까?

 저는 근육과 뼈가 얽힌 어려운 부분에 이르러, 눈을 한 점에 집중하면, 동작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칼이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 모를 지경에 이릅니다. 이윽고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살점이 흙덩어리처럼 뼈에서 떨어집니다.  이 말을 듣고 혜왕은 감동하여 말했다. '정말 훌륭하구나. 포정은 양생(養生)의 이치를 터득했다.'

 

 '인간세(人間世)'의 '무용(無用)의 용(用)' 편

 

 목수 석(石)이 제나라를 여행하다가 곡원(曲轅)이라는 곳에 이르러 토지신을 모신 사당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상수리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가릴 수 있을 만큼 크고, 굵기는 백 아름이나 되며, 그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정도였다.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큰 가지만 해도 수십 개가 되었다. 그 주위에 구경꾼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으나 목수 석은 본 척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러자 제자가 석에게 물었다.'제가 도끼를 들고 선생님을 따라다닌 이래로 이렇게 훌륭한 나무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석이 대답했다.'저 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다. 배를 만들면 그냥 가라앉을 테고, 널을 짜면 금방 썩을 것이고, 그릇을 만들면 곧 망가질 것이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를 테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쓸 게야. 그러니 저건 재목으로 쓸데가 없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저렇게 오래 살 수 있는 게야.' 목수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 그 상수리나무가 꿈에 나타나 말했다.'너는 도대체 나를 어디다 비교해서 쓸모없는 나무라 하느냐? 필시 인간에게 유용한 나무에 비교했을 테지. 하기야 배, 귤, 유자 같은 나무는 열매가 익으면 사람들이 따 먹고, 그러다 보면 가지도 부러질 테지.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어질 것이야. 결국 그 나무는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삶이 괴롭고, 그러니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도중에 죽어 버리지. 스스로 세속의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야.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오늘날까지 오로지 아무 소용이 없는 존재이기를 바라며 살아왔고, 이제 천수를 마감하려는 때에 이르러 마침내 아무 쓸모 없는 나무가 되었다. 너희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내게는 정말 소중한 것이니, 만일 내가 쓸모 있는 나무였다면 벌써 베어졌을 것이야. 너와 나는 자연계의 사소한 현상에 지나지 않아. 한 물건이 다른 물건의 가치를 정해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건가? 너처럼 쓸모 있는 존재이고 싶어 스스로의 생명을 갉아먹는 자야말로 실제로는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야. 그런 쓸모없는 인간이 나처럼 쓸모없는 나무의 진가를 알아볼 리 없지.'

   

  '지식'의 상대성에 관한 글

 

 사람이 무엇에 대해서 안다고 하지만, 소위 내가 안다는 것은 참으로 아는 것인가? 사람은 생명에 한도가 있으니, 한도가 없는 것을 한도가 있는 생명으로 쫒아감은 위태로우며, 무엇을 참으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태로운 것이다. 

 

 사람은 습한 곳에서 자면 요통이 생겨 죽는다. 그러나 미꾸라지는 어떤가? 사람은 나무 위에 살면 불안하고 신경이 고통스럽다. 그러나 원숭이는 어떤가? 사람, 미꾸라지, 원숭이의 거처 중에서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가?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올빼미와 까마귀는 쥐를 먹는다.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구미를 가졌는가? 사람은 미인을 사모하는데, 물고기는 미인을 보면 물 속 깊이 도망가고, 새는 공중으로 날라가고, 사슴은 도망간다. 어떤 것이 올바른 미의 표준이라고 하겠는가?

 

 나는 꿈에 나비가 되어 이리저리 날라다니니 어디로 보나 나비였다. 나는 내가 나비인 줄로 알고 기뻐했고,  장자인 것을 알지 못했다. 곧 나는 깨어났고, 다시 장자가 되었다. 지금 나는 사람으로써 나비 꿈을 꾸었는지, 나비인데 사람이라고 꿈을 꾸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과 나비 사이엔 반드시 구별이 있다.  

 

 도둑이 상자를 열고 꿰짝의 재물을 훔치려는 것을 막으려면, 상자를 노끈으로 단단히 묶고 자물쇠를 잠그면 된다. 그러나 강한 도둑은 돈궤와 상자를 몽땅 어깨에 메고 도망한다. 도둑은 동여맨 노끈이 약해서 끊어질까 염려할 뿐 이다. 그러니 세상의 지식이라는 것은, 강한 도둑이 들고 가기 좋게 한 것 밖에 더 되는가? 도둑에게 편의를 보아준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도척(盜跖)의 제자가 '도둑에게도 도가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무엇에나 도가 없을 것인가? 방 안에 감춰둔 물건을 알아맞히는 것은 성(聖)이요,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요, 뒤에 나오는 것은 의리다. 성공할 것을 예상함은 지(知)요, 장물을 고루 나누는 것은 인(仁) 이다. 이 다섯가지를 갖추지 않고 능히 큰 도둑이 된 자는 천하에 없었다.‘ 하였다.

 

 활이나 그물에 대한 지식이 늘면 공중의 새들이 괴롭고, 낚시와 그물에 대한 지식이 늘면 물 속의 고기들이 불안하다. 함정과 덫에 대한 지식이 늘면 들짐승이 괴롭고, 교활과 거짓 말솜씨가 늘면 세상이 어지러워 진다. 임금이 지식을 갈망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나라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노자는 '큰 재주는 오히려 졸(拙)해 보인다' 하였다. 단순하고 덤덤한 것을 제쳐놓고, 보기 좋고 간사한 것을 좋아하면 세상이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욕심

 

  장자는 언젠가 조릉(彫陵)이라는 곳에서, 이상한 까치가 자기 이마를 스칠 정도로 낮게 날아서 밤나무 숲으로 가는 것을 보고, 활로 그 까치를 잡으려고 급히 따라갔다.

 그런데 가서보니, 그 까치는 장자가 자기를 잡으려고 하는 줄 모르고 숲속의 버마재비를 잡으려고 정신없이 날라간 것인데, 막상 버마재비는 까치가 자기를 잡으려고 하는 줄 모르고, 나무 그늘에 쉬고있는 매미를 잡으려고 집중하여 자신을 잊고 있었다.

 장자는 이를 보고 깜짝 놀랬다. '모든 것은 이(利)와 해(害) 두가지를 서로 부르고 있으니, 욕심이라는 것이 두렵다.' 하고 활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런데 이때 숲의 밤나무를 지키던 사내는, 장자가 밤을 따러 온 도둑으로 오해하여 따라오며 욕을 했다. 집에 돌아온 장자는 자기도 까치를 잡으려는 욕심에 집착하여 밤 지키는 사내가 쫒아오는 걸 몰랐음을 뉘우쳐, 3개월간 뜰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한다.

자사(子思)의 중용(中庸) 

 

 중용(中庸)은 원래 한 권의 책이 아니다. 예기(禮記) 49 편 중에서 31 편만 뽑은 것이다. '예기'는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춘추(春秋) 등 오경(五經)의 하나로, 예법을 중심으로 풀이한 책이다

 중용의 저자는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라는 설, 송나라 때 주희(朱熹)라는 설, 두가지가 있다.

사기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보면,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가 급(伋)을 낳으니 그가 자사(子思)다. 그가 나이 62세에 송나라에서 중용을 지었다'라는 대목이 있다. 또 주희(朱熹)가  예기 가운데서 대학, 중용 두 편을 사서(四書)로 정하고, 사서집주(四書集注)를 내놓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자사는 공자가 아들 공리(孔鯉)가 죽자 며느리는 개가시키고 데리고 살았던 세 살짜리 손자였던 점을 미루어 중용(中庸)을 지었다고 봄이 타당할 것 같다. 

 

자사

 

  먼저 중용(中庸)의 말뜻부터 살펴보자.

 주자(朱子)는 ‘중(中)이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도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不偏不倚無過不及)’을 일컫는다 했고, '용(庸)'이란 떳떳함(平常)을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자(程子)는 ’기울어지지 않는 것(不偏)을 중이라 하고, 바꾸어지지 않는 것(不易)을 용‘이라 했다. 

 

인생을 살아감에 중용은 무엇일까? 모난 것과 둥근 것의 중간이 중용일까?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지 않는 것이 중용일까? 중용이란 무엇일까?

   

중용은 총 33장으로 되어 있는데,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져 있다.

전반부는 주로 중용(中庸) 또는 중화(中和)를 논하고, 후반부는 성(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장부터 살펴보자.

 

1.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하늘이 명한 것을 性이라 하고, 성을 따름을 道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敎라고 한다)

是故 君子愼乎其所不睹(고로 군자는, 그가 보이지 않는 때 조심하고), 恐懼乎其所不聞(그가 들리지 않을 때 두려워하고), 愼其獨也(그가 홀로 있을 때 삼간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中이라 하고), 發而皆中節謂之和(나타나 절도에 맞는 것을 和라고 한다).

中也者天下之大本也(中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고), 和也者天下之達道也(和라고 하는 것은 천하의 達道 이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中和가 이루어지면, 천지에 질서가 잡히고, 만물이 자란다).

 

*중용 첫머리 제1장을 고금 선비들이 가장 많이 논의하였다. 중용이 인생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中)이란 희노애락이 미발(未發)된 것을 말하며, 발(發)하여 중(中)에 의해 조절된 것을 화(和)라고 한다. 이런 중화(中和)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수양 방법으로 '신독(愼篤)'이 있다.

 

2.

仲尼曰 君子中庸  小人 反中庸(중니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중용이요, 소인은 중용에 반대된다).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군자의 중용은 군자로서 때에 알맞게 처신하는 것이고), 小人之反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소인의 중용에 반하는 것은 소인으로서 제멋대로 꺼리낌 없는 것이다). 

 

6.

子曰 舜 其大知也與(공자 가라사대, 순임금은 큰 지혜를 지니신 분이었다). 舜 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묻기를 좋아하시고, 평범한 말도 살피시기 좋아하시고, 악함은 숨기시고, 선함을 드러내시며),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斯以爲舜乎(그 두 끝을 잡아 그 가운데를 백성들에게 쓰셨으니, 그것이 순이 된 까닭이다). 

 

7.

子曰 人皆曰予知 驅而納諸罟擭陷阱之中而莫之知辟避也(공자 가라사대, 사람들은 자신을 지혜롭다고 말하나, 사실은 그물이나 덫이나 함정 가운데에 치우치게 몰아넣어도 그것을 피할 줄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人皆曰予知 擇乎中庸而不能期月守也(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지혜롭다고 말하나, 중용을 택하여 한달도 지키지 못한다).  

 

14.

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군자는 자기 바탕을 따라서 행동하고, 바탕 밖은 바라지 않는다).

在上位 不陵下 在下位 不援上 (윗자리에 있어서는 아래를 업신여기지 아니하며, 아랫자리에 있어서는 웟사람에게 매달리지 않고), 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에게 구하지 않아 원망이 없고), 上不怨天 下不尤人(위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 남을 탓하지 않는다).

 

子曰 射有似乎君子 (공자께서, '활쏘기가 군자와 비슷함이 있으니),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정곡을 잃으면 도리어 그 자신의 자세를 돌아본다' 하셨다).

 

20.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誠은 하늘의 도요, 정성스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誠者 不勉而中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誠은 힘쓰지 않아도 맞게 되며,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져, 中道를 따르는 성인과 같다).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널리 배우며,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며, 두터이 그것을 행한다).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남이 한번 해서 능하다면, 자기는 백 번 하고, 남이 열 번 해서 능하다면, 자기는 그것을 천 번 한다).

果能此道矣 雖愚 必明 (이런 도에 능하다면 비록 어리석다 하더라도 반드시 밝아질 것이며), 雖柔 必强(비록 유약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22.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오직 천하의 至誠만 그 性을 다할 수 있다).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그 性을 다할 수 있으면, 곧 사람의 性을 다할 수 있고),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사람의 성을 다할 수 있으면, 곧 사물의 性을 다할 수 있고),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사물의 性을 다할 수 있으면, 천지 화육을 도울 수 있고),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에 동참하는 경지가 될 것이다).

 

*사람의 일이 어느 하나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냥 아무렇게나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면 비로소 일의 형태가 보이게 되고 밖으로 드러나고 분명하게 된다. 환하게 밝으면 만물과 통하고, 사람을 감동시키게 되고, 천지변화에 동참하는 경지에 이른다. 

 

24.

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지성의 도는 가히 앞을 알수 있게되니, 국가가 장차 흥하려면 반드시 상서로움이 있다).

國家將亡 必有妖孽 見乎蓍龜 動乎四體(국가가 장차 망하려면 반드시 재앙이 있어서 시초점(蓍)이나 거북점(龜)에 나타나고, 집권자 사지(四肢)의 움직임에 나타난다). 

禍福將至 善 必先知之, 不善 必先知之, 故 至誠 如神(화와 복이 장차 이를 것을 반드시 선에서 먼저 알며, 불선에서도 반드시 먼저 그 징후가 나타나니, 고로 至誠은 神과 같다).

 

25.

誠者 物之終始, 不誠無物 是故君子誠之爲貴(誠은 사물의 시작과 끝이다. 성이 없다면 사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성을 귀하게 여긴다).

 

32.

唯天下至誠 (오직 천하의 至誠만), 爲能經綸天下之大經(천하의 대경(大經=孝經)을 경륜할 수 있으며), 立天下之大本(천하의 대본을 세울 수 있으며), 知天地之化育(천지 화육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夫焉有所倚(어찌 우리가 의지할 딴 무엇이 있겠는가).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하게 할 수 있으며 이루지 못할 일 없다. 천지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제 할 일을 다 하는 것은 性을 다하려고 일부러 애쓰기 때문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저절로 그렇게 되지 않기에 항상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

 

 

 맹자(孟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고, 순자(荀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맹자는 '사람은 태어나면서 악을 거부하고 선을 실행하려는 마음씨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반대로 순자는 '사람은 누구나 다 관능적 욕망과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고 하였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도 성악설 이다. 그는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자연 상태의 삶은 고독하고 불결하며, 야만적이고 부족하다. 자연 상태란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라고 주장했다.

 

 순자의 이름은 황(況)이며 기원 전 315년에 조(趙)나라에서 태어났다.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와 자유(子游)의 학통을 전승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초(楚)나라 재상 춘신군(春申君)에 기용되어 만년에 난릉(蘭陵) 령(令)을 지냈고, 진시황의 천하 통일 뒤까지 살았다.

순자의 제자는 한비자와 이사(李斯)가 있다. 한비자는 법가(法家)였고, 이사는 진시황의 측근으로 소전(小篆) 글씨체의 창시자다. 

 순자(荀子) 32 편이 있는데, 권학(勸學), 수신(修身), 비상(非相), 중니(仲尼), 군도(君道), 신도(臣道), 천론(天論), 성악(性惡) 등이다.

 

  성악설(性惡說)

 

 사람의 본성은 악(惡)하다. 착하지 않다. 착하게 보이는 것은 인위적으로 꾸민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한다. 이익을 따르기 때문에 싸우고 빼앗는 일이 일어나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나면서부터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 이를 따르기 때문에 잔악한 사건이 생겨나고 일이 진실되게 진행되지 않는다. 나면서부터 눈과 귀의 욕심이 있어 좋은 색과 소리를 좋아한다. 이를 따르기 때문에 음란한 일이 생겨나고 예의와 교양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과 감정에 따르면, 분수를 어기고 도리를 지키지 못하여, 반드시 싸우고 빼앗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사회가 혼란해지고 난폭해진다. 반드시 스승의 교화와 예의의 인도가 있은 연후에 안정으로 돌아간다.

 굽은 나무는 반드시 그것을 바르게 하는 도지개(틈이 가거나 뒤틀린 활을 바로잡는 틀)에 대거나 찜 쪄서 교정해야 반듯하게 되고, 잘 들지 않는 칼은 반드시 숫돌에 간 다음에야 예리하게 되는데, 이처럼 인간의 본성은 스승의 교육을 배운 연후에 잘 다스려 진다.

 요 임금이 순(舜)에게

'인간의 성정은 어떠한 것인가?'

물었더니, 순이 대답하기를,

'인간의 성정은 심히 불미스럽습니다. 장가 들어서 처자가 생기면 효도가 쇠퇴하며, 물질적인 것이 충족되면 친구에의 신의가 쇠퇴하고, 지위나 봉록이 높아지면 임금에 대한 충성이 쇠퇴합니다. 인간의 성정은 불미스럽습니다. 오직 현인만이 그렇지 않을 뿐입니다.'

라고 하였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착한 것인데, 그 본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악하게 되는 것'이라 하나, 이는 잘못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후천적인 인위(人爲)를 구별하여 잘 살피지 못한 것이다.

 본성이라는 것은, 하늘이 내놓은 그대로 자연적인 것이므로 후천적으로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반면 인위라는 것은 예의나 학문처럼 배우고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본성과 인위의 구별이다. 인간이 착한 것은 인위의 결과이며, 본성은 원래 악한 것이 분명하다.

 

  권학편(勸學篇)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고,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반성하면 지혜가 명석해지고 행동에 과오가 없게 된다. 높은 산에 올라가 보지 않으면 하늘의 높음을 알지 못하고, 깊은 골짜기에 가 보지 않으면 땅의 두터움을 알지 못하며, 고대의 성왕(聖王)이 남긴 훌륭한 말을 듣지 않으면 학문의 광대함을 알지 못한다.

 수레나 말을 잘 이용하면 다리가 약해도 천리를 갈 수 있고, 배와 노를 잘 이용하면 헤엄을 칠 줄 몰라도 강과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군자는 학문을 배울 때 주변을 잘 가려야 하나니, 거처함에는 반드시 마을을 잘 가리고, 공부함에는 반드시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배운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몸을 훌륭하게 하고, 소인의 학문은 남의 기분에 들기 위한 것이다. 묻지 않는데 대꾸하는 것은 오(傲, 경솔하고 거만함)라 하고, 하나 물었는데 둘을 대답하는 것은 말이 많다 하고, 말할 처지인데 말하지 않는 것은 은(隱, 숨김)이라 하고, 상대의 기색을 살피지 않는 것을 장님이라 한다. 군자는 거만하지 않고, 말이 많지 않고, 숨기지 않고, 상대의 기색을 잘 살피어 근신한다.

 화살 백 발 가운데 한 발이 실패하더라도 훌륭한 사수라 하기에 부족하고, 천리 길에서 반걸음 미치지 못해도 훌륭한 어자(御者, 마차 부리는 사람)라 하기에 부족하다.

 마찬가지로 인의의 문제를 추구함에도, 그 예법이 정해지지 않은 곳까지 유추하여 전일(全一)하게 통하지 못한다면, 그를 훌륭한 학자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학문이란 도(道)에 전일함이니, 들락날락 무상함은 길거리의 평범한 사람이나 할 일이다.

 학문이란 중지하지 말아야 한다. 푸른색은 쪽(藍, 마디풀과의 일년 생 초본)에서 나오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

 

*여기서 청출어람(靑出於藍) 고사가 나온다.

 남북조 시대 북조(北朝)의 공번(孔磻)이란 선비가 있었다. 이밀(李謐)이란 제자가 있었는데, 이밀의 실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몇 년 지나 그를 앞서자, 공번은 스스로 이밀의 제자가 되었다는 실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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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륜편(天倫篇)

 

 하늘의 운행은 사람의 일과 관계없이 일정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요(堯) 임금 때문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걸(桀) 임금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늘의 운행에 잘 맞추어서 잘 다스리면 길하고, 잘 다스리지 못하면 흉하다.

 농업과 같은 근본적인 산업에 힘쓰고, 쓰는 것을 절약하면, 하늘도 그를 가난하게 할 수 없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올 것을 대비하여 여름 준비를 하고, 여름이 되면 가을 준비를 하는 것처럼, 미리 준비하여 때 맞추어 움직이면, 하늘이 그를 병들게 할 수 없다.

 자연의 운행을 미리 예측하여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잘 챙겨서 일관되게 대비하면 하늘이 그에게 화를 줄 수 없다. 그러므로 홍수나 가뭄이 그를 굶주리거나 목마르게 할 수 없고, 추위와 더위가 그를 병들게 할 수 없으며, 요괴가 그를 흉하게 할 수 없다.

 농업과 양잠 같은 근본 산업이 황폐해지고 쓰임이 사치스러워지면 하늘도 그를 온전하게 할 수 없으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인간의 일을 어기고 함부로 행하면, 하늘도 그를 길하게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홍수나 가뭄이 이르지 아니해도 굶주리게 되고, 추위와 더위가 다가오지 아니해도 병들게 되며, 요괴가 이르지 아니해도 흉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늘과 사람의 경계에 분명히 해야 최고의 사람이다. 하지 않고도 이루어지고 구하지 않고도 얻어지는 것은 하늘의 직분이다. 이러한 하늘의 직분은 심오하다. 고로 사람은 하늘과 더불어 직분을 다투지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운행질서를 가지고 있고, 땅은 스스로 재물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은 스스로 해야 할 도리가 있다. 이와 같이 각각 일을 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어울리는 방법이다. 이를 모르고 하늘과 같아지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수신편(修身篇)

 

 군자는 나를 그르다고 충고해 준 사람을 스승으로 존경하고, 옳다고 격려해주는 사람은 친구로 친애하며, 아첨하는 사람은 적이라 생각하고 미워한다. 그러면 진보하지 않으려 해도 진보하지 않을 수 없다.

 소인은 반대로, 극도로 난폭하게 행동하고서도 남이 나를 비방하면 증오하고, 극도로 어리석은 일을 하고서도 남이 나를 현명하다고 하길 바란다. 마음이 호랑이나 이리처럼 잔혹하고, 행동이 금수처럼 못됐으면서 남이 자기를 적으로 여김을 원망하며,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힘써 간(諫)하는 사람을 멀리하며, 올바른 사람을 웃음거리로 알고, 성실한 사람을 적이라 한다. 그래서 망하지 않을려야 망하지 않을 수 없다.

 뜻을 잘 닦아 바르게 되면 부귀에 굴하지 않고, 도덕이 중후하면 왕공(王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덕을 중시하는 사람은 때로 외계의 사물도 경시 할 수 있다. 옛말에 군자는 주체성을 지녀 외물을 마음대로 부리고, 소인은 주체성이 없어 외물에 부림을 당한다고 한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훌륭한 농부는 어쩌다 홍수나 한발이 있다해서 경작을 그만두지 아니하며, 훌륭한 상인은 어쩌다 손해를 본다해도 그 때문에 장사를 그만두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군자는 빈궁하다 해서 정도(正道)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태도가 공경스럽고 마음이 성실하며, 법도가 예의에 맞고 감정이 인애로우면, 이런 사람은 이적(夷狄)의 땅에 가더라도, 이적이 감화되어 그를 존경한다.

 괴롭고 수고스런 일에 맨 먼저 나서고, 즐거움 많은 일은 남에게 양보하며, 성실하고 정직하고 맡은 바 직분에 세밀하면, 이런 사람은 이적의 땅에 가더라도 이적이 감화되어 그를 신뢰한다.

 반면 오만하고 속임수가 많으며, 예를 지키지 않고 감정이 잡박하고 천하면, 이런 사람은 천하를 구석구석 돌아다녀도 사람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긴다.

 괴롭고 수고스런 일은 남에게 밀어붙이고 자기는 빠지고, 즐거운 일은 재빠르게 차지하여 남에게 양보하지 않으며, 사악하고 성실치 않고 적당히 일하는 사람은 비록 천하의 구석구석에 가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그를 버린다.

 군자는 빈궁하더라도 뜻이 광대하고, 부귀하더라도 태도가 공손하며, 고달플 때도 용모를 구차하게 흐트르뜨리지 않으며, 싫다고 지나치게 뺏지 않고, 좋아한다고 지나치게 주지 않는다.  

 

 비상편(非相篇)

 

  요 임금은 장신인데 순 임금은 단신이고, 문왕(文王)은 장신인데 주공(周公)은 단신이었다.

 위나라 공손여(公孫呂)는 얼굴이 매우 길어 석 자(약 90센티) 였고, 폭은 매우 좁아 세 치(9센티) 밖에 안 되고, 그 속에 눈, 코, 귀가 갖추어진 기형이었으나, 대단한 인물로 천하에 이름을 날렸다.

 초나라 손숙오(孫叔鰲)는 툭 튀어나온 대머리에 왼발이 더 길고 기형이었으나, 초나라를 패자가 되게 하였다. 초나라 섭공자고(葉公子高)는 수척하고 작은 단구척신(短軀瘠身)으로, 걸어다니는데 옷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할 것 같은 약골이었으나, 백공(白公)의 반란이 일어나자, 재상이던 자서(子西)나 사마(司馬, 국방상)였던 자기(子期)는 반란군에 살해되었으나, 서울로 들어가 백공을 벌하고 초나라 권세를 장악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다.

 공자의 모습은 키가 장신인데다 얼굴이 마귀 쫒는데 쓰는 가면처럼 우습게 생겼고, 주공의 형상은 고목이나 꼽추 같았고, 고요(皐陶)의 형상은 안색이 껍질 벗겨낸 오이처럼 청록색이고, 굉요(閎夭)의 형상은 얼굴에 온통 털이 나서 살결을 볼 수 없었으며, 이윤(伊尹)은 얼굴에 수염과 눈섶이 없었고, 우 임금은 절룸발이처럼 뛰어다녔으며, 탕 임금은 반신불수였지만, 모두가 마음이 바르고 덕이 높았기 때문에 후세에까지 존숭되고 있다.

 반면에 걸(桀)과 주(紂)는 모습이 장대한 천하의 호남이었고, 근력은 백 사람에 필적하는 자들이었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들을 악의 표본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용모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견문이 좁고 논의가 비열한 데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니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형상을 취하는 것과 뜻을 취하는 것 중 어느 것을 취함이 옳겠는가?

 사람의 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옛 성인이 무시한 바이고, 학문하는 사람이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용모와 골격을 보고 점치는 것은 마음을 논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마음을 논하는 것은 실천의 근거가 되는 학술을 선택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학술이 올바르고 마음이 종순하면, 형상이 비록 추악하다 해도 군자라 해도 무방하다. 형상이 비록 잘생겼다 해도 마음 가짐과 학술이 약하면, 소인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 비상편(非相篇)을 요즘 관상학 하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비상편을 자세히 읽어보면, 관상 보다 심상(心相)을 강조하고, 심상 보다 학문의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아제아제바라아제

현장(玄裝)스님의 반야심경(般若心經)

 

 불교도 아니라도 색즉시공(色不異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반야심경 구절은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시주승 독경, 혹은 초상집 염불, 또는 산사 예불에서 듣는 스님 염불 90프로가 이 반야심경이다.

 반야심경은 총 270자로 된 짧은 경문이다. 1300년 전 현장삼장(玄裝三藏) 스님이 천축에서 불경을 가져와 서안 자은사(慈恩寺) 대안탑(大雁塔)에 봉안하고, 한문으로 번역했다.

 

현장삼장 스님 초상

 

 이 반야심경은 지구상에서 가장 빈틈없고 완전무결한 논리를 가진 사상이다. 서양철학의 큰 숙제인 유물사상과 유심사상을 합일하여 각(覺)의 세계로 귀납시켰다 하여, 지금은 서양에서 오히려 깊이 연구하고 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摩訶)는 크다, 많다, 초월하다의 뜻이다. 반야(般若)는 프라즈냐(prajna)의 음사어로 지혜란 뜻이다.

 바라밀다(波羅蜜多)는 파라미타(parammita)의 음사어로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다.

심(心)은 흐리다야(hrdaya)의 음사어로 심장이라는 뜻이며, 경(經)은 수트라(sutra) 즉 성전을 의미한다.

 심경(心經)은 핵심되는 부처님 말씀이란 뜻이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부처님의 화신불인 관자재보살(관음보살)이  반야바라밀다(深般若波羅密多)의 사상을 깊이 수행할 때,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 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고액(苦厄)과 고통을 넘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오온이란, 유형의 현상계와 물질을 총칭하는 색(色), 감각작용을 뜻하는 수(受), 지각(知覺)을 뜻하는 상(想), 행위를 뜻하는 행(行), 식별을 뜻하는 식(識), 다섯가지를 말한다.

공(空)은 무엇인가? 공은 우리 언어로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유(有)의 반대인 무(無)도 아니고, 실제 존재하는 실체에 반대되는 가공의 허상도 아니다. 불확실한 우리 오관(五官)에 포착되는 부정확한 것이 아니라,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떠난 실상이다. 프라톤의 '이데아' 비슷한 것이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불(舍利佛)이여, 깨닫고 보면, 물질 현상계인 색은 실상인 공과 다르지 않고, 반대로 실상인 공은 현상계인 색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적 현상이 곧 본질인 공이며, 공이 곧 물질적 현상이니라.

그러므로 중생의 마음에 새겨진 감각작용, 지각작용, 의지적 충동, 식별작용 같은 수상행식(受想行識)이 곧 여래(如來)의 마음에 새겨진 공(空)이요, 여래의 공(空)이 곧 깨닫지 못한 이의 색(色)과 같으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불이여, 이 우주(十方世界)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모든 존재와 현상과 법칙이 원래는 헛된 상이니, 이 모든 현상계는 관세음보살의 차원에서는, 새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죽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고, 증가하는 것도 아니고, 감소하여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부증불감(不增不減)이란 대목을 주목하자.

 사물의 본질은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는 질량불변의 법칙과 같다.

 불구부정(不垢不淨)은 선, 악, 미, 추 가치판단의 상대적 허무함을 말한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은 생사를 상대적 개념으로 해석하지 않고, 동일 개념으로 보고 있다. 

 

*이 맥락에서 서산대사의 시도 그 뜻이 이해될 것이다.

生者一片浮雲起, 死者一片浮雲滅.

(태어남은 한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조각 뜬구름이 없어지는 것이다).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그러므로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떠난 실상의 세계인 공(空)에서는, 우리의 불확실한 오관에 포착되어오는 물질계의 모든 것은 없는 것이다. 육진(六塵)이라 불리는 눈, 코, 귀, 혀, 몸, 의지 같은 감각 기능도 원래는 없고, 이 감각 기능을 통해서 들어오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사유작용 같은 육식(六識)도 원래 없다. 한마디로 우리의 불확실한 안계(眼界)나 의식계를 통해서 인식된 것은 다 오류요, 원래 없다는 것이다.

 

*신실재론(新實在論)

 여기서 칸트의 인식론(認識論)과 버트란드 러셀의 신실재론(新實在論)을 참고하자.

 이 세상에는 여러 대상들이 있는데 이러한 대상의 실존, 다시 말해 그것이 우리에게 지각되는 바대로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려고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태도를 '소박한 실재론'의 입장이라고 한다.

 '자연적 실재론(natural realism)'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은 인식의 감각적 단계를 인식과정 전체와 동일시하는 태도이다. 객관적 실재가 지각을 통해 완전히 우리에게 인식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 소박한 실재론은 시간적, 공간적 규정과 감각적 성질까지도 객관적 사물의 구성요소로 본다. 그런 태도는 지각의 대상이 그 지각을 갖는 그 어떤 주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실재함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거론되는 '실재론'은 좀 더 정교한 이론적으로서, 이를 과학적 반성에 의해 도출되었다고 하여 '반성적 실재론'이라고도 한다.

 '과학적 실재론'은 상식적인 지각의 세계가 곧 실재의 세계라 보는 '소박한 실재론'의 견해를 비판한다. 실재와 지각이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색은 시각(視覺)에 나타나는 것처럼 존재하지 않고 에테르(ether)의 진동으로 비롯된 것이며, 소리 역시 색과 마찬가지로 주관적 감각에 불과하다. 맛이나 냄새도 객관적으로 우리의 밖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박한 실재론은 비록 상식에는 부합되지만, 과학을 통해 볼 때 많은 수정이 불가피함을 지적하고 있다. 과학적 실재론은 ‘우리의 감각이나 지각과 상이한 에테르나 양자 등과 같은 것들이 실재한다. 이것들이 우리의 감각을 어떤 형태로든 자극하여 지각내용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공의 세계에서는 무명도 없고, 무명의 소멸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의 소멸도 없다.

 

*대승불교는 무명의 정의를 두 가지로 밝히고 있다.

하나는 일체법이 공(空)한 줄 모르고, 둘째는 마음의 본성이 불성(佛性)이며 진여(眞如)임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승의 중심사상이 공과 불성이므로, 무명의 문제도 공과 불성에 두고 설명을 한다. 공을 체달하지 못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이 부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라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특징은 무명을 실체로 보지 않고 도리어 이를 불성과 진여의 한 작용으로 본다. 대승불교는 중생들에게 무명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 무명은 본래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은 부처님 마음과 똑같은 광명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대승에서는 연기설에 대해서도 무명으로 시작하는 연기설이 아닌 부처의 마음이라 할 수 있는 진여연기설을 따른다. 무명은 본래 진실하고 청정하고 밝고 변하지 않는 진여와 불성의 성질을 띠고 있으므로, 십이연기 또한 진여와 불성의 작용이라고 설한다.

 마치 물이 오염되어 흐리고 바람이 불어 파도가 치지만 물의 본래 성질은 맑고 고요한 것처럼(水不離波, 波不離水), 중생의 마음이 무명에 물들어 갖가지 번뇌가 일어난다 해도, 그 실상은 맑고 고요해서 부처의 마음과 같다는 것이다.

 12단계 인연연기(因緣緣起)는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命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를 말하는데, 이 모든 현상이 없으므로, 죽고 사는 현상을 생각하는 그 마음도 없다는 것이다.

 

 

無苦集滅道  

 

 

 사람은 태어나므로서 늙고 근심하고 병들고 슬퍼하고 죽게 되는데, 공의 세계에서는, 태어남으로 해서 생기는 사성제(四聖諦), 즉 고집멸도(苦集滅道)도 없다. 

 

 

*사성제는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도제(道諦)로 네 개로 구성되어 있다.

 고제(苦諦)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4고(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 애별리고(愛別離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 네 가지를 합해 8고(苦)라 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고요, 싫은 사람 만나고 함께 산다는 것이 고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거나 사별하는 것이 고요, 구하는데 얻지못하는 것이 고요, 오온성고는 앞의 일곱 가지를 개괄한 오온(五蘊)에 대한 자기 중심적인 집착 그것이 고라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괴로움(dukkha)이라는 것이 고성제이다.

집제(集諦)는 집기(集起), 즉 사물이 모여 일어나기 쉬운 무명(無明)과 갈애(渴愛)를 고의 원인으로 본다. 혹은 고통의 원인인 탐욕(貪) 분노(瞋) 어리석음(癡)의 삼독(三毒)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괴로움에는 원인(samudaya)이 있다는 것으로, 즐거움을 탐하고 추구하는 갈애, 살아남으려고 하는 갈애가 바로 그 원인이라고 하는 것이 집성제이다.

멸제(滅諦)는 깨달음의 목표, 곧 이상향인 열반(涅槃)의 세계를 말한다. 번뇌를 일으키는 갈애를 남김없이 멸함으로써 청정무구(淸淨無垢)한 해탈을 얻는다고 말한다. 괴로움은 완전히 멸할 수 있으며 괴로움을 없앤 상태가 해탈이라고 본다.

도제(道諦)는 이상향 열반에 도달하는 수행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라는 여덟가지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른 수단으로 목숨을 유지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하고(正精進), 바른 신념을 가지며(正念),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는(正定) 수행법이다.

 

*참고; 절에 가서 사성제 설법을 듣고 부분만 불교의 진리라고 오해하는 보살들이 많다. 반야심경의 이 사성제도 없다는 無苦集滅道의 본뜻을 몰라 그런 것이다.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일체개공(一切皆空),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니, 안다고 생각하는 지혜도 없으며, 버리고 얻는다는 범부(凡夫)의  취사지심(取捨之心)도 없나니, 그래서 잃고 얻는 것이 없는 고로,

 

菩提薩陀 依般若波羅密多 故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제법(諸法)을 다 깨친 청정무구한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공포와 두려움이 없고, 뒤바뀐 잘못된 생각, 잘못된 몽상을 멀리 떠나 마침내 구경 열반에 들었으며,  

 

三世諸佛依般若波羅密多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전생, 현생, 내생의 모든 부처님도 오온이 다 공하다는 도리, 즉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의 반야지(般若智= 완전한 깨달음)를 얻었느니라.

 

 故知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로, 이 반야바라밀다경은, 뜻이나 말로 전달할 수 없는 큰 신비한 주문(呪文, 眞言, 陀羅尼)이며, 우주를 밝힐 큰 밝은 주문이며, 이보다 더 뛰어난 것을 생각할 수 없고, 이와 견줄 수 있는 동격의 진언을 생각할 수 없는 최상의 주문이며, 

 

*참고; 불교의 주문은 부적과 주문으로 액을 때우는 속된 사술(詐術)과 다르다. 불교의 주문을 그런데 쓰는 것은, 마치 무식한 목수가 금도끼로 장작을 패는 것과 같다.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능히 일체의 고액을 소멸시키며 진실하여 거짓이 없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설하시며 즉석에서 가로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우리 함께 피안으로 가자) 菩提(깨달음이여) 娑婆訶(영원하여라) 라고 하셨다.

 

*마지막 '아제아제 바라아제....' 부분은 범어(梵語)의 비밀신주(秘密神呪) 원음을 한문으로 옮긴 것이다. 

 

 

 

도끼 도둑의 걸음걸이

열자(列子)

 

  이 책은 중국 고대의 사상과 우화가 무진장하게 묻힌 책이다. 열자의 본명은 열어구(列禦寇)라 하지만, 실재했던 인물인지 가공 인물인지 량지차오(梁啓超)나 후스(胡適) 같은 학자도 결론 내리지 못했다.

실재 인물이 아니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열자는 노자의 제자이며, 장자의 선배로서, BC 400년 경에 정(鄭)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열자는 '천서(天瑞)', '황제(黃帝)', '주목왕(周穆王)', '중니(仲尼)', '탕문(湯問)', '역명(力命)', '양주(楊朱)', '설부(說符)' 등 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끼 도둑의 걸음걸이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렸다. 그후 그는 이웃집 아들이 훔쳐간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이웃집 아들이 걸음 걷는 모습만 보아도 도끼를 훔쳐간 도둑의 걸음걸이로 보였다. 그 얼굴을 보아도 도끼를 훔쳐간 도둑의 얼굴 같았다. 그가 말하는 모양을 보아도 도끼를 훔쳐간 도둑의 말투였다. 어떻든 그 이웃집 아들의 동작과 태도가 어느 하나라도 도끼를 훔쳐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얼마 안되어,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이 산골짜기에서 뜻밖에도 그 잃어버린 도끼를 찾았다.

 이튿날 그 이웃집 아들의 동작과 태도는 암만 보아도 도둑질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설부편(說符篇)

 

*이를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라고 한다.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지도 않은 귀신이 나오듯이 느껴진다.

 

 기우(杞憂)

 

 기(杞)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져 내리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한 사람이,'여보게, 하늘이란 공기가 가득 쌓인 것이야. 하늘이 무너질 염려는 없다네.'

하고 타일렀다. 그러자 그 남자는,'공기가 쌓인 것이 하늘이라고? 그러면 해나 달, 별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물었다. 그래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자,

'그럼 땅이 무너지면 어떡하나?'

하고 물었다.

'땅이란 흙이 잔뜩 쌓인 것이야. 그것이 왜 무너지겠나?'

 그러자 남자는 걱정거리가 없어졌다고 몹시 기뻐했다.

 장려자(長廬子)라는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웃었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참으로 엉뚱한 일이지만, 절대로 안 무너질 것이라는 말도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다. 꼴을 갖춘 것은 모두 무너지는 자연의 현실로 미루어 보건대, 하늘과 땅 또한 반드시 무너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그 말을 듣고 열자가 말했다. '하늘과 땅이 무너질 것이라 말하는 것도 잘못이고, 무너질 리 없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무너질지 안 무너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살아서는 죽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서는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에서는 미래를 모르고 미래에서는 과거를 모른다. 그러할진대 하늘과 땅이 무너지느냐 안 무너지느냐 그런 문제에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 천서편(天瑞篇)

 

 우공이산(愚公移山)

 

  옛날 북산(北山)에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산이 마주 보이는 곳에 살았다. 그의 집은 남쪽이 산으로 막혀 있어 나들이를 할 때 멀리 돌아가야 했다. 그래 어느 날 우공은 가족을 모아 놓고 의논했다.'우리가 힘을 모아 저 산을 한번 옮겨 보지 않겠느냐? 그러면 곧장 갈 수 있을 것인데?'

 그 말에 다들 찬성이라 우공은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일을 시작했다.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에 담아 발해 끝으로 옮겼는데, 워낙 멀어서 한 번 갔다 오는 데 반년이나 걸렸다.

 하곡(河曲)의 지수(智叟)가 웃으며 말렸다. '정말 어리석은 짓을 하는구먼.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몸으로 산모퉁이 하나 무너뜨리지 못할 것인데, 그 많은 흙과 돌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에 우공이 말했다. '자네는 정말 앞뒤가 꽉 막혔어. 내가 죽으면 아들이 있지 않은가. 아들은 다시 손자를 낳을 테고, 손자는 다시 아들을 낳을 것이 아닌가. 그 아들이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아들에게도 손자가 생길 것인즉, 자손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야. 그러나 산은 더 자라지 못할 터이니, 어찌 옮길 수 없단 말인가?'

 산신이 이 말을 듣고, 만일 우공이 작업을 계속하면 큰일이라 생각했다. 천제에게 보고하자, 천제는 그 말에 감동하고 말았다. 과아씨(夸蛾氏, 전설상의 巨人族)의 두 아들에게 지시하여, 두 산을 하나는 삭동(朔東)에, 하나는 옹남(雍南)에 내려놓게 했다. 산을 옮긴 것이다.

 이때부터 기주의 남쪽과 한수 이북에는 조그만 언덕조차 하나 없게 되었다. 탕문편(湯問篇)

 

*마오쩌둥도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고 한다.

 이 산은 실제 중국 동쪽에 있는 태행산(太行山)이다. 태행산은 하나의 산이 아니라 거대한 산맥이다. 하북성, 산서성, 산동성, 하남성에 걸쳐있고, 중국의 10대 협곡이다. 한겨울에도 도화꽃이 핀다는 도화곡(桃花谷)과 당나라 때 왕이 난을 피해 숨어 살았다는 왕상암(王相岩)이 있다.

 

 삼신산(三神山)

 

 발해의 동쪽, 몇 억만 리에 커다란 골짜기가 있다. 골짜기는 밑바닥 없는 골짜기로 한없이 깊어서 귀허(歸墟)라 부르는데, 천상계의 모든 물, 은하수 흐름도 전부 이 골짜기로 쏟아지는데, 수량은 조금도 늘거나 줄거나 하지 않았다.

 골짜기 속에 다섯 개 산이 있어서 대여(岱輿), 원교(員嶠), 방장(方丈), 영주(瀛洲), 봉래(蓬萊)라고 한다산의 주위는 3만리나 되고, 산과 산의 사이는 7만 리나 떨어져 있다.

 옥(玉)나무가 자라고 과실은 맛이 있으며, 그것을 먹으면 사람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거기 사는 자는 모두 선인(仙人)으로, 낮이건 밤이건 산에서 산으로 비행하며 왔다 갔다 하였다.  다섯 산은 뿌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늘 물결 따라 솟아났다가 내려갔다가 하면서 떠돌아서, 잠시도 가만 있지 않았다. 선인들은 이를 천제에게 호소하자, 천제는 북극을 관장하는 신인 우강(禺彊)에게 명하여 커다란 거북 열 다섯 마리가 머리를 들어 그 산들을 머리 위에 실어 산이 한 장소에 멈추게 되었다.  그후 용백(龍伯)의 거인이, 이곳에 와서 낚싯줄 드리워서 여섯 마리의 거북을 낚아 꿰어서 전부 메고는 자기 나라로 가서 거북의 껍데기를 태워서 점을 쳤다. 이에 대여 원교 두 산은 북쪽 끝으로 흘러가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이것을 안 천제는 화를 내어, 용백의 영토를 축소시켜 좁게 만들고, 또 용백의 백성들은 키를 줄여서 작게 만들었다. 탕문편(湯問篇)

 

* 신화 같은 이야기지만 인간보다 뛰어난 성인, 성인보다 뛰어난 신령, 신령을 초월한 자연에 대해 논하면서 인간의 좁은 지식과 고착된 상식과 편향된 시각을 경계하였다. 

 

 싸움 닭 기르는 법 

 

 기성자(紀省子)가 선왕(宣王)을 위하여 투계(鬪鷄)를 길렀다. 닭을 훈련한지 열흘이 지나자 임금이 물었다. 

'그만하면 싸움을 붙일 수 있겠는가?'

'아직 안됩니다. 그 놈이 지금 아무 실력이 없이 허세(虛勢)만 부리고 있습니다.' 

열흘 후에 임금이 또 물었다. 

'지금은 어떠하냐?'

'아직 안되옵니다. 그 놈이 지금 다른 닭 소리만 나면 따라 울고, 그림자만 보아도 거기를 향합니다.' 

그 후에 임금이 또 물었다. 

'지금 쯤은 어떠하냐?'

'아직 안됩니다. 상대를 질투하고, 반드시 제가 이긴다고 기세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 후에 임금이 또 물었다. 

'이젠 그만큼 훈련을 시켰으면 됐겠지?'

'네. 아직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이젠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대드는 닭이 있더라도 안색을 변치 않습니다. 바라보면 꼭 나무로 조각한 닭(木鷄) 같습니다. 덕기(德氣)가 아주 완전합니다. 다른 닭들이 감히 응전(應戰)을 못하고 도리어 달아나 버립니다.' 황제편(黃帝篇)                           

 

 호랑이 기르는 법 

 

 주(周) 선왕(宣王)의 짐승을 기르는 사람 중 양앙(梁鴦)이란 사람이 있었다. 호랑이, 승냥이, 매, 독수리 같은 짐승도 부드럽게 순종하게 했다. 왕이 모구원(毛丘園)에게 그것을 전수케 하려고 보냈더니, 그가 호랑이 기르는 법을 설명했다.

'순종하면 기뻐하고 거역하면 분노함이 혈기를 가진 동물의 성품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기쁨과 분노를 망령되이 표현하겠습니까? 거역하면 범할 뿐 입니다.

 호랑이를 먹임에 감히 산 동물을 주지 않음은 그가 짐승을 죽일 때 노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동물을 주지 않음은 그가 짐승을 찢을 때 노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배고프게 배부르게 하여 그 노한 마음을 관리 합니다. 호랑이는 사람과 다른 종류지만, 자기에게  잘해주면 순종하고 거역하면 죽입니다. 내가 어찌 감히 호랑이를 거역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겠습니까?

 내가 짐승의 마음을 거역하지 않으면 조수(鳥獸)도 나를 동료 보듯 합니다. 그래 내 동산에서 놀면서 높은 숲과 광대한 못을 생각지 않습니다. 내 뜰에서 잠 자면서 깊은 산과 그윽한 골짜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치가 그러한 것입니다. 황제편(黃帝篇)  

 

 매미 잡는 법

 

 공자가 초나라에 갈 때, 숲 속의 한 꼽추가 매미 잡기를 땅에서 줍듯이 하는 것을 보았다.그래 공자가,

'그대는 방도가 있습니까?'

 물으니, 꼽추가,

'방도가 있지요. 매미 채 끝에 공을 두 개 올려 떨어지지 않으면 매미를 놓침이 아주 적습니다. 공을 세 개 올려 떨어트리지 않으면 실수함이 열 번 중 한 번 입니다. 다섯 개 쌓아올려 떨어지지 않으면 매미를 그냥 땅에서 줍듯이 합니다. 또 내가 조용히 서 있으면 마치 나무 그루터기 같고, 매미를 잡을 때는 마치 마른 나무 가지처럼 조용히 팔을 뻗습니다. 그때 나는 오직 매미 날개만을 집중 합니다. 오직 매미 날개만 집중하니 어찌 잡지 못하겠습니까?' 이에 공자가 제자들을 보고 

'뜻을 씀에 오로지 하고 정신을 한 군데로 모았으니, 이 꼽추를 장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 했다. 황제편(黃帝篇)

 

 잘난 여자

 

 양주(楊朱)가 송나라를 지나다 객사에 들렀다. 객사 주인에게 첩이 두 명인데 그 한 여자는 예쁘고, 한 여자는 못생겼다. 그런데 못생긴 여자는 귀한 대접을 받고 예쁜 여자는 천대받고 있다. 양자가 그 까닭을 묻자, 일하는 사람이 대답하길,

 '아름다운 여자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겨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못생긴 여자는 스스로 못생겼다고 여겨 그 추함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양자는,

'제자들아 이것을 기록하라. 현명함을 행하면서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귀한 대접을 받지 않겠는가?' 황제편(黃帝篇)

 

  인재 구하는 법

 

 진나라 목공이 말을 잘 감별하던 백락을 불러놓고 말했다.

 '그대가 지금까지 좋은 말을 잘 골라주어 고마웠는데 이제 그대의 나이도 많이 늙었으니, 후계자가 있어야 하겠소. 그대를 대신할 만한 사람이 있겠소?' 

 이에 백락이 말했다.

 '보통 좋은 말 같으면 그 생긴 모습이나 골격을 보고서 알아낼 수 있지만, 천하의 명마는 형체나 골격이나 털빛만 가지고는 쉽게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말은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알 듯 모를 듯 긴가민가하고, 또 너무 빨리 달아나서 남긴 발자국조차 볼 수가 없으니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제 아들 녀석은 보통 좋은 말은 알아볼 수가 있지만 천하의 명마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제 친구  '구방고'가 있는데, 그가 말에 대해서 저보다 훨씬 많이 압니다.'

 목공은 그 말을 듣고 그를 만나서 말을 구해오라고 했다.

 그는 석 달만에 돌아와서,

 '발견했습니다. 그 말은 사구라는 곳에 있는 암말인데 털빛은 누런빛입니다.'

하였다.  

 목공은 곧 사람을 보내어 말을 보고오게 했더니, 보고 온 사람이,

 '암말이 아니고 숫말인데, 털빛도 누런빛이 아니고 검은 빛 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래 백락을 불러,

 '이번 일은 실패했소. 그대의 말을 듣고 말을 구해오라고 보냈는데, 그 사람 말이 말의 털빛이 누런지 검은지 조차 구별할 줄 모르고, 또 암말인지 숫말인지도 몰랐다니, 그런 사람이 어찌 말의 좋고 나쁜지를 알겠소?'

 하였다. 이에 백락이 깊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그 사람이 그런 경지에까지 도달했던가. 이것이 바로 저 같은 사람은 천만 명을 갖다 놓아도 그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방고 같은 사람은 말의 형체와 골격과 털빛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말의 기상을 봅니다. 그는 말의 정기를 보았고 그 형체를 잊어버렸으며, 말의 내면을 보았고 외면은 잊었으며, 말의 살펴보아야 할 것은 보았고 보지 않아도 될 점은 보지 않았습니다. 구방고 같은 사람은 말의 상을 보는 것보다 더 귀중한 그 무엇을 본 것 입니다.'

 

 돈에 눈이 어두우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옛날 제나라 사람 가운데 돈을 탐내는 사람이 있었다. 이른 새벽에 평상시와 같이 옷을 잘 차려입고 시장으로 갔다. 어느 금은방에 들어가서 금붙이를 훔쳐가지고 뺑소니를 쳤는데, 관리가 그를 뒤따라가 끝내는 잡히고 말았다. 관리가 그에게 물었다.

 '대낮에 사람도 많이 있고 한데, 어떻게 남의 금붙이를 훔칠 생각을 했는가?'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내가 금붙이를 훔칠 때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붙이만 눈에 보였습니다. 설부편(說付篇)

 

 *돈에 눈이 어두우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확금자불견인(攫金者不見人)'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겸애란 무엇인가

묵자(墨子)

 

 묵자(墨子)는 기원 전 480-390년 사람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 끝머리 '맹자순경열전(孟子筍卿列傳)'에 의하면, '묵적(墨翟)은 송나라 대부(大夫)로 성(城)을 방위하는 기술이 뛰어났고, 절용(節用)을 주장하였다. 공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고도 하고, 혹은 공자보다 후세 사람이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양계초(梁啓超)는 묵자에 대해서, '그의 집안은 사회 하층계급인 공인(工人)이나 노동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묵자는 몸소 성을 방위하는데 필요한 기구 제조법에 능통하였고, 나무로 하늘을 나는 솔개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하였다.

 

 

묵자

 

 *묵자는 고죽국(孤竹國) 사람으로 동이족이라는 설도 있다. 고죽국은 고대 발해만(渤海灣) 북안(北岸) 산해관(山海關) 근처에 있던 나라로 군주는 묵태씨(墨胎氏)이다. 백이 숙제 역시 고죽국 군주의 자손이다. 수서(隋書) 배구전(裵矩傳)에 ‘고려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이다.’ 하였다. 또 사고전서(四庫全書)의 명일통지(明一統志) 권5 영평부(永平府)에 따르면, '고죽국은 상(商)나라였으며, 주나라 때는 유주(幽州),  북연 때는 평주(平州) 혹은 낙랑군(樂浪郡)이었다. 명나라에 와서 영평부(永平府)라 하였다. 오늘날 평주의 노룡에 조선성(朝鮮城)이 있었다' 하였다.

 

 묵자의 겸애설(兼愛說)은 한마디로 아무 조건 없이 모두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박애(博愛)는 신(神)과 이교도를 구별하고,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말라는 차별적 사랑이다. 인간적 좌절과 고통을 '사랑'으로 극복 승화시킨 점이 기독교 철학의 장점이긴 하지만, 묵자는 한차원 더 높은 피아의 구별 없는 '겸애'를 주창하였다. 

 신분적 인종적 차별을 살펴보자. 근래 이스람 국가와 기독교 국가간의 복수와 테러가 횡행하고 있다. 유대인과 예수의 조상은 이삭이고, 아랍인 마호메트의 조상은 이스마엘 이다.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수천년간 종교전쟁과 문명 충돌을 일으킨 것은 차별적 사랑에 기인한다. 

이런 의미에서 묵자의 겸애사상은 일견 단순한듯 하지만, 그 이론적 기초는 한 없이 깊다.

 

 겸애편(兼愛篇)

 

 일찍이 세상의 혼란이 어디서부터 생겨나고 있는가 살펴 보았는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생겨나고 있었다.

 임금과 신하가, 아버지와 자식이, 형과 아우가 각각 자기 자신만 사랑하고 상대방은 사랑하지 않고 소홀히 하며, 자신만의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에 천하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도적들은 그의 집안만을 사랑하고 다른 집안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집안의 물건을 훔치어 자기 집안을 이롭게 한다. 마찬가지로 대부들과 제후들도 자기만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지 않은 데서, 남의 나라를 공격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마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를 자신의 나라처럼 보거나, 다른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자신을 보는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그러니 천하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무엇인가? 겸애하고 서로 사랑하는 일이다. 제후가 서로 사랑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대부가 서로 사랑하면 약탈하지 않으며,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잔혹하게 해치는 일이 사라진다.

 

이 일은 임금이 먼저 좋아하고 행한다면 백성들도 따라 올 수 있는 일이다. 임금의 영향력은 크다.

 옛날 초나라 영왕(靈王)은 선비들의 가는 허리를 좋아했다. 그러자 신하들은 모두 한 끼 밥만 먹고 허리를 조절했고, 숨을 크게 내쉰 다음에야 띠를 매고, 힘이 없어 담에 의지하고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이런 폐단은  무슨 까닭인가? 임금이 그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남을 비난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에 대한 대안(代案)이 있어야 한다. 만약 남을 비난하면서 대안이 없다면, 마치 불을 가지고 불을 끄려는 것 같아 옳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분별하는 것을 대신해야 한다.

 만약 여기 두 선비가 있는데, 한 사람은 분별을 주장하고 한 사람은 겸애를 주장한다고 하자. 분별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의 친구가 굶주리는 것을 보고도 먹을 것을 주지않고, 헐벗은 것을 보아도 옷을 주지않고, 병에 걸려도 돌보아 주지않고, 상(喪)을 당하더라도 장사지내 주지 않는다. 반면 겸애를 주장하는 사람은, 굶주린 친구를 먹여주고, 헐벗은 친구를 입혀주고, 병 든 친구를 간호해주고 상(喪)을 당한 친구를 장사 지내 준다.

 감히 묻건대 누가 믿을 수 있는 친구일 것인가?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따라서 그를 사랑하게 되며,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은 남도 따라서 그를 이롭게 해준다. 남을 미워하거나 해치면 남도 나를 미워하고 해치게 된다.

 

 친사편(親士篇)  

 

 임금에게는 반드시 뜻을 거스르는 신하가 있고, 웃사람에게는 반드시 이론을 따져서 논하는 부하가 있다. 그래서 논쟁이 진지하게 벌어지고 서로 훈계하고 따지므로, 그 임금과 웃사람은 오래도록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

 그런데 신하가 그 직위를 잃을까봐 말을 하지 않고 벙어리 노릇 하며 입을 다문다면, 백성들의 고통은 위에 알려지지않아 백성들 마음 속에 원한이 맺히게 될 것이다. 아첨하는 자들만 곁에 있어 좋은 논의가 막혀버린다면, 곧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은 천하의 어진 선비를 곁에 두지 못했기에 천하를 잃고 죽지 않았던가?

 좋은 활은 당기긴 어렵지만 높이 갈 수 있고 깊이 들어갈 수 있다(良弓難張). 좋은 말은 타기 어렵지만 무거운 것을 싣고 멀리 갈 수 있다. 훌륭한 인재는 부리기는 어렵지만, 임금을 이끌어 존귀함을 드러낼 수 있다.

 장강(長江)이나 황하(黃河)는 작은 시냇물이 자기에게 가득 차도록 흘러드는 것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커질 수가 있는 것이다. 성인은 일을 함에 사양함이 있고, 물건에 대하여 어긋나는 것이 없으므로 천하의 그릇이 될 수 있다. 장강이나 황하 물은 한 근원에서 나온 물이 아니며. 갖옷은 여우 한마리에서 나온 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반드시 자기와 뜻이나 방식이 같은 사람만 취하여 쓰겠는가? 이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큰 임금의 도(道)가 아닌 것이다.

 

 수신편(修身篇)

 

 군자는 전쟁을 함에 있어서 포진법(布陣法)이 있지만 용기를 근본으로 삼는다. 상(喪)을 치룸에 예의가 있다고는 하지만 슬품을 근본으로 삼는다. 선비에게 학문이 있다고 하지만 실천을 근본으로 삼는다.

 근본이 안정되지 않는 사람이면서 말단적인 결과를 풍성히 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가까운 사람과 친하지 않으면서 먼 사람들과 가까이 하려 애써서는 안된다. 친척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밖의 사람들과 사귀려고 애써서는 안된다. 하는 일이 밑도 끝도 없이 정리가 안되어 있는 사람이 많은 일을 하려고 애써도 안된다.

 그러므로 옛 임금들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반드시 가까운 것을 잘 살핀 다음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하였던 것이다. 군자란 가까운 것을 잘 살피고 가까운 것부터 닦아나가는 사람이며, 수양이 되지 않은 행동이나 비난 받을 행동을 보고, 반드시 자신도 반성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이다.

 

 절용편(節用篇)

 

 성인이 정치를하면, 천하의 부(富)가 배로 늘어난다. 그가 부(富)를 배로 늘리는 것은, 전쟁을 해서 남의 땅을 뺏음으로써 늘리는 것이 아니다. 쓸데없는 비용을 없앰으로써 부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성인이 의복을 입는 목적은 무엇인가? 겨울에는 추위를 막고 여름에는 더위를 막을 뿐이다. 화려하기만 하고 불편한 것은 피한다. 성인이 집은 무엇을 위해 지었는가? 겨울에는 바람과 추위를 막고, 여름에는 더위와 비를 막으며, 도적을 막기 위해 튼튼히 짓는다. 화려하기만 하고 불필요한 것은 없애버린다.

 그러므로 재물의 사용에 낭비가 없었고, 백성들의 생활은 수고롭지 않았으며, 그로 인한 이익이 더 많았던 것이다. 이것이 성왕(聖王)의 법(法)인 것이다.

 옛날 성왕들은 먹고 마시는 법을 제정하여 선언하였다. 배고품을 채우고 기운을 차리며, 팔다리를 강하게 하고, 귀와 눈을 분명하고 밝게 하기에 충분한 정도에서 그치고, 다섯 가지 맛의 조화와 향기로움의 조화를 원하지 않았고, 먼 나라의 진기하고 특이한 물건을 쓰지 않았다.

 옛날 요(堯) 임금이 곡식을 아낀 정도로 말하면, 두 종류의 국을 들지 않았고, 고기반찬을 두 가지씩 장만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토기(土器)에 밥과 국을 담았다. 성왕들은 쓸데없이 몸을 굽혔다 폈다하면서 인사차 왔다갔다 하며 형식적인 예(禮)를 채리지 않았다.

 그런데 유가(儒家)에서는 장례절차를 논의할 때 성대히 지냄을 주장한다. 관(棺)과 덧관을 반드시 여러 겹으로 만들고, 매장할 땅을 크게 파며, 사자(死者)의 옷과 이불도 많이 하며, 신분에 따라서 금(金)과 옥(玉), 수레와 말, 솥과 북, 창과 칼도 곁들여 많이 매장해야 만족한다. 

 복상(服喪, 상복 입는) 하는 법은 어떤가? 곡(哭)을 함에 소리내어 흐느끼는 방법이 보통과 다르며, 거친 삼베옷과 거친 삼베띠를 머리와 허리에 두르고 눈물을 흘리며, 움막에 거처하면서 거적자리 위에서 흙덩이를 베고 잔다. 억지로 먹지 않고 굶주리며, 얇은 옷을 입고 추위에 떨어 얼굴이 앙상하게 야위고 얼굴빛이 검어지며, 귀와 눈은 흐릿하며, 손발은 쓰지 못하여 반드시 부축해야 일어서고, 지팡이를 짚어야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3년 동안 복상해야 공경히 지낸 것이라 한다.

 이것은 그동안 모아놓은 재물을 한꺼번에 묻어버린 셈이며, 가족이 3년 동안 일을 금지당한 꼴이다. 이렇게 하고서도 부유해지기를 바랄 것인가? 이것은 가난을 벗게하고, 위태로운 시국을 안정시켜 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짊(仁)도 아니고, 의로움(義)도 아니며, 효자로서 할 일도 아니며, 남을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다.

 마땅히 장사 지내는 관은 2-3치로 하고, 옷과 이불은 세 벌로 하고, 매장할 때 아래로는 지하수에 닿지 않도록 깊이 묻지 않고, 땅 위로 냄새가 샐 정도로 얕게 묻지 않으며, 봉분(封墳)은 세번 간 밭이랑 정도로 만들어 그 장소를 다시 찾은 표지가 될 정도면 충분하다. 곡을 하며 상을 치르되 돌아와서는 생산에 종사하여야 하고, 제사는 적절히 지내어 어버이에 효성을 다함이 좋다.

 

 

 

진시황을 감탄시킨 문장가

한비자(韓非子)

 

 진시황은 6국을 통합하려는 자신의 숙원을 위해 인재를 적극 모으고 있었다. 그는 한비자의 저술인 <고분(孤憤)>과 <오두(五蠹)>를 읽고는 깜짝 놀랐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틀림없이 기재일 것이며 자신의 통일대업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사(李斯)에게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라고 했다.

 초나라 출신이던 이사는 한비자와 순자(筍子)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그가 한비자를 소개했고, 진시황은 한비자를 얻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사는 한비자가 말을 더듬었지만, 자신보다 재주가 뛰어난 것을 시기하여, 한비자가 한나라를 위해서 진나라를 배반할거라고 참언을 하여, 한비자는 옥에 갇히게 하여 한비자가 자살했는데, 나중에 진시황이 후회하고 용서해주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한비자는 한나라 왕족 출신으로 노자의 무위자연과 순자의 성악설을 배우고, 법가(法家)의 학설을 대성시켰다.

 그의 세난편(說難篇)은, 말로써 남을 설득하는 화술(話術)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지적한 불후의 문장이다. 여기 그의 고분(孤憤)과 오두(五蠹) 두 편과 세난편(說難篇)을 소개한다.

 

 세난편(說難篇)

 

 상대가 명예나 지조를 동경하여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인데, 막대한 이익을 들어 설득하려 하면, 그는 오히려 이쪽을 지조가 없는 사람이며 너절하고 비천한 사람이라 하여 멀리할 것이다. 상대가 막대한 이익을 동경하는 사람인데, 명예나 지조를 가지고 설득하려 하면, 그는 이쪽을 욕심이 적고 세상 일에 어두운 사람이라 하여 멀리 하려 할 것이다.

 또 설득하려는 상대가 속으로는 이익을 동경하면서 겉으로는 명예를 내세우는 경우에 그를 명예로써 설득하려 하면, 그는 겉으로는 이쪽을 받아드리지만 실제로는 그를 멀리 할 것이며, 그를 이익으로 설득하려 하면, 속으로는 이쪽을 받아드리면서 겉으로는 이쪽을 버릴 것이다.

 또 말이 상대방의 뜻에 어김없이 멋지게 줄줄 나오면, 이쪽을 겉만 번드레하고 실속이 없다고 생각하며, 말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면, 곧 졸열하고 조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말을 하면, 헛되이 필요없는 말을 한다고 여기고, 반대로 미묘한 뜻을 총괄적으로 요약하고 불필요한 말을 생략하면, 이쪽을 부족하고 약하다고 여기기 쉽다. 말을 빨리 노골적으로 하면서 친근하면, 불손하고 건방지다 하며, 말씨가 귀에 거슬리지 않고 나긋나긋 하면 아첨이 아닌가 의심한다.

 

 용이란 짐승은 잘 친해지기만 하면 올라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 아래에 직경 한 자쯤 되는 꺼꾸로 박힌 역린(逆鱗)이 있어 만약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이고 만다. 임금 또한 역린이 있다. 유세하는 사람이 임금의 역린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송(宋)나라에 부자가 있었다. 비가 와서 담이 무너졌다. 그 아들이 말하기를 '담을 새로 쌓지 않으면 반드시 도둑이 들 것입니다.' 하였고, 이웃집 노인도 똑같은 말을 했다. 밤이 되자 과연 도둑이 들어 부자는 재물을 크게 잃었다. 그러자 부자는 자신의 아들은 매우 지혜롭다고 여겼지만 이웃집 노인은 의심했다.

 똑같은 말을 하고도 한 사람은 칭찬을 받고 한 사람은 의심을 받았다. 그러니 말은 무엇을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위(衛)나라 임금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있었다. 왕의 총애를 믿고 허가를 받았노라고 거짓말을 하고 어머님의 병문안에 왕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나라에는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타는 사람은 다리를 자르게 하는 형벌이 있었다. 그런데 뒤에 이 말을 들은 왕은 '효자로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 다리가 잘리는 죄도 잊었도다'면서 칭찬을 했다. 한 번은 왕과 미자하가 놀던 과수원에서 미자하가 자기가 먹던 복숭아가 맛있는지라 먹다가 말고 남은 복숭아를 임금께 바치자, 왕은 '실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구나. 자기의 입맛을 잃고서 나에게 먹여 주는도다' 하면서 칭찬을 했다.

 그런데 미자하가 나이 들어 볼품이 없어지자 총애를 잃고 미움을 받게 되었다. 이때 왕은 '이 녀석은 거짓말을 해서 내 수레를 탔으며,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나에게 먹인 일도 있도다' 하면서 벌을 내렸다.

 본시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지만, 그런데도 전엔 어질다고 여겼던 것이 뒤에 가서 죄가 된 것은, 임금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 이다.

 

 고분편(孤憤篇)

 

 고분(孤憤)은 '고독한 분노'라는 뜻이다. 개혁가가 끝내는 좌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파하고 있다.

'올바른 선비는 반드시 멀리 보고 밝게 살핀다. 밝게 살피지 않으면 사사로운 책략을 밝혀낼 수 없다. 올바른 선비는 반드시 강하고 굳세며 곧다. 굳세고 곧지 아니하면 간악한 이들을 바로잡을 수 없다.

 반면 권세가는 임금의 명령이 없어도 멋대로 일을 처리하고, 법을 어그러뜨리면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며, 나라에 해를 끼치면서 자기 집안 일을 도모한다. 

 

 그런데 올바른 선비는 임용되면 권세가들의 음흉한 실태를 밝히려 하고, 간악한 행동을 바로 잡으려 한다. 이것이 선비와 권세가 양자가 병립할 수 없고 원수가 되는 까닭이다. 권세가가 선비를 추천하지 않는 이유다.

 한편 권세가는 오래 동안 임금을 사귀어 왔으므로 임금과 싫어하는 일 좋아하는 일이 비슷하다. 임금의 비위를 잘 맞추어 임금에게 신임과 사랑을 못받는 일이 드물다. 이웃 제후들은 그에게 기대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를 칭송하고, 관리와 백성들도 그에게 기대지 않으면 업적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그를 칭송한다. 학자들도 그에 기대지 않으면 봉록과 대우가 낮아지기 때문에 그를 선전하고, 임금의 측근도 마찬가지다. 그의 나쁜 일을 숨겨준다. 이 네가지 부류가 권세가를 옹호하는 자들 이다.

 반면 올바른 선비는 임금과의 친분도 없고 혜택도 없으면서 임금의 비뚤어지고 편벽한 마음을 바로 잡으려 하니, 이는 임금의 마음과 반대되는 것이다. 더구나 세력이 비천하고 지지하는 정치 패거리도 없고 외롭고 유별나기만 하다.

 따라서 임금과 먼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임금의 사랑을 받는 자들과 다투면 결코 이길 수 없다. 임금 뜻에 반대하는 선비가 임금 뜻에 맞장구치는 사람과 다투니 이기지 못한다. 새로 온 사람이 오래 사귄 사람과 다투니 이기지 못한다. 낮은 벼슬이 높은 벼슬과 다투니 이기지 못한다. 한 사람의 입으로 온 나라 사람들의 입과 다투니 이길 수 없다.

 올바른 선비는 이런 이치로 인해 몇 해가 지나도 임금을 한번도 만나지 못한다. 반면 권세가는 아침저녁으로 임금 앞에서 홀로 이야기를 나눈다. 군주가 이런 현명치 못한 자들과 선비를 논한다면, 이것은 현명치 못한 자와 더불어 현명한 자를 논하는 것이다. 그러니 올바른 선비가 나갈 길이 어디 있으며, 임금은 어느 때  깨달을 수 있겠는가?

 

 오두편(五蠹篇)

 

 '오두(五蠹)'란 다섯 마리 해충이라는 뜻이다. 한비자는 나라를 좀먹는 다섯 마리 해충과 같은 부류의 인간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첫째는 학자이다. 학자는 서적을 쌓아놓고 변론을 일삼으며 제자를 모아놓고 학문을 닦고 논설을 편다. 선왕(先王)의 도와 인의(仁義)를 말하고, 용모와 의복을 꾸며서 변설을 그럴듯하게 하며 법을 의심하게 하고 임금의 마음을 흐리게 한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풀숲에서 갑자기 한 마리의 토끼가 뛰어나오다가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다. 농부가 이것을 보고 그 후부터 일도 하지 않으며 매일같이 그루터기 옆에 앉아서 토끼가 뛰어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 밭은 황폐해져 쑥대밭이 되고 말아 농부는 온 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 이 수주대토(守株待兎) 고사는 언제까지나 낡은 습관에 묶여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학자들을 비꼬고 있다. 학자 중에는 옛날 정치가 이상적이라 하여 낡은 제도로 돌아갈 것만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다.

 

 둘째, 언담자(言談者)와 세객(說客) 이다. 거짓으로 외력을 빌어 사기(詐欺)치고 제 욕심 채우니, 사직에 이익이 않된다. 

셋째, 칼 든 대검자(帶劍者)로서 이른바 협객(俠客)인데, 그들은 늘 무리를 지어 조직을 만들어 이름을 휘날리고 국법을 범한다. 

넷째, 근어자(近御者)로서 임금 측근(側近) 이다. 뇌물로 축재하며 권세가 청만 들어주며, 수고하는 사람들의 노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섯째, 상공인(商工之民)이다. 이들은 사치품을 사 모았다가 때를 보아 폭리를 얻고, 농민이 애써 얻는 이익을 힘들이지 않고 뺏아간다. 

 이상 다섯 버러지를 인민이나 군주가 제거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 길러내지 못하면, 파망지국(破亡之國)이 된다. 소멸 되어 없어질 조정이라 해도 괴이한 것이 아니다.

 

 

 

신선이란 무엇인가?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요즘 구구팔팔이란 말이 유행한다. 99 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것이다. 이 참에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선사상을 한번 알아보자.

 일찌기 팔선(八仙)이 있었다. 종리권(鍾離權) 여동빈(呂洞賓) 장과노(張果老) 한상자(韓湘子) 이철괴(李鐵拐) 조국구(曹國舅) 남채화(藍采和) 하선고(何仙姑)가 그들이다. 노자(老子)도 신선이라 한다. 마고선녀(麻姑仙女) 하마선인(蝦蟆仙人) 동방삭(東方朔) 왕자진(王子晋) 서왕모(西王母)도 신선이라 불리웠다. 

 서양도 영생불사를 원했던 것 같다.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된 '사자(死者)의 서(書)'에, '나는 현재이며, 과거이며, 또한 미래이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탄생을 거듭할 때마다 나는 더욱 젊고 활기차게 변해간다'고 적혀 있다. 

사람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불로장생을 원한다.

 

  포박자의 저자 갈홍(葛洪)은 동진(東晉) 때 사람으로 남경(南京) 근처 단양(丹陽) 사람이다. 그의 호 '포박자(抱朴子)'는 노자(老子)의 ‘견소포박(見素抱樸)’에서 따온 것이다. '있는 그대로 순박한 것을 껴안는다'는 뜻이다. 

 

 

갈홍

                                                                           

 갈홍은 좌원방(左元放)의 제자다. 좌원방이 어느 날 천주산(天株山)에서 신인(神人)으로부터 금단(金丹)에 관한 경전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연회에서 조조가 송강의 농어회가 없다고 아쉬워하자, 시종에게 구리로 만든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부어 가져오도록 하고는 나무젓가락에 실을 달아 낚싯대로 삼고 세숫대야 속에서 싱싱한 농어를 낚아올렸다고 한다. 또 조조가 농어는 사천의 생강으로 요리해야 제 맛이 난다고 말하자,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축지법을 써서 사천의 생강을 구해왔다고 한다. 

 좌원방은 갈홍의 종조(從祖) 갈선공(葛仙公)한테서 '태청단경(太淸丹經)' '구정단경(九鼎丹經)' '금액단경(金液丹經)'을 받았다. 좌원방의 제자가 정은(鄭隱)이고, 갈홍은 정은의 제자다.

 갈홍은 81세에 신선이 되어 관 속에 지팡이와 의복만 남겨두고 떠났다 한다.

 

포박자(抱朴子)

 

포박자의 주내용은 양생법과 환단(還丹) 금액(金液)을 만드는 금단(金丹) 제조법이다.

 

 선인이 되고 싶으면 다만 그 지극히 중요한 골자만 터득하면 된다. 골자라고 하는 것은 정(精)을 아낄 것, 기(氣)를 온 몸에 돌게 할 것, 금단(金丹)의 선약(仙藥)을 복용할 것 등으로 충분하다. 그 밖의 많은 술(術)을 닦을 필요는 없다.

 금단(金丹)의 선약(仙藥)을 복용하고, 생식의 근원인 정(精)을 소모하지 않고 뇌로 돌리고, 태식(胎息) 호홉법을 행하면, 선인(仙人)이 된다.

 

 학과 거북은 천 년을 살고, 두꺼비는 3천 년, 기린은 2천 년을 산다. 양자강과 회하(淮河) 사이에 사는 어느 사람이 어렸을 때, 거북으로 침대의 발을 괴었다. 그 뒤에 그 사람은 늙어서 죽고, 가족이 침대를 옮기다가 그때까지 거북이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동안 거북이가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살았다면 거북이 수명이 천년이라도해도 이상할 것이 아니다. 선도의 경전에 거북이 호홉법을 흉내낸 도인술(導引術)을 설하여 놓은 것도 당연한 것이다. 

 

 누가 '신선(神仙)이 과연 존재하느냐'고 묻자 갈홍은 이렇게 대답했다.

 '신선에 대한 이야기는 갈대 대롱구멍으로 하늘을 엿보는 것처럼, 한 발 두레박으로 백 길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질문이다. 선도의 경전에 세 종류의 신선이 있다. 최상의 신선은 육신 그대로 하늘로 오르는 천선(天仙)이다. 그 다음은 명산에서 노니는 지선(地仙), 세번째는 죽은 뒤에 껍질을 벗고 떠나는 시해선(尸解仙)이다.' 

 

     

동방삭                                          팽조                                          귀곡자

 

 '선도를 얻은 사람은 드물고 세상 사람들은 숨어있는 선인을 모른다. 선인들은 고위고관을 맘에 두지 않고, 깨끗한 지조를 지킨다. 기린은 집 지키는 개 노릇은 하지 않는다. 봉황은 아침을 알리는 닭 노릇은 하지 않는다. 몸과 이름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 최상이지만, 이름을 버리고 은거하여 자유를 누리는 것을 옛사람은 옳다고 하였다.

 그들은 원기가 헛되이 흩어지지 않도록 인간 세상에 먼 곳에 살고, 높고 험한 산꼭대기를 큰 다락으로 삼고, 푸른 녹음을 휘장 삼고, 연꽃 이슬을 삼키고, 하늘에 마음을 씻어낸다. 명산에서 자기 그림자와 메아리를 유일한 벗으로 삼고, 안으로는 형태없는 마음의 세계를 주시하고, 밖으로는 정적 속에서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사람은 천년에 한 사람 있을까 말까 이다.

 그는 호홉으로 생명의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단전(丹田)에 북극성을 잡아매고, 해 달 별의 빛을 뇌 속에 끌어들이고, 영혼을 천상에 날려서 몸을 단련한다. 만월 또는 상현(上弦)의 달을 발 밑에 깔고, 일월(日月)의 정(精)과 함께 소요하고, 육정(六丁)의 신녀(神女)를 불러내고, 꽃을 먹고 그 이슬을 삼키어, 주림도 목마름도 없어지고 온갖 병이 생기지 않는다.'   

 

금단법

 

'포박자'란 책의 많은 부분은 '금단(金丹)'에 관한 것이다. 금단의 종류와 효용, 제조법이 설명되어 있다.

 

'금단(金丹)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금단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소 발자국에 괸 물에서 헤엄치는 장구벌레는 넓은 바다가 있는 것을 꿈에도 생각치 못한다. 과일 씨 속에 기는 작은 벌레는 세상이 그것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탕약(湯藥)이나 침구(針灸)도 믿지 않는데, 이보다 더 깊은 '불노(不老)의 술(術)'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당귀 작약은 복통을 낫게 하고, 독활(獨活)은 감기에 들으며, 창포와 건강(乾薑)은 신경통을 낫게 한다. 토사 종용은 정력 감퇴에 효력이 있고, 황련(黃蓮)은 소갈(消渴)에 듣고, 마황은 장질부사를 다스리며, 감초는 모든 중독을 다스린다.

 약은 상약, 중약, 하약으로 구별된다. 하약은 치료 예방약이고, 상약은 금단(金丹)이다. 선약은 보통 소소한 처방전과 크게 다르다. 금단 하등품도 초근목피 상등품 보다 낫다. 곤륜산을 보면 개미 탑이 얼마나 낮은 가를 알 것이다. 보통약은 일만 석(石)을 마신다해도 조금 이익이 있을 뿐이지, 사람을 늙지 않고 죽지 않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금단을 복용하면, 수명은 천지와 더불어 영원하게 되고, 구름에 오르고, 용(龍)에 멍에를 메우고 푸른 하늘을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다. '황제구정신단경(黃帝九鼎神丹經)'에 황제가 이 약을 복용하고 선인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하였다.

 

 ‘단(丹)’은 단사(丹砂= 수은과 유황 성분을 가진 주황색 광물)를 태워서 만든 것인데, 오래 구우면 구울수록 그 변화가 신묘하다.

 구단(九丹)이야말로 불로장생의 비결이다. 단화(丹華), 신부(神符), 신단(神丹), 환단(還丹), 이단(餌丹), 연단(鍊丹), 유단(柔丹), 복단(伏丹), 한단(寒丹) 아홉 종류가 있다.

 신부(神符)를 마시면 100 일만에 선인이 된다. 물 위나 불 위를 걸을 수 있다. 신단(神丹)을 마시면 칼로 베고 창으로 찔러도 튕겨버린다. 산천의 귀신이 모두 와서 모신다. 이단(餌丹)을 30일 복용하면 귀신이 호위를 하고 선녀가 앞을 선다. 유단(柔丹)을 딸기즙과 한 숟가락씩 100 일 마시면 90세 늙은이도 어린애를 낳게 할 수 있다. 한단(寒丹)을 100일 마시면 날개를 사용 않고 하늘을 날 수 있다. 

 

 금액(金液)은 태을(太乙)이 마시고 신선이 된 것이다. 구단(九丹)에 지지않는 효과가 있다.

금액을 입에 넣으면, 그 신체는 전부 금석(金石)으로 변한다. 황금과 단사를 넣은 뒤 밀봉해 두면 액체가 된다. 이런 금액을 제조하려면, 동으로 흐르는 냇가에 따로 정사(精舍)를 지어서 착수한다. 명산에 틀어박혀 오랜 시간 몸을 청결히 하고 각종 금기를 지켜야 한다.

 만일 이 세상을 떠나기 싫어 지선(地仙)이나 수선(水仙)이 되어 있고 싶은 사람은 백일재계만 하고 먹고, 승천하고 싶을 때에는 그에 앞서서 곡기(穀氣)를 끊고 그 뒤에 복용하면 된다.

 

 선약을 합성하는데 적합한 산은 태산, 화산, 항산, 숭산, 태백산, 종남산, 아미산이 있지만, 이는 선계(仙界)에서 말하는 태원지산(太元之山)은 아니다. 

태원(太元)의 산은 해와 달이 각각 제자리에 있고, 금과 옥이 산을 이루고, 붉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열매는 진주와 같고, 검은 지초(芝草)가 자라고, 모퉁이에 술의 샘물이 있는데 다시 젊어지고 싶은 사람은 그 샘물을 마시면 된다. 어리석은 자가 함부러 가다가는 모두 죽어서 돌아온다. 

 

 양생법

 

양생법은 행기(行氣)와 섭생법과 방중술(房中術)이 골자다. 

 단약을 먹는 것은 불로장생의 근본이지만, 만일 호홉법까지 겸하여 실행한다면 효과는 더욱 빨라진다. 만약 단약을 얻지 못하고 호홉법만 행한다해도 그 이치에 맞도록 행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수백 살의 수명을 얻을 수 있다. 방중술(房中術)도 알아야 한다. 음양의 술(術)을 모르고 자주 정력을 소모하면 호홉법을 실행해도 효과가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氣)를 온 몸에 돌게 하는 것을 행기(行氣)라 하는데, 행기에도 여러 법이 있고, 정력(精力)을 아끼는 방중술(房中術)도 백 가지 이상 기술이 있다. 

 행기(行氣)의 핵심은 태식(胎息)에 있다. 어린애가 태중에 있을 때처럼 코나 입을 사용하지 않고 호홉하게 되어야 행기가 완성된 것이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코로 기를 빨아들인 다음, 코를 막고 마음 속으로 120까지 수를 센다. 그런 다음 입으로 기를 뿜어내는데, 빨아들일 때나 뿜어낼 때 자신의 귀에 기가 출입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들이쉬는 양이 많고, 내쉬는 양이 적게 한다. 가벼운 새의 깃털을 콧구멍 위에 붙혀놓고, 기를 내쉬면서 깃이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점점 익숙해지면 마음 속으로 세는 수를 더하여 천(千)까지 세게 된다. 그렇게 되면 늙은이도 하루하루 젊게 된다.

 '선인(仙人)은 육기(六氣)를 복용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하루는 12시(時)가 있어, 야반부터 정오까지 여섯 시(時)는 생기(生氣)의 시이며, 정오부터 야반까지 여섯 시(時)는 사기(死氣)의 시이다. 사기(死氣)의 시에 행기를 하면 이익이 없다.

 행기의 술을 익히면, 백 가지 병을 치료할 수 있고, 전염병이 유행하는 땅에 가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 물 속에 들어앉아 있을 수 있고, 물 위를 걸어다닐 수 있다. 칼에 베인 상처도 호홉의 주술을 사용하면 피가 흐르지 않는다. 뱀이나 범 같은 짐승을 기(氣)로 제압 할 수 있고, 굶주림과 목마름도 방지 할 수 있고, 수명도 연장할 수 있다.

 

 배고프지 않을 때 음식을 먹지 말며, 목이 마르지 않을 때 마실 것을 마시지 말라. 날고기, 기름진 것은 먹지 말아야 하니, 이런 것을 먹으면 기가 강해져서 스스로 막기 힘든다. 몸은 일상적으로 노동해야 하지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음식은 될수록 적게 먹어야 하나 배가 고플 정도로 적어서는 안 된다. 겨울 아침에 공복이지 말며, 여름 저녁에 포식하지 말아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지 말 것이며, 늦게 일어나도 안 된다.

 인간이 죽는 원인은 정력의 소모가 첫째이고, 늙는 것이 둘째이고, 질병이 셋째이고, 중독이 넷째이고, 사기(邪氣)의 해를 입는 것이 다섯째이고, 바람이나 찬기운에 당하는 것이 여섯째이다.

 인체에 해로운 6가지를 없애야 한다. 명리에 담백하고, 가무와 여색을 금하고, 재물에 집착하지 말며,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지 말고, 질투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라.

'십이소(十二少)'를 지켜야 하는데, 소사(少思), 소념(少念), 소소(少笑), 소언(少言), 소희(少喜), 소노(少怒), 소락(少樂), 소수(少愁), 소호(少好), 소악(少惡), 소사(少事), 소기(少機) 이다. 만약 '십이소'를 실행하지 못하면, 도끼가 사람 상하게 하듯이, 승냥이 이리가 사람 해치듯 몸을 상한다.

 '사무(四無)'를 실행해야 한다. 오래 앉아 있지 않는 무구좌(無久坐), 오래 움직이지 않는 무구행(無久行), 오래 보지 않는 무구시(無久視), 오래 듣지 않는 무구청(無久聽) 이다.

 

 방중술(房中術, 성교 방법)은 이것으로 정력 감퇴를 구할 수 있고, 각종 질병을 치료할 수 있고, 음정(陰精)을 채취하여 양정(陽精)을 증강시킬 수 있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친 이야기다. 헛된 정력의 낭비를 막는 것에 그친다.

 황제(黃帝)가 천 이백 명의 여자를 거느리다가 승천했다고 하지만, 방중술 때문이 아니고, 구단(九丹)을 만들어 완성했기 때문이다. 현녀(玄女) 소녀(素女)는 이 술(術)을 물과 불에 비유했다. 물과 불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요는 잘 이용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골자는 정(精)을 되돌려서 뇌를 보하는데 있다. 악고불사(握固不瀉), 종녀불시(從女不施), 환정보뇌(還精補腦) 하면 늙지 않는다.

 둑이 튼튼하면 물이 헛되이 샐 리가 없다. 도끼는 날마다 사용하므로 날이 빠지고 무디어 진다. 엷은 비단도 싸서 경갑(鏡匣)에 넣어두면 언제까지 바래지 않는다. 진흙은 풀어지기 쉬운 것이지만 구워서 기와를 만들면 영구히 갈 수 있다.

 사람은 음양 관계를 아주 끊어서는 안된다. 오래 되면 기가 막혀 폐색의 병에 걸린다. 무절제 해도 안되니 절도와 조화를 얻은 사람만 오랜 수명을 유지할 수 있다.

 

 *방중술에 관한 경(經)은 황제내경(黃帝內經), 현녀(玄女) 소녀(素女) 자도(子都) 공성공(容成公) 팽조(彭祖) 등이 있다.  

 

 하늘은 높은 곳에 있으면서 낮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고 있으니, 먼저 선행(善行)을 닦아야 한다. 그 다음 도인(導引)으로 기(氣)를 충만하게 하고, 방중술로 정기(精氣)를 새지 않게 하고 체내로 환원하여 뇌를 보(補)하고, 음식과 기거에 절도를 지키고, 약물을 복용하여 정신을 통일하고, 횡사를 가져오는 악귀를 막기 위해서 호부(護符)를 차고, 생명을 단축시키는 진미(珍味)나 미인을 멀리하는 일체의 선술(仙術)을 널리 알고 행하면, 장생불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