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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여인

김현거사 2014. 5. 11. 15:56

    진주 여인

 

 지리산 사는 친구가 추석에 감을 보내왔다. 처음 보는 단성감은 모양이 약간 못생기고 촌스러운 점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 천지 감이란 감 다 맛본 이제사 늦게 그 진가를 알게 되었다. 단성감은 과육이 쫀득쫀득 차지고, 결로 찢어진다. 촉감은 서글서글하고, 당도는 적당하고, 씨가 없어 먹기 편하다. 자세히 음미해보니 진주 지방에서 옛날부터 이 감을 선호한 이유를 알만하다. 맛이 평범 속 비범이다. 진주 명물로 고동시란 감도 있는데, 당도는 단성감 두배가 넘는다. 꿀보다 달다. 그러나 고동시를 단성감과 비교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쫀득쫀득 차진 맛과, 결로 찢어지는 결정적 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주에서 고동시는 단성감 동생뻘로 친다.

 

 

  

  단성감을 보면서 문득 진주 여인을 생각하였다. 순하면서 서글서글하고 쫀득쫀득한 성품이 진주 여인 닮았다. 진주 여인의 특성이 무엇인가. 인근에서 생산되는 과일과 야채 닮았다. 부드럽기는 신안동에서 자란 토란처럼 부드럽고, 시원하기는 도동의 수박처럼 시원하다. 달콤하기는 비봉산 산딸기같이 달콤하고, 연하기는 습천못 무화과처럼 연하다. 감성은 촉석공원 석류처럼 새콤달콤하고, 피부는 비온 후 칠암동 대밭 속에 돋는 죽순처럼 하얗고 보들보들하다. 봄이면 들판에 나가 쑥 캐고, 여름이면 봉선화 꽃물들인 손으로 남강에서 빨래하는 진주 여인이다. 이 천년기념물 진주 여인을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는 쌀쌀한 서울 여인과 비교할 수는 없다. 

 

 지난 9월 13일 문인협회서 열린 문학특강에 다녀왔다. 연사는 김여정 시인이다. 연제는 <파란을 헤쳐 온 나의 인생과 문학에의 길> 이었다. 일찌기 신석정 시인 추천으로 등단한 그분은 한국 시단의 원로다. 김시인은 서두를 진주 남강의 하얀 모래밭과 소싸움에서 시작하였다. 심훈의 상록수에 감명 받아 진주에 야학 '한빛학원'을 세웠던 일, 진주의 이명길 이경순 설창수 시인 이야기를 풀고나서야, 서울의 기라성같은 작가 이야기가 나왔다. 월탄 미당 구상 김남조 이어령 선생 이야기가 나오고, 본인의 초기 모더니즘 초현실주의 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역시 진주 출신 시인이구나 싶었다.(2013년 9월)

 

 

  나는 간혹 진주성 성곽 아래서 자란 여인은 남강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맑고 순하고 다정하다. 찔레꽃, 탱자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일부러 멋 부리지 않아도 그 몸 어디선가에서 청향이 풍겨온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미모와 시재로 한국 시단을 주름잡은 김여정 시인이 진주 여인을 대표할만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 그날 강연이 끝난 후, 나는 그분에게 닥아가 과감히 데이트를 신청 했다. '단풍이 절정일 때 제가 한번 선배님을 북한강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향 후배만 가능한 제의다. 그때 단성감 이야기를 한번 장황하게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