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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강

김현거사 2014. 5. 11. 15:10

고향의 강

 

                                                                                                김창현 

 

 지금도 나는 남상규가 부른 <고향의 강>이란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말이 시처럼 잘 다듬어진 것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정작 가슴을 때린다. 나는 이 노래 들을 때마다  따뜻하던 진주 남강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시울 붉힌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지금도 흘러가는 가슴 속의 강. 아아아 아아아아! 어느듯 세월의 강도 흘러,진달래 곱게 피던 봄날에 이 손을 잡던 그 사람.'

지금도 눈감으면 떠오르는 진주 남강이다.

 

 서장대 건너편에 <당미> 언덕이 있었다. 망경산 끝자락 이 언덕에 불던 그 싱그러운 봄바람과 벚꽃 만발한 그 언덕 거닐던 꽃보다 아름답던 처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메기통> 가는 길에 커다란 늙은 감나무가 있었다. 늦가을 새빨간 서리맞은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리면 배고픈 시골 아이들은 그 꿀맛의 홍시를 따기위해 돌도 던지고 장대도 흔들고 안달이 나곤 했었다. 절벽 아래 <메기통>은 벌거숭이 아이들 따이빙 자리였다. 수경 쓰고 고무총 들고 잠수하면 물 속 바위 밑에 수염이 길다란 메기가 많았다. 소년들은 물가 바위 위에서 영화 <쎈>의 게리쿠퍼나 <형제는 용감하였다>의 스츄어트그랜져 멋진 폼 흉내내고, <애수>에 나오던 비비안리, <가스등>에 나오던 잉그릿드버그만의 미모에 가슴을  태웠다. 최무룡의 <꿈은 사라지고>, 현인의 <신라의 북소리>,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유행가 경연 벌이고, 따닥따닥 천막 유랑극단 가설무대 말광대 탭댄스 흉내도 내보고, 나무가지 꺽어 딸따냥마냥 칼싸움도 했다. 나는 젊은 베르테르처럼 절벽 위 잔디밭에 핀 찔레꽃 비새꽃 나리꽃 피면 매번 청순한 첫사랑 소녀 모습 그리워 한숨지었고, 고교 졸업 후 피지 못하고 틴에이저 때 염세자살한 단짝 친구 뼈 몇조각을 당미 언덕 위 노송의 옹이 틈에 깊이 감춰두고 군에 입대했다. 그의 자살 충격으로 <이방인>의 주인공 뭐르소가 된 양, 실존의 아품을 안고 자원입대한 것이 아득히 45년 전 일이다. 당미는 내 소년시절 추억의 언덕이다.

 

 건너편에는 서장대가 있었다. 그 아래 얕은 곳으로 간혹 기차통학 시간에 늦은 진주사범 여학생들이 하얀 종아리 걷고 강을 건너 우리 총각들 마음 설레게 했으며, 지지배배 종달새 울던 신안동 강버들은 봄이면 아련한 그리움의 버들피리 불게했고, 수박향 나던 은어 몰려오던 <너우니>의 여름 지나가면, 노란 버들잎 물에 떠 흐르던 약수암 건너 가을 강은 그림같았다.

 

 하얀 백로떼처럼 촉석루에서 서장대까지 성 아래 남강변에서 빨래하던 여인들 모습이 당시 진주 낮풍경이었고, 달이 뜨거나 안개 낀 서장대 절벽에서 이봉조 쎅스폰, 남인수 모창 구슬프던 것이 진주 밤풍경이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진주 출신 이형기 시인은 <낙화> 첫구절 이렇게 읊었다. 영남예술제가 열린 밤이면 촉석루 아래 진주의 모든 남학생 여학생들이 유등을 띄웠고, 등은 청춘남녀의 낭만을 안고 멀리 <디비리> 모티를 돌아 도동으로 아득히 흘러가곤 했다.

 촉석루 앞 사시사철 푸르던 남강 대숲엔 겨울 갈가마귀 떼가 모여 회오리바람 일으켰고, 물결 위에 불 밝힌 남강카바레 안에선 남녀가 밤늦도록 사교춤으로 바람나고 있었다. 태풍 동반한 장마철이면 도도히 흙탕물로 변한 남강에 수박과 소나 돼지도 떠내려왔고, 그러면 진주 사람들은 모두 철교에 올라가 물구경 하였다. 겨울 진주 사람 볼거리는 남강 둑에서 벌어지던 연싸움이었다. 싸움연은 민어 부레로 사금파리 연줄로 시퍼렇게 날 세운 사각방패연이었다. 방패연이 바람 타고 좌우로 아래위로 달리다가 다른 연과 엉키면 탁! 줄 끊긴 힘없는 연 하나 하늘하늘 공중에 떨어지고, 그러면 연줄 줏는 아이들 백사장 다투어 질주하곤 했다. 얼음 언 강바닥은 댓가지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 천국이었고, 지리산서 흘러온 여름 남강물은 너무 맑고 달콤했으며, 어항에 베를 덮고 구멍을 뚫어 그 안에 된장을 발라 잡던 모래문지 보리피리는 너무 이뻤다.

 <옥봉> 쪽 백사장엔 전국의 씨름판에서 황소 수십마리를 독점한 양점배 장사가 씨름을 가르켰고, 가을 백사장에선 소싸움판이 벌어졌다. 막걸리 한 말씩 먹은 경상도 전라도 싸움소들이 그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발로 모래를 걷어차며, 억센 뿔로 상대의 머리를 찌르고 감고 치며 자웅을 다투고, 인산인해 모여든 사람들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자기 동네 소를 응원했다. 이 남강의 밤은 호국사 종소리에 깊어갔고, 수주 변영로가 노래한 <강남콩 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흐르는 남강물 속엔 논개의 거룩한 분노가 흘렀다.

  

 <디비리 모티> 건너 도동은 복숭아 풍개 수박밭 천지였다. 디비리의 봄은 복숭아꽃 살구꽃 물에 뜨흐르는 도화원경이고, 칠암동 푸른 대숲엔 밤 목욕하러 나온 아줌마와 처녀들 나지막히 웃으며 철썩철썩 물장구 치는 소리 들려왔고, 그러면 장난끼 발동한 총각은 처녀들 옷 훔치려고 모래밭을 낮은 포복으로 기곤 했다. 단언컨대 당시 달빛 아래 푸른 대숲 속에서 연 맺은 청춘남녀 더러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달밤에 습천못 뒤 과수원 단감 따다가 모래밭에 숨겨놓고 댓가지 꽂아 표시해놓았다가, 이튿날 누가 그 댓가지 뽑아버려 노획물을 잃어버린 적도 있고, <너무니> 대를 베어 뗏목 만들어 낙동강 내려가 구포에 가서 팔아 돈을 만들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임꺽정 되어 물 건너 도동 수박 참외밭 풍개밭 습격 감행했고, 보라빛 칡꽃 핀 대밭에 들어가 낚싯대 만들어 뒤벼리에서 낚시도 했고, 진주농고 크로바풀 뜯어와 눈이 루비같이 붉고 털이 부드럽고 하얀 이쁜 토끼 키웠다. 여름방학 숙제 한다고 약골서 정촌 넘어가는 고개길 아래 지독(진흙)을 캐서 탱크 비행기 만들고 놀다가 물에 빠져 용왕님 전으로 갈뻔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리산에서 흘러온 남강물처럼 따뜻하고 유정한 남자로 성장했다.

 

 내 언젠가 노년엔 남강에 돌아가 살리라 항상 꿈꾸곤 했다. 타관서 흰서리 앉은 노년 되면 연어처럼 귀향하여, 푸른 대숲 가에 초막 하나 짓고, 아침 안개 속에 차를 마시며, 서화 분재 야생화 하며 조용히 자유로운 여생을 보낼 꿈 꾸었다. 근년에 마산 살던 한 친구가 귀향하여 금산 금호못 가에 살고있다. 그는 매번 돌아온 따뜻한 고향 자랑한다. 그러나 <너우니> 버들잎 내 마음 속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봄철 도동 모래밭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비봉산 뒤 산딸기 붉게 익고, 안개 덮힌 월아산 푸른 정기 눈에 아롱거리건만, 나는 지금도 귀향의 꿈 이루지 못하였다. 다정한 그 시절과 고향 친구 그리워 울컥울컥 주체하지 못하는 마음 남강 갈가마귀처럼 허공을 떠돈다. 아!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남강이 사모치게 그립다.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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