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청산은 어이하여 만고에 푸러르고

두류동에 현판 하나 걸어놓고

김현거사 2013. 9. 13. 09:52

   두류동에 현판 하나 걸어놓고

 

 이번에 통도사 한 사내암자 스님을 만나러 간 길에 지리산에 가서 며칠 묵고 왔다. 나에게 만산도(萬山圖)란 책이 있다. 주로 풍수이론과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의 명당을 소개한 책이다. 만산도를 쓴 김영소 선생은 도대채 얼마나 많은 산을 답사했을까. 산을 보면서 그 분을 생각했다. 돌도 십년을 보고있으면 구멍이 뚫린다고 한다. 미련한 나도 이제는 뭔가가 보이긴 한다. 

 산 덕택에 좋은 친구를 얻었다. 구름 갈 제 비 오고, 꺽꺽 푸드덕 장끼 갈제 아로롱 까투리 따라 간다. 전화 한 통화로 두 친구가 온다. 한 친구는 마침 남원에 시상식이 있어 부인 안숙선씨와 와 있었다. 혼자 남겨놓고 시외버스 타고 원지로 해서 중산리 오고, 한 친구는 부인이 서울 갈 일이 있었다고 한다. 양해를 구하고 떠나는 것도 보지않고 진주서 차 몰고 왔다. 그리고 한 굴에 든 여우 마냥, 한물에 노는 금붕어 마냥 같이 놀았다. 마침 거림에 침술하는 후배 한분 있다. 낙동강 잉어가 뛰니까, 안방 빗자루도 뛴다. 선생님 가신다니 침 맞는 환자 둘 따라온다. 두 선녀는 횟감과 소주를 차에 싣고 왔다.

 해발 7백 고지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그 위는 평평하여 칠팔명이 앉을 수 있다. 연못은 산삼 썩은 물이 흘러 넘친다. 연못 속 바위는 이끼만 푸르다.

 

 

 반석 위는 때죽꽃 한창이다. 하얀 꽃을 흔드는 맑은 바람은 저 아래 구절양장 구부러진 골짜기에서 불어온다. 우리를 쓰다듬어 주고, 천왕봉으로 올라간다. 도시는 한창 찜통인데, 여기는 선경 이다. 상이 펼쳐지자, 먼저 생수에 아카시아꿀 타 마시고, 곶감 한 알씩, 인진쑥 엑기스 한봉부터 마신다. 그 후에 선녀가 따라주는 잔을 비웠다. 잠간 사이에 흉중이 탁 터지고, 마음이 청산의 흰구름처럼 자유로워진다. 서산대사 말 마따나 만국 도성은 개미집에 불과하다. 금상첨화란 이런 것이다. 도다리와 우럭 회도 입맛 당기고, 탱글탱글한 꼬시라기 회도 별미다. 지리산 당귀잎 달콤하고, 지리산 된장맛 담백하고, 지리산 풋고추맛 싱싱하다.

 해 지자 선녀들 떠나고, 대신 달이 솟아온다. 단소 소리, 시조창 소리가 달빛 아래 퍼진다. 쌍골죽을 베어 대금 만드는 이야기도 나왔다. 5월 단오경에 갈대 속에 있는 청을 벗겨 대금의 청을 만든다고 한다. 오교장은 남명선생의 시를 왼다. <은하수 같이 맑은 물 십리나 되니, 싫컿 먹고도 남겠네 (銀河十里契猶餘)> 욕심 버리고 은하수처럼 맑은 물만 탐 낸 남명선생의 뜻 알만하다. 침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혈자리에 고인 죽은 피 뽑아내는 것이 사혈(瀉血)이다. 죽은 피는 색이 검고, 선지처럼 엉킨 것도 있다고 한다. 이게 병의 원인이다. 공박사에게 부탁하였더니 오히려 반긴다. 우리 팀이라면 언제던지 와서 시술해 드리겠단다. 편백나무 생잎 깔고 황토방에서 자는 이야기, 한약 벼개 신침법(神枕法) 이야기도 나왔다. 늦게까지 이야기하고 이튿날 새벽 5시 일어나니, 오교장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 능선에 올라가 얼굴을 흰구름으로 씻고있는 천왕봉에게 시조를 읊어주고 있다.

 

 거사도 바위에 앉아 명상에 잠겨보았다. 산은 거대한 병풍이다. 그 위 지나가는 구름은 나그네다. 바위는 묵언의 참선객 이다. 바람소리 물소리는 범패(梵唄)다. 흔들리는 풀과 나무는 바라춤, 나비춤 추는 무용수다. 산이 몸으로 입선(入禪)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 동네에 107살 먹은 노인분이 산다고 한다. 방송국에서 와서 며칠째 계속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거사가 즉흥 작품 하나 만들었다. 붓도 먹도 없이, 소나무 껍질로 뚝딱 장수촌(長壽村)이란 현판 하나 만들었다. 

 

                                                   사진 좌측은 최상무.

 

 최상무는 근처의 참쑥 물쑥을 베어다가 컨테이너 숙소 안에 끈으로 달아놓는다. 잠자면서 쑥향기도 즐기고, 마르면 모깃불 재료로 쓰려는 것이다. 되는 놈은 나무 하다가도 산삼 캔다. 근처에 자주달개비꽃이 많다. 보라빛 그 꽃을 숙소 앞에 대충 심었다. 부처꽃도 많다. 줄기 위로 나란히 피어오르는 그 아름다운 꽃 이름을 나는 거기서 처음 알았다. 동자꽃도 여기저기 많다. 밤에는 뭔가 이름 모르는 새가 운다. 이런 산꽃 피는델 놔두고 창고칸 호텔방 선호하는 사람들 뜻을 모르겠다. 소식(少食)하고, 약초차 다려먹고, 숲을 산책하고, 서로 다투어 청소 설겆이 한 것이, 산에 온 사람의 즐거움 이다.

 이튿날은 왕산 아래 사시는 김종한 선배님을 찾아갔다. 대령으로 제대했는데, 다들 참모총장 해야했을 아까운 분이라고 한다. 요즘은 국궁에 심취하여 규칙적으로 활터에 나가 시간 보낸다고 한다. 은퇴 불문하고 소나무처럼 푸르고 청청하여 인상 깊었다. 서로 권해가며 은어 섞인 민물 매운탕 먹었다. 최상무는 대금을, 오교장은 <쑥대머리>를 읊었다. 김선배님은 국악에 인연이 닿지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였다. 죽어 석 잔 술이 살아생전 한 잔 술만도 못하다지 않던가. 옳거니! 아무도 없는 시골 주막에서 이번에 선후배가 손뼉 치며 대들보가 울리도록 떠들고 온 일이 잘한 일이다 싶다. 이튿날 지리산 하산하는 길 자줏빛 자미화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원지서 상경하는 고속버스에 오르니, 배낭에는 통도사 스님이 주신 옻칠 식기 한 세트가 들어있다. 여행이 남긴 선물 이다.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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