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전자책·수필 이론

이유식 수필의 맛과 멋

김현거사 2013. 9. 13. 06:27

 

 

이유식 수필의 맛과 멋

<새 시대 수필이론 다섯 마당>을 읽고

                                                                      김창현/수필가

 

수필이 온갖 양념과 고명을 잘 얹은 맛깔난 음식이라면 오죽이나 좋을까.그러나 애석하게도 하고많은 음식에서 맛깔난 음식이 드물듯,수필가는 많지만 <인생의 수면 위에 어리는 안개와 수증기,봄 들판에 아롱거리는 아지랑이,비 개인 하늘에 걸쳐있는 무지개 같은> 여운있는 수필을 내놓는 작가는 드문 것 같다.

수필을 어떻게 쓸 것인가.원로평론가 이유식 교수의 근작 <새시대 수필이론 다섯 마당>이 그 답이 될지 모른다.

이 다섯마당은 문학평론가로서 저자가 그동안 현대문학 수필문학 등 많은 전문지에 발표했거나,각종 수필 주제 세미나 강사로 강의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첫째 마당은 수필의 역사,둘째 마당은 수필의 영역,셋째 마당은 수필 고품질화를 위한 전략,넷째 마당은 저자의 작품을 통한 체험적 수필 작법,다섯째 마당은 수필계 원로들의 이교수 수필에 대한 평이 소개되어 있다.한마듸로 수필 이론과 실기가 함께 아우러져 멋진 수필을 염원하는 작가나 수필 애호가를 위한 수필입문 교과서,혹은 요점 정리 텍스트북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법 하다.

원래 평론가란 면도칼처럼 예리하게 시나 수필을 조각조각 찢어발기고 해부해보는 외과의사요,작가 기량을 차급게 점수 매기는 까다로운 선생님이다.그래서 평론가의 손에서 나온 수필이론서라면 우선 딱딱하고 사변적일 것이 분명하다고 미리 예단하기 쉽다.그러나 이 경우는 매우 다르다.

이교수가 <넷째 마당>에서 인용한 본인의 체험적 수필 작법에 인용된 <다리>란 작품부터 우선 살펴보자.

 

다리는 육지와 육지를 연결해주는 관문이요,땅과 땅의 중매쟁이요,허리띠며,길과 길의 악수다.다리는 새로운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욕망의 콤마요 접속사며,잠시 경관의 아름다움에 도취케하는 탄성의 감탄부호며,종착지의 마침표를 향해 가는 욕망의 간이역이다.

다리는 늘 두 다리를 뻗고 부동자세로 서있는 견인주의자다.육로가 산문이라면 다리는 시다.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물새가 날고,물의 음악이 흐르며,달빛이 흐르고 햇살이 반짝어린다.자연의 조화가 하늘의 무지개라면 인간의 조화는 다리다.지상에 놓여진 다리를 보아왔던 몽상가들이 문득 하늘의 은하수를 보고 상상해낸 창작품이 바로 오작교다.지상의 다리가 하늘에 투영된 것이 이른바 견우직녀 이야기가 아닌가. (후략)


또다른 작품 <구름>을 살펴보자.


구름은 국적도 없이 비자도 없이 정처없이 떠다니는 방랑자요 여행객이며,자유주의자요 무정부주의자다.지상의 삶이 그 무엇에서건 구속당해야만 하는 인간들은 저 구름의 자유를 그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구름은 변용의 천재요,조화자며,물의 딸이요 비의 어머니다.영국 시인 쉘리가 <구름>이라는 시에서 노래했듯 하늘이 길러주는 유아(幼兒)다.

구름은 신의 예복이요 옷자락이며,두루마기요 도포며,허리띠요 모자다.그런가하면 무욕주의자로서 떠다니다 자기 몸이 무거워진다 싶으면 금방 비를 뿌린다. (후략)


이처럼 아깃자깃 수필의 멋진 골목길로 재미있고 친절하게 끌고가는 작가는 드물다싶다. 비록 자신은 <비평활동을 오래 하다보니,사고훈련이 분석,종합,평가가 습관화 되어있어 수필을 쓸 때에는 자연히 논리적 수필에 맞는 소재와 주제를 찾는 것이 버릇인양 되었다>고 말하지만,글은 그렇지않다.사변적 현학적 구렁텅이에 빠져서,독자가 외면하여 도망가버리고 작가들만 남은 문학이 된 오늘의 현실을 이교수는 이미 오랜 문필 생활을 통하여 잘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그의 글은 이해하기 쉽고 뜻이 명료하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나는 현재 한국 수필에서 이처럼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서 얻어진 인용과 풍부한 비유로 글맛 풍기는 글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글 속에 에스프리와 지성과 윗트가 인기 가수 무대의상에 붙은 빤짝이처럼 빤작빤작 빛난다.목적 정하지않고 마음 내키는대로 나선 자유로운 산책이 수필이라면,수필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모범답안지인 것이다. 

<다섯째 마당>에서 수필문학가협회 회장 강석호씨가 말한 <그의 수필활동은 상대적으로 평론활동에 가리어 다소 손해를 보고있다.오로지 수필가로서 만으로도 사실은 독자적 평가를 받고도 남음이 있다>란 말에 탁 무릎이 쳐진다.사실 이교수는 89년도에 ‘스포츠서울’에 <유행가에 나타난 세태>란 테마에세이로 40여회 매주 연재하여 해당지의 지가를 올린 과거(?)를 가지고 있고,60년대 초에 부산 국제신보에 <회색의 자화상>이란 테마에세이를 연재하여 수필가로서 역량은 일찌기 검증된 바 있다.

독자가 그의 글 한두편만 읽다보면 흡사 불랙홀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어 전 작품을 단숨에 다 읽어버리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이교수는 수필평론가 한상렬씨 표현대로,<그는 이미 80년대 초부터 여덟권의 수필집 내놓은 어느 수필작가보다 왕성한 수필작가요,수필작가 이전에 수필이론을 개척한 평론가>인 것이다. 

수필이 일단 이런 문필력 친화력에 이끌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된 이상,그의 수필 이론 역시 다르겠는가.같은 뿌리에 달린 감자처럼,역시 이해하기 쉽고 뜻이 명료하다.

<셋째 마당>  '수필고품질화의 전략'에서,그는 '수필은 대형간판이 거창하게 붙은 '불고기집'이나 '불갈비집'이 아니라 골목 어귀에 있음직한 '꼬리곰탕집'이거나 '족발집'에 비유될 수 있다.'고 정의한다.유머와 위트의 필요성에서는 '수필의 오미(五味)를 들라면 새타이어,아이러니,패러독스,유머,위트가 아닐까 싶다.그것들은 수필의 독특한 맛을 내주는 양념이요,독자를 이끌어주는 고명이다.꽃으로 말한다면 향기와 같다.'는 식으로 설명해준다.그외 참신한 주제 찾기를 위한 발상법을 소개하고,경수필과 중수필의 차이,수필과 시의 관계를 논하고,수필에서의 허구 수용 문제 등 현안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지금은 시나 소설이 지나친 사변과 현학,난해성으로 독자들을 상실한 반면,그동안 서자시(庶子視) 당하던 수필이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글 읽고 싶은 독자층의 대두에 따라 더 매력적으로 부각되고 있다.수필작가들의 숫자도 괄목할만치 늘었다.늦둥이 수필이 이제 백화만발한 새로운 텃밭으로 대두될 시점이다.누가 수필에서 몽테뉴 베이컨같은 인생의 깊은 사색이나 예지를 담는가는 앞으로의 일이다.이 시점에서 이교수의 <새시대 수필이론 다섯마당>이 시의적절한 기폭제인 것은 틀림없다

(동방문학 2009년 12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