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창

땅굴 파는 노인

김현거사 2011. 1. 19. 10:03

11:46 http://cafe.daum.net/namgangmunoo/5gNC/440

아마 그 프로그램이 '세상에 이런 일이'였을 것이다. 자기집 둿산에 땅굴을 파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굴속에 아예 침대를 놓고 그 위에서 자고, 배고프면 라면 꿇여먹으며 땅굴만 파고 있었다. 그리고 무척 만족해하고 있었다. 굴 속 바위 틈에 동그란 석질의 무뉘가 나오면 그걸 달같다고 소개하고, 천정의 희끄무레한 바탕의 석질이 나오면 구름이라 소개했다. 간혹 동네사람들이 먹거리 들고 찾아오면 굴 속의 수맥에서 떨어지는 석간수를 시원하고 맛있다며 자랑하곤 하였다. 그는 그 땅굴을 계속 파서 뒷산에 자연적으로 난 풍혈에 연결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 목표가 과연 의미있는 목표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굴속은 항상 상온이 유지되고 신비랄 것은 없지만, 뭔가 아늑한 비밀스런 아지트같은 인상은 있었다. 나는 노인 생전에 그 굴이 완성되어 동네 사람들이 더욱 좋아하고 그 노인이 더욱 흐믓했으면 싶다. 그 노인네가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에 나오는 노인네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직장을 은퇴한 이후 수필가가 되었다.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어떤 날은 작업을 5시간 이상 계속하기도 한다. 백수로서야 이보다 좋은 시간 활용이 어디 있겠나 싶다. 글을 쓰다보니 소 뒷걸음에 쥐 잡는다고 간혹 잘 쓴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고, 간혹은 무참히 무시되기도 했다. 중앙문단에 평론가로 널리 알려진 고교 선배님 소개로 여나믄개 문학잡지에 글을 실어 흐믓해 한 적도 있고, 몇군데 문학상에 도전하여 가차없이 낙방당하기도 했다. 문학상이 심사위원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도 있고,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친면으로 뽑는다는 말도 있어, 별로 실망할 건 아니지만, 좀 서운한 건 사실이다. 노년에 당선상 받아 친구들과 한 잔 꺽는 그 재미야말로 얼마나 달콤하겠는가. 떨어져서 변명은 아니지만, 그러나 나는 붙으면 어떻고 안붙으면 또 어떠냐고 생각한다. 노인의 땅굴처럼 스스로 파면서 흐믓해하고 만족하면 그만이지 생각한다. 세상 이럭저럭 다 살았지만, 내가 이태백이냐 두보냐, 이광수냐 김소월이냐, 가로늦게 늦깍이로 시작한 글로서 문단의 평가에 큰 가치 둘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냥 나를 아는 가장 가까운 분들에게 내 정서를 알리고 공감 받으면 그만이지 하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고교 동창 싸이트와 고향 진주의 남강문우회 싸이트를 소위 문단보다 소중히 여기는 이유이다.

 

 전에 책을 서너권 내 본 적이 있다. 한권은 재벌 회장 자서전이라 만권을 찍었으나, 종업원과 정재계 인사들에게 보내어 없어졌다. 둘째 책은 동양 고전들을 다이제스트한 책인데, 출판사가 판매에 밝아 만오천권 팔아 고료 천오백만원을 받았다. 세번째는 수필집 천권을 찍었는데, 여류시인이 운영하는 그 출판사에선 십원 한장 오지 않았다. 자비 출판비 오백만원 날라가고, 지인에게 책 발송하느라 우편비만 돈 백 날라갔다. 얻은 것이라곤 딱 한번의 멋진 칭찬이었다. 대학선배로 전직 장관하신 호탕한 분에게서 였다. 그분은 전에 <사상계> 편집장 하신 분인데  '근래 읽은 수필집 중에 가장 잊히지 않는 책'이라며 언제 한번 조용히 만나자 하셨다. 수필집 낸 보상을 그 분한테서 유일하게 받은 셈이다. 마침 나와 한동네 사시던 분이라 조용한 산속 음식점으로 그 분과 사모님을 초청하여 남자 두명이 소주병 세 병 비운 적 있다. 그러나 이렇게 코드가 딱 맞는 분이 어디 그리 흔한가. 피를 말리고 뼈를 깍은 것은 아니지만, 며칠씩 끙끙대며 만든 남의 수필 알아주는 사람 어디 흔한가. 잡지에 실린 글 읽고 추종하는 졸개 외에 낮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라도 한번 받은 작가 과연 있는가. 그래 내가 글 올린  싸이트에 댓글이라도 달아주고 가는 사람에게 속으로 감지덕지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문학의 현주소는 어디 일까.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넓기가 만장같은 대형 서점이 있다. 거기 문학책을 진열한 코너를 보면 문학의 현주소를 안다. 한구석에 밖힌 문학책 진열된 코너는 챙피하도록 초라하여 닭장이나 개집보다 작다. 여행안내서나 취미 코너의 책들은 칼라양장판이 노량진 수산시장 어물전보다 다양하고 번화한데, 문학책은 왜 이런가. 독자들한테 익힐 글들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글 쓴 작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가물에 콩 나기로 좋은 작품 쓴 작가는 떼돈 버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옛날엔 잡지란게 있었다. 거기 당연히 시 소설 수필같은 문학 작품이 실렸다. 그런 잡지들이 언제부터 멸종되었는지 모른다. 한번은 우체국에서 차례 기다리며 무슨 여성잡지가 있어 펼쳐보니, 전부가 화장품 패션 광고만 실렸고, 달랑 하나쯤 실린 글이라고 있어 읽어보니 아쉽게도 연예인 신변잡기 인터뷰 기사였다. 시 한 줄 수필 한 편 없었다. 그럼 요즘 사람은 문학을 다 외면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뜻도 별로 깊지않으면서 말만 어렵게 써버릇하는 잘난 작가들 탓이라고 나는 믿는다. 빈곤한 문제의식을 도매금으로 체제에 대한 반항과 현실에 대한 비난으로  상투적으로 도배하는 작가들 탓이 크다 믿는다. 

 

  '그럼에도 지구는 돈다'고 갈릴레이가 말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줄기차게 글을 쓴다. 땅 속에다 굴을 파는 그 노인처럼 스스로 수필 쓰는 일을 즐그움으로 삼는다. 간혹 득의의 구절을 얻으면 혼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물을 집필을 통하여 깊이 생각해보는 버릇을 얻었다. 잡지에 글을 실어도 원고료도 받지 못하는 현실, 실어주는 잡지가 없어 애태우는 현실을 생각하면, 과연 이 길로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세상사 다 시지프의 신화처럼 허무한 것 아니더냐. 각설하고, 땅굴 파는 그 노인처럼, 나는 남이 모르는 나혼자의 은밀한 노년 취미 하나는 확실히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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