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서양화

부춘산거도

김현거사 2011. 11. 2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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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수합벽- 황공망 및 부춘산거도 특별전’이 대만 타이베이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지난 6월초에서 시작해 9월5일까지 열립니다. 대만 출장 가는 길에 고궁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일부러라도 찾을 터인데, 마침 잘 되었지요. 황공망이나 부춘산거도를 중국어로 어찌 읽는지 몰라, 두나라 사이에 나뉘었다 합쳐진 그림 전시를 보려 한다고 설명하니 가르쳐 주더군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려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군요. 점심시간에 줄이 짧고, 일행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점심 틈을 줄여 줄에 붙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슴 두근거리며 그림을 보았습니다.
 
 <부춘산거도>는 원대 5대가 중 한사람인 황공망(1269~1354)의 작품으로 그의 작품 가운데 작품성 면에서 가장 빼어나며 크기도 6.88미터에 이르는 거작입니다.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은 5대의 동원, 거연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황공망과 동시대인 조맹부도 이런 작품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이상을 표현하는데 강조점을 두는 문인화 정신과 수묵화의 새영역을 개척한 자유로운 붓터치 등 붓글씨의 기법을 회화에 녹여넣어온 발전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명, 청대 산수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작품은 원 순종 지정 10년(1350년), 황공망이 여든두 살이었을때 완성되었습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청대 초기인 1650년 운기루 주인 오홍유가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오홍유는 임종 때 이 그림을 태우라고 말했지만 다행히도 가족 중 한 사람이 이를 구해냈습니다. 두루마리 그림은 그 통에 손상돼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잉산도>라고 알려진 앞부분은 51.4cm로 절강성박물관의 중요 수장품입니다. 뒷부분 636.9cm는 1746년 청 황실 컬렉션이 되었다가 국립고궁박물관의 국보로 지정돼 있습니다. 360년 이상 이 작품은 떨어진 채로, 한 차례도 동시 전시된 바 없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위해 절강성박물관에서 잉산도의 임대에 동의해 주었습니다.
 
 황공망은 50세에 이르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업화가가 아니죠. 그래서 작품도 많지 않습니다. 명, 청대ㅣ 문헌을 보면 60점 남짓임을 알수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작품은 그보다 훨씬 적은데, 주로 만년작입니다. 부춘산거도는 황공망의 필력이 완숙할 즈음의 것으로, 그가 여행하고 거주하던 부춘 강 주변의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그림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가면서 야트막한 산과 높은 산이 임립한 나무들과 함께 솟았다가 꺼졌다하는 강둑을 따라 갑니다. 풍경은 때로는 심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명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부춘산거도는 두 나라로 나뉜 중국의 운명처럼 두 조각으로 나뉘어 보관돼 있었습니다. 360년만에 나뉜 그림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은 대만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국인인 저까지 보고싶은 정도이니 두말할 나위 없지요.
 
 이 전시가 성사되기까지 과정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각각 중요한 작품으로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만큼 정치적인 결정도 있지 않을까 생각됐지요. 하여, 박물관 쪽에 문의하려 했지만 당장 대답을 해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만 행정원 신문국(우리나라의 옛 국정홍보처에 해당) 직원한테 문의하니 민감한 문제라서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답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대만대표부를 통해 전해온 답변은 간단하지만 중국과 대만 간의 정치적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전시인데, 양국 박물관 차원의 결정인가? 이 전시를 중국에서도 열 계획이 있는가? 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수 합벽-황공망 및 부춘산거도 특별전>은 2009년 ‘옹정-청 세종 문물 대전’ ‘문예소흥-남송예술 및 문화특별전’ 등 두가지 큰 전시를 뒤이은 것으로, 중국대륙의 박물관과 두 차례 교류합작의 성과입니다. 이번 특별전은 2년에 걸쳐 계획되었으며 절강성박물관이 <잉산도>를 빌려주는데 동의함으로써 본 전시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해당 그림이 360여년 뒤에 합쳐져 전시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본 박물관의 결정 및 계획에 따른 것이며 이로써 박물관의 교육기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고궁문물의 국외전시는 과거 여러 차례 성공적인 사례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좋은 전시는 완전한 전시계획과 신중한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해외 전시를 하려면 해당 국가는 사법적인 가처분을 면한다는 것을 법률로 보장해야 합니다. 이는 고궁문물의 해외전시의 선결조건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번 특별전은 당장 중국대륙에서 전시할 계획이 없습니다.   
    
 정부 차원이 아닌 박물관끼리의 결정에 의한 전시라는 의미입니다. 남북한 교류가 민간기구나 종교계를 통해 이뤄지는 것과 흡사한 구조입니다. 서로 상대국을 인정하지 않는 관계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또 두차례 중국쪽의 문화재를 대만쪽에서 유치해 전시를 한 적이 있지만 거꾸로 대만의 문화재가 중국으로 건너간 예는 없는 셈입니다. 대만 문화재 전시에 대한 중국 쪽의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원인도 있을 것이고, 소유권을 내세워 반환하지 않겠다는 것을 법률로 보장하지 않고 있는 상황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건너오면서 가져온 국보급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은 아직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의미일 터입니다.
  
하여튼 <부춘산거도> 특별전은 이래저래 의미가 있으며 같은 분단국가인 한국인으로서 지켜보기가 착잡한 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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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수합벽- 황공망 및 부춘산거도 특별전’이 대만 타이베이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지난 6월초에서 시작해 9월5일까지 열립니다. 대만 출장 가는 길에 고궁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일부러라도 찾을 터인데, 마침 잘 되었지요. 황공망이나 부춘산거도를 중국어로 어찌 읽는지 몰라, 두나라 사이에 나뉘었다 합쳐진 그림 전시를 보려 한다고 설명하니 가르쳐 주더군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려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군요. 점심시간에 줄이 짧고, 일행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점심 틈을 줄여 줄에 붙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슴 두근거리며 그림을 보았습니다.
 
 <부춘산거도>는 원대 5대가 중 한사람인 황공망(1269~1354)의 작품으로 그의 작품 가운데 작품성 면에서 가장 빼어나며 크기도 6.88미터에 이르는 거작입니다.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은 5대의 동원, 거연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황공망과 동시대인 조맹부도 이런 작품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이상을 표현하는데 강조점을 두는 문인화 정신과 수묵화의 새영역을 개척한 자유로운 붓터치 등 붓글씨의 기법을 회화에 녹여넣어온 발전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명, 청대 산수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작품은 원 순종 지정 10년(1350년), 황공망이 여든두 살이었을때 완성되었습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청대 초기인 1650년 운기루 주인 오홍유가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오홍유는 임종 때 이 그림을 태우라고 말했지만 다행히도 가족 중 한 사람이 이를 구해냈습니다. 두루마리 그림은 그 통에 손상돼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잉산도>라고 알려진 앞부분은 51.4cm로 절강성박물관의 중요 수장품입니다. 뒷부분 636.9cm는 1746년 청 황실 컬렉션이 되었다가 국립고궁박물관의 국보로 지정돼 있습니다. 360년 이상 이 작품은 떨어진 채로, 한 차례도 동시 전시된 바 없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위해 절강성박물관에서 잉산도의 임대에 동의해 주었습니다.
 
 황공망은 50세에 이르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업화가가 아니죠. 그래서 작품도 많지 않습니다. 명, 청대ㅣ 문헌을 보면 60점 남짓임을 알수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작품은 그보다 훨씬 적은데, 주로 만년작입니다. 부춘산거도는 황공망의 필력이 완숙할 즈음의 것으로, 그가 여행하고 거주하던 부춘 강 주변의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그림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가면서 야트막한 산과 높은 산이 임립한 나무들과 함께 솟았다가 꺼졌다하는 강둑을 따라 갑니다. 풍경은 때로는 심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명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부춘산거도는 두 나라로 나뉜 중국의 운명처럼 두 조각으로 나뉘어 보관돼 있었습니다. 360년만에 나뉜 그림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은 대만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국인인 저까지 보고싶은 정도이니 두말할 나위 없지요.
 
 이 전시가 성사되기까지 과정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각각 중요한 작품으로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만큼 정치적인 결정도 있지 않을까 생각됐지요. 하여, 박물관 쪽에 문의하려 했지만 당장 대답을 해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만 행정원 신문국(우리나라의 옛 국정홍보처에 해당) 직원한테 문의하니 민감한 문제라서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답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대만대표부를 통해 전해온 답변은 간단하지만 중국과 대만 간의 정치적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전시인데, 양국 박물관 차원의 결정인가? 이 전시를 중국에서도 열 계획이 있는가? 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수 합벽-황공망 및 부춘산거도 특별전>은 2009년 ‘옹정-청 세종 문물 대전’ ‘문예소흥-남송예술 및 문화특별전’ 등 두가지 큰 전시를 뒤이은 것으로, 중국대륙의 박물관과 두 차례 교류합작의 성과입니다. 이번 특별전은 2년에 걸쳐 계획되었으며 절강성박물관이 <잉산도>를 빌려주는데 동의함으로써 본 전시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해당 그림이 360여년 뒤에 합쳐져 전시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본 박물관의 결정 및 계획에 따른 것이며 이로써 박물관의 교육기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고궁문물의 국외전시는 과거 여러 차례 성공적인 사례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좋은 전시는 완전한 전시계획과 신중한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해외 전시를 하려면 해당 국가는 사법적인 가처분을 면한다는 것을 법률로 보장해야 합니다. 이는 고궁문물의 해외전시의 선결조건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번 특별전은 당장 중국대륙에서 전시할 계획이 없습니다.   
    
 정부 차원이 아닌 박물관끼리의 결정에 의한 전시라는 의미입니다. 남북한 교류가 민간기구나 종교계를 통해 이뤄지는 것과 흡사한 구조입니다. 서로 상대국을 인정하지 않는 관계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또 두차례 중국쪽의 문화재를 대만쪽에서 유치해 전시를 한 적이 있지만 거꾸로 대만의 문화재가 중국으로 건너간 예는 없는 셈입니다. 대만 문화재 전시에 대한 중국 쪽의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원인도 있을 것이고, 소유권을 내세워 반환하지 않겠다는 것을 법률로 보장하지 않고 있는 상황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건너오면서 가져온 국보급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은 아직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의미일 터입니다.
  
하여튼 <부춘산거도> 특별전은 이래저래 의미가 있으며 같은 분단국가인 한국인으로서 지켜보기가 착잡한 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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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수합벽- 황공망 및 부춘산거도 특별전’이 대만 타이베이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지난 6월초에서 시작해 9월5일까지 열립니다. 대만 출장 가는 길에 고궁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일부러라도 찾을 터인데, 마침 잘 되었지요. 황공망이나 부춘산거도를 중국어로 어찌 읽는지 몰라, 두나라 사이에 나뉘었다 합쳐진 그림 전시를 보려 한다고 설명하니 가르쳐 주더군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려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군요. 점심시간에 줄이 짧고, 일행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점심 틈을 줄여 줄에 붙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슴 두근거리며 그림을 보았습니다.
 
 <부춘산거도>는 원대 5대가 중 한사람인 황공망(1269~1354)의 작품으로 그의 작품 가운데 작품성 면에서 가장 빼어나며 크기도 6.88미터에 이르는 거작입니다.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은 5대의 동원, 거연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황공망과 동시대인 조맹부도 이런 작품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이상을 표현하는데 강조점을 두는 문인화 정신과 수묵화의 새영역을 개척한 자유로운 붓터치 등 붓글씨의 기법을 회화에 녹여넣어온 발전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명, 청대 산수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작품은 원 순종 지정 10년(1350년), 황공망이 여든두 살이었을때 완성되었습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청대 초기인 1650년 운기루 주인 오홍유가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오홍유는 임종 때 이 그림을 태우라고 말했지만 다행히도 가족 중 한 사람이 이를 구해냈습니다. 두루마리 그림은 그 통에 손상돼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잉산도>라고 알려진 앞부분은 51.4cm로 절강성박물관의 중요 수장품입니다. 뒷부분 636.9cm는 1746년 청 황실 컬렉션이 되었다가 국립고궁박물관의 국보로 지정돼 있습니다. 360년 이상 이 작품은 떨어진 채로, 한 차례도 동시 전시된 바 없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위해 절강성박물관에서 잉산도의 임대에 동의해 주었습니다.
 
 황공망은 50세에 이르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업화가가 아니죠. 그래서 작품도 많지 않습니다. 명, 청대ㅣ 문헌을 보면 60점 남짓임을 알수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작품은 그보다 훨씬 적은데, 주로 만년작입니다. 부춘산거도는 황공망의 필력이 완숙할 즈음의 것으로, 그가 여행하고 거주하던 부춘 강 주변의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그림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가면서 야트막한 산과 높은 산이 임립한 나무들과 함께 솟았다가 꺼졌다하는 강둑을 따라 갑니다. 풍경은 때로는 심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명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부춘산거도는 두 나라로 나뉜 중국의 운명처럼 두 조각으로 나뉘어 보관돼 있었습니다. 360년만에 나뉜 그림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은 대만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국인인 저까지 보고싶은 정도이니 두말할 나위 없지요.
 
 이 전시가 성사되기까지 과정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각각 중요한 작품으로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만큼 정치적인 결정도 있지 않을까 생각됐지요. 하여, 박물관 쪽에 문의하려 했지만 당장 대답을 해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만 행정원 신문국(우리나라의 옛 국정홍보처에 해당) 직원한테 문의하니 민감한 문제라서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답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대만대표부를 통해 전해온 답변은 간단하지만 중국과 대만 간의 정치적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전시인데, 양국 박물관 차원의 결정인가? 이 전시를 중국에서도 열 계획이 있는가? 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수 합벽-황공망 및 부춘산거도 특별전>은 2009년 ‘옹정-청 세종 문물 대전’ ‘문예소흥-남송예술 및 문화특별전’ 등 두가지 큰 전시를 뒤이은 것으로, 중국대륙의 박물관과 두 차례 교류합작의 성과입니다. 이번 특별전은 2년에 걸쳐 계획되었으며 절강성박물관이 <잉산도>를 빌려주는데 동의함으로써 본 전시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해당 그림이 360여년 뒤에 합쳐져 전시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본 박물관의 결정 및 계획에 따른 것이며 이로써 박물관의 교육기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고궁문물의 국외전시는 과거 여러 차례 성공적인 사례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좋은 전시는 완전한 전시계획과 신중한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해외 전시를 하려면 해당 국가는 사법적인 가처분을 면한다는 것을 법률로 보장해야 합니다. 이는 고궁문물의 해외전시의 선결조건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번 특별전은 당장 중국대륙에서 전시할 계획이 없습니다.   
    
 정부 차원이 아닌 박물관끼리의 결정에 의한 전시라는 의미입니다. 남북한 교류가 민간기구나 종교계를 통해 이뤄지는 것과 흡사한 구조입니다. 서로 상대국을 인정하지 않는 관계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또 두차례 중국쪽의 문화재를 대만쪽에서 유치해 전시를 한 적이 있지만 거꾸로 대만의 문화재가 중국으로 건너간 예는 없는 셈입니다. 대만 문화재 전시에 대한 중국 쪽의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원인도 있을 것이고, 소유권을 내세워 반환하지 않겠다는 것을 법률로 보장하지 않고 있는 상황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건너오면서 가져온 국보급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은 아직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의미일 터입니다.
  
하여튼 <부춘산거도> 특별전은 이래저래 의미가 있으며 같은 분단국가인 한국인으로서 지켜보기가 착잡한 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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