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나의 심정

김현거사 2025. 4. 3. 02:40

이 글은 지금은 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사과하여 끝난 일이지만, 참고로 그간 나의 심정을 밝힌다.

아내는 큰 병을 두개나 거쳐 몸이 약하다. 나는 끝까지 아내 병원 다니는 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여 최선을 다해왔다. 그러나  재산에 대한 아내 생각 때문에 견딜 수 없다. 집과 예금 모두가 자기 것이라 한다. 내가 성장한 집안 환경에선 도대채 이런 꼴은 본 적 없다. 나는 기자, 아남 그룹 비서실장, 대학교 겸임교수를 했다. 그동안 생활비, 자식 교육비를 내가 부담했다. 집도 내가 마련했다. 그런데 아내는 그걸 부정하고, 현재 집과 예금이 전부 자기 것이란 것이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존재 이다. 우리 집안은 그런 가문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한번도 자기 재산이란 말을 입에 올린 적 없다. 그래도 아버지는 항시 어머니를 포함한 온 가족을 책임 지고 돌봐온 집안이다. 나도 그러리라  생각하여 믿고 평생 집과 예금을 아내에게  맡겼다. 한번도 내가 관리한 적 없다. 그러고 현재 아내가 모든 재산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아들 지영은 연대 의대 실패하여 홍익대 전파공학과 졸업했다. 직장생활 하다가 결혼할 때 내가 평생 집 걱정 없이 살라고 삼성동 봉은사 옆 빌라 한 채 주었다. 그 빌라는 지금 땅값만 30억 정도 된다. 그는 신도리코 社 거쳐 LG에 근무하고, 서울대 출신 며느리는 고등학교 교사이다. 집도 강남이고, 둘의 월급 합은 월 1500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러나 명절에도 부모 집 찾는 일 없고, 병원에서 엄마가 위독하여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마 그 이유가 엄마가 판사 사위만 편애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자식 도리라고 할 수 없다.

 

딸 청강은 연세대 졸업하고 IMF 때 취직이 어렵게 되자 미국 유학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유학 다녀온 자식이 콧대만 높아, 초라해진 가난하고 늙은 부모 업신여기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번씩이나 등록금 한 번만 지원해 주면 박사 되어 귀국하겠다고  간청하길래, '그럼 두 학기 등록금을 주겠다. 만약 장학금을 못받아 중간에 귀국하게 되면 그때 부모 원망 않고 무조건 귀국해라'는 조건을 달고 허락했다. 딸은 어렵게 공부한 후 박사 학위 얻어 귀국하여 한양대 교수 되었다. 그러나 미국서 장학금 타고 공부할 때 너무 고생했다고 생각했는지 지금 애비에게 가을 날씨보다 쌀쌀하다.

 

아들은 여동생이 유학 가서 박사 된게 불만이고, 은 오빠처럼 강남에 30억 짜리 비싼 집을 주지 않아 불만인지 모른다. 아들 딸 둘 다 80 넘은 부모에게 지금까지 용돈 한번 준 적 없다. 대학교수 딸은 엄마가 오히려 도와준 적 있다.  

 

아내는 어떠한가. 아내는 나의 고려대 철학과 미인 후배이다. 나는 대학 4년 장학생으로, 재력가 집안과 국회의원 집과 혼담 있었다.  결혼 후 기자 생활 10여년 하다가 아남 그룹 회장 비서실장과 계열사 사장 지냈다. 우린 봉은사 옆 삼성동  고급빌라 2채에 아들 가족과 두 집 살았다. 아남 건설 아파트 분양권도 있었다. 그러나 남매 공부 시키고 결혼 때 조금 도와주고, 밀레오레에 4억 투자하여  오히려 관리비만 내고,  30년 세월이 지나 이젠 가난하다. 재산관리가 서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내 명의의 삼성동 빌라 팔아서, 내 명의의 토평 아파트에 살다가, 내 명의의 수지 대우 아파트 살다가, 내 명의의 수지 LG 2차 아파트 살았다. 그러다 지금은 아내 명의의 수지 롯데캐슬골드 아파트에 산다. 수지 롯데 아파트 청약할 때 아내에게 현금 5천만원이 있어 그걸로 계약금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파트 매입 비용 5억은 내 LG 아파트 매각한 돈으로 냈는데, 그후 롯데캐슬골드 아파트가 12억이 되자 아내는 아파트를 자기 것이라고 한다. 롯데골드 아파트 매입 비용은 LG 2차 아파트 판 대금인데 그런다. 그리고 그때 팔았던 LG 아파트 역시 현재 12억 한다. 

 

지금 아내는 자기 명의로 되어있는 롯데캐슬골드 아파트가 자기 것이라고 하고, 5천만원 현금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데, 돈에 집착하는 사람에게  관리를 전부 맡기고 60년 가까이 살아온 내 잘못도 있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시대는 가족 개념 재산이었지, 부부 각자 재산 개념이 없었다. 그건 저속한 쌍놈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나는 챙피해서 아내와 돈 문제를 놓고 다투지 않았다. 현금 5천만원은 그냥 아내에게 것으로 포기 해주었다. 그러나 집은 누가 만든 것인가. 법대로 부부 각각 50% 소유권이 있어 인정해줄 생각도 있다. 그러나 전 재산이 몽땅 아내 것이 아니다. 나를 빈털털이 유령인간처럼 대접함은 참을 수 없다.  

 

그러다 25년 4월 2일 밤 밀레오레 상가 관리비 때문에 문제가 터졌다. 밀레오레 상가는 내 소유 포천 돌산 매각 대금 4억으로 산 상가다. 그러다 내가 근무하던 아남건설이 부도 나고, 예금보험공사에서 검사를 팀장으로한 채권관리단이 와서 중역들 집을 전부 가압류 할 때,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상가 명의를 아내 명의로  바꾸었다. 그후 상가가 장기간 임대인을 구하지 못해 주인이 매월 관리비 17만원을 부담하게 되어, 최근 700만원 정도 쌓이게 되었다. 그러자, 아내는 혹시 5천만원 자기 통장이 차압될지 모르니, 밀레오레 상가 명의를 내 명의로 바꾸자고 했다. 판사 사위와 대학 교수 딸도 같았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주장 같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 현금 500만원 밖에 없는 나는 그냥  죽으라는 이야기다. 집도 현금도 모두 아내 것이라고 주장하여 섭섭한데, 부채도 짊어지라는 말에 피가 꺼꾸로 솟았다. 그럴려면 당장 이혼하고 혼자 고향으로 가고 싶었다. 80 넘은 내게 진주에 지금 친구들도 없다. 그러나 정든 고향 땅이나 밟고 살다가 저세상으로 가고 싶다. 집도 예금도 모두 뺏긴 나홀로 고향에 돌아가 살다가 죽고 싶었다. 돈만 중요시 하는 아내, 아버질 외면하는 아들 딸 곁에 산들 무슨 가치가 있나?

 

현재 82살 된 나는 앞으로 몇 년 더 살지 모른다. 지금도 어지름증에 시달리고, 귀도 잘 안들린다. 아내는 폐암과 놔경색 치료를 받았고, 기억력도 희미해 나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 끝까지 아내를 보호하고 병간호를 해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아내와 딸한테서 그런 소릴 듣자, 나는 그들에게서 떠나고 싶다. 사람 보다 돈을 더 중요시 하는 아내는 더 이상 보살필 의무도 없다.  그래 밀레오레 관리비 문제로 다툰 그날 밤, 2025년 4월 2일 밤에 아들과 며느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상의라도 해보려고  전화를 몇 번 씩 했으나 둘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가 그 아들 며느리에게 평생 집 걱정 말고살라고, 피땀 흘려 만든 서울 강남 요지의 빌라를 준 게 후회되었다.   

 

끝으로 아내 당뇨병과 의부증 증세를 첨부한다. 아내는 폐암과 뇌경색으로 두 번 입원했다. 그동안 나의 간병을 원하기에 불편한 병실에서 지냈다. 그런데 병이 회복되자, 건강한 남편에 대한 의부증이 싹텄다. 당뇨병 환자가 흔히 그런다고 들었다. 퇴원하자  아내 방 침대에서 여자의 루주와 귀걸이가 나왔다고 했고, 또 내가 입은 옷 하나를 누가 선물했냐고 추궁했다. 무조건 의심하여 견디기 어렵게 했다. 나는 2년 임기 아파트 노인회 회장도 1년 하고 사임했다. 한번은  아내가 흥분하여 동네 파출소에 신고해서 경관 3명이 다녀갔다. 경관들은 서재 문을 잠그고 피해있는 나를 보고 할머니는 당뇨병 환자고 몸이 쇠약하시니, 끝까지 잘 참고 보살피라고 한 후 돌아갔다. 같이 살기 괴롭다. 장보기, 음식 준비, 설거지 등은 내일이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도왔다. 그러나 내 의견은 항상 개무시 당하는 게 참을 수 없다. 인내도 한계가 있다. 그런데 본인이 재산을 반으로 갈라 헤어지자고 한다.  그 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래서 그날 이혼하자고 말 했다. 노년에 가장 유치하고 저속한 결론이다. 그렇지만, 밝힐 건 밝히는게 좋다. 그래 이 글을 아들과 딸, 사위와 며느리에게 보낸다.  (2025년 4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