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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書 조심

김현거사 2022. 9. 5. 09:12

草書  조심 

며칠 전  추석 인사 겸 안부 겸해서 동우대 교수가 서예 글씨 하나를 보내며, 뜻을 풀어보라는데 알 수가 없다. 서예가들은 알 수 없는 草書를 써서 사람 곤란하게 만든다. 行書나 隷書, 篆書는 대충 모양을 보고 뜻을 반은 짐작할 수 있지만, 초서야 완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수작 아닌가.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 국회의원동우회란 것이 있었다. 그들이 국회 본관 건물에서 서도전을 열었는데 당시 국회의장 이재형씨를 비롯해서, 정권 실세였던 노태우(당시는 국회의원)  등 40여명이 참석했고, 내가 모신 회장도 4대 국회의원이라 참석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윤길중 의원이라면 당시 국회의원 중에서 최고 명필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 분이 출품한 도연명의 <귀거래사>  초서 병풍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사람들은  <귀거래사> 병풍을 보자 마치 자기들이 초서를 아는 체 글씨  잘 썼다고 점잖게 고개를 끄떡이며 지나갔다. 그런데  회장을 수행하고 간 내가 보니 그 병풍  <귀거래사>  한 대목이 표구가 잘못되어 앞 장과 뒷 장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초서는 모르지만, 대학시절부터 <귀거래사>는 전문을 외고 있었다.  그래서 표구가 실수된 걸 대번에 안 것이다.

그래 귓속 말로 회장에게 표구가 잘못된 걸 알려드렸더니, 우리 회장이란 분이 그냥 가만 있을 분이 아니다. 회장은 학벌이 국졸이다.  '어이 여보시오들! 잠시 이거 좀 보고 지나 갑시다.' 큰소리로 일행 전부를 돌려세워 놓고, 손가락으로 글씨를 가리키며, 순서 앞 뒤가 틀린 것을 지적했다. 회장 바로 옆에 있던 분은 풍산 유씨 유 모 의원으로 회장과 친하던 분이다. 그는 동북제대 나온 분이고, 다른 분들도 학벌 좋은 분 많다. 평소 학벌  컴프렉스를 가졌던  회장이 이 자리에서 자기는  초서를 알고, <귀거래사>를 아는듯 우세 떨었던 것이다.

이런 코메디가 생긴 것은 모두가 모르면 그냥 지나쳤어야 했다. 그런데 초서를 아는체, 또 시를 아는 체 한데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초서도 <귀거래사>도 모르는데 그냥 고개 끄덕끄덕 하며 지나간 건 분명히 코메디다.  마침 뒤늦게 윤길중 의원이 나타나 자기 작품  표구가 잘못된 걸 인정하고 이유를 설명했다. 자기 동생을 시켜서 작품을 표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실수한 것이다.

사실 서예가 중에는 윤길중 의원처럼 고전에 해박하고 글씨 잘 쓴 분도 있다. 그 분은 素筌 孫在馨 가까운 수준이다. 行雲流水의 妙가 있다. 서법에 해박한 그분이라면 草書를 쓸 자격이 있다. 내 친구 중에  草書  쓰는 친구가 있다. 그는 육사 시절부터 장군 제대할 때까지, 80 앞 둔 지금까지 서도를 한다. 그는 한시에 능하고, 草書 한자 한자를 법첩을 펼쳐 연구하며 쓰는 친구이다. 나는 그를 우선 해박한 한시 능력 때문에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草書들엔 관심이 없다. 그들 중에는 한시도 잘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있고,  草書를 그림 그리듯 베끼고 모사하여 출품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