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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천리길(4)

김현거사 2022. 9. 4. 12:19
 

진주는 천리길(4)

사람들은 흔히 진주를 천년 고도라고 부른다. 원래 진주는 가야와 백제 신라 세 나라 국경을 접한 요충지다. 오래된 성이 있고 골동품이 많다. 고령에서 하동까지 무진장한 고령토 광맥이 뻗어있고, 진주 인근에는 가마터가 많다. 진주와 합천에 박물관이 있고, 안의 거창 에는 고가들이 많고, 강굽이마다 정자가 있다. 합천 어느 식당에선 개에게 밥 주는 밥그릇이 대가야 때 사용한 토기였다고 한다. 어느 집에선 사랑방 문짝의 한지를 뜯어내다가 두 접 배접한 한지 한 겹에서 대원군 난초 그림이 나왔다고 한다. 소희의 집에도 그런 물건이 있었다. 부친이 쓰던 차반(茶盤)은 오래 동안 땅 속에 묻혀서 지열로 석탄처럼 광택 나는 참나무 매목(埋木)으로 만든 것인데, 그건 보물로 칠만치 귀한 차반이다. 

정수와 소희는 달빛이 죽림 위에 비치는 야심한 밤, 허공에 하얀 연기를 올리며 차를 마시곤 했다. 그때 차를 담아낸 차반은 소희 아버님이 남긴 참나무 매목(埋木) 차반이고, 찻잔은 진교 백련리(白蓮里)에서 가져온 것이다. 백련리는 일본이 국보로 정한 찻잔 '이또다완'(井戶茶碗)이 출토된 유서 깊은 가마터가 있는 곳이다.  거기서 16세기 전통 막사발을 굽던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백련리란 동네 이름도 우리말로 새미골인데, 새미(샘)는 한문으로 우물 정(井)자를 의미한다. 차는 주로 곤양 다솔사 최범술 스님의 죽로차를 사용했다.  최범술 스님은 <한국의 차도>란 차 이론서를 낸 분이다. 조선시대 차승으로 알려진 무학대사의 제자 함허(涵虛) 스님, 서산대사 청허(淸虛) 스님, 그리고 초의스님과 다산과 완당의 차 사상을 정리한 분이다. 최범술은 조선불교청년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분이고, 젊은 시절 박열 의사와 일본 황태자를 암살할 계획을 세워 상해에서 폭탄을 일본에 운반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효당(曉堂) 최범술의 반야로(般若露)  차 사상을 이야기 했다. 효당은 차와 선(禪)을 동일시하는 불교적 시각으로 차를 정신 쪽으로 깊이 다루었다. 그는 화로에 불 피우고, 물 끓이고, 물 끓는 소리에서 솔바람 소리 듣고, 찻잔을 씻고, 다실을 청소하며, 다기(茶器)나 서화 정원의 멋을 감상하면서, 달과 흰구름 벗삼는 고요한  사색의 생활을 주장하였다. 진주 차인들은 대개 효당(曉堂) 스님의 사상을 따르는 편이다.

 

함허스님의 <山中味>란 시를 읊기도 했다. 

 

山深谷密無人到  盡日寥寥絶世緣  

晝日閑看雲出峀  夜來空見月當天  

爐間馥郁茶烟氣  當上氤氤玉篆煙  

不夢人間喧憂事  但將禪悅坐經年  

 

산은 깊고 골짜기 가파르니 오는 이 없고

종일 고요하여 세상 인연을 끊었구나

낮이면 한가로이 산굴에서 일어나는 구름 보고

밤이 오면 하늘에 뜬 달을 본다네

화로에는 차 달여 더욱 향기 진하고

푸른 연기는 전서를 그리며 위로 오르네

인간 세상 번잡한 일 꿈에도 없으니

다만 즐거이 참선하며 세월 보내네

 

서산대사가  입적하기 전 읊은 해탈시도 음미했다.

 

生也一片浮雲起 (생이란 한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死也一片浮雲滅 (사란 한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浮雲自體本無實 (뜬구름 자체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生死去來亦如然 (생사나 오고 감 역시 모두 그와 같도다)

 

소희는 시를 아는 여인이다. 어쩌면 천년 고도 진주가 피운 마지막 꽃이요,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의 마지막 보물인지 몰랐다. 정수는 여자가 큰 소리 치는 서울에 살다가 소희를 만나자 어릴 때 고향을 만난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물처럼 빠르게 흘러가는게 세월이다. 배꽃 핀 봄에 소희를 만났는데, 어느듯 가을이 저물고 있었다. 정수는 뜰에 있는 감나무 감을 껍질 벗기고 처마에 매달았다. 가지 끝엔 까치밥 빨간 홍시만 서너개 남겨두었다. 소희는 모과를 따서 술을 담았다. 약수암 근처에서 머루 따와 머루주 담았고, 집 근처 뽕나무 오디 따와 오디주 담았다. 굵기가 팔뚝만한 더덕 담금주도 담았다. 다 소희가 정수를 배려한 술이다. 곧  땅속에 움을 파고 배추와 무우를 저장할 예정이다. 소희는 선비의 딸이라 그런지 청빈하고 검소했다. 월궁 항아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래 정수는 인생 말년에 만난 소희를 희귀한 보석처럼 아끼었다. 

땅에 하얀 서리가 내린 어느 날 이다. 정수는 촉석공원 아래 인사동 골동상가에서 오래된 청옥 쌍가락지를 발견했다. 옥빛이 맘에 들어 거금을 주고 샀는데, 하나는 소희 손가락에 끼워주고 하나는 자신이 끼고다닐 생각이었다.

누구는 사랑은 아름답다고 하고, 누구는 슬프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랑은 끝이 있어 그래서 사랑이 더 아름답고 슬픈 것인지 모른다.  

 

 

밤은 깊고 호젓하다.소희는 달빛을 향하여 청련(靑蓮)거사 이태백에게도 차를 올린다.도교에 심취하여 산 속 대숲에서 맹호연 등과 교류하며,지상에 귀양온 신선,적선(謫仙)이라 불리운 이태백이다.채석강의 달을 붙잡으려다 물에 빠져죽은 이태백이다.천년 전 시인이 옆에 있듯 다정하다.

소희는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한참 정수를 쳐다보다가,느닷없이 달려들어 정수의 어깨에 얼굴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인생이 풀잎에 맺힌 이슬이란게 슬퍼요.’

이때 소희의 몸은 흥분하여 떨리고 난초처럼 깨끗한 머리칼이 정수의 뺨을 간지럽혔다.

‘서로 다음엔 아득한 은하에서 만나자는 귀절이 너무 아름다워요.저는 꽃 피는 봄,잎 지는 가을의 서럽고 야속한 시간 속에 산목련처럼 여기서 외롭게 살았지요.그러다가 선생님을 뵙게 됐고요.’

늦게 만나 서럽다고 했다.달빛 아래 꽃같은 소희 얼굴에 이슬 맺힌 모습은,심양강 달빛 속에서 비파 타는 여인의 슬픈 인생 이야기 들으며,비파 소리에 푸른 옷소매를 눈물로 축축히 적셨던 백락천의 ‘비파행(琵琶行)’을 떠올리게 했다.

정수는 다정히 소희의 어깨를 안아주고,그러면 소희는

‘교수님을 영원히 사랑해도 되지요?’

젖은 음성으로 몇 번씩 정수에게 다짐하곤 했다.

 

소희의 집은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배경 같기도 했다.

 

‘임술년 가을에 손님들과 적벽강에 배를 띄우고 술을 마시며,흘러간 영웅들의 인생을 논하면서 인생의 짧음을 한탄하고,장강의 물과 명월의 영원함을 부러워하였다.그러나 장강의 시원한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아무리 보고 듣고 취해도 어느 누구 하나 시비하는 자 없고,아무리 사용해도 없어지지 않으니,이것이야말로 조물자의 무진장한 세계요,나와 그대가 마음으로 즐기면서 우리 인생이 원해야할 진정한 대상이다’

 

앞은 강이고 절벽은 강 위에 솟아있다.청풍명월은 항상 그 위로 지나가곤 했다.

절벽 위의 약수암은 이율곡의 <산중(山中)>이란 시 떠오르게 했다.

 

약초 캐다 홀연히 길을 잃었는데(採藥忽迷路)

봉우리마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千峰秋葉裏)

산에 사는 스님 물 길어 돌아간 뒤(山僧汲水歸)

숲 끝에 피어오르는 차 달이는 연기(林末茶煙起)

 

둘은 밤 이슥하도록 배를 타고 함께 술을 마시며 은쟁반같이 맑은 달을 보기도 했다.

‘한문을 언제 그렇게 배웠소?소희씨가 율곡의 시 읽는 모습은 마치 월궁선녀같소!’

배 위에서 정수가 속삭였다.

 

진주는 전원도시다.둘은 진양호에 가서 유람선도 타고,뒤벼리도 가보고,호국사 의곡사도 찾아갔다.새벽 종소리 들으며 평거 들판과 서장대를 거닐기도 하고,촉석루와 의암,대숲과 백사장을 산책하기도 했다.

 

촉석루를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읊었다.

 

왜적들의 바다를 동으로 바라보고 숱한 세월 흘러

붉은 누각 우뚝히 산과 언덕을 베고 있네.

강물에 그 옛날 꽃다운 가인의 춤추는 모습 비치고,

단청 새긴 기둥엔 길이 장사들의 시가 쓰여있네.

옛 전쟁터에 봄바람 불어 초목을 휘어감고,

황성에 밤비 내려 안개 낀 물살에 부딪히는데

지금도 영롱한 영혼이 남아있는 듯

삼경에 촛불 밝히고 강신제 지내네.

 

안종창은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해서 죽은 의암(義岩)을 이렇게 읊었다.

 

여인이 의를 위해 죽었으니 두가지 덕을 이루었네.

맑고 옥같은 자태에 늠름한 눈서리 같은 지조로다.

왜적 하나 죽였다고 말하지 마라.

모든 간담이 하나같이 철렁했으리라.

여인이라고 작다고 말하지 마라.

만명 장부의 팔같이 휘둘렀네.

강물에 바위돌 닳지 않아 천년 세월 의리가 남아있다네.

 

촉석루 벼랑에는 진주 기생 산홍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논개를 기리기 위한 의기사(義妓司)에는 산홍의 충절을 읊은 매천(梅泉) 황현의 시와  산홍의 시가 나란히 걸려있다.<매천야록>에는 그가 내무대신이던 매국노 이지용의 잠자리를 거절하고 스스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주 출신 작가 이재호는 산홍을 그리워한 ‘세세년년’이란 노래로 한 때 대중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산홍아 너만 가고 나는 혼자 버리기냐

너 없는 내가슴은 눈 오는 벌판이다.

달 없는 사막이다 불 꺼진 항구다.

 

지리산에서 내린 강물은 부드럽게 시가지를 통과하고,시내 사람들 인심은 물처럼 순했다.두사람은 맛있는 진주비빔밥 진주냉면 집들을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둘은 촉석공원 아래 골동상가에서 한번은 오래된 청옥 쌍가락지를 발견했다.

‘이 옥반지가 왜장을 껴않고 강물에 뛰어들 때 논개의 그 섬섬옥수에 끼었던 것이 아닐까?’

 

‘맞아!종이 부친이 정인보 선생과 교류하던 대한학자 아니셨나?’

‘종이가 나중에 이 고서들은 몽땅 그가 음악선생으로 근무하던 학교 도서관에 기증하였지.’

친구들이 종이 이야길 한다.사실 이 자리 친구들 중에 진주 인근에 고택(古宅)을 가진 유서깊은 집 출신이 두엇 있었다.

옛부터 ‘북평양 남진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선 팔도에 명성 자자한 진주다.경치 좋고,인물 많고,선비 많은 고장 진주다.

(4회 끝)

 

진주라 천리길/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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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자전소설

2014. 5. 11.

다도하는 사람들이 간혹 소희 집에서 차모임을 갖곤 했지.’

정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한 비구니스님을 주축으로 열리는 다도회 회원들은 올 때마다,푸른 대숲 속 한옥의 분위기가 차 마시는데 적격이라고 소희를 부러워했다.차라는 것은 안개와 이슬 많은 곳,달빛과 물빛 맑은 곳이 운치를 더하는 법이다.솔바람 소리나 대나무에 비 맞는 소리 들리거나,죽로(竹爐)에 차 끓이는 소리 잘 들리는 곳이 최상의 장소다.

 

차의 명인 최범술스님과 교류한 소희 아버지가 거처하던 방 기둥에는  추사 글씨 주련(柱聯)이 붙어있다.‘靜坐處 茶半香初(조용히 앉은 곳에 반 쯤 익은 차의 첫향기가 일어나고). 妙用時 水流花開(묘용을 얻은 때에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이 글은 글씨도 글씨지만,추사같이 차의 묘미를 꿰뚫은 사람 아니고는 읊을 수 없는 글이다.명상에 들어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미묘한 차의 향기는 알 수 없는 법.추사와 교류한 초의선사는 차와 선(禪)을 한 경지로 보았다.차선일미(茶禪一味)를 주창한 것이다.선에서 지관(止觀)이란 것은,우리의 마음과 몸이 한 경지에 이른 경우를 지(止)라 하고,우리 생활에서 일어난 일체 현상을 깨우친 상태로 보는 것을 관(觀)이라 한다.중국의 조주(趙州)선사가 제자들이 불교의 적적대의를 물으면 <끽다거(喫茶去=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라 한 선문답도 다 이같은 차와 선의 오묘한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최범술스님은 젊은 시절 박열의사와 일본천황 암살 계획을 세워 상해에서 폭탄을 운반해오고,조선불교청년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분이지만,나중에 <한국의 차도>란 저술로 초의스님 이래로 흩어진 차 이론을 본격적으로 정립한 분이다.조선의 차승으로 함허(涵虛),청허(淸虛),초의스님을 꼽았다.그 외는 초의스님과 교류한 다산과 완당을 꼽았다.

그는 차와 선(禪)을 동일시하는 불교적 시각으로 차를 정신 쪽으로 깊이 다루면서,화로에 불 피우고,물 끓이고,물 끓는 소리에서 솔바람 소리를 듣고,찻잔을 씻고,다실을 청소하며,다기(茶器)나 서화 정원의 멋을 감상하면서,달과 흰구름 벗삼는 고요한  사색의 생활을 주장하였다.그래서 진주 차도인들은 대개 효당(曉堂)스님의 맥을 따르는 편이다.

 그런데 그날 강의 끝나고 나오는데, 최교수가 닥아왔다. '김교수님 신안동 들마을에서 

거기 팻말을 보니 성소희 

‘소희는 아버님이 남긴 차반처럼 보물 여인인데....’

이야기는 대략 끝난 듯 했다.정수는 여기서 말을 끊었다.

‘소희란 고향 여인이 차 마실 때 옆에 놓이는 차화(茶花)같이 향기롭구만!아!서울 보다 진주 여인이 얼마나 순하고 다정하고 고전적이냐 말이다.’

A시인의 말이다.

‘김교수!소희 스토리 현재진행형이야 과거완료형이야?님을 따르면 가정이 울고,가정을 따르면 님이 울고...결론을 못내렸군?’

기자 출신 J의 말이다.

‘아따 이 나이엔 무조건 소희 쪽이지!이 나이에 볼 것 뭐 있나?그렇게 멋진 여자와 신선같이 한번 살아본다면 후회할게 뭐있나?나는 정수가 부럽다.’

가부장 권위 빳빳한 Y사장 이야기.

‘요즘 사내들 설거지나 하고 마눌님 눈치나 보고....오죽하면 젊잖은 김교수께서 이러시겠나?그런데 칼로 무우 자르듯 이야길 여기서 끝내면 어떡해?좀 더 화끈한 장면은 없었나?’

P 병원장 코멘트.

‘그게 문학의 한계였어.더 나가면 외설이지.’

김교수 응답.

‘결혼제돌 확 바꿔버려야 해.한 20년 살고 알콩달콩 맘 맞을 상대와 한번 더 결혼하라고 확 입법을 해버리던지...법이 바뀌면 여성 쪽에서 더 좋아할 껄?입만 뻥긋하면 웬수같다잖던가?’

동대문서 부동산 하는 L이야기다.

‘아예 서울 동기들 전부 귀향하여 소희같은 진주 여인 찾아서 단체로 여생 새로 시작해버리라고!’

단체 생활 익숙한 L 장군 코멘트.

‘나무관세음보살!생주괴공(生住壞空)은 연(緣)에 의한 것.늘상 마누라 바꾸자는 입버릇의 H 생각나는군.’

불교 냄새 풍기는 C의 말.

‘김교수!이 이야기 혹시 전원지향 현대판 귀거래사 아니야?그 있잖아?<어려서부터 세속과 맞지 않고 타고나길 자연을 좋아했네.어쩌다 세속의 그물에 떨어져 어느듯 삼십년이 흘러버렸으니,조롱속의 새 옛 숲 그리워하고 연못의 고기 옛 웅덩이 생각하듯이,남쪽 들 가장자리 황무지 일구며 본성대로 살려고 전원에 돌아왔네.>도연명의 시 같은 거?‘

정릉 K교수 의견.

‘<진주라 천리길 내 어이 왔던가.연자방아 돌고돌아 세월이 흘러가듯 인생은 오락가락 청춘은 늙었더라.늙어가는 이 청춘에 젊어가는 옛추억.아! 손을 잡고 헤어졌던 그 사람.그 사람은 간 곳이 없더라.>남인수 노래 대사같은 건지 모르지.아련한 고향 처녀에 대한 향수.’

유행가 빙자한 우리 김교수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