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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책

김현거사 2022. 9. 2. 08:25

가을 산책

가을 산책길은 뭔가 쓸쓸하다. 소매 끝에 싸늘히 느껴지는 바람맞으며 길에 나서면 시들은 꽃이 지난여름 생각게 한다. 무성한 가지 끝에 화려한 꽃 매달던 장미 덩굴은 이제 가지 끝에 여름 마지막 몇 송이 꽃 달아 애처롭다. 산책길이 허전하다. 붉게 물들던 접시꽃도, 황금빛 금계국도 이젠  볼 수 없다. 풀숲에 이슬 맺혔다. 지난여름 추억하는 풀벌레만 울고 있다. 문득 갈대에 눈이 간다. 폭우에 넘어졌던 갈대가 새파란 잎을 올리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노래를 부를 것이다. 파스칼이었던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사람이. 갈대꽃 피면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이 오는가.

63년에 서울 왔으니 여기서 근 60년 살았다. 만난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혹은 장미였고, 혹은 금계국이었고, 혹은 잣나무였다.  마음 애태우게 한 사람, 화려했지만 금방 간 사람, 잣나무처럼 歲寒의 의미를 알게 해 준 사람들 이다. 그러나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공자는 '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고 한탄했다. 장미나 금계국이나 잣나무 모두 흘러가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봄은 수선화 개나리 진달래로 시작되어 모란이 지는 걸로 끝났다. 여름은 칸나 수국  무궁화로 끝났다. 가을엔 구절초 코스모스 국화로 끝났다. 그러나 모두가  안녕이다.

보들레르는 <가을의 노래>를 이렇게 읊었다.

머지않아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 안녕, 너무 짧았던 우리 여름의 찬란한 빛이여!
내겐 벌써 들린다, 음산한 소리 울리며 안마당 돌바닥 위에 떨어지는 장작 소리.

나는 몸을 떨며 듣는다. 장작개비 떨어지는 소리 하나하나, 교수대 세우는 소리도 이보다 더 음산하지 않으리. 내 정신은 지칠 줄 모르고 울리는 육중한 망치질에 허물어지고 마는 탑과도 같아.

이 단조로운 울림소리에 흔들려 어디선가 급히 관에 못 박는 소리 들리는 듯.
어제는 여름, 이제는 가을! 이 야릇한 소리 신호처럼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