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장난
우체국에 가서 아내 구정 선물을 보내고 나오니 눈이 내린다. 길이 미끄러울까 싶어 약해진 아내 손목을 잡고 걷노라니 차그운 작은 손이 애처럽게 느껴진다. 뇌경색 이후 걸음과 글씨가 좀 비틀거린다. 르네 클레망 감독의 '금지된 장난'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피난길에 독일군 전투기 기총사격으로 부모와 개를 잃어버린 폴레트란 어린 소녀가 근처 농가의 미셀이란 소년에게 마음을 의지하여, 둘이서 개를 묻어주고 십자가 만들어 주는 이야기다. 80 바라보는 나는 이제 미셀, 몇 살 아래 아내는 폴레트 같은 그런 사이다. 날리는 눈을 맞으며 걸어가면서 영화 속에서 울리던 '로망스' 기타 선율을 생각했다.
https://youtu.be/UipIAqtTzYc ( '금지된 장난' 중 '로망스별(알퐁스 도데))
근처 칼국수 집에 가서 아내 그릇에 겨자를 쳐주자, '그러지 마세요' 아내가 웃으면서 사양한다. 전에 이 집에서 내가 아내 외투를 입혀주자, 점포 주인이 '할아버지 참 멋진 분이세요' 한 적 있다. 그녀 앞에서 자꾸 친절한 척 하지 말라는 것이다. 칼국수 집을 나서자 눈발이 더 거세다. '롯데몰 4층에서 커피나 한 잔 할까?' 눈구경이나 하자고 했더니, '당신 카드로?' 대뜸 계산부터 따진다. 54년 전에 대학 캠퍼스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시를 쓰던 문학소녀였다. 결혼하여 그동안 고생 많이 시켰고, 이제 두 사람 다 노인이 되었다. 서투른 실력으로 요즘 그의 모습을 유화로 그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