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목일 씨에게 드리는 공개 질의서 -수필의 날 행사 건에 관하여
우편으로 배달 되어 온 수필의 날 행사 안내문을 보니 이번 수필의 날 행사장에서 <수필문학에 대한 차별적이고 부당한 대우에 대한 탄원서에 참석 수필가들의 서명을 받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할 계획>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수필분과 1 회원의 자격으로 정목일 씨의 그 같은 계획에 반대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수필문학이 오늘날과 같은 <차별적인 대우>를 받게 된 잘못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먼저 있지 않고 우리 수필계에 먼저 있다고 본인은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목일 씨가 말하고 있는 <차별적인 대우>라는 말의 직접적인 뜻이 금번 문예진흥기금에서 수필이 제외된 사건을 말하는 줄로 압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오늘날 수필이 이 같은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데 까지 이르게 된 원인은 먼저 우리 수필문학 자체에 있는 것이지 문예진흥기금에서 수필을 제외한 저들에게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의 말뜻은 저들에게 잘못된 판단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먼저 잘못한 쪽은 우리 쪽이고 저들의 잘못된 판단은 우리가 먼저 한 잘못에 대한 결과로 발생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수필이 오늘날과 같은 <차별적인 대우>를 받게 된 것은 정목일 씨 자신도 평소 인정 해 오신 그대로 ([바로 잡아야 할 수필의 개념]) 개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반복적이고 계속적으로 악화 일로에 있는 수필문학의 질적 저하에 있는 것입니다. 재삼 다시 논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유수 종합문학지에서 수필이 쫓겨나고,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서 수필이 추방당한 것이 어제 오늘에 갑자기 생긴 일입니까? 지난 수 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수필문학의 수난의 기간 동안 수필계 지도층에서 이의 해결을 위하여 내어 놓은 근본 해결책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이번 문예진흥 기금에서 수필이 제외된 사건만 하더라도 지난 봄 Pen 클럽 새 임원 선출이 있은 직후에 열린 여의도 총회 현장에 참석하신 회원 한 분이(金泳卓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자신이 관계기관에 문의하여 본 결과 문예진흥 기금은 창작지원 기금인데 수필은 그렇치 못해서 그리 되었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회의 현장에서 발언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수필이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아는 일입니다. 문예진흥 기금에서 시문학이 제외 되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일이 있습니까? 소설문학이 제외 되었다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있습니까? 왜 시와 소설은 가만히 있어도 아무 <차별적인 대우>도 받고 있지 않은데 수필만이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목일 씨께서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시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목일 씨 자신도 지금까지 평소 수필의 질적 저하의 문제를 시인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수필문학 자체가 안고 있는 이 같은 문제점부터 개선 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지요? 어찌 서명 운동부터 하자고 하시는 것입니까? 수필의 날 행사 안내문에 보니 <'수필의 날' 행사를 통해 범 수필문단의 결속과 화합을 보여줌과 아울러 폄훼돼 왔던 수필문학에 대한 인식 제고와 위상 정립에 뜻을 모아야 하겠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수필문단의 결속과 화합>은 절대 필요한 일입니다. 저는 그 일을 위해서라면 없는 돈이라도 마련하여 다소의 자금이라도 보탤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필문단의 결속과 화합>을 무슨 목적으로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까? 문맥을 살펴 보니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수필가는 시인 다음으로 많은 수효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파워를 형성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실로 지난 10년간 좌 우 이론 투쟁의 선동 문 같은 느낌이 들어 섬뜩해 지지 않을 수 없는 문구 입니다. <수필문단의 결속과 화합>을 통해서 정목일 씨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파워 형성>을 통한 힘의 논리로 <무슨 일이든지 성취>하고자 하는 데에 있었던 것입니까? 그런 <수필문단의 결속>이라면 나는 반대합니다. 우리는 펜대를 잡고 일하는 문학인이지 집단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길거리 투쟁을 하는 떼쟁이들이 아닙니다. 문학인들이라면 먼저 모든 일을 글로써 하는 것이 기본태도인 줄로 압니다. 글로써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수필이 <차별적인 대우>를 받게 된 문제의 원인이 글에 있으니 그 해결의 방법도 글에서 찾아야 된다는 뜻인 줄로 압니다. 수필문학 문제 해결의 길이 과연 글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먼저 저들이 수필을 문예진흥 기금에서마저 제외한 원인이 되는 창조적이 못 되는 글쓰기 관행부터 고쳐서 창조적인 글을 써 놓고 그것을 들고 가서 항의를 해도 하고, 그때 가서 서명 운동을 해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문예진흥 기금에서 수필을 제외한 원인에 대한 해결책은 단 한 마디도 내어 놓지 못하면서 서명운동부터 한다는 것은 시청 앞 광장의 광우병 떼쟁이 데모꾼들과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나는 그 같은 집단적 떼쟁이들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수필의 날 서명 계획에 동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철회 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설사 서명운동을 강행하여 다시 문예진흥 기금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그 같은 결과는 오히려 수필문학이 안고 있는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 제시를 하세월로 늦추게 될 공산이 크므로 본인은 더욱 그 같은 서명 운동과 이의 관철에 찬성 할 수 없습니다. 2. 나는 정목일 씨께서 수필이 <차별적인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말에 동의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수필이 <차별적인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를 받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대한민국의 수필이 '여기의 문학'이니 '서자문학', '변방문학'이라는 소리를 들어 온 것은 현대문학 초창기 때부터의 일입니다. 그러나 지난 1세기 동안 아무도 그 같은 비난을 받고 있는 문제에 대한 근본 해결책을 내어 놓은 사람이 없습니다. 단 한 분, 윤재근 교수께서 1992년에 <말하는 에세이>를 통해 [에세이 창작이론]을 발표 하신바 있지만 수필문단은 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정목일 씨께서는 윤재근 교수의 <말하는 에세이>에 귀를 기울이셨습니까? 정목일 씨께서 윤재근 교수의 이론에 귀를 기울이셨다면 당연히 윤재근 교수의 [에세이 창작이론]을 본인부터 취득하여 그 이론에 근거한 글을 썼어야 했을 것이고, 그 이후 발표하신 논문성의 글들에도 당연히 이에 관하여 언급 하였을 것은 물론 또한 문하생들에게도 윤재근 교수의 <말하는 에세이> 이론을 강의하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윤재근 교수의 이론을 늦게나마 재 발견하여 그 이론에 대한 짧으나마 해설을 붙여서 수필전문지(e-수필)에 장기간 재 수록 연재한 사람은 이관희 한 사람 뿐인 줄로 압니다. 수필문학이 <차별적인 대우>를 받게 된 것은 수필인 자신들의 이 같은 '이론경시', '이론 불필요'라는 잘못된 인식에 근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차별적인 대우>가 아니고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라도 수필인들이 [범문단적으로 모여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 같은 수필문학 문제에 대한 근본 해결책에 관해서 논의하는 일이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파워 형성>을 하여 힘으로 밀어 부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나는 글을 쓰는 문인이지 <조직적인 파워>의 조직원도 행동대원도 아닙니다. 그러지 않아도 '수필도 문학이냐'는 손가락 질에 얼굴 들고 나 다닐 수가 없을 정도인데 이제는 시청 앞 광장의 떼쟁이들 같은 자들로 내 몰릴 위기에까지 처하게 되었으니 실로 눈 앞이 캄캄할 지경입니다. 내가 믿기로 나뿐만이 아니고 모든 수필인들도 결단코 <조직적인 파워>의 행동대원 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사료 됩니다. 그러므로 재차 말씀 드립니다만 수필문학의 문제는 먼저 우리 자신의 잘못부터 인정하고 반성하여 잘못을 돌이키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수필의 날 행사 안내문에서 <조직적인 파워> 운운의 부분을 재고 해 주시기를 앙청 하는 바입니다. 3. 이상의 두 가지 이유를 통해서 이미 말씀 드린 바이지만 수필문학의 문제는 그 이론적 혼돈과 세간에서 손가락질 하고 있는 그대로 작품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지 수필인들이 <조직적으로 파워를 형성>하여 데모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 소설은 아무 소리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문예진흥 기금에서 제외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정목일 씨는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평소 수필문학은 인격의 문학이라고 주장해 오시고, 그 위에 수필분과 위원장이라는 책임 있는 자리에 있으신 분으로서의 인격적이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 주실 것을 앙망하며 이만 줄입니다. 2009년 7월 6일 (참고 : 본 문건은 본인이 진행하고 있는 [수필의 창작문학화] 운동의 일환으로 공개 토론을 전제로 작성 되었습니다. 본인의 [수필의 창작문학화] 운동은 공개로 진행 되고 있습니다.
출처:e-수필 2009. 여름 - 통권 15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