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잎은 치자나무 같고 꽃은 백은 백장미 같아/ 육우/ 다경
찻잎은 치자나무 같고 꽃은 백장미 같아/ 육우/ 다경
다경』은 총 3권 10장으로 세계에서 최초로 차에 관한 책이다
[733년 태어난 육우는 3살 때 호숫가 다리 밑에 버려졌고 용개사(龍蓋寺)의 주지 지적선사(智積禪師)가 거두어서 사원에서 자랐다
육우는 복주(復州) 경릉군(竟陵郡, 현재의 후베이 성톈먼 시) 출신이며, 3살 때 호숫가에 버려졌다.
용개사(龍盖寺)의 주지인 지적선사(智積禪師)가 그를 거두어들였으며, 후에 성은 주지의 성을 따 '육(陸)'
으로, 이름은 점을 쳐 점괘에 따라 '우(羽)'로 하였다.
육우는 그의 은사였던 지적스님이 열반하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백옥찻잔도 부럽지 않고 황금술독도 탐나지 않는다. 벼슬하여 아침에 조회드는 것도 부럽지 않고, 저녁에 퇴청하여 고대광실에 오르는 것도 부럽지 않다. 천만번 그리운 것은 서강의 물뿐….”역할을 했다. 나무인형, 아전, 구슬감추기 등을 하는 단역배우였던 그는 얼굴이 못생기고 말마저 심하게 더듬었지만 성실하고 재주가 많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육우의 삶이 바뀌게 되는 것은 20세 때부터다. 경릉으로 좌천되어온 예부랑중 최국보와 교분을 쌓으면서부터다. 최국보와 의형제를 맺은 육우는 그와함께 시· 서 ·화뿐만 아니라 차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펼치게 된다.
22세때 육우는 최국보와 헤어지게 된다. 헤어짐을 아쉬워한 최국보는 육우를 위해 흰나귀 한 마리와 괴목으로 만든 서함을 선물한다. 육우는 오늘날 하남성의 신양일대와 파산협천등 주요 차산지를 여행하며 당시의 최고 명차였던 ‘파동진향명’ ‘협주차’ 등을 마셔본다.
초계로 거처를 옮긴 육우는 피란길을 거쳐왔던 양자강 중유 및 회하유역의 차에 관한 자료들을 다량 수집하고 정리한다. 전란중에도 차에 대해 연구한 육우의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
27세때 모산으로 거처를 옮긴 육우는 악동 감북 환남 환북 강소의 승주 윤주 상주 등 차구(茶區)를 유람했다.
강소유람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인 안진경뿐만 아니라 황보중 등 훗날 그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지인’들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서로 반한 안진경은 후일 육우를 위해 삼계정을 지어줄 뿐만 아니라 조자겸 왕희지 등 당대최고의 문사들과 교류도 주선해준다.
육우는 단순한 차인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는 것이 『저산기』『오흥도경』등 그의 수많은 노작들을 통해 확인된다.
[756년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육우는 강남으로 피신하였는데 오흥(吳興, 현재의 절강성 호주)에 암자를 만들고 은거하면서 차에 대해 연구하였다. 당초 이후, 각지에서 차를 마시는 풍조가 성행하였으나, 차를 마시는 사람들 모두가 음다의 요지와 묘미를 알고 있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육우는 본인과 옛사람의 음다(飮茶) 경험과 다학지식을 총 집대성하기로 결심하고, 다학전문서적을 집필하였다. 연구와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다년간의 유랑생활을 접고, 음력 정월 보름에 호주(湖州)의 소계(艸+召溪)에 움막을 짓고 들어가 1년 여의 노력을 기울여 중국 첫번째 다학전문서적을 완성하였다. 이는 중국 첫번째 차문화 전문저서인 《다경(茶經)》의 초고이기도 하다. 이때 육우가 28살이었다.
지덕(至德) 원년 (756년), 육우는 안사의 난을 피하기 위해 강남(江南)으로 피신하였고, 상원년간(上元
年間)에 오흥(吳興, 현재의 저장 성 우싱 구)에 암자를 만들고 은거하면서 호를 '상저옹(桑苧翁)'으로
하고, 저서를 집필하였다. 그곳에서 육우는 그곳의 승려인 교연(皎然)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여러 차
산지를 돌아다니며 차에 대해 연구하였다.
차의 명산지인 호주에 정착한 육우는 어린시절 용개사(龍蓋寺)에서 터득한 차에 관한 지식을 십분 활용하여 차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는 한편 이 시절 육우는 당대의 시인이자 차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비구승 교연(皎然)과 교분을 갖는다. 교연(皎然)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육우는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차에 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28세 때 다경(茶經)의 초고(草稿)를 완성한다. 752년 새로 경능으로 부임한 태수 최국보(崔國輔)와 의형제의 망년지교를 맺은 후 그는 상류층 인사와 번번하게 접촉하여 많은 인간관계를 맺게된다. 755년 안록산(安록山)의 난을 피해 24~25살 때 절강성(浙江省) 호주(湖州)에 정착한다. 후세는 호주의 정착을 가르켜 육우의 제2고향 이라고 불러기도 한다.
774년 육우는 호주자사(湖州刺使) 안진경(顔眞卿)이 운해경원(韻海鏡源)을 저술할 때 작업에 참여하여 차의 역대 이야기를 수집하였고 804년 육우는 72세의 나이로 호주(湖州)에서 생을 마쳤다.
[. 755년 안록산(安록山)의 난을 피해 24~25살 때 절강성(浙江省) 호주(湖州)에 정착한다. 후세는 호주의 정착을 가르켜 육우의 제2고향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사의 난(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으로 혼란해지자
차의 명산지인 호주에 정착한 육우는 어린시절 용개사(龍蓋寺)에서 터득한 차에 관한 지식을 십분 활용하여 차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는 한편 이 시절 육우는 당대의 시인이자 차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비구승 교연(皎然)과 교분을 갖는다. 교연(皎然)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육우는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차에 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28세 때 다경(茶經)의 초고(草稿)를 완성한다. 774년 육우는 호주자사(湖州刺使) 안진경(顔眞卿)이 운해경원(韻海鏡源)을 저술할 때 작업에 참여하여 차의 역대 이야기를 수집하였고 그 줄거리를 자신의 저서 다경의 칠지사(七之事)편에 보충 편집하여 비로소 다경(茶經)을 탈고하였다. 이렇게 육우가 10여년 세월에 걸쳐 정립한 다경(茶經)은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로서 뿐만 아니라 후세 차에 관한 모든 학문의 지침서가 되었다. 804년 육우는 72세의 나이로 호주(湖州)에서 생을 마쳤다. 남아 있다. 지금 육우가 묻혀 있는 곳은 중국 호주시 묘서향에 있는 저산이다. 그곳에는 중국 항주시인민위원회가 1995년 10월 새롭게 조성한 묘역에 ‘당옹육우지묘’라고 쓰여져 있다.
다경(茶經)
◈ 다경(茶經) 소개
(1)일지원(一之源)
본 장은 차의 주요 산지, 등급, 성장환경과 차 글씨의 원류 및 차의 성능, 효능을 기술하였다. 차의 근원을 명명한 그는 차의 원산지를 남쪽지방에서 자라는 성서로운 나무이고, 모양은 과로(瓜蘆)와 같고, 잎사귀는 치자(梔子)와 같으며 꽃은 흰장미와 같고, 열매는 종려(棕櫚)와 같으며 줄기는 정향(丁香)과 같고 뿌리는 호도(胡挑)를 닮았다고 하였다. 차를 뜻하는 글자는 차(茶), 가(가), 설(설), 명(茗), 천(천) 등이라 기술 하였다. 토양에 대해서 상품(上品)의 차는 자갈밭에서 나며, 중품(中品)은 사질(砂質)에서 나며, 하품(下品)의 차는 황토땅에서 자란다고 했다.
상품차는 야생차이며, 차밭에서 재배된 차는 차등품이고, 자주빛이 나는 차가 상품이며 초록빛이 나는 차는 차등품이라 했다. 이외 차의 효능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육우는 본 장에서 인삼(人蔘)의 등급을 중국 상당(上黨)에서 난 것이 상품이요, 백제(百濟)와 신라(新羅)에서 난 것은 중등품이며, 하등품은 고구려(高句麗)에서 난다고 기술한 점이다.
(2)이지구(二之具)
본 장에서는 제다(製茶)에 필요한 다구를 설명하였다. 육우는 차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기구를 다구(茶具)라 했으며, 이런 다구로서는 바구니인 남(남), 광주리인 거(거), 부뚜막인 조(조), 시루인 증(甑), 절구공이와 절구통인 저구(杵臼), 차를 말리는 도구인 비리(비莉), 송곳칼인 계(棨), 두드리개 채찍인 박(撲), 아궁이 배로인 배(焙), 꿰뚫개인 관(貫), 선반인 붕(棚), 꿰미인 천(穿), 차의 품질을 보관하는 장육기(藏育器)인 육(育) 등을 기술하였다. 차를 만드는 도구는 만약 봄에 불을 금하는 때 들의 절간이나 동산에서 일손을 모아 찻잎을 따고 쪄내고 절구질하고 불에 말려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송곳 두드리개 꿰뚫개 시렁 숙석통등 일곱가지 다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차 다리는 그릇들을 만약 소나무 사이의 바위위에 놓을 수만 있다면 구열은 쓰지 않아도 된다. 만약 샘물이나 산곡물 근처에서 차를 달이게 된다면 물통 개수통 물거름자루 등은 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도시의 왕공(王公)의 집안에서 찻일을 행할 때에는 스물네가지의 찻그릇 가운데서 하나만 빠져도 다도는 무너진다.”
육우(32세)가 제작했다는 차 달이는 풍로(茶爐)도 매우 흥미롭다. 육우는 오랑캐로부터 자신이 사는 성스러운 땅을 지킨 기념으로 세발 달린 풍로를 제작한다.
한발에는 주역의 궤인 호랑이(바람을 상징), 꿩(불을 상징), 물고기(물을 상징)를, 한발에는 당이 오랑캐를 물리친 기념글을, 한발에는 세상에서 차를 가장 잘끓이는 육씨(자신)와 곰국을 잘끓였다는 진미공을 새겼다. 세발달린 풍로는 평화와 평정을 상징한다. 물 바람 불은 조화롭게 융화해 차의 ‘진미’(眞味)를 맛보게 한다.
(3)삼지조(三之造)
본 장은 제다(製茶)의 과정을 기술하였다. 음력 2~4월 사이 맑은 날에 찻잎을 딴다고 했다. 차를 따는 날에 비가 오면 따지 않으며, 날씨가 개어도 구름이 끼어 있어도 따지 않는다. 차의 싹 중에서도 송곳의 끝처럼 쑥 빼어난 것을 골라 따서(採), 찌고(蒸), 찧고(搗), 두드리고(拍), 불에 쪼이고(焙), 뚫어 꿰고(穿), 밀봉해서(封) 건조(乾)시키는 공정을 거치며, 이렇게 만들어진 증청병차(蒸靑餠茶)의 외형, 색깔, 표면상태 등에 근거하여 여덟 등급으로 나누었다. ①호인화(胡人靴)-표면에 가는 잔주름이 있는 차 ②봉우억(봉牛臆)-표면에 가지런한 굵은 주름이 있는 차 ③부운출산(浮雲出山)-표면이 꾸불꾸불한 주름이 있는 차 ④ 경표불수(輕飇拂水)-표면이 가늘고 곡선이 있는데 마치 잔잔한 파도모양이 있는 차 ⑤징니(澄泥)-표면이 평평하고 반듯한 차 ⑥우구(雨溝)-표면이 반지르르하고 고랑처럼 패인 차
이상 여섯 종류의 병차잎은 실하고 연하며 색깔도 또한 윤택하므로 상급품으로 취급한다. ⑦죽탁(竹탁)-표면이 죽순 껍질 모양처럼 되어있고, 껍질이 일어났거나 혹은 떨어지면서 굵기가 있는 차 ⑧상하(霜荷)-표면이 말라 마치 오그라진 연잎모양과 같고 색깔 또한 볼품이 없는 차
이상의 두 종류의 병차는 모두 마르고 볼품없는 늙은 차로서 하등급으로 취급한다.
(4)사지기(四之器)
본 장은 차를 끓이고 마시고 병차를 건조하는데 필요한 29가지의 다기를 소개하였다. 그는 차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기구를 다구(茶具)라고 했으며, 차를 달이고 마시는데 필요한 기기를 다기(茶器)하고 했다.
[1] 풍로(風爐) - 동(銅)이나 철(鐵)재질로 주조(鑄造)한 것으로 차탕을 끓이는데 쓰이는 화로이며 밑부분에 통풍구멍이 있다.
[2] 회승(灰承) - 타고 남은 숯의 재를 수납하는 용기이다.
[3] 탄과(炭과) - 육각형의 철봉을 길이 1자로 끊어서 끝에 뽀족하게 만들어 숯을 쪼갤때 사용한다.
[4] 화협(火夾) - 일명 근(筋)이라고 하며 철 또는 구리의 재질로 만든 1자 3치의 젓가락. 숯을 불에 집어넣는 역할을 한다.
[5] 죽협(竹莢) - 작은 청죽(靑竹)으로 만든다. 길이 1자 2치이고, 한 치 쯤에서 마디가 있게 하고 그 위는 벌어지게 하여 이것으로 떡차를 집에서 불에 쪼인다. 백죽(白竹) 재질로 만든 협은 불에 쪼이면 습기가 생기고 깨끗한 향기가 나서 차의 맛을 한층 돋군다.
[6] 지낭(紙囊) - 두꺼운 한지(韓紙)로 두겹을 만들어서 불에 쪼인 차를 담고 쌓아서 향기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7] 연(연) - 병차(餠茶)를 분쇄하고 갈 때 사용한다.
[8] 불말(拂末) - 재질은 새털이며 여러 곳에 떨어지고 흐트려진 차가루를 쓸 때 사용한다.
[9] 라(羅) - 분쇄된 큰 입자의 차를 보다 고운 분말차로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체이다.
[10] 합(合) - 차를 수납하는 함이다.
[11] 녹수낭(녹水囊) - 찻물을 여과(濾過)하며 담는 기구이다. 주로 냄새나지 않는 구리(銅) 재질이다. 외관은 청죽으로 감고 비단으로 싼다.
[12] 복(복) - 생철(生鐵)로 만든 솥이다.
[13] 교상(交床) - 나무를 십자로 짜서 만든 솥을 받칠 때 사용한다.
[14] 표(瓢) - 조롱박을 반으로 쪼개어 만든 작은 바가지. 배나무로 만들기도 한다.
[15] 목협(木莢) - 대(竹)로 만든 길이 1자 젓가락으로 양쪽 끝을 은으로 싼다. 탕을 젓는데 쓰인다.
[16] 궤(차궤) - 소금을 수납하는 직경 4치의 원형으로 자기(瓷器) 재질의 합 또는 병이다. 차는 소금이란 뜻이다.
[17] 게(揭) - 소금을 뜨는 숟가락이다.
[18] 칙(則) - 차가루를 뜨는 숟가락이며 조개껍질이나 동(銅), 철(鐵), 대(竹) 등의 재질로 만든다.
[19] 완(碗) - 찻잔이다. 월주(越州) 산(産) 자기완(瓷器碗)의 품질이 가장 우수하다.
[20] 수방(水方) - 생수(生水)를 담는 것이며 수용량은 한 대(斗)이다.
[21] 숙우(熟盂) - 뜨거운 열탕(熱湯)을 담을 수 있는 자기(瓷器)류 다기이며, 수용량은 약 2리터 정도이다.
[22] 척방(滌方) - 추목(楸木)재질로 만들고 모양은 수방(水方)과 같다. 8리터 물을 수용할 수 있으며 이 안에서 다기를 씻는다.
[23] 재방(滓方) - 모양은 수방(水方)과 같고 수용량은 약 5리터 정도이다. 차 찌꺼기를 담는다.
[24] 분(분) - 다완 10개쯤 담을 수 있는 것으로 백포초(白蒲草)세끼를 엮어서 만든다.
[25] 거(거) - 생찻잎을 담을 수 있는 대(竹)를 엮은 광주리이다.
[26] 구열(具列) - 다기를 진열 수납하는 궤. 나무 또는 대(竹)로 만든다.
[27] 도람(都籃) - 구열(具列)보다 더 크고 전체 다기를 집어넣을 수 있는 대(竹)로 만든 장이다.
[28] 건(巾) - 다기를 닦는 수건이며 길이는 2자이다.
[29] 찰(札) - 종려(棕櫚) 섬유질 질 껍질로 수유(茱萸) 나무에 단단히 묶어 큰 붓모양으로 만들어 다기를 닦을 때 사용한다.
(5) 오지자(五之煮)
본 장은 차를 끊이는 과정 및 제다기술을 기술하였다. 음력 2~4월의 맑고 구름없는날 차의 품질로서 으뜸인 자순(紫筍)과 녹아(綠芽)를 따서 수증기로 찐 후, 절구통에 넣고 찧는다. 그런후 틀에 넣고 압착하여 동그라미, 네모, 꽃 모양으로 박아내어 대발에 펼쳐 말린다.
말린 차의 한가운데 창으로 구멍을 뚫은 후 막대기로 꿰어 배로(焙爐)위에서 다시 불에 쬐어 말린 후, 대나무로 쪼개 만든 꿰미나 닥나무 껍질을 꼬인 꿰미에 차를 꿰어서 장육기(藏育器)에 보관 저장한다.
차를 달이고 마시고자 할 때는 장육기(藏育器)에서 떡차를 꺼내어 집게에 끼워서 불에 바싹대고, 여러 번 뒤쳐 가며 바르게 구워지도록 맞춘다. 떡차의 표면 껍질이 마치 두꺼비의 잔등처럼(합모배(蛤모背)) 우굴 쭈굴할 정도로 부풀어 오르게 굽는다.
차를 달이는 불은 숯을 쓰며, 그 다음으로는 굳은 섶나무를 쓴다. 차를 달일 물은 산수(山水)가 상등품이요, 강물이 중등품이고, 우물물이 하등품이다.
어슴푸레하게 물 끓는 소리에서 솥바닥에 물고기의 눈(魚目)과 같은 기포가 생겨나는 첫번째 끓음이 일비(一沸)일 때 찻물의 단맛을 내기위해 약간의 소금을 넣어 같을 맞춘다.
숯불에 의해 물위에 떠 있는 검은 수막(흑운모(黑雲母))가 있으면 이를 제거한다. 물기포가 샘물처럼 구슬이어진 것 같은 기포가 올라올 이비(二沸)일 때 표주박으로 끓은 찻물 한 바가지 정도 떠내어 물바리에 담아서 식혀 대기한다.
대젓가락으로 끓은 물의 복판을 휘저으면서 가루차를 헤아려 끓는 물의 중심에 넣어 끓인다. 물기포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북치는 소리가 나는 삼비(三沸)일 때 표주박으로 미리 떠내어 물바리에 식힌 물을 찻솥에 붓고 찻물의 온도를 급히 식힌다.
이것을 가리켜 구비(救沸) 혹은 육화(育華)라고 하는데 이는 찻물의 정기(精氣)를 기르기 위함에 있다. 이때 찻물 위에 뜨는 차가루의 거품을 가르켜 말발(沫발)이라고 하는데, 큰 꽃모양의 거품을 발(발)이라 하고, 작은 거품은 말(沫)이라 한다.
육우는 이 말발(말발)을 가르켜 찻물의 정화(精華)라고 한다. 이러한 말발(말발) 정화를 골고루 찻물과 함께 찻잔에 나누어 마시는데 통상적으로 한 찻솥의 차를 다섯잔 정도로 나누어 마신다.
본 장은 차를 끊이는 과정 및 제다기술을 기술하였다. 음력 2~4월의 맑고 구름없는 날 차의 품질로서 으뜸인 자순(紫筍)과 녹아(綠芽)를 따서 수증기로 찐 후, 절구통에 넣고 찧는다. 그런 후 틀에 넣고 압착하여 동그라미, 네모, 꽃 모양으로 박아내어 대발에 펼쳐 말린다. 말린 차의 한가운데 창으로 구멍을 뚫은 후 막대기로 꿰어 배로(焙爐)위에서 다시 불에 쬐어 말린 후, 대나무로 쪼개 만든 꿰미나 닥나무 껍질을 꼬인 꿰미에 차를 꿰어서 장육기(藏育器)에 보관 저장한다. 차를 달이고 마시고자 할 때는 장육기(藏育器)에서 떡차를 꺼내어 집게에 끼워서 불에 바싹대고, 여러 번 뒤쳐 가며 바르게 구워지도록 맞춘다. 떡차의 표면 껍질이 마치 두꺼비의 잔등처럼(합모배(蛤모背)) 우굴 쭈굴할 정도로 부풀어 오르게 굽는다. 차를 달이는 불은 숯을 쓰며, 그 다음으로는 굳은 섶나무를 쓴다. 차를 달일 물은 산수(山水)가 상등품이요, 강물이 중등품이고, 우물물이 하등품이다. 어슴푸레하게 물 끓는 소리에서 솥바닥에 물고기의 눈(魚目)과 같은 기포가 생겨나는 첫 번째 끓음이 일비(一沸)일 때 찻물의 단맛을 내기위해 약간의 소금을 넣어 같을 맞춘다. 숯불에 의해 물 위에 떠 있는 검은 수막(흑운모(黑雲母))가 있으면 이를 제거한다. 물기포가 샘물처럼 구슬이어진 것 같은 기포가 올라올 이비(二沸)일 때 표주박으로 끓은 찻물 한 바가지 정도 떠내어 물바리에 담아서 식혀 대기한다. 대젓가락으로 끓은 물의 복판을 휘저으면서 가루차를 헤아려 끓는 물의 중심에 넣어 끓인다. 물기포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북치는 소리가 나는 삼비(三沸)일 때 표주박으로 미리 떠내어 물바리에 식힌 물을 찻솥에 붓고 찻물의 온도를 급히 식힌다. 이것을 가리켜 구비(救沸) 혹은 육화(育華)라고 하는데 이는 찻물의 정기(精氣)를 기르기 위함에 있다. 이때 찻물 위에 뜨는 차가루의 거품을 가르켜 말발(沫발)이라고 하는데, 큰 꽃모양의 거품을 발(발)이라 하고, 작은 거품은 말(沫)이라 한다. 육우는 이 말발(말발)을 가르켜 찻물의 정화(精華)라고 한다. 이러한 말발(말발) 정화를 골고루 찻물과 함께 찻잔에 나누어 마시는데 통상적으로 한 찻솥의 차를 다 섯잔 정도로 나누어 마신다.
(6) 육지음(六之飮)
본 장에서는 차 마시는 방법과 음미하는 자세를 설명하였다. 육우는 차를 음료를 삼은 것은 신농씨(神農氏)로 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당시 도읍사이에 이미 차를 음료로 삼은 집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차에는 추차(추茶), 산차(散茶), 말차(末茶), 병차(餠茶) 등이 있는데 파, 새양, 대추, 귤껍질, 수유(茱萸), 박하 등을 넣고 끓이기도 한다. 그는 차에는 아홉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차를 만드는 방법이고, 둘째는 차의 품질을 감별하는 법이고, 셋째는 다기를 다루는 법이고, 넷째는 불을 다루는 법이다.
차를 달이는 불은 숯을 쓰며,
그 다음으로는 굳은 섶나무를 쓴다.
차를 달일 물은 산수(山水)가 상등품이요,
강물이 중등품이고, 우물물이 하등품이다 다섯째는 물을 선별하는 법이고, 여섯째는 떡차를 굽는 기술이고, 일곱째는 떡차를 가루내는 법이고, 여덟째는 차를 달이는 법이고, 아홉째는 차를 마시는 방법 등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그런 점에서 최고의 물 품평가였다. 그는 그가 거처했던 곳들이나 유람했던 곳들의 물을 품천했다.
광주의 곡렴천을 맛본 후 “천길 바위 틈을 뚫고 솟아 나와 구강에 이르러 배를 띄운다.” 며 천하제일천이라 품했고, 황주의 난계수는 천하제삼천이라 품하며 중국산천의 물들의 ‘등급’을 매겼다. 육우는 그런 점에서 물의 ‘달인’이었다.
찻자리에 초청을 받은 육우는 이계경에게 우중수인 양자강물을 부탁했다. 이계경은 육우에게 “육군이 차를 잘 한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바이요. 거기다 양자강의 중류는 물이 빼어나니 오늘 두 오묘함이 천재일우하였습니다.” 라고 했다.
육우가 이에 “이 물은 양자강물이 아닙니다.” 라고 답하자 얼굴이 붉어진 이계경은 물을 떠온 노비를 불렀다. 노비는 이계경에게 양자강물을 떠오다 그만 미끄러져 3분1정도를 다른 물로 채웠음을 고백했다. 최고의 물품천가였던 육우의 뛰어남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집에 돌아온 육우는 이계경이 찻자리를 모독했다고 생각했다.
(7) 칠지사(七之事)
본 장에서는 차 마시는 기원 및 역사를 설명하였다. 삼황(三黃) 때에 염제(炎帝)인 신농씨(神農氏)로 부터 차를 마셨으며 주(周)나라 때에는 노(魯)나라의 주공(周公), 제(齊)나라의 재상인 안영(晏영), 한(漢)나라 때에는 선인(仙人)인 단구자(丹丘子), 황산군(黃山君), 사마상여(司馬相如), 양웅(楊雄) 등 선인(仙人)들이 차를 마셨던 일화를 이야기를 곁들어 기술하였다. 그는 또한 본초(本草)를 인용하여 차는 이뇨, 해열, 소화작용이 있으며, 누창(누瘡)을 주체하며, 각성작용이 있어 잠을 적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침중방(枕中方)을 인용해 오래된 종기는 차와 지네를 함께 구워 체질한 가루를 환부에 바르면 완쾌할 수 있으며, 이유없이 깜짝 놀란 어린애들은 차와 파뿌리를 달여 먹이면 치유된다는 유자방(孺子方)의 치료법도 함께 실었다. 본 장에서는 차와 약효를 기록한 부분에 대하여 후인(後人)이 가필(加筆)했다는 설도 있다.
(8) 팔지출(八之出)
본 장에서는 당시 전국 40여 차 생산지의 차를 등급을 매겨 소개하였다. 그가 매긴 차의 등급은 상(上), 차(次), 하(下), 우하(又下)의 4등급이었다. 산남(산남)지방에서 매긴 차의 등급은 ①협주(峽州)차, ②양주(襄州), 형주(荊州)차, ③형주(衡州)차, ④금주(金州), 양주(梁州)차 등이다. 회남(淮南)지방에서 매긴 차의 등급은 ①광주(光州)차, ②의양군(義陽郡), 서주(舒州)차, ③수주(壽州)차, ④기주(기州), 황주(黃州)차 등이다. 절서(浙西)지방에서 매긴 차의 등급은 ①호주(湖州)차, ②상주(常州)차, ③선주(宣州), 항주(杭州)차, ④윤주(潤州), 소주(蘇州)차 등이다. 검남(劒南)지방에서 매긴 차의 등급은 ①팽주(彭州)차, ②면주(綿州), 촉주(蜀州)차, ③공주(공州)차, ④미주(眉州), 한주(漢州)차 등이다. 절동(浙東)지방에서 매긴 차의 등급은 ①월주(越州)차, ②명주(明州), 무주(무州)차, ③태주(台州)차 등이다. 이외에 검중(黔中)지방, 강남(江南)지방의 생산지에 대해서도 소개하였다.
(9) 구지략(九之略)
본 장에서는 차를 마시는데 있어 장소에 따라 필요한 다구, 다기를 소개하였다. 그는 벌판의 절간이나 동산에서 일손을 모아 제다를 할 때에는 송곳칼인 계(棨), 두드리게 채찍인 박(樸), 아궁이 배로인 배(焙), 꿰뚫개인 관(貫), 선반인 붕(棚), 꿰미인 천(穿), 차를 보관하는 장육기(藏育器)인 육(育) 등의 7가지는 모두 쓰지 않는다 하였다. 달이는 다기들을 돌 위에 앉힐 수만 있다면 모든 다기를 거두어 진열하는 구열(具列)은 필요 없고, 마른 섶나무와 다리 굽은 솥 등을 쓸 수만 있다면 풍로(風爐), 재받이인 회승(灰承), 숯가르게인 탄과(炭과), 부젓가락인 화협(火夾), 교상(交床) 따위는 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 만약 샘물, 산골물 근처에서 차를 달이면 물통인 수방(水方), 개숫물통인 척방(滌方), 물 거르는 자루인 녹수낭(녹水囊) 등은 필요치 않다고 했다. 또한 5인 미만에 가루차가 정제한 것이라면 체인 라(羅)는 휴대할 필요가 없고, 산 어귀에서 구운 차를 가루내어 종이에 싸거나 합(合)에 담을 수만 있다면 연(연), 가루털개인 불말(拂末)은 필요치 않다고 했다. 표주박인 표(표), 대젓가락인 죽협(竹夾), 솔인 찰(札), 주발인 완(碗), 익은 물바리인 숙우(熟盂), 소금단지인 차궤(茶櫃) 를 모두 하나의 대광주리인 거(거)에 담았다면 모듬바구니인 도람(都籃)은 필요치 않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식다법을 행할 때에는 24개의 다구, 다기들 중에서 하나만 빠져도 좋은 차를 우릴 수 없다고 하였다.
(10) 십지도(十之圖)
본 장에서는 이해를 돕고자 네 폭이나 여섯 폭의 흰 비단에 앞의 9장까지 기술한 것을 그림을 갖추어 보충 설명하였다. 마지막 장(章)의 상당부분이 불행하게도 빠졌다는 견해도 있다
2. 차의 전파
중국에서 시작된 차는 승려들이 불교를 전파하면서 함께 전해지거나 통상무역의 발전에 따라 세계 각국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당시 수양을 하는 승려들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없애준다고 하여 차를 애용하였기 때문에 사원에는 항상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당나라의 문성공주(文成公主)가 티벳왕에게 시집을 가면서 차를 가지고 가 티벳에 음다 풍습을 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차가 외국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서기 805년에는 일본의 승려 사이조우선사가 중국에 불교를 배우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종자를 가지고 와서 일본 자가현(滋가縣)의 고꾸다이산(國公山) 기슭에 파종을 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보급은 1187년에서 1191년 사이에 에이자이선사가 차 종자와 더불어 차의 제조법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우리나라는 가야시대부터 차종자가 전해졌다는 주장도 있으나 기록상으로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828년)에 김대렴(金大廉)이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이후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되었다고 한다.
3. 차의 전설
차는 중국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 전에 처음 마신 것으로 알려진다. 육우가 쓴 세계 최초의 차 전문 서적 <다경>에는 차를 마시는 것은 신농씨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로공에게서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류 최초로 차를 마신 사람은 기원전 2737년 염제 신농씨로 그는 인류 최초의 다인이다. 또한 신농씨는 옛날 전설상의 삼황오제 중의 한 사람으로 백성들에게 농경과 목축을 처음 가르쳤다는 머리가 소의 모습을 한 고대 중국의 황제이다. 신농씨가 차를 처음 마셨다는 전설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전설은 ‘신농씨는 백성들에게 알려주기 위하여 산과 들에서 나는 여러 식물을 직접 먹어 보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가려내었다. 그러다가 독초에 중독되어 어떤 나무 아래에서 앓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나무에서 떨어진 잎을 씹자 정신이 들고 중독에 차도가 있었다. 그 다음부터 신농씨가 백성들에게 차를 마시도록 전파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차를 발견한 옛날에는 차잎을 물에 넣고 마신 것이 아니라, 직접 씹어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중국차에 떡차(餠茶)가 있고 차의 원산지로 생각되는 중국 운남성(雲南省)일대에 차를 발효시켜 씹어 먹는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 찻잎이 발견 초기에는 약초처럼 먹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두 번째 전설은 ‘신농씨는 백성들의 건강과 위생을 고려하여 마시는 물을 모두 끓여서 먹으라는 칙령을 내렸다. 그리고 변두리 국경 지방을 순시하던 중 어느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하인이 끓이던 물 주전자에 우연히 그 나뭇잎이 떨어졌다. 그러자 물의 색이 변하면서 좋은 향기가 풍겼다. 이를 보고 신농씨가 신기해하면서 마셔보니 맛이 좋았는데, 이것이 인류가 처음 맛본 차’라고 한다.
중국 당나라의 육우가 지은[다경(茶經)]에 보면, 인류 최초로 차를 마신 사람이 신농씨염제(神農氏炎帝) 라고 했다. 신농씨는 지금 중국땅 서쪽 호북성(湖北省) 윗쪽 섬서성(陝西省) 기산(岐山) 아래로 흐르는 강수(姜水)가 에서 양떼를 몰던 부락민들과 살았으므로 그 성(性)을 강(姜)씨라 했다. 신농씨를 염제 곧 불꽃임금이라고 부르 게 된 것은 그가 처음 으로 불로 물을 끓여 먹는 방법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는 음식을 불에 익혀 먹는 방법을 세상에 전하기도 했다. 또 농사짓는 법을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고 온갖 초목을 헤치고 다니며 수백종의 식물을 맛보아 약초를 찾아내었다. 산야를 거닐면서 하루 칠십여 가지씩 풀잎, 나뭇잎을 씹어 그 효용을 알아보다가 독이 심한 것을 맛보고 중독이 되었는데 찻잎을 씹었더니 그 독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신농씨는 찻잎에 해독의 효능이 있음을 알고 이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지금 중국에 있는 그의 능(陵)마저 차능(茶陵) 이라 불리워 진다고 한다.중국인들은 지금도 햇차가 나오면 제일 먼저 다신(茶神)인 신농씨에게 차례를 지내고 있다. |
다도의 이해
1) 다도의 기원
한대에 기원을 두며 남북조 시대에 차가 문화로서의 규격을 갖추게 되었고 초기에는 차를 즐기는 문인 선비들에게서 그 기원을 얻을 수 있다. 예로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양웅(楊雄)을 들 수 있다. 한대의 문인들이 차를 제창한 것은 차가 문화영역에 들어가는 서막을 올린 것이며 남북조에 들어서는 문화, 사상의 영역에 차와의 관계를 연결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죽림칠현(竹林七贤)’이 있다.
(1) 중국 다도
차를 마시면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분을 안정시켜 주기에 정조를 다스리고 잡념을 없앨 수있다. 는 "청정과 염담"을 제창하는 동방의 철학사상에 일치되는 것이며 불, 도, 유교의 ‘내성수행’정신에 부합된다. ‘다도’는 차를 주제로 하는 일종의 생활예의로써 일종의 수양방식 이다. 이는 차타기, 찻물감상, 맛보기로 심신을 다스리며, 다도는 최초에 중국에서 기원한 것이다. 중국인은 당나라 때 혹은 당나라전까지는 세계적으로도 제일 솔선적으로 음차를 일종의 수신양성의 방법으로 인정하였다. 당나라의 <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에 이러한 기록이 있다. “다도는 널리 유행되었으며 왕공조사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마셨다.”이는 현존하고 있는 문헌중에서 다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당시 사회적으로도 다연(茶宴)은 유행되었던 사교활동이었다. 당여온은 <삼월삼다연서(三月三茶宴序)>에 다연의 우아한 분위기와 음차의 미묘한 운율을 아주 생동하게 묘사하였다. 당송년간 사람들은 음차의 환경, 예절, 순서 등 음차 절차를 아주 중요시하었는데 다소의 약칙과 규칙 그리고 예식이 형성되었다. 다연은 궁정다연, 사원다연, 문인다연 등으로 나뉜다. 송휘종 조길은 차애호가로서 그는 차의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안정시켜주는 아주 흥미로운 일이라고 하였다. 남긴 글로는 "차는 산천의 아름다움과 영롱함을 깨닫게 하고 내장을 씻어주고 편안함을 안겨주는바 일반인으로서는 그 이치를 어떻게 터득하리. 조용하고 한가하며 우아하고 조용한...."가 있다.
송나라 때에는 ‘두차(斗茶)’를 창립하였는데 최초에는 유희의 형식으로 문인들사이에서 유행되었다. 두차회의 다실은 보통 2층건물로써 당시에는 ‘다정(茶亭)’이라고 불렀다. 손님들은 먼저 일층의 ‘객전(客殿)’에서 다정 주인의 초청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2층의 ‘대각(臺閣)’에 올라가 두차를 진행하였다. ‘대각’은 사면에 창문이 있기에 창문 밖의 경치를 내다볼 수 있었다. 실내의 병풍에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들이 걸려있고 병풍 앞의 탁자에는 비단을 깔았으며 탁자 위에는 향로, 화병과 촛대가 놓여져 있었다. 서쪽 사랑채에는 한 쌍의 장농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상품들이 들어있었다. 두차에서 이긴 자는 이 상품의 주인으로 되었다. ‘두차’는 ‘사종십복(四種十服)’의 방법을 채용하였다. 시합에 참가하는 사람마다 4가지 찻물을 10번에 나눠 마신 후 차의 ‘본비(本非)’와 ‘수품(水品)’을 말해야 하며 얻은 점수의 다소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차의 ‘본비’란 본토차인지 본토차가 아닌지를 일컬으며 ‘수품’이란 차를 타는데 사용한 물의 수질 즉 물의 출처를 일컫는다. 나라시대와 헤이안시대에 일본에서 유행한 ‘단차(團茶)’도 당나라의 문인들이 사용했던 차의 일종이었다.
‘단차’를 제작하는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말린 찻잎을 차절구에 넣고 찧어서 분말로 만든 다음 물을 약간 넣어 손으로 공모양으로 다듬어 건조시킨 것이다. 헤이안시대 중기(9세기말), 일본은 견당사를 폐지시켰는데 이때로부터 ‘단차’도 차츰 없어졌으며 이를 대신한 것은 송나라때 성행한 ‘말차(抹茶)’이다. ‘말차’의 제작방법은 정성들여 만든 찻잎을 차절구에 넣어 분말이 되게 찧은 것이다. 마실 때에는 차분말에 물을 붓고 차솔(참대제품)로 저어서 마신다. 영양가도 높고 맛도 좋다. 남송 소희2년(1191년), 일본승려 榮西는 처음으로 차씨를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때로부터 일본은 넓은 지역에 차를 심었으며 ‘음차양생기(飮茶養生記)’를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차를 마시면 장수할 수 있다고 널리 선전하였고 ‘말차’의 보급에 추진 작용을 하였다. 남송말기(1259년), 일본의 南浦昭明선사는 중국의 절강성 여항현의 경산사에 학문을 닦으러 왔다가 이 사원의 다연예절과 절차를 배웠다. 처음으로 중국의 다도를 일본으로 유입하여 전파시킨 사람이다. 일본의 <유취명물고(類聚名物考)>에 이에 관하여 명확히 기재되어 있다. "다도의 기원은 숭복사개산 南浦昭明이송나라로부터 전입시켰다." 일본의 <본조고승전(本朝高僧傳)>에도 "南浦昭明이 송나라에서 귀국할 때 다대와 다도구를 숭복사에 갖고 왔다." 라고 기재되어 있다. 남북조시기(1336년)로부터 무로마찌중기(15세기중엽)에 이르기까지 ‘두차’의 방법과 다정은 중국의 것을 완전히 모방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로마찌중기 이후 중국식 다정은 폐지를 당하고 가도(歌道)와 連歌道의 장소로 되었다. ‘두차’의 취향도 점차적으로 일본화되었으며 사람들은 호화로움과 사치함을 중시하지 않고 우아함과 음차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귀족취미의 다의(茶儀)와 대중화적인 음차방법이 나타났다.
주광(珠光)은 제1부의 음차법을 규정하였는데 후세로부터 ‘음차의 시조’라고 불리운다. 주광은 음차를 유희로부터 다도로 발전시켰다. 주광류 다도는 몇 대를 내려오면서 일본의 토요토미히데요시시대(1536~1598년)에 이르러 유명한 다도대사 千利休가 나타났으며 千利休는 利休流草庵風茶法을 창설하여 천하에 이름을 날렸다. 그는 다도의 발전을 최고봉으로 밀었으며 ‘다도천하제일인’으로 불리었다. 다도의 깃발을 높이 들고 다도의 사규(四規-4가지 규정-화(和), 경(敬), 청(淸), 적(寂)을 총결하였는데 이것의 기본이론도 중국다도 정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주요한 예절의 틀도 중국에서 온 것이다. 千利休의 민간에서의 성망은 집권자들의 권위에 위협을 주었는데 히데요시장군은 평란을 구실로 사동공상신분법령을 반포하여 없는 죄를 씌워 절복자살하게 하였다. 千利休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의 본을 받아 다도를 이어왔는데 ‘表千家’, ‘里千家’, ‘武者小路千家’등을 대표로 하는 많고 많은 유파가 나타났다. 다도의 유파는 기본상 거의가 말차법을 채용하였는데 에토 초기(16세기말기)에 이르러 문인학사들 사이에서 중국 명대에 창립된 전차법(煎茶法)의 붐이 일어났다. 전차법은 찻잎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다. 보통 찻잎을 말린 후에 다시 쪄서 손으로 비벼서 다관에 넣고 끓인 물을 붓고 다완에 따라 마신다. 사실 당시의 사람들은 이런 방법을 엄차법(淹茶法)]이라 불렀는데 진정한 ‘전차법’은 다른 것이다. 먼저 끓인 물을 다완에 붓은 후 찻잎을 넣어서 마시는 것인데 현대인들은 통칭 전차라고 한다. 전차는 간편하고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기에 일반 가정에서도 보편적으로 전차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정식다회나 중요한 인물들을 접대할 때는 여전히 전통 말차법을 위주로 한다. 중국의 다도는 일본보다 수 백년 심지어 수 천년 먼저 나타난 것이다. 중국의 다도는 정신을 중시하고 형식은 중시하지 않는다. 각 역사단계마다 부동한 표현방식이 있고 차도 여러 가지 종류로 나뉘어진다. 그렇지만 모두가 "청(淸), 경(敬), 이(怡), 진(眞)"의 다도정신을 체현하였다.
다도란 무엇인가? 오각농(吳覺農)선생님은 다도를 "차를 진귀하고 고상한 음료수로 생각한다. 차는 정신적인 향수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예술이며 수신양성의 수단이기도 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장만방(張晩芳)선생님은 "다도는 일종의 음차방법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예절교육과 도덕수양을 배워주는 의식이다"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중국다도의 기본정신은 "염(廉), 미(美), 화(和), 경(敬)“ 이라고 귀납하시면서 "청렴과 검소함은 덕을 쌓고, 아름다움과 진솔함은 기쁨을 가져다주며, 평화로운 마음으로 처세를 하며, 공경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여야 한다"라고 해석하셨다. 진향백(陳香白)선생님은 "중국 다도는 다예(茶藝), 다덕(茶德), 다리(茶理), 다정(茶情), 다학설(茶學說), 다도인도(茶道引導) 등 7가지 의리를 포함시킨 것으로 중국 다도정신의 핵심은 화(和)이다. 중국 다도는 차의 과정을 통하여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향수하는 과정중에서 품격의 수양을 완성하면서 인류의 평화와 안락을 실현하는 길이다. 다도의 이론은 간단하게 ‘칠예일심(七藝一心)’이다"라고 하셨다.
①중국 다도정신
대만중화 다예협회 제2차대회에서 통과한 다예의 기본정신은 ‘청, 경, 이, 진’이다.
㉠청(淸)
청결, 청렴, 청정 및 청적의 청이다. ‘다예’의 진리는 사물표면의 청결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심경의 청적(淸寂), 영정(寧靜), 지치(知恥)가 정적의 경계(境界)중에 있기를 요구한다. 바닥이 보일 수 있는 맑은 찻물이여야만 음차의 오묘함을 체험할 수 있다.
㉡경(敬)
경이란 만물의 근본으로 무적의 길이다. 경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근신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이다. 주자는 "언경의 태도는 응당히 성실하고 일심이어야 하는데 이는 말하는 사람의 자태와 의표(儀表)에 나타난다"고 하였다. 경시하거나 허위적이지 말아야 하며 빈주를 막론하고 일거일동에 "경과 화"의 심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일체 잡티가 없어지고 깨끗이 씻길 수 있어 차맛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怡)
이란 화이며 희열이다. 조화의 의미는 형식과 방법에 있으며 희열의 의미는 정신과 정감에 있다. 음차는 쓴맛을 통해 단맛을 보는 것으로 생활의 정취를 계몽시키며 넓은 흉금과 원대한 안광을 양성시킨다.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희열의 정신으로 해소시키고 자부와 겉치레를 버리고 온화함에 묻혀 겸손하고 공손한 행위를 양성시킨다.
㉣진(眞)
진리의 진, 진지(眞知)의 진이다. 지선(至善)이란 진리와 진지를 결합시킨 총체이다. 지선의 경계란 천성을 두고 물욕을 버리며 이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풍격과 지식을 얻는것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일체사물의 지성, 음차의 진리를 얻는 것으로 지능과 양지를 계몽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생활 중에서 담백한 뜻으로 검덕하게 행사하여 진, 선, 미의 경지에 달하게 한다. 임치(林治)선생님은 "화, 정, 이, 진"을 중국다도의 4가지 진리로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는 "화"는 중국다도의 철학사상의 핵심으로 다도의 영혼이고 "정"은 중국 다도를 익히고 배우는 방법이며 "이"는 중국 다도를 습득하는 심령감수이며 "진"은 중국 다도의 종극적인 추구이기 때문이다.
2. 다도의 발전
당나라는 승려, 도사, 문인이 주가 되어 차 문화를 촉진하였고, 송대에 진일보하여 발전 하였다. 궁중 차문화와 민간 백성들의 차문화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송대에는 당 시기의 차를 끓여 마시는 방법을 개량하였고, 색깔과 향기의 통일을 중요시 하였다. 송대 시민들은 차와 예술을 융합하는 과정에 있었는데 문학, 예술 등 순수한 정신문화에 직접적인 관련부분을 생산해내어 차문화 우의를 증대하고 사회 인간관계의 수단이 되어 차는 이 시기에 이미 민간에서의 예의가 되었다. 조공으로 들어 온 차를 “수차(绣茶)”, “두차(斗茶)”라 하며 문인들이 자음자작하는 것을 “분차(分茶)”라 하였다.
원나라 시기의 북방민족은 비록 차를 즐겨 마시기는 하지만 송나라 문인들이 즐기던 복잡하고 번거로운 차예술을 귀찮아해서 차를 통해 선비의 풍류와 자신의 청렴하고 높은 기상을 표현하고 자신의 기개를 연마하던 사상에서 탈피하여 소박하고 진실된 차도 문화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명나라 시기는 찻집과 새로운 생산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커다란 변화가 생겼는데 사람들에게 생활관념상 영향력도 명확한 영향력을 드러내게 된다. 청은 중국의 차관(茶館)이 가장 성행하는 시기로 이러한 찻집들은 백성들에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간단한 음식물과 옛날 고사들을 듣는 장소를 제공하게 되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북경에서 유명한 차관만 30여 곳이 넘었다. 청 말기의 상해는 66곳에 달했고 시골의 찻집도 도시의 찻집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의 규모와 전통을 자랑하게 되었다.
3. 4대 차도
1) 귀족차도
이들 계층은 권력과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 이를 자랑하기 위해 “정차(精茶), 진수(眞水), 활화(活火), 묘기(妙器)”의 4가지 충족 조건이 있었다.
2) 문인차도
중국의 문인들이 차를 좋아했던 것은 위, 진 시대 이전에는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사마상여, 진의 장재(张载), 좌사(左思), 당의 백거이, 이백, 두보 등이 있다. 차는 문학적인 사고를 도와주는데 차를 음미하는 문학, 물을 음미하는 문학, 차문(文), 차학(学), 차화(画), 차가(歌), 차희(戏) 등은 음차를 정신적으로 행복을 향수하는 단계로 승화시켜 중국 차도를 형성하게 된다. 문인들은 고상하고 우아함을 차를 통하여 표출 하였는데, 차의 이름을 음미하며 차로 시창작을 도우며, 차를 통하여 친구를 만나며 차에 관한 일을 우아하게 만들었다.
3) 선종차도
승려들 역시 차를 재배하고 명차를 생산하는데 있어 독특한 공헌을 했는데 차가 산에서 생산되고 승려들은 명산에 거주함으로 “이름난 산에는 유명한 사찰이 있고 유명한 사찰은 훌륭한 명차를 만들어낸다” 라고 하였다. 무이암차(武夷岩茶)는 용정차와 이름을 같이 하는데 우롱차(乌龙茶) 계통으로“일향이청삼감사활(一香二清三甘四活)”의 명성이 있다. 그 중 “대홍포(大紅袍)”가 유명하다.
4) 세속차도(世俗)
차는 우아한 물건이자 민속적인 물건이다. 청에 들어서 차는 이미 귀족뿐 만 아니라 민간 백성에 있어서도 떼어낼 수 없는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귀족은 자신의 고상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백성은 생활 음료의 한 부분으로 정착하였다. “차는 반드시 비싸고 귀할 필요가 없고 단지 그 가정의 경제적 상황에 맞추어 마시면 되고 물은 꼭 귀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끓이는 방법만 맞으면 되며, 다기가 꼭 훌륭하고 정교할 필요는 없고 그 차에 적합한 다기이면 좋다.” 라는 말이 있다.
4. 한 중 일 다도 비교
1) 한국의 다도철학
(1) 차는 선(禪)이다.
선(禪)이란 독특한 수행길이다. '선'이란 사원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용어로써 진리를 체득하고자 하는 방편의 문으로 고요히 생각한다고 하는 정려(靜慮), 도는 생각하여 닦는 사유수(思惟修), 또는 적멸(寂滅), 한마음의 극치라고도 한다. 차(茶)와 선(禪)이 같다는 것은 선(禪)의 삼매경에 들어 대오각성(大梧覺惺)하는 길이나 차의 삼매에 들어 묘경을 깨닫는 것이 한가지라는 뜻, 즉 다선일여(茶禪一如)인 것이다.
(2) 차는 맛이다.
멋이란 인간사고의 언행이 이상의 경지에 이르러 있고 품위가 있고 운치가 있어 속되지 않고 사려 깊은 것을 말한다. 멋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의 재화를 들여 멋있게 살고 싶어 가옥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고상한 취미를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사람이 맨먼저 움직이면 배고픔을 말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안일과 행복을 찾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많은 취미 생활을 만들어 냈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차생활이다. 우리 조상들은 풍류를 아는 민족이었다. 그래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이나 명승지에는 자그마한 정자를 세우고 꽃과 나무를 가꾸며 뜻이 있는 선비들과 함께 호연지기를 키웠으며 정신적 평안과 육체적 안락을 함께 도모하였으며 이것은 아름다움의 극치와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풍미이다. 이러한 생활이 차의 생활이요, 이를 얻고자 하는 정신이 차의 정신이다.
(3) 차는 절개이다.
절개란 선비의 굳은 충정이나 부녀자의 정절, 또는 예의범절을 말한다. 차가 선비의 굳은 충절과 같다는 말은 차나무가 상록수로써 추운 겨울의 눈보라를 이겨내고 봄을 맞는 세한(歲寒)의 정이 있듯이 선비가 굶주림과 출세의 유혹을 물리치고 절의와 기개를 지키는 꿋꿋한 정신이 서로 같은 뜻이 있기 때문이며, 부녀자의 정절과 같다는 말은 여자가 한 번 출가해서 한 남편을 섬기는 것이 차나무가 태어난 땅을 옮기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니 차나무는 옮겨 심으면 잘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부터 선비의 집안에 차가 떨어지면 부끄럽게 여겼고 임금도 공을 세운 신하에게 차를 예물로 하사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선비의 제례상에는 차를 올리는 것이 상례였다.
2) 중국의 다도철학
중국의 다도 철학적 이념을 볼 수 있는 부분은 주희가 다미(茶味)를 가인괘(佳人卦)로 본 것과 차의 덕(德)을 언급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육우가 다경(茶經)에서 "차는 행실이 정성되고 검소의 덕이 있는 사람에게 가장 알맞다." 고 하여 '검덕(儉德)'을 중요시한 내용이 있다. 그 후 북송의 휘종(徽宗)황제가 쓴 대관다론에는 담박하고 간결하여 고요한 운지를 숭상 받는다고 하였다. 여기서'다례정신'으로 들기를 '검(儉), 청(淸), 화(和), 정(靜)'이라고 했다.'검'은 검소, '청'은 청렴결백을 뜻하며, '화'는 화목, '정'은 고요한 경지를 의미한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기를 '청'은 마음에 잡념이 없어 고요함이며, '화'는 중용의 도를 말하며, '정'은 불교의 선(禪)과 같은 것으로 진심으로 노력하여 성불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3) 일본의 다도철학
일본의 다도는 불교사상이 바탕이 되었다. 그것은 '와비', '쓰우끼', '화경청적(和敬淸寂)의 화친사상'등으로 나타난다. 일본 다도의 화친(和親)사상은 센큐리가 정한 '사규(四規)'에서 나온 것으로 그것은 네 가지 규범인 '화, 경, 청, 적'을 뜻한다. 이는 다실에서 주객이 응(相應)하여 화친(和親)함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화경청적은 바람직한 다실의 분위기로 정한 것이 발전하여 다도의 목표이자 다도의 정신이 되었다. '화(和)'란 찻자리의 주인과 손님들이 화목하며, 동시에 화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고, ‘경(敬)’은 주인과 손님 모두가 각기 불성(佛性)을 지닌 인격체로서 존중함이다. '청(淸)'은 물질적, 정신적 욕심을 떨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음의 자유로운 경지에 들며, 다구의 청결을 중요시 한다는 뜻이며, '적(寂)'은 공간적 고요함과 적연부동(寂然不動)의 심경, 혹은 열반의 세계를 뜻한다.
2) 다경(茶經) 『다경』은 최초의 차에 대한 책이자 경전이 되었고 그는 차의 성인(茶聖) 또는 차의 신(茶神)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다경』은 차나무의 재배법, 제다법, 차를 만드는 법, 다기, 차의 산지 등 차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다
[ 다경은 총 3권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上券(상권) 일지원(一之源) : 차의 기원 글을 시작하는 문구는 "다자, 남방지가목야(茶者, 南方之嘉木也")인데, 이는 차의 산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계속해서 차나무, 찻잎, 차꽃, 다과, 차나무 뿌리 등의 모양을 기록하고 있다. "차"라는 글자를 차나무의 종류에 따라 달리 적고 있으며, 토양의 우열, 종묘방법, 생장환경, 차싹의 모양에서 색깔의 좋고 나쁨에 따라 각기 이름을 달리하여 적고 있는 등 그 묘사가 상당히 자세하다. 이지구(二之具) : 채엽도구 이 장에서는 차를 채엽하고 만들고 저장하는 도구를 열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차 바구니를 어떻게 드는가(등에 지는지, 팔에 끼는지), 채엽하는 광주리 모양 등인데, 대바구니는 이름은 다르지만, 재료는 모두 대나무이다. 삼지조(三之造) : 채엽 이 장에서는 채엽하는 시간과 맑은 날 채엽하고, 비가 올 때나 맑지만 구름이 많은 날은 따지 않는다와 같은 채엽 표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또한 찻잎을 병(餠)으로 만드는 과정을 증(蒸, 찌는 과정), 도(搗, 찧는 과정), 박(拍, 압력을 가해 납작하게 하는 과정), 배(焙, 열을 가해 주는 과정), 천(穿, 구멍을 뚫는 과정, 옛날에는 메주처럼 차를 주렁주렁 엮었다고 함), 봉(封, 포장해서 보관하는 과정) 등의 순서로 설명하고 있다. 中券(중권) 사지기(四之器) : 차 끓이는 도구 본 장에서는 "다도(茶道)"에 필요한 24가지 기구, 규격, 재질, 구조, 조형, 무늬, 용도와 사용법 등을 묘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 육우가 만들고 개조한 풍로(風爐)라는 것이 있다. 下券(하권) 오지자(五之煮) : 물과 차를 끓이는 방법 이 장에서 차병을 굽는 방법부터 불 피우는 재료, 물 선택, 수온의 파악 등 지극히 기술적인 차 달이는 방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다 구워진 차병은 뜨거울 때 종이 주머니에 보관하여야 향이 날아가지 않는다. 숯 선택 - 고기를 구웠던 적이 없는 깨끗한 향을 사용해야 한다. 뽕나무, 홰나무, 오동나무 등이 적당하다. 측백나무나 계수나무와 같이 기름성분이나 특이한 향을 지닌 것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썩은 나무나 오래된 폐가구나 수레바퀴와 같이 다른 곳에 사용되었던 나무도 사용해서는 안되는데, 심지어 가마솥에 불 때는 것도 안되고 차를 굽는 것에는 절대 사용할 수 없다. 물 선택 - 산수가 제일이고, 강수는 중간 정수가 가장 못하다고(山水上, 江水中, 井水下 산수상, 강수중, 정수하) 하였다. 산수는 젖을 짜는 것과 같이 돌못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이 좋으며(基山水, 揀乳泉, 石池漫流者上 기산수, 간유천, 석지만유자상), 용솟음치듯이 급히 흐르는 물을 자주 마시면 사람 목 부분에 병이 생길 수 있다. 흐르지 않는 물도 마시지 않는게 좋다. 강변의 물은 가급적 먼 곳의 물을 긷도록 하고, 우물물은 사람들이 많이 긷는 곳의 우물에서 얻어야 한다. 육지음(六之飮) : 차의 음용 이 장에서 육우는 먼저, 물을 마시는 것은 생명을 위해서이며, 차를 마시는 것은 정신을 위한 것이라는 문장으로 물 마시는 것과 차 마시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어서 음다의 역사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한 후 많은 공간을 할애하여 비과학적인 음다의 현상에서 "구난(九難)" 음다의 세부적인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과학적인 음다에 대한 본보기이다. 칠지사(七之事) : 다사(茶事)에 대한 역대기록 팔지출(八之出) : 차산지 이 장에서는 육우 개인의 경험과 느낌을 집대성한 것으로, 중국 전역의 차산지에 대한 품질평가 작업을 실었다. 당시의 차생산량과 현재의 차생산량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다. 구지략(九之略) : 다구의 간단화 본 장에서는 품차의 시간과 공간의 다르므로 다구의 간소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도"의 유기적인 구성 부분이다. 다도는 복잡할 수록 좋다거나 명성이 많을 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간소해야만 한다. 형태는 간략하더라도 내포한 의미는 풍부해야 하는데, 간단하면서 실용적이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구지략은 우리에게 융통성없이 맹목적인 다도의 표준이 아닌, 간결하고 실용적이며 순서가 있는 것이 다도의 표준일 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의 표준이기도 하며, 어떤 일을 하더라도 구지략의 정신을 따르면 대체로 덕을 갖출 수 있다고 하였다. 간소함(簡)은 검약함(儉)에서 나왔으나 검약함보다 고상하기 때문이다. 십지도(十之圖) : 다도 그림 흰 명주천에 《다경(茶經)》의 내용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내용에 따라 순서대로 다사(茶事)모임 장소에 걸려있어서 다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하였다.